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카·드
글│서 한│전자신문 인터넷부 기자
지난수년새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잡은 첨단 정보기술(IT)
수단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교통카드를 빼놓을 수 없을
듯 싶다. 이제는 생활필수품이 돼 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할 때, 고속도로
톨게이트 비용을 지불할 때 굳이 현금을 내려 하지 않는다.
일분 일초가 아까운 사람들에게 교통카드는 편리함의
미학을 최대한 향유할 수 있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지난 십
수년간 서민들의 주머니 한 자리를 차지했던 버스 토큰은
교통카드에 밀려 지난 99년부터 아예 역사속에서 사라져
갔다. 실생활의 파급력을 배제하더라도, 교통카드가 현재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크다.
비록 우리가 IT대국임을 자칭하곤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부끄러운 단면이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번듯하게 내세울만한 기반기술은 극히 취약하고, IT분야의
주력 수출상품은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하곤 선진국들이
외면하는 노동집약형 상품들이다. 하지만 이처럼 초라한
우리의 현실 가운데서 교통카드는 유난히 두드러진
기술발전의 산물이다. 세계 어느 국가보다 앞서 상용화에
성공했고, 가장 많은 보급률과 활용도를 지니고 있다.
때문에 세계 많은 국가들에서는 지난 수년간 한국의
교통카드 활용현장을 답사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다녀갔다.
선진 적용사례를 연구, 자국에 접목하기 위해서였다.
지능형교통시스템(ITS), IC카드 제작기술, 시스템관제기술
등 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교통카드가 어느새 한국을 [디지털시티]를
일궈가는 모범국가로 만든 것이다.
기실 국내에서 교통카드의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
지난 96년 서울시 버스카드를 시작으로, 98년 부산 버스-지하철
교통카드, 99년 서울시 지하철카드 등 점진적인 확산일로를
걸었다. 지금은 인천-경기 등 수도권과 부산-경남권, 제주,
강원도 일부 지자체, 전북도 등 웬만한 지방자치단체들은
역점 추진사업으로 선정하고 보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디지털시티라는 말이 최근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지자체들의 경쟁 덕분이다.
지난 96년 첫 선을 보인 서울 버스카드는 1,000만 시민들을
대상으로 상용화된 첫 프로젝트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달랐다. 이만한 규모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여기서 당시 시스템 초기 도입과 운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초창기 시스템업체들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교통카드는 칩 공급사와 카드 제작사,
단말기 개발업체 등 각종 전문분야들이 연계해야 하는
시스템이지만 결국 핵심인 정산시스템 개발-운영을
담당했던 것은 이들 주역이다. 당시 서울시 버스카드를 첫
도입했던 인텍크산업은 가장 대표적인 교통카드의
간판기업. 기업 구조조정을 겪으며 지금은 모토로라사에
시스템 관련 특허권-소유권을 넘겼지만 여전히 버스카드
시스템 운영을 대행하고 있다.
지난 98년 부산시 버스-지하철 교통카드를 구축,
운영했던 또 다른 주인공은 한국정보통신. 신용카드조회(VAN)
사업자로 더 널리 알려져 있지만, 한국정보통신은 단말기
제조사인 경덕전자와 함께 지금의 디지털부산을 있게 한
공신이다. 당시 한국정보통신과 부산시는 시 차원의
강력한 의지에 힘입어 초기 시스템 구축단계부터 버스-지하철을
통합한 환경으로 구현해냈다. 서울 지역이 버스와
지하철로 나뉘어 각각 별도의 시스템으로 구현됐던 것과
비교할 때 모범적인 선례를 남긴 것이다. 당연히 시민들이
느끼는 편리함도 커, 부산시 교통카드는 단숨에
생활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99년 서울시 지하철 교통카드는 코스닥 등록기업인 C&C엔터프라이즈의
작품이다. C&C엔터프라이즈는 당시 국민카드사와
공동으로 ‘국민패스카드’라는 브랜드의 신용카드 겸용
교통카드를 선보였다. 지하철 교통카드가 서울 버스카드,
부산 교통카드와 한가지 달랐던 점은 신용카드를 기반으로
한 후불식 결제방식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미리 수만원의
돈을 내고 충전을 해야만 쓸 수 있었던 타 교통카드와
비교할 때 국민패스카드는 시민들에게 남다른 이점을
제공했다. 현재 ‘통합교통카드’, ‘통합전자화폐’, ‘디지털시민카드’
등 다양한 이름을 달고 전국 각지로 확산되고 있는
교통카드는 결국 초창기 서울과 부산의 시스템 성격을
모태로 하고 있다.
