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일주일간 내 의식은 1977년의 해남 ○○예비군 중대본부로 귀향했지. 나는 예비군 중대본부에서 서무를 담당했어. 말이 특정 부서지 사실 중대본부 크고 작은 일 모두를 처리했다고 봐야지. 나 말고도 네댓 명의 방위가 더 있었는데, 모두 학력 미달로 현역이 면제되어 방위 생활을 하던 친구들이었어. 예비군훈련 소집 통지서 돌리는 일 외에는 시킬 게 없었지. 서무인 나는 매주 업무일지를 가지고 관내 군부대에 들어가서 부대 인사계로부터 결제받아야 했어.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방위가 군부대에 들어가는 일은 곤욕 그 자체야. 이걸 매주 겪어야 했으니 내 군 생활도 제법 빡셌다고 할 수 있겠지(?).
어느 날 부대에서 인사계 결제를 기다리며 무료하게 있을 때, 얼굴은 가무잡잡하고 다부지고 야무지게 생긴 젊은 중사가 말을 거는 거야. 야 너, 대학 다니다 왔냐? 나는 잔뜩 기가 죽어 그렇다고 했지. 대개 대학 다니다 방위하는 사람을 괴롭히면서 희열을 느끼는 현역들이 많았거든. 그런데 뜻밖의 말을 하는 거야. 내가 말이야, 검정고시를 봐야 하는데, 공부하는 것 좀 도와주라. 다른 과목은 따라가겠는데, 수학하고 영어가 문제다. 수학은 포기하고 영어라도 해보려고 그런다. 영어 단어를 잘 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 영어 단어 암기법이 있다는데, 어떤 방법이 좋냐?
나는 어리둥절했어. 영어 단어 암기에 방법이 있다는 생각은 못 해봤거든. 입을 못 떼고 있었더니, 연상법이니 무슨 법이니 열거하더니 이 중에서 제일 좋은 방법이 뭐냐? 다시 묻더라고. 나는 솔직히 말했어.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나는 그냥 단어를 따로 암기하지 않고 문장을 열심히 읽고 이해해서 암기한다고 대답했지. 사실 나는 단어를 그렇게 외워 본 적도 없어. 근데 왠지 그게 정답일 것 같더라고. 그 대답이 그럴듯하게 들렸던 모양이야. 부대에 들어갈 때마다 영어나 과학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보면 답을 해주기도 해서 제법 친하게 되었어. 그것으로 부대에서 나를 건드는 병사는 사라졌지.
그러다가 사건이 하나 있었어. 내가 중대본부에서 서무를 보기 시작했을 때, 행정 업무가 엉망이더라고. 예비군 업무 지침에는 중대장이 시행하는 기본교육이 있고 부득이한 사정으로 기본교육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은 보충 교육을 하게 되어있었어. 두 차례 보충 교육마저 결석하면 그제야 고발당하는 거지. 근데 이 중대장 녀석이 관내 보충 교육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고 기본교육에 결석한 사람을 고발하겠다고 을러댔던 거야. 그런 식으로 소액을 갈취하고 있었던 거지. 나는 모른 척하고 중대원들에게 보충 교육이 있다는 규정을 알려주었어.
이것으로 중대장의 미움을 심하게 받게 된 거야. 중대장은 나만 찍어서 싫은 티를 낼 수 없으니 중대본부 방위병 모두를 괴롭히기 시작했어. 면 소재지 동네 처녀들 다 보고 있는데, 구보에 원산폭격에 건만 있으면 단체 기합을 당했어. 방위병 중에 담배 농사를 짓는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중대장의 빡빡한 출결 관리로 약 치는 때를 놓쳐 농사를 망치게 되었어. 빚내서 심은 담배가 병충해로 시들어가는 꼴을 보다 이 친구가 그만 농약을 먹고 자살을 하고 말았네.
나는 이 사정을 낱낱이 기록해서 청와대에 진정서를 보냈어. 진정서를 보낸 지 3일만인가 해남읍 보안분대에서 출두하라고 전통이 오더라고. 짐작은 했지만, 잔뜩 긴장해서 해남읍에 있는 사무실에 갔어. 머리를 일반인처럼 자르고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신사가 의자에 도도하게 앉아 내가 청와대에 보낸 진정서를 내려보고 있더라고.
한참 후 나를 째려보면서 묻는 거야. 네가 보낸 게 맞냐? 나는 그렇다고 했지. 이게 다 사실이냐? 조사해서 하나라도 사실이 아닌 게 있으면, 너 영창 간다. 나는 떨리기는 했어도 분명하게 말했어. 그렇다고. 한참 말없이 내가 쓴 진정서에 줄을 그어가며 살펴보더니, 하나하나 꼬치꼬치 묻기 시작했어. 그 내용이 다 기억나지는 않아. 기억에 남는 건 그때 마침 전화가 와서 점심 약속이 잡힌 듯 서둘러 심문(?)이 끝났다는 거야. 마지막으로 명토를 박더라고. 이 진정서에 쓴 내용이건 오늘 우리가 만난 것이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자신 있냐? 내가 뭐라고 달리 말하겠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지.
보안분대에 다녀온 후 중대장은 벌레 씹은 표정으로 나를 대하면서도 별 해코지는 하지 않았어. 여기저기 바쁘게 다니더라고. 며칠 후 해남 군부대 대대장과 대위급 장교 거의 전원, 보안분대장, 경찰서장, 면장, 지서장 등등이 우리 면에서 제일 큰 식당에 모였어. 아마 그날 그 면에서 파낸 낙지는 다 그 방으로 들어갔을 거야. 무지무지 먹어대더라고. 그런데 인사계 그 중사도 수행차 따라온 거야. 물론 회식에는 동석하지 못했지.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날 우리 둘은 산이면 황톳길을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이 김지하 시인이 노래했던 그 황톳길이라고 내가 아는 척했지. 실제로 시인 김지하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외갓집이 진산이라고 면 소재지 바로 옆 동네였거든. 내가 시의 첫 소절을 외자, 그의 눈이 반짝이더라고. 내친김에 나는 그에게 “전환시대의 논리”를 선물하게 되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