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Kanon』이라는 ‘나키게’를 완성시킨 일상의 표현

[ㅋㅋㅋㅋㅋ]

   1999년, 18금 미소녀게임 업계에서는 큰 이변이 있었습니다. 『ONE ~빛나는 계절로~』를 제작해 큰 주목을 받고 있었던 Tactics의 스탭들을, 주식회사 비쥬얼아츠의 바바 타카히로 사장이 거의 송두리째 자기 회사로 스카웃해간 것이죠.
   이로써 마에다 준, 히사야 나오키, 히노우에 이타루, 미라클☆미키뽕, 시노리~, 오리토 신지의 6명은 게임브랜드 Key의 이름으로 새출발을 하게 됩니다. 「너희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일단 첫 작품만 만들어. 그거에 대해서는 아무 참견도 안 하겠다. 그 다음에는 결과에 따라서 뭔가 말할지도 모른다」라는 사장의 방침하에 스탭들은 자신들의 전력을 다해 게임을 만들었고, 그리고 1999년 6월 Key로서의 첫 작품을 세상에 내놓게 됩니다.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켜 신생브랜드 Key를 업계의 정상에 올려놓고, 서서히 변화해가고 있던 업계의 흐름을 완전히 결정지었던 명작, 『Kanon』의 탄생이었습니다.

   『Kanon』은 눈이 내리는 겨울 마을을 배경으로 주인공인 아이자와 유이치가 메인히로인인 츠키미야 아유를 비롯한 히로인들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연애AVG입니다. 『ONE ~빛나는 계절로~』의 방법론을 답습하고 있는 작품인데다가 기획까지 담당한 히사야 나오키와 시나리오만 담당한 마에다 준 사이의 충돌도 있었기 때문에 참신함이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ONE ~빛나는 계절로~』에 못 미치는 작품입니다만, 서로에 대한 라이벌의식을 불태웠던 두 명의 시나리오라이터를 비롯한 스탭들의 정열이 플러스적으로 작용했는지 엔터테인먼트로서는 보다 호소력이 강한 작품이 되었죠.
   홍보력의 차이 등 외부적인 요소도 있었겠지만 결국 『Kanon』은 『ONE ~빛나는 계절로~』이상의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 작풍은 그 이후의 미소녀게임에 있어서 하나의 ‘모범’이 되게 되었죠.

   ‘일상’을 표현하는 게임으로서의 『Kanon』

   주인공인 아이자와 유이치는 부모의 해외부임으로 인해 ‘눈의 마을’로 이사오게 된 소년입니다. 숙모인 미나세 아키코의 집에 얹혀살게 된 유이치는 사촌인 미나세 나유키와 재회하고, 마을을 배회하는 소녀 츠키미야 아유, 기억을 잃은 소녀 사와타리 마코토, ‘마물’과 싸우는 상급생 카와스미 마이, 연약한 하급생인 미사카 시오리 등 히로인들과 만나게 됩니다.

   『Kanon』의 전반부는 이런 히로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중점적으로 묘사됩니다. 그것은 일부를 제외하면 딱히 드라마틱한 것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시간들이죠.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고, 집을 나와 학교에 가고, 수업을 들은 뒤 도시락을 먹고, 학교가 끝난 뒤에는 동네를 돌아다니고, 집에 와서 저녁밥을 먹고 빈둥거리는,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하루하루가 계속해서 묘사됩니다. 조금 코미컬하게 개그도 들어가 있고 히로인의 매력도 어필되긴 합니다만, 기본적으로는 어디까지나 잔잔하고 평화로운 시간들입니다.
   네, 흔히 ‘일상’이라 부르는 것들이죠. 『Kanon』은 이와 같은 ‘일상’ 묘사에 특별히 힘을 기울인 작품이었습니다.