교통카드의 작동원리를 알기 위해서는 IC카드에 대한
이해를 빼놓을 수 없다. 사실 교통카드는 IC카드에 얹힌
하나의 어플리케이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교통카드에 탑재됐던 IC카드는 비접촉식(RF)
메모리카드다. IC카드의 칩과 단말기가 직접 접촉하지
않더라도 RF주파수를 통해 10센티미터 이내에서는
정보처리가 가능한 시스템 환경이다. RF카드의 메모리에는
사용자의 거래정보가 기록, 처리되고 정산센터를 통해
결제가 완결된다. CPU가 탑재된 접촉식 카드에 비해
보안성은 뒤지지만 신속한 처리를 할 수 있어 교통과
출입통제 등의 용도에 주로 활용되는 게 바로 RF
메모리카드다. 대부분 교통요금이 소액결제에
국한되는데다 사람손을 거치지 않고 신속한 처리를 요구해
RF카드가 적합한 대안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초창기 RF메모리카드 일색이었던
교통카드시스템은 최근 1~2년새 급격한 기술적 진화과정을
걷게 된다. 교통요금에다 각종 생활편의시설, 실물상점,
민원처리 등 다양한 용도에 지불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통합형 카드시스템이 속속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교통카드와 전자화폐의 결합인 셈이다. 이같은
상황이 현실로 성큼 다가선 것은 콤비카드라는 신기술
덕분이다. 콤비카드는 기존 접촉식 IC카드와 비접촉식 IC카드의
장점을 모두 수용, 거래의 보안성과 신속성을 동시 구현한
환경이다. 최근 필립스-슐렘버저-젬플러스 등 세계적인
카드 제조사들이 대용량의 CPU와 메모리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도록 양산체제를 갖춘 것도 한몫 했다. 이에
따라 K-캐시, A-캐시, 마이비화폐 등 통합 교통카드
업체들은 콤비카드 환경을 기반으로, 전면에서 지자체
교통카드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자화폐
전문업체들인 몬덱스, 비자캐시 등도 가세함으로써
교통카드 시장은 전자화폐의 주요 격전지가 되고 있다.
K-캐시는 국내에서는 유일한 RF규격인 ‘ISO-14443B’
타입을 취하고 있다. 삼성전자, 이스라엘 OTI사가 합작
개발한 이 콤비카드는 현재 금융결제원과 시중은행권이
공동 사업자로서 춘천시, 수원시 등에 보급을 앞두고 있다.
K-캐시는 출발부터 금융권과 전문업체들의 국산화 의지로
개발 추진된 상품인만큼, 보안관리 측면에서는 국내
보안당국의 요구에 가장 접근한 제품이다.
A-캐시는 삼성-LG-국민카드 등 신용카드 3사와 시스템
전문업체인 케이비테크놀로지가 공동 설립한 통합
교통카드 전문업체로 현재 가장 많은 지자체와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7월 원주시에 이어 9월 전라북도, 11월 서울시
마을버스, 12월 경기도 버스카드 등으로 빠르게 보급을
늘려가고 있다. 마이비화폐는 부산에 지역연고를 둔 토착
교통카드 업체. 부산은행과 부산버스조합을 중심으로,
케이비테크놀로지-마이크로소프트 등 다수 기업들이
출자사로 참여해 교통카드 상품인 ‘디지털부산카드’를
보급중이다. 지금까지는 부산-경남권이 주요
공략대상이었지만, 활로모색은 역시 타 지역으로의
확산이다.
지난 96년 선보인 이래 불과 5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교통카드는 이처럼 양적-질적으로 눈부신 변화
발전을 거듭해왔지만, 여전히 풀지 못한 치명적인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교통카드 사업자간, 지자체간 호환이
불가능하다는 태생적인 문제점이다. 근본적으로는 애초
교통카드 도입당시부터 전국적인 표준화 논의없이
사업자들의 이해관계에 밀려 졸속 추진됐던 원인이
깔려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IC카드에 대한 각급
지자체나 정책당국의 무지도 큰 몫을 했고, 지금도 상황은
별로 나아진 듯 하지 않다. 교통카드가 국가
기간인프라로서, 국민의 발을 싣는 도구로 제 모습을 찾기
위해서는 ‘교통카드 국가대계’를 다시 짜야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