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창대회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詩唱인데다
석암 육성으로 감상할 수 있는 희귀 자료로 판단되어
누구나 접하여 활용할 수 있도록 YouTube에도 올려드렸으며,
악보가 복잡하여 해당 가사부분에 唱이 진행되는 부분을 표시하여
알아보기 쉽게 영상처리하였습니다.
영상 우측 하단의 전체화면 네모표시를 클릭하여
전체화면으로 감상하시면 악보 보시기가 훨씬 편합니다.
영남루에 관한 최초의 단초를 잡을 수 있는 한시가
임춘(林椿)의 서하집(西河集)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서하집 제2권 고율시(西河先生集卷第二 古律詩 )편에
제영남사(題嶺南寺)와 영남사죽루(嶺南寺竹樓)라는 두 개의 시가 전하고 있지요.
임춘은 생몰연대가 전해지지 않습니다.
막연하게 고려시대 의종(毅宗, 1127~1173) 말년에서 명종(明宗, 1131~1202) 초에 살다간
문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기는 무신정권이 시작되는 때이기도 했지요.
1170년 정중부(鄭仲夫)가 일으킨 무신정변(武臣政變)을 피해
이인로(李仁老), 오세재(吳世才), 이담지(李湛之),
조통(趙通), 황보항(黃甫抗), 함순(咸淳) 등과 함께
강좌칠현(江左七賢)을 자처하며 재야에서 시와 술로 세월을 보냈지요.
그러다가 1174년(고려 명종 4)에 예천으로 내려 왔으며
그 시기에 밀양에서 몇 년간 생활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임춘은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는데 그의 제문(祭文)을 지은 이인로의 글에
'청춘삼십세영몰'(靑春三十世永沒)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30살에 죽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임춘이 제영남사와 영남사죽루를 쓸 때만 해도 영남루는 없었습니다.
영남루의 근원이 되는 영남사죽루에 대한 기록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지요.
題嶺南寺(제영남사) 林椿(임춘)
曾聞圓嶠臨蒼濤 (증문원교임창도) 일찍이 푸른 바다 신선 사는 원교에
樓閣玲瓏駕巨鼇 (누각령롱가거오) 영롱한 누각이 큰 자라 타고 있었는데
鼇傾海動群仙駭 (오경해동군선해) 자라 기울고 바다 흔들려 신선들이 놀라고
茫茫失去一峯高 (망망실거일봉고) 높은 봉우리 하나를 아득히 잃어버렸다지
飛來?惚移於斯 (비래황홀이어사) 그게 문득 이곳으로 옮겨 날아와서는
磅?千古當古壕 (방박천고당고호) 옛 성 해자 앞에 천고토록 웅크리고 있네
突起連空如疊玉 (돌기연공여첩옥) 공중에 옥을 쌓듯 우뚝 솟아서
百丈淸潭橫鴨綠 (백장청담횡압록) 백 길 맑은 못에 짙푸른 물이 비끼고
水泛桃花出洞中 (수폄도화출동중) 복사꽃 띄운 물이 골짝에서 나오니
居人宛是秦餘俗 (거인완시주여속) 주민은 완연히 선진의 풍속
靑山影裏兩三家 (청산영리양삼가) 푸른 산 그림자 속에 두 세집이요
垂柳陰中千萬屋 (수류음중천만옥) 수양버들 그늘 속에 천이요 만 집
日暮郊原牛馬歸 (일모교원우마귀) 해 저문 들녘에 소와 말은 돌아오고
春深洲渚鳧?浴 (춘심주저부람욕) 봄 깊은 물가에는 물오리 헤엄친다
漁舟之子棹如飛 (어주지자도여비) 어부가 젓는 배는 나는 듯한데
溪岸不知盤幾曲 (계안부지반기곡) 계곡을 몇 구비나 틀고 돌았나