테이블의 위에는 사람 수만큼의 아침식사가 이미 차려져 있다.
유이치「뭐야, 먼저 먹어도 됐는데」
나유키「나는 그렇게 예의 없지 않아」
유이치「네네, 저는 정말로 예의 없습니다」
손을 흔들면서 키득키득 나유키가 웃는다.
아키코「좋은 아침이네요, 유이치 상」
커피포트를 들고, 아키코 상이 부엌에서 얼굴을 내민다.
아키코「나유키는 오늘도 혼자서 일어났어요」
나유키「엄마, 사사건건 말해주지 않아도 돼요」
아키코「조용한 것도 좋지만...」
아키코「하지만, 조금 쓸쓸하네요」
내 컵에 커피를 따라주고, 정말로 유감스러운 듯이 부엌으로 돌아간다.
나유키「엄마는 시끄러운 걸 좋아하니까...」
유이치「걔는 시끄러움을 넘어서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지만...」
나유키「...유이치는, 없어지거나 하지 않지?」
유이치「나는 따로 돌아갈 곳도 없으니까」
가득찬 커피를 마시며, 구운 토스트에 버터를 바른다.
나유키「...응」
나유키도, 평소처럼 딸기잼을 바르고 있다.
나유키「맛있어」
그리고, 변함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토스트를 먹고 있다.
유이치「......」
가만히 나유키의 식사풍경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든 나유키와 시선이 마주쳤다.
나유키「왜 그래 유이치?」
그 시선을 눈치 챈 나유키가, 쑥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본다.
유이치「변함없이 행복한 것 같구나, 하고 생각해서」
나유키「응, 행복하다고 생각해」
유이치「매일 똑같아서 질리지 않아?」
나유키「응, 질리지 않아」

─Key 『Kanon』

   본래 이와 같은 ‘일상’ 묘사는 예전부터 존재했던 것이었고, 『ONE ~빛나는 계절로~』에서도 풍부한 ‘일상’ 묘사가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의도’를 갖고 의식적으로 포맷을 완성시켰다는 점에서 『Kanon』의 ‘일상’ 묘사는 주목할 만한 면이 있습니다.

   히사야 나오키와 마에다 준은 『Kanon』에서 ‘일상’을 평화롭고 행복한 것으로 묘사합니다. 중간중간에 의미심장한 복선이 들어가기도 합니다만, 기본적으로는 편안하고 즐거운 하루하루를 반복적으로 묘사할 뿐이죠.
   이런 ‘일상’은 상실되어서는 안 되는, 계속해서 유지되어야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은 『ONE ~빛나는 계절로~』를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Kanon』속에서 일상이란 지루하거나 변화시켜야할 것이 아닌 소중한 것으로 묘사되죠.
   그리고 이와 같은 일상은 소중한 사람인 히로인(들)과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습니다. 히로인에 대해서 갖게 되는 애착은 곧바로 히로인과 함께 보내는 일상에 대한 애착으로 이어지니까요(여기에는 ‘모에 미소녀 묘사’의 확립에 큰 역할을 한 히사야 나오키과 그 영향을 받은 마에다 준의 캐릭터 묘사력도 한몫 했습니다).

   이와 같은 일상 묘사를 통해 히사야 나오키와 마에다 준은 무엇을 달성하려고 했었던 걸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그 일상의 상실을 통한 ‘나키게(泣きゲー.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게임이라는 의미)’의 완성입니다.

   일상 묘사를 통해 구현해낸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게임’

   『Kanon』의 전반부는 즐거운 일상 장면이 계속될 뿐이지만, 후반부에 들어서면 갑자기 분위기가 급변하게 됩니다. 히로인의 안타까운 사정이 드러나거나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기존의 일상이 붕괴하게 되는 것이죠.
   여기서부터 행복했던 일상 묘사는 상실되게 됩니다. 그 대신 히로인과 주인공이 놓이게 된 불행한 상황을 중점적으로 묘사하게 되죠.
계속되는 일상을 체험하고 있던 플레이어는 이 상실에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플레이어는 히로인과의 일상생활을 게임을 통해 유사체험하면서, 마치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연인이나 친구에 대해서 갖는 것에 가까운 애착을 히로인에게 갖게 된 상태였으니까요. 이미 플레이어에게 있어서 『Kanon』의 히로인이란 기존의 미소녀게임의 ‘공략대상’ 히로인들과는 다른 성격의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런 히로인들과의 일상이 상실되었을 때, 플레이어가 느끼게 되는 것은 실제로 가까운 사람이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갖게 되는 것에 유사한 슬픔입니다. 즉 히사야 나오키와 마에다 준은 평범한 일상 묘사를 반복한 뒤 그 일상을 상실시키는 것으로, 플레이어에게 ‘소중한 사람의 상실’을 유사체험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죠.
   결국 플레이어는 상실감에서 비롯된 깊은 슬픔을 느끼면서 행복했던 ‘일상’의 회복을 바라게 됩니다. 이런 감정이 절정에 달했을 때 『Kanon』의 시나리오는 클라이맥스에 다다르고, 히사야 나오키와 마에다 준이라는 톱클래스의 연출가에 의해 플레이어는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ONE ~빛나는 계절로~』에 의해 원형이 제시되고 『Kanon』에 의해 완전히 확립된, ‘나키게’라는 장르가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단순히 소중한 사람이 불행해지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울고 싶어지게 됩니다만, 현재가 불행하면 불행할수록 전반 부분의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이 부각됩니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 마음은 늙어서 언젠가 죽게 되는 인간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노스탤지어이며, 슬픈 감정을 강하게 자극하는 것입니다.
남은 건 클라이맥스입니다.
여기서부터의 흐름은 「슬픈 결말이라고 생각했더니, 역시 슬픈 결말이었다」와 「슬픈 결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떻게든 해피엔딩」의 2종류입니다만, 기본은 똑같습니다.
이미 울기 모드에 들어가 있는 플레이어에게 마지막 마무리를 해줍니다.
그건 복선의 회수여도 좋고, 키워드의 반복도 좋고, 노래가 흐르는 것도 좋습니다. 일단 눈물의 스위치가 켜지기만 하면, 극도의 긴장상태에서의 해방이라는 효과도 있어 플레이어는 결국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전반과 후반의 격차입니다.
후반의 슬픈 장면의 나열은 오히려 2차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너무 길다는 생각도 드는 전반부의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히로인의 존재를 플레이어에게 익숙하게 만드느냐가 포인트인 것입니다.

