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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감동글 스크랩 애지중지 하시던 경주김씨 족보
whitebear 추천 0 조회 23 06.10.02 16:33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우리 집에는 족보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는 4권의 가첩이 전해지고 있다.

 

 두 권은 모두 옛책방에서 볼수 있는 고서형태 책자이고 다른 두 권은 현대식 책자이다. 

 

 누른표지의 옛날 책자는 아버지가 평소 애지중지하며 집안에 잘 보관해 두었던 것이다.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만들어진 이 가첩을 아버지는 큰 보물로 여기시고 집안 대대로 전해야 한다며 각별히 관리하셨다고 한다. 

 

 어린 시절 나는 가끔 아버지가 꺼내준 가첩을 펼쳐보며 누구 몇 대, 누구 몇 대, 누구 몇 세손 하며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집안 일가들의 이름을 읽어보곤 했다.

 

 가첩 첫 장에는 다른 집 족보처럼 시조의 무덤인 듯 왕릉이 위치한 곳을 나타낸 옛 지도와 집안 대대로 향사를 지내는 제실 위치도가 검은 먹물로 그려져 있었다. 

 

 아버지는 가첩을 꺼내 펴보실 때마다 나에게는 늘 당신의 함자를 찾아보라고 하셨다.

 

“잘 봐라, 야야. 니 여덟팔자에 뿌리근자가 어디 있는동 잘 한번 찾아봐라 응.” 

 

 내가 한문을 조금씩 배울 무렵 아버지는 자주 당신의 아버지 그러니까 할아버지 함자와 증조, 고조 할아버지 함자를 짚어내 “이쯤에 너거 할배 이름이 있을끼다” 하면서 찾도록 하셨다.

 

 그 기록을 자세히 본즉 아버지는 당신의 할아버지로부터 3대 독자로 외롭게 대를 이어온 것을 알 수 있었고 외로움이 뼛속 깊이 사무칠 만도 한 것 같았다. 

 

 또 아버지는 일가친척 중에서도 당신이 알고 지낸 이름들이 족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내 읽게 하고는 흡족한 표정을 짓곤 하셨다. 

 

 몇 대손 누구는 당신하고 10촌쯤 될 거라는 얘기를 하시고는 족보에 나온 대로 맞춰보고 그게 맞으면 다 일가친척이니 찾아보면 어딘가 살고 있을 것이라며 길게 탄식하기도 했다.

 

 외롭게 사시다 보니 일가친척이 그립겠지만 일손 바쁜 농사꾼이 먼 곳의 친척들을 일일이 찾아다닐 수도 없어서 그저 한숨만 내쉴 뿐이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형제들의 돌림자가 뿌리근(根)자이고 막내의 이름은 장사상(商)자가 돌림인데 그냥 서로상(相)자로 지어 부른다는 둥 자세한 설명도 마다 않으셨다.

 

 한문은 물론 한글도 쓰거나 읽을 줄 모르시는 분인데도, 당신의 말씀대로 한번 들으면 잊지 않는 총기를 가지셨는지 가첩의 내력에 대해서도 너무나 훤해 박학다식한 일면을 자주 드러내 보이셨다. 

 

 당신은 글을 배우지 않은 대신 뭔가를 한번 들으면 잊지 않으려는 노력은 남보다 배로 하신 듯했다. 그만큼 당신의 총명함은 우리 고장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당신이 가첩을 자주 꺼내 보신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것은 아마 가첩에 내리 적힌 그 수많은 일가친척이 너무나 그리워서가 아닐까 싶다.

 

당신의 표현대로 객지 타향에 홀로 떠나와 고생하는 동안 그리운 건 부모형제이지만 주위 어디를 둘러봐도 피붙이 하나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떠나신 후 지난 85년 우리집안은 새로운 가첩을 제작했다. 거기에는 내 이름도 버젓이 올라 있고 현대식이라 그런지 형님 형수, 누나와 자형, 외손주 조카와 질녀 이름까지 빽빽이 올라 있다. 

 

 아버지가 이렇게 새로 만든 가첩을 보셨다면 또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생각하니 순간 눈가에 눈물이 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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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10.03 00:22

    첫댓글 베어님은 아버님을 잘 이해하셨던듯.. 우린 그러지 못하고 아버지를 보낸게 아쉽기만..

  • 06.10.10 23:47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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