洛城遷客來何時 (낙성천객래하시) 서울을 떠난 손은 어느 때 떠나왔나
樓上欲窮千里目 (루상욕궁천리목) 누각 위에서 천리 길 멀리 보려네
山耶雲耶遠一色 (산야운야원일색) 산인가 그름인가 멀어서 한 빛인데
雁點長空行斷續 (안점장공행단속) 먼 하늘 기러기 점 끊어졌다 이어지네
天涯?色正蒼然 (천애만색정창연) 하늘가에 저무는 모습 참으로 창연하여
其奈思家心更速 (기내사가심경속) 고향 집 생각 다급한 마음을 어찌하나
不用重來登此樓 (불용중래등차루) 다시 와서 이 누각에 오르지 말자
煙波好處使人愁 (연파호처사인수) 풍경 좋은 곳이 시름을 자아내나니
嶺南寺竹樓(영남사죽루) 林椿(임춘)
嶺南山水甲吳興 (영남산수갑오흥) 영남사의 산수는 오흥에서 제일인데
樓上春來偶一登 (누상춘래우일등) 봄이 와 누각 위에 한 번 올라갔다네
橫皺愁眉孤岫遠 (횡추수미고수원) 근심 어린 눈썹을 찡그리니 외로운 산봉우리 아득하게 보이고
平鋪淨練碧波澄 (평포덩연벽파징) 고요한 맑은 강에 푸른 물결이 깨끗하네
雲飛?棟歸湘浦 (운비화동귀상포) 날아가는 구름이 그려진 기둥은 상수포 물가와 같고
風送漁舟入武陵 (풍송어주입무릉) 고깃배가 바람에 실려 무릉으로 돌아가네
吟罷揮毫留粉壁 (음파휘호유분벽) 시를 읊은 뒤에 붓을 휘둘러 죽루 기둥에 쓰니
重遊聊欲記吾曾 (중유요욕기오증) 다시 와 놀 때 나의 자취를 기념하려는 것이라네
그 후 1344년(고려 충목왕 1)경의 봄에 성원도(成元度)가
밀양을 지나는 길에 영남루에 들려 한시를 남겼습니다.
이 시는 영남사 죽루를 영남루로 새로이 고쳐 지은 후에 처음으로 쓴 시로 보여지며
후대의 사람들이 성원도의 영남루를 차운하여 많은 시를 짓기도 했습니다.
성원도는 시의 서문에서 말하기를
"남방의 아름다운 누각으로 안동의 영호루(暎湖樓)와
울산의 태화루(太和樓)와 김해의 연자루(燕子樓)와
진주의 촉석루(矗石樓)와 합천의 함벽루(涵碧樓)가 있지만
모두가 이 누각과 어깨를 견주지 못한다"고 말했지요.
嶺南樓(영남루) 成元度(성원도)
朱欄突兀出雲天 (주난돌올출운천) 붉은 난간은 구름 위로 우뚝 솟았고
列岫連峰湊眼前 (열수연봉주안전) 늘어선 산봉우리 눈에 가득 몰려든다
下有長江流不盡 (하유장강유부진) 긴 강물 흘러흘러 그치지 아니하고
南臨大野闊無? (남임대야활무변) 남쪽으로 펼친 큰 들은 끝없이 넓구나
村橋柳暗千林雨 (촌교유암천임우) 냇가의 질은 버들 길게 수풀 이루고
官路花明十里烟 (관로화명십리연) 길따란 대로 꽃경치 십리를 이어간다
不欲登臨賞風景 (부욕등임상풍경) 누에 올라 풍경을 감상코자 아니함은
恐人因此設歡筵 (공인인차설환연) 사람들이 이로 인해 환영잔치 베풀까봐
고려시대 말기의 문신이자 유학자인 이색(李穡, 1328~1396)도
영남루에 대한 시를 남겼습니다.
목은의 판상시(板上詩)가 영남루에 걸려 있다고 했으나 찾지를 못했습니다.
아마도 좀더 눈여겨 살펴보지 못한 탓이겠지요.
시에 은어(銀魚)가 등장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목은 선생이 밀양에 와서 사위와 함께 은어회를 먹고자 하였으나
마침 일어난 홍수 때문에 부사가 고기를 잡을 수 없어
은어회를 먹지 못한 아쉬움'이 담겨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당시 밀양 유생이 이색 선생에게 글을 청하면서
은어포를 예물로 드렸는데 시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밀주승람(密州勝覽)에
'時密陽儒生 以事謁文于先生 而以銀魚脯爲 贄故先生作此詩
(시밀양유생 이사알문우선생 이이은어포위 얼고선생작차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말이 맞는 것일까요?
