미처 꿈을 펼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여교사, 유례 없이 숨이 턱턱 막히는 한 여름 대로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는 교권 보호 시위, 그리고 화룡점정(畵龍點睛), 자식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경찰에 고소한 어느 유명 웹툰 작가 부부...전교조와 좌파 정부가 벌여 놓은 굿판이 온 나라를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아수라장으로 몰아가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 아닐까 하지만...물론 이에 맞서 서슬 시퍼렇게 날 세워 나를 비난할 분 또한 많을 터이기도 하겠지만...
그간의 자세한 사정이야 차치라고라도 이런 결과가 발생하기까지엔 익명을 가장한 시민들의 수수방관(袖手傍觀)해 왔던 자세가 큰 역할을 담당했다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진보를 사칭한 왼편 정권을 등에 업은 전교조가 내세운 '학생중심교육'이란 허울좋은 구호에 매몰되어 시민들은 별다른 고민 없이 좋은 세상 온 듯한 환상에 무언의 지지를 표해 왔던 건 굳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닌가?
전교조 창립 초창기 행정부나 지방교육자치단체, 그리고 일선학교들은 그들의 공세에 대응할 아무런 역량도 갖추지 못했으니, 그야말로 전교조는 순풍에 돛 단 듯 세력을 넓혀갈 수 있었다. 좌파적 색채가 강한 그들은 공산주의 특유의 사상 전파, 이른바 '프로파간다(propaganda)'에 전력을 쏟으니 총 하나 쏠 줄 모르는 교육부 이하 교육기관들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게 당시의 현실이었다. 교육부는 기껏해야 1980년대 일본 전교조 운동의 폐해를 알리는 '일본교육 황폐'라는 문고판 책을 전국의 학교에 보급하는 데 열을 올렸지만, 사실 그거야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이나 무에 달랐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교조가 처음 힘을 모을 때 그들을 이기려면 일선 학교가 최일선에 나서서 그들을 막아내어야 하는데, 막상 학교는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조직적인 집단 의식학습으로 무장한 전교조에 이론으로나 물리력으로 대항할 수 있는 힘은 애초 학교에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었으니 그런 싸움의 결과야 뭐 100전 100패일 수밖에...
페스탈로치(Johann H. Pestalozzi)의 교육사상 실현이 교사의 책무라 여겼던 일선학교 교사들에게, 전교조가 불쑥 내미는 프레이리(Paulo Freire)의 책 『페다고지(Pedagogy)』는 당시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칼 막스의 이론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으니...게다가 당시 대학가를 휩쓸던『체 게바라 평전』을 읽은 세대들은 기성세대를 거부하는 '혁명'이라는 이상을 교육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꿈을 꾸고 있었고...지금 생각해 봐도 우스운 게, 옆구리에 붉은 색 바탕에 검은 색으로 베레모 쓴 게바라의 실루엣 그림이 표지로 장식된 책 나부랭이를 옆구리에 끼고 있지 않음 대학생이 아니요, 지성인은 더더욱 아닌 그 시절이었지, 아마...
얼쑤, 뿐인가? 영국의 서머힐 스쿨을 표방한답시고 교육철학적 배경도 없는 뜨내기에 다름 아닌 '열린교육'이란 게 느닷없이 나타나 교육계의 초토화 작업에 힘을 거들게 되었으니...채 5년을 버티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열린교육'의 상흔(傷痕)은 아직도 남아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더욱 웃기는 것은 프레이리를 비롯한 급진주의 사상가들의 책을 무슨 바이블이나 되는 양 떠받들고 열린교육이 최고의 교육사조인 양 입에 게거품을 문 자들은 당시 교육학을 전공했다는 교수 나부랭이들이라는 사실이다. 내 말이 틀린 말인지 당장 컴퓨터에 검색어로 '프레이리', '페다고지', '열린교육'을 입력해 보시길...좌르르 쏟아지는 책이나 아티클(article)의 저자 이름에 어떤 자들이 나오는지 보면 알 것 아닌가.
잠깐 샛길로 빠졌지만 다시 오늘의 주제로 돌아와 보자. 초중등학교 교장의 자격을 갖고 그 직에 오르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아이들 교육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는 교육계에 종사하면 다 아는 이야기이니, 따라서 대부분의 교사들은 승진을 꿈꿀 수밖에...헌디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하고 싶은 사람은 많으니 불불복 심지뽑기 아님 가위바위보로 정한다? 학교가 무슨 마작판도 아니고 경마장도 아니니 그런 방법을 쓸 순 없다.