─스즈모토 유이치 『(노벨게임의) 시나리오 작성기법』

   Key에 소속되어 있었던 시나리오라이터 스즈모토 유이치는 자신이 쓴 『(노벨게임의) 시나리오 작성기법』에서 이와 같은 기법 자체는 간단하고 어렵지 않은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인간이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울 수 있게 되어있기 때문에, 고결한 정신을 갖고 있거나 탁월한 센스를 갖고 있는 인간이 아니더라도 이와 같은 기법을 사용하면 얼마든지 감동적이고 눈물 나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죠.
   결국 ‘일상’ 표현과 그 상실이라는 격차를 이용한 구조는 『Kanon』이후 일반적인 것이 되어갔습니다. 많은 창작자들이 자신들의 작품에 이 구조를 도입했고, ‘나키게’ 이외의 다른 장르에까지 이 기법은 큰 영향을 주게 되었죠. 호러미스테리물인 『쓰르라미 울 적에』조차 즐거운 일상에서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변화하는 『Kanon』과 『AIR』의 구조에서 기본컨셉을 잡았다고 제작자인 용기사07이 직접 고백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거기다가 히사야 나오키와 마에다 준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일상표현 또한 ‘나키게’ 요소와는 별개로 독자적인 기법으로서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일상 속에서의 캐릭터 표현(특히 식사, 음식 관련은 이 두 사람의 공적이 큽니다)이 모에 미소녀 묘사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으로 취급되기 시작하면서, 미소녀게임뿐만 아니라 라이트노벨 등 다른 매체로까지 파급되게 되었죠.
   이제는 너무 일반적인 것이 되어버린, ‘미소녀와의 일상생활’의 유행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렇게 『Kanon』의 일상 표현을 통한 기법은 각 방면에 다양하게 파급되게 되었습니다만,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스즈모토 유이치는 이와 같은 일상 표현을 통한 기법은 선구자들의 고달픈 고뇌 끝에 만들어진 것이며, 자신의 생각을 최대한 타인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분명한 의지가 있었기에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리고 ‘나키게’에 단순히 눈물 뽑는 이야기하고 다른 점이 있다면 단 한가지뿐이라고 말하며, 「명작이라 불리는 나키게를 만든 사람은, 자기가 쓴 시나리오 때문에 울었을 겁니다」라고 덧붙입니다. 누군가를 울린다는 것은 상대방을 얕보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창작자의 진지한 감정이입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히사야 나오키의 시나리오에 감동하고 Key에 들어와, 마에다 준의 바로 곁에서 『AIR』와 『CLANNAD』를 함께 만들었던 스즈모토 유이치이기에, ‘나키게’의 창조자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스즈모토 유이치이기에 이렇게 단언할 수 있었던 것이겠습니다만, 어쨌든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업계의 흐름까지 바꿀 정도로 혁신적인 창작기법은 상업적인 계산에 의해 만들어졌던 것이 아니라, 창작자의 진정성 있는 고민과 노력 끝에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출처: 無彩色日記 ~筆墨相戀~  http://litale.kr/3196

[august]

흠 저도 일상 묘사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안 해봤었군요 이것도 분명 중요한데...

[ㅋㅋㅋㅋㅋ]

엉? 알고 '일상' 애니에 대한 거 자주 올리셨던 거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