嶺南樓下大川橫 (영남루하대천횡) 李穡(이색)
嶺南樓下大川橫 (영남루하대천횡) 영남루 아래 큰 물 비껴 흐르고
秋月春風屬太平 (추월춘풍촉태평) 가을 달 봄바람이 태평이로세.
忽得銀魚森在眼 (홀득은어삼재안) 문득 눈앞에 삼삼한 은어
斯文笑語可聞聲 (사문소어가문성) 사문의 웃음소리 귀에 들리는 듯
사진 참조 (유심 http://www.yousim.co.kr/news/articleView.html?idxno=8463)
고려시대 말과 조선시대 초기에 생존했던
문익점, 이숭인, 도원흥, 권근, 김구경 등도 영남루에 관한 시를 지었지요.
문익점(文益漸, 1331~1398)은
1363년(고려 공민왕 12)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목화를 가져 왔으며
그것을 고향인 산청에서 시배(始培)에 성공하여 전국으로 퍼트렸지요.
그의 판상시가 영남루에 걸려 있습니다.
병오년(1846)에 후손 병렬이 썼다고 하는 판상시의 설명을 보면
이 시는 "선조 삼우당 충선공께서 홍무 병진년(1376)에 청도 군수로 왔을 때
영남루 시를 지었는데, 유고에 실려 있다"고 했습니다.
聞說神仙有洞天 (문설신선유동천) 들려오는 이야기에 신선이 살고 있는 하늘마을을
六鰲頭戴忽移前 (육오두대홀이전) 여섯 자라 머리로 이어다 이 앞에 옮겼다지
晴川芳草好風裏 (청천방초호풍리) 개인 내와 우거진 풀에는 산들바람 일고
孤鶩落霞斜日邊 (고목낙하사일변) 외로운 따오기 지는 노을은 석양가에 있네
廣野馬牛分客路 (광야마우분객로) 넓은 들에 말과 소는 나그네 길을 분간하고
遠村鷄犬接人煙 (원촌계견접인연) 먼마을 닭과 개소리 인가가 이어졌네
別區光景言難竟 (별구광경어난경) 특별한곳 풍경을 말로 하기 어려워
畵取吾將獻御筵 (화취오장헌어연) 그림으로 그려다가 임금님께 바치려네
이숭인(李崇仁, 1347~1392)은
고려시대 말의 문신으로 예문관제학의 벼슬에 올랐으나
유배를 당하여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유배지에서 죽었습니다.
호는 도은(陶隱)으로 목은과 포은과 더불어 고려 3은으로 불리기도 했지요.
이색(李穡)은 이숭인을 일컬어
“이 사람의 문장은 중국에서 구할지라도 많이 얻지 못할 것이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도은집(陶隱集) 제2권(卷之二)의 시(詩)편에 실린
영남루에 제하다(題嶺南樓)라는 시입니다.
題嶺南樓(제영남루) 李崇仁(이숭인)
高樓登眺若登天 (고루등조약등천) 높은 누대 올라보니 하늘에 오른 듯하여
景物紛然後忽前 (경물분연후홀전) 보이는 경치 뒤에 있는 것이 홀연히 앞에 보이네
風月雙淸是今古 (풍월쌍청시금고) 예나 지금이나 바람과 달 모두 맑고
山川十里自中邊 (산천십리자중변) 가운데서 산천이 십리나 길게 뻗어있네
秋深官道映紅樹 (추심관도영홍수) 가을이 짙은 넓은 길에는 붉은 단풍나무 비치고
日暮漁村生白煙 (일모어촌생백연) 저무는 어촌에는 흰 연기 피어오른다
客子長吟詩未就 (객자장음시미취) 나그네 길게 읊어보나 시 아직 짓지 못해
使君尊俎秩初? (사군존조질초정) 사군이 내리는 술잔이 잔치의 시작이로다
이숭인과 동시대를 살았던 도원흥(都元興, 생몰년 미상)의
제영남(題嶺南)이라는 한시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많은 한시들을 읽어 보았지만 도원흥의 영남루처럼 현대시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시를 본 적이 없다고나 할까요?