해서리 교육부에서는 법령으로 교사들이 수행한 여러 가지 실적들을 계량화해서 서열화하고 고득점자 순으로 학교 관리자, 즉 교장, 교감으로 임용하는 것이다. 그럼 교사들이 획득하는 실적들은 어떤 게 있을까? 교사들이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영역을 크게 나누면, 경력, 연수, 연구, 그리고 가산점이란 게 있는데, 앞의 세 영역 점수는 누구나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점수라고 하겠다(물론 사립학교에서의 관리자 임용은 이런 규정과는 상관 없이 이사장의 입맛대로 정해진다더만). 하지만 문제는 네 번째 영역인 가산점인데 이게 승진 여부를 가름하는 결정적인 변수가 되는 것이다.
가산점 영역 가운데 연구학교 재직경력은 연구학교로 지정된 학교를 찾아다니며 10여 년 어영부영 지내다 보면 획득할 수 있는 점수이니 뭐 그렇다 치고, 진짜 중요한 것은 교육 또는 생활 환경이 상대적으로 매우 열악한 학교에서 근무한 대가로 얻는 점수라고 하겠다. 이 점수를 얻기 위해서 승진을 목표로 하는 교사들이 피 터지게 싸울 수밖에 없는 구조가 결과적으로 학교 관리자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교육·생활 환경이 극히 열악한 학교가 속한 지역은 어떤 곳일까? 교육법령이 규정한 곳으로는 촉견폐일(蜀犬吠日)을 방불케 하는 벽지(僻地), 뱃고동 소리 아득한 도서(島嶼)지역, 북괴의 침략에 가슴 졸이는 적접(敵接)지역 등이 있다. 이들 지역에 있는 학교에 근무한 경력은 점수 배점이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높기 때문에 승진 싸움에서는 가히 천하무적이라 할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가족들은 모두 도시에 남겨둔 채 교사들은 너도 나도 그런 험지(險地)에 가서 독수공방 라면 끓여 먹으면서 몇 년만 고생하면 승진해서 개선장군맹키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관리자들이 그런 방법으로 승진하는 것은 아닌 게, 사실 전문직 경력으로 관리자의 직에 오르는 매우 쉬운 방법도 있다(물론 전문직 임용시험에 붙기 어렵다고 하더만). 결론적으로 말해서 관리자의 직은 인격과 덕망으로 주어지는 자리가 아닐 뿐더러, 지적 능력이나 관리 능력으로 얻을 수 있는 자리는 더더욱 아니라는 사실이다. 뭐 군대로 치자면 공병대에서 죽어라고 땀 흘리면 남보다 우선해서 장군이 될 수 있고, 학교 역시 남들이 기피하는 학교에 근무하면 교장으로 승진할 수 있다는 논리에 다름아니라고 하겠다.
열악한 환경의 학교에서 근무한 경력이 승진의 중요한 조건이라 볼 때, 그렇게 승진한 교장이 방대한 인적 조직을 운영함에 있어서 과연 어느 정도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학생들 교육, 또는 학부모 관계에서 선생님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에 관리자들의 승진 조건은 아무런 관계가 없음은 자명하다. 그렇다고 그런 곳에 근무한 경력을 승진 고과에 반영해 주지 않으면 아무도 그런 곳에 가지 않을 터이니, 유인책으로 승진 점수를 부여하는 제도는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이는데...하지만 무릇 관리자라면 그 직에 오르는 순간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선생님들을 보호하는 데 기꺼이 자신의 모든 직을 걸어야 할 것이고, 그게 그들이 마땅이 짊어져야 할 책임이자 운명인 것이다. 그렇지 않은 관리자는 많은 급여를 받으면서 그 자리에 앉아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에공! 이 글이 어느 한편에 치우친 사적 견해라고 힐난하면서 카페 관리를 맡은 병일군이 당장 내리라고 지시하면 우짤까잉...하지만 사니히 한 번 뺀 칼 썩은 무라도 자른다는데 그래도 하고픈 말은 한 번 하고 지우든 말든 해야긋제잉. 꼬끼오! 하룻밤 자고 나서 다시 생각해도 제목이 너무 자극적인 듯해서리 기냥 '교장의 자격 일고(一考)'로 바꿔야 되겠네. 굳이 포퍼(Karl R. Popper)의 이론을 끌어오지 않는다 하여도, 검은 백조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백조는 희다'라는 명제가 진리로 인정되듯, 몇 개의 사례만으로 모든 현상이 그러하다는 일반화의 오류는 피하는 게 맞는 말일 터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