대략 18세기 후반에 필사본으로 엮어진
나려칠률(羅麗七律)에 실린 도원흥의 嶺南樓(영남루)입니다.
제영남(題嶺南)이라고도 하지요.
嶺南樓(영남루) 都元興(도원흥)
金碧樓明壓水天 (금벽누명압수천) 금빛같고 보석같은 화려한 누각 물과 하늘에 우뚝
昔年誰構此峯前 (석년수구차봉전) 옛날 어느 누가 이 산 앞에 세웠나
一竿漁夫雨聲外 (일간어부우성외) 밖은 빗소리 어부는 낚시질 하고
十里行人出影邊 (십리행인출영변) 먼 길 가는 행인은 산그늘 벗어나네
入檻雲生巫峽? (입함운생무협효) 흘러든 구름 험한 골짜기로 흘러들고
逐波花出武陵煙 (축파화출무릉연) 밀려드는 물결에 꽃잎이 무릉계곡 안개 속에 드는구나
沙鷗但聽陽關曲 (사구단청양관곡) 모래 톱의 저 갈매기 이별의노래 양관곡을 들어도
那識愁心送別筵 (나식수심송별연) 수심담은 송별의 잔치인 줄 어찌 알겠소
이숭인, 도원흥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권근(權近, 1352~1409)의
차밀성영남루운(次密城嶺南樓?)도 영남루 제영에서 빠질 수 없는 시입니다.
양촌집(陽村集) 제7권의 시류(詩類) 남행록(南行錄)에 실린
밀성 영남루의 운을 차한다(次密城嶺南樓?)를 한 번 보겠습니다.
次密城嶺南樓?(차밀성영남루운) 權近(권근)
高樓百尺控長天 (고누백척공장천) 백 척 높은 누대 중천에 닿은 듯
風景森羅?案前 (풍경삼라궤안전) 온갖 풍경은 책상 앞에 널렸구나
川近水聲流檻外 (천근수성류함외) 내 가까우니 물소리 난간 밖에 흐르고
雲開山翠滴?邊 (운개산취적첨변) 구름 열리니 산의 푸른 기운 처마 끝에 듣는구나
千畦壟畝禾經雨 (천휴롱무화경우) 천 이랑 밭두둑엔 비 맞은 벼요
十里閭閻樹帶煙 (십리려염수대연) 십 리 마을엔 연기 띤 나무로다
匹馬南遷過勝地 (필마남천과승지) 필마로 귀양길에 승지를 지나다가
可堪登眺?賓筵 (가감등조첨빈연) 올라 조망할 만하여 손들 모인 자리에 참여하였거니
ⓒ 한국고전번역원 ┃ 이식 (역) ┃ 1978
이제 조선시대로 넘어오면 김구경, 서거정, 김종직, 정사룡, 이황, 신석균 등의
영남루에 관한 시들을 볼 수 있습니다.
김구경(金久?, 생졸년 미상)은
조선 초기의 태종(太宗, 재위 1400~1418) 때 문신이었습니다.
동문선 제17권(東文選卷之十七) 칠언율시(七言律詩)에
차밀양영남루운(次密陽嶺南樓韻)이라는 그의 시가 실려 있습니다.
次密陽嶺南樓韻(차밀양영남루운) 金久?(김구경)
承綸來自九重天 (승륜래자구중천) 구중 궁궐에서 어명 받잡고 왔던 차
有嶺南樓忽在前 (유령남루홀재전) 문득 보니 앞에 우뚝 선 영남루
碧瓦玲瓏晴日表 (벽와령롱청일표) 갠 날 햇살에 푸른 기와가 영롱하고
朱欄照耀彩霞邊 (주난조요채하변) 채색 노을가에 붉은 난간이 번쩍이네
寒聲滿座江噴雪 (한성만좌강분설) 자리에 가득 써늘한 소리는 강이 눈을 뿜고
翠色凝簾竹?煙 (취색응염죽타연) 발에 엉긴 푸른 빛은 대가 연기에 휘늘어졌네
勝槪遙聞年已久 (승개요문년이구) 이 좋은 경개를 몇 해째 들었더니
登臨更踏雨雲筵 (등림경답우운연) 올라와 보니 더구나 화려한 연회 자리
ⓒ 한국고전번역원 ┃ 양주동 (역) ┃ 1968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조선시대 세종과 세조 때의 문신으로
그의 명성은 명나라의 학자들조차 해동(海東)의 기재(奇才)라고 찬탄할 정도였으며
특히 문장과 글씨에 능했지요.
서거정의 문집인 사가시집보유3(四佳詩集補遺三)
시류(詩類)의 여지승람(輿地勝覽)에 보면 밀양십경(密陽十景)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1경인 우령한운(牛嶺閑雲)에 영남루에 대한 시심이 들어 있지요.
전체를 모두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옮겨봅니다.
密陽十景(밀양십경) 徐居正(서거정)
牛嶺閑雲(우령한운) 우령(牛嶺)의 한가로운 구름
牛嶺??揷層碧 (우령초초삽층벽) 우령이 멀리 겹겹 청강석을 꽂아 논 듯해라
嶺南佳麗天下獨 (영남가려천하독) 영남의 아름다운 경치가 천하에 으뜸일세
瓊樓?棟金鰲頭 (경루화동금오두) 화려한 누각 용마루는 금오 머리에 우뚝한데
閑雲?繞長五色 (한운료요당오색) 한가로운 구름 얽히어 마냥 오색이 찬란하네
誰言雲是無心物 (수언운시무심물) 구름을 무심한 물건이라 누가 말했던고
澤潤生靈元有術 (택윤생령원유술) 생령을 윤택게 하는 술법이 원래 있는걸
何曾蔽日漫遮天 (하증폐일만차천) 어찌 공연히 태양과 하늘을 가리기만 하랴
大旱成霖應不日 (대한성림응불일) 큰 가뭄엔 응당 불일간에 장맛비를 내리리
鈒浦漁燈(삽포어등) 삽포(鈒浦)의 고기잡이 등불
鈒浦朝來新水生 (삽포조래신수생) 삽포의 아침에 새로운 물이 불어나더니
碧空涵水秋夜淸 (벽공함수추야청) 하늘 그림자 물에 잠겨라 가을밤이 맑구려
?林葉盡江無風 (소림엽진강무풍) 성긴 숲에 잎 다 져서 강바람 아니 불자
漁燈耿耿排明星 (어등경경배명성) 고기잡이 등불이 별처럼 널려 반짝거리네
野老相喚喜欲顚 (야로상환희욕전) 야로들이 서로 불러 미칠 듯 기뻐하여라
今年魚足休論錢 (금년어족휴론전) 금년엔 고기가 풍족해 돈 걱정 할 것 없다고
白酒黃?復相慰 (백주황오복상위) 막걸리에 게 다리 안주로 다시 위로하면서
孤舟夜泊蘆花邊 (고주야박로화변) 외로운 배가 갈대꽃 곁에서 밤을 새누나
栗島秋烟 율도(栗島)의 가을 연기
樓前十里鸚鵡洲。누각 앞의 앵무주 백사장 십 리 거리에
栗花如雪香浮浮。눈송이 같은 밤꽃 향기 물씬물씬 풍기더니
??結子如繁星。주렁주렁 달린 밤송이 수많은 별 같아라
秋來萬斛黃金收。가을이면 만곡의 황금 같은 밤알을 거두네
樹?拖白烟非烟。나무 끝에 희게 비낀 건 연기 아닌 연기요
萬家烟火遙相連。만가의 밥 짓는 연기는 멀리 서로 이어졌네
大平氣象無人?。태평 시대의 기상을 그릴 사람 없어라
妙手我欲煩龍眠。용면의 훌륭한 솜씨를 빌리고만 싶구나
瑩峯初旭 영봉(瑩峯)의 아침 해
金鷄??扶桑晨。금계가 울어 대고 동방에 새 아침이 오매
六龍扶出初日輪。육룡이 아침 해 바퀴를 떠받들고 나오니
蒸紅?熱珊瑚光。짙붉은 햇살 이글이글 산호 빛이 찬란해라
洪濤萬頃金鱗鱗。큰 물결 만 이랑에 황금빛이 반짝거리네
須臾飛上萬丈岡。잠깐 새에 만 길 산봉우리를 날아올라라
一日一周天蒼茫。아득히 푸른 하늘을 하루 한 바퀴씩 도누나
我欲長繩繫九烏。나는 곧장 긴 밧줄로 구오를 꽁꽁 묶어서
萬古懸在天中央。만고토록 하늘 한가운데 달아 놓고 싶어라
羅峴積雪 나현(羅峴)에 쌓인 눈
紅雲??濃潑黑。뿌연 구름이 먹물을 뿌려 놓은 듯 캄캄하더니
雪片飛飛大於席。자리보다 큼직한 눈송이가 펄펄 날리어라
天地中間一淸氣。하늘땅의 중간이 온통 맑은 기운뿐이요
無有一片纖靄隔。한 조각 구름 안개의 가리움도 전혀 없네
由來三白瑞?年。예로부터 삼백은 풍년의 상서라 하는데
家家白玉千頃田。가가호호의 천 이랑 전토가 백옥 같구려
遺蝗入地已千尺。누리가 이미 천척 땅속으로 들었을 테니
明年應取禾百廛。명년에는 응당 백 전의 벼를 거두겠구나
西郊修? 서교(西郊)에서 계를 치르다
春日可人溫似玉。봄날이 옥처럼 다사로워 맘에 꼭 맞아라
西郊芳草細於織。서쪽 교의의 방초는 베실보다 섬세하구려
滿郊花雨紅紛紛。교외 가득 붉은 꽃잎은 어지러이 날리고
春波??流水曲。봄 물결을 콸콸 흘려 유수곡을 울리는데
鄕隣修?簇如雲。마을에선 계를 치르려 구름처럼 모여서
飛觴轉急皆??。술잔을 급히 돌려 모두가 거나히 취했네
風流不減永和春。풍류는 영화 연간의 봄보다 못지않건만
醉札誰似玉右軍。취해 쓴 글은 그 누가 왕 우군만 할는지
南浦送客 남포(南浦)에서 손을 보내다
朝來小雨潤如膏。아침에 온 작은 비는 기름처럼 윤택하고
官街碧柳細於繰。관도의 푸른 버들은 명주실보다 섬세한데
單童匹馬雙白甁。동복 하나 말 한 필에 술병 둘을 가지고
送客直過南浦橋。손님 전송하러 곧장 남포의 다리를 지나네
人生聚散如浮雲。인생의 만나고 헤어짐은 뜬구름 같은 거라
富別貧別皆傷神。부별이나 빈별이 다 마음을 상하누나
驪駒一曲歌而?。여구가 한 곡조 노래는 이미 한창인데
天長水遠愁殺人。하늘 넓고 물은 멀어 사람을 시름케 하네
馬山飛雨 마산(馬山)에 날리는 소낙비
東風簾捲十二欄。동풍에 열두 난간의 주렴이 다 걷히매
一望眼界東南寬。한번 바라보니 동남쪽 시야가 탁 트이네
長林隱映浦隔浦。긴 숲 새로 희미해라 포구는 포구와 막히고
馬山一點靑鴉?。마산 한 봉우리는 여인의 검은 머리 같은데
忽有江雲黑如?。갑자기 칠흑 같은 강 구름이 일어나서
白雨飛飛銀箭瞥。은 살대 같은 소낙비를 마구 날려 대더니
長風吹掃過江去。거센 바람이 불어와 강을 한번 쓸고 가니
半邊靑山?落日。푸른 산 한쪽이 붉은 석양을 머금었구나
凝川漁艇 응천(凝川)의 고기잡이 배
凝川遠從銀漢來。응천이 멀리 은하수로부터 흘러 내려와
樓前綠染蒲萄?。누각 앞을 파란 포도주 빛으로 물들였는데
昨夜小雨漲半?。어젯밤 작은 비에 물이 상앗대 반쯤 불어
漁?隨意沿流廻。고깃배가 제 맘대로 물을 따라 내려가누나
桃花細浪?魚肥。잔잔한 도화수 물결에 쏘가리가 살져라
盤心?縷紛雪飛。쟁반에 회를 치니 눈송이가 날린 듯하네
半?鼓脚歌滄浪。반쯤 취해 다리 두드리며 창랑가를 부르니
麟臺黃閣都不知。인대며 황각일랑 도무지 알 바 아니로다
龍壁春花 용두산(龍頭山) 절벽의 봄꽃
龍頭山上春正好。용두산 꼭대기에 봄이 한창 아름다워라
??滿山春意?。산 가득 철쭉꽃에 봄기운이 한창일세
一夜好雨如酒醇。하룻밤 내린 좋은 비가 흡사 진국술 같아
花開已遍紅似燒。온 산 꽃이 만발하여 타는 듯이 붉은데
誰家少年錦障泥。그 뉘 집 젊은이는 금장니를 장식하고
携壺遊賞東復西。술병 차고 동서남북을 쏘다니며 노는고
日暮歸來春滿面。날 저물어 돌아오니 춘색은 얼굴 가득고
無數飛花?馬啼。무수히 날린 꽃잎은 말발굽에 엉기었네
ⓒ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2008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은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입니다.
그의 고향은 밀양이기도 하지요.
집이 가깝다고 해서 영남루를 자주 갔다고는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점필재의 많은 시들 중에서 영남루에 관한 시는 매우 드문 편입니다.
점필재집 3권(?畢齋集卷之三)에 실린 시(詩) 중에
'영남루 아래서 배를 띄우다'(嶺南樓下泛舟)와
'망호당에서 세번에게 화답하다'(望湖堂和世蕃)는
영남루와 망호당에 대한 풍류가 보다 운치있게 그려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嶺南樓下泛舟(영남루하범주) 金宗直(김종직)
檻外澄江百頃雲 (함외등강백경운) 난간 밖의 맑은 강 만 이랑의 구름 아래
?船橫渡皺生紋 (화선횡도추생문) 그림 배가 횡단하니 주름살 무늬 생기누나
晩來半醉撑?看 (만래반취탱고간) 저물녘에 반쯤 취해 상앗대를 버티고 보니
兩岸靑山更十分 (양안청산갱십분) 양쪽 언덕 푸른 산이 십분 더 분명하구려
ⓒ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1996
望湖堂和世蕃(망호당화세번) 金宗直(김종직)
數日論文肯掉頭 (수일논문긍도두) 수일 동안 글 논하고 어찌 싫증을 낼까마는
明朝却恐失詩流 (명조각공실시류) 내일 아침엔 시인과 헤어질까 문득 두렵네
華樓寶瑟兼秋月 (화루보슬겸추월) 화려한 누각 좋은 비파에 가을 달 겸했으니
誰謂天涯不中留 (수위천애부중유) 먼 변방이 머물기 맞지 않다 누가 말했나
ⓒ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1996
또한 점필재집 5권(?畢齋集卷之五)에는
'영남루에서 차운하다'(嶺南樓次韻)는 시가 실려 있지요.
嶺南樓次? (영남루차운) 金宗直(김종직)
登臨正値浴沂天 (등림정치욕기천) 올라간 것이 마침 늦은 봄을 만났는데
灑面風生倚柱前 (쇄면풍생의주전) 낯 스치는 바람이 기둥 기댄 앞에서 나오네
南服山川輸海上 (남복산천수해상) 남방의 산천들은 모두 바다에서 다하고
八窓絲竹鬧雲邊 (팔창사죽요운변) 팔창의 관현악 소리는 구름 가에 들레어라
野牛浮鼻橫官渡 (야우부비횡관도) 들 소는 코만 내민 채 관선 나루를 횡단하고
巢鷺將雛割暝烟 (소로장추할명연) 백로는 새끼 데리고 저녁 연기를 가르누나
方信吾行不牢落 (방신오행불뢰락) 이제야 믿노니 내 행차 적막하지 않음은
每因省母?賓筵 (매인성모첨빈연) 늘 모친 뵙는 틈에 빈연에 참여한 때문일세
ⓒ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1996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인 정사룡(鄭士龍, 1491~1570)의
차영남루운(次嶺南樓韻)은 그야말로 영남루의 기능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듯 합니다.
次嶺南樓韻(차영남루운) 鄭士龍(정사룡)
客到嶺梅初發天 (객도영매초발천) 나그네 언덕에 오니 매화 처음 피는 날이라
嘉平之後上元前 (가평지후상원전) 섣달이 지났으나 아직 상원은 되지 않았구나
春生畵鼓雷千面 (춘생화고뢰천면) 봄은 천 가지 우레소리 나는 북에서 생겨나고
詩會靑山日半邊 (시회청산일반변) 시는 절반 해빛 비치는 청산에서 모여드는구나
漁艇載分籠渚月 (어정재분롱저월) 고기잡이 배는 강가를 두른 달빛을 나누어 싣고
官羊踏破冪坡煙 (관양답파멱파연) 관아의 양은 언덕을 뒤덮은 안개를 밟아 부순다
形瀛心壯凌淸曠 (형영심장릉청광) 몸은 쇠약하나 건강한 마음은 맑은 하늘로 올라
驅使乾坤入醉筵 (구사건곤입취연) 하늘과 땅을 몰아 술 취한 이 자리로 들게 하는구나
이황(李滉, 1501~1570)은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입니다.
호는 퇴계(退溪)이며 당대에 뿐만 아니라 이후로도 성리학에 정통한 대학자로 존경받고 있지요.
퇴계집 제1권(退溪先生文集卷之一)의 시(詩)에 실린 영남루(嶺南樓)는
원래 누각 안에 걸려 있었던 원시(原詩)를 차운(次韻)하여 쓴 것입니다.
그 원시가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시 속의 두 번째 절에서 말하는
국화(菊花)는 영남루 앞마당에 있었던 석화(石花)를 은유한다는군요.
석화는 국화 무늬의 돌을 말하는데
현재는 영남루 앞마당에 있는 것보다는
아랑사(阿娘祠) 입구 전의 바위틈에서 보이는 것이 훨씬 선명하더군요.
嶺南樓(영남루) 李滉(이황)
(누관위임령해천) 누각은 영해 하늘 우뚝이 솟아 있고
客來佳節菊花前 (객래가절국화전) 좋은 시절 국화 앞에 객은 찾아왔도다
雲收湘岸靑楓外 (운수상안청풍외) 소상강 언덕인가 푸른 숲에 구름 걷히고
水落衡陽白雁邊 (수락형양백안변) 형산 남쪽 흰 기러기 물은 떨어지누나
錦帳圍將廣寒月 (금장위장광한월) 비단 장막 광한전의 달을 싸고도는데
玉簫吹入太淸烟 (옥소취입태청연) 옥퉁소 소리 태청의 연기 속에 들어가네
平生?有騷人興 (평생진유소인흥) 평생에 진실로 시인의 흥이 있어
猶向尊前踏綺筵 (유향존전답기연) 술두루미 앞에서 비단 자리에 춤추노라
ⓒ 한국고전번역원, 권오돈 김달진 김용국 김익현 남만성 성낙훈 안병주 양대연
이식 이지형 임창순 하성재 (공역) ┃ 1968
신석균(申奭均, 1824~?)은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입니다.
1866년(고종 3)에 밀양 부사를 역임하였지요.
嶺南樓(영남루) 申奭均(신석균)
西風人倚嶺南樓 (서풍인의영남루) 가을바람 부는 영남루에 기대어 서니
水國靑山散不收 (수국청산산불수) 강과 청산이 이리저리 흩어져있네
萬戶笙歌明月夜 (만호생가명월야) 밝은 달밤 고을마다 노랫소리 들려오고
一江漁笛白雲秋 (일강어적백운추) 흰 구름 두둥실 가을하늘, 강에는 고깃배 피리소리
老僧院裏疎鐘晩 (노승원이소종만) 노승 사원 안에서 이따금 들려오는 저문 종소리
烈女祠前落葉流 (열녀사전낙엽유) 열녀 사당 앞엔 물 흐르듯 흩날리는 낙엽
滿岸蘆花三十里 (만안노화삼십리) 강기슭에 가득한 갈대꽃 삼십 리나 펼쳐있고
雁鴻無數下長洲 (안홍무수하장주) 기러기는 무수히 긴 섬에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