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창호 |
[문] •문(門)은 출입을 위한 개구부로 정의된다. 문은 외부공간을 서로 연결해주는 독립된 문과 건물 내외부 출입을 위한 건물에 다는 문으로 크게 구분된다. •한국인에게 문은 얼굴이며 마음의 창이다. 집에 달린 문의 표정을 보면 집주인의 품격을 알 수 있다. •사람도 문으로 출입하지만 귀신도 문으로 출입한다 그래서 문은 대단히 중요했다 잡기를 물리치기 위한 조치는 대부분 문에서 이루어졌다. 처용 얼굴을 문에 붙여 놓으면 잡귀가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이 외에도 가시가 많은 엄나무 가지를 몇 가닥 묶고 문위에 걸어두면 잡귀가 겁이 나서 달아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것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문 위에 빨간 부적들을 많이 붙인다. 그리고 인도 타르사막에 아주 보잘 것 없는 원시움집과 같은 흙집에도 하얀 가루로 대문이건 건물 출입문이건 간에 신령스러운 문양을 그려서 잡귀를 막고 출입문 지붕 위에는 가시나무와 같은 의미로 나무로 틀을 짜 올려 안녕을 기원했다. 지금도 아침 저녁으로 주부가 대문 앞 바닥에 ‘코알람’이라는 그림을 그려 가족의 안정과 평화를 기원하고 있다. •또 문살의 다양한 문양을 통해서 잡기를 막으려는 형태도 볼 수 있다. •문은 이렇듯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시작이며 집의 표정이고 얼굴이다. |
[창] [창호] •창(窓)은 일조나 환기를 위한 개구부로 정의된다. •창호(窓戶)는 창(窓)과 호(戶)가 결합된 말로 창과 문을 가리킨다. •창은 정의대로 채광이나 환기를 위한 개구부를 뜻하지만, 호는 정확히 정의하면 건물에 달린 외짝여닫이 문을 지칭한다. •그러나 건축준공보고서인 [영건의궤]에 따르면 17세기 무렵까지는 호(戶)가 건물에 출입하는 모든 문을 지칭하는 것으로 의미가 확대되었다. 창호는 건물에 달린 창과 문을 통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7세기 이후로 차츰 호라는 명칭은 사라지고 문으로 대치되었다. 따라서 창호와 창문은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요즘은 창문이라고 하면 일조나 환기를 위한 창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원래 의미는 창과 문을 통칭하는 것이므로 문과 구분할 때는 창이라고만 해야 한다. 한국 건축에서는 건물에 달린 창과 문은 크기, 형태면에서 크게 구분되지 않아 창호로 통칭하여 분류하고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여기서도 외부 공간을 연결하는 독립된 문만을 문으로 설명하고 건물에 달린 창과 문은 창호라 하여 설명하기로 한다. |
[개폐방식] •개폐방식은 창과 문의 위치 및 쓰임에 따라서 달라진다. •외부 공간을 연결하는 독립된 문과 건물 외벽에 달려있는 문은 원을 그리며 앞뒤로 여닫는 ‘여닫이’가 주로 이용되었다. •건물 내부에 달리는 장지(障子)와 영창 및 흑창 등의 내부 창호는 공간 이용을 위해 문홈을 타고 옆으로 개폐되는 미닫이 또는 미서기가 주로 이용되었다. •두 짝 창호에서 문지방이 홈을 하나만 두고 양쪽으로 열어 두껍닫이(갑창) 속에 쏙 들어가도록 하는 방식을 두껍닫이가 있는 창호라 하여 ‘미닫이’라고 한다. •같은 두 짝 창호라고 해도 문홈을 두 줄로 하여 창호가 서로 엇갈려 여닫을 수 있도록 한 것을 ‘미서기’라고 한다. •따라서 미닫이는 두 짝 창호를 열면 두 짝 창호 폭만큼 모두 열리지만 미서기는 한 짝 폭만큼 열리게 된다. •현대식 창호 대부분이 미서기 방식이다. •한옥에서는 외벽에 다는 영창이나 흑창을 두껍닫이가 있는 미닫이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방과 방을 연결하는 장지는 두껍닫이 없이 두 짝 또는 네 짝 미서기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들어걸개’는 문짝 전체를 걸쇠에 들어 걸어 공간을 넓게 이용할 필요가 있을 때 사용한다. 대게 대청 앞문이나 대청과 방 사이에 다는 문을 들어걸개로 많이 한다. 여러 짝일 경우에는 옆으로 접어 전체를 한 번에 들어 올린다. 여름에 문을 모두 들어 걸면 대청과 방이 하나로 연결되어 시원한 공간을 만들 수 있다. •‘벼락닫이’는 외행랑 중방 위에 높이 달린 걸창(乬窓)에 주로 이용 된다. 돌쩌귀가 위에 달려 있어서 밑에서 밀어 연 다음 지겟목을 받쳐 놓는다. 지겟목을 빼면 벼락같이 닫힌다고 하여 벼락닫이라고 한다 •‘접이문’은 주로 네 짝 우리판문을 주름문처럼 접어 여는 문을 말한다. 덕수궁 중화전 우측 담장에는 벽돌로 쌓은 유현문이 있는데 양쪽으로 두 짝의 우리 판문이 접혀 벽속으로 들어가도록 하였다. 창덕궁 대조전 행각이나 휘군문(輝軍門)에서도 네 짝 우리판문이 양쪽으로 두 짝씩 접어 열도록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붙박이’는 열리지 않는 고정창호를 가리킨다. 출입이나 환기보다는 일조가 목적이거나 일반 창호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면 된다. 대표적인 것이 영창과 흑창을 보호하기 위한 갑창(두껍닫이)이다. •또 칸막이로 이용되는 장지도 붙박이에 해당하며 부엌 등에서 환기를 목적으로 벽에 구멍만 뚫어 놓은 봉창도 붙박이의 일종이다. |
문과 창호 종류 | ||
분류 | 종류 | |
개폐방식 | 여닫이, 미닫이, 미서기, 들어걸개, 벼락닫이, 접이문, 붙박이 | |
성격 | 문 | 대문, 중문, 협문, 쪽문, 일각문, 삼문, 사주문, 일주문, 누문, 홍살문, 산문, 정려문, 효자문, 성문, 암문, 수문, 이문(里門) |
창호 | 분합, 쌍창, 독창, 영창, 흑창, 갑창, 광창, 바라지창, 장지 연창(불발기창), 돌창(겉창), 봉창, 사창, 눈꼽째기창, 살대, 거적문 | |
살대 有無 | 살창 | 세살, 만살, 아자살, 완자살, 숫대살, 용자살, 꽃살, 빗살, 도듬문, 쇄창(鎖窓) |
판문 | 통판문, 널판문, 우리판문, 빈지널문 |
1. 대문 |
•집에 들어가는 주 출입문으로 집의 얼굴이며 표정이고 위치가 중요하며 집의 격식에 따라 다양하다. •보통 조선시대 양반집에서는 바깥 행랑채의 대문간을 두었는데 초헌을 타고 출입에도 지장이 없도록 대문간을 높게 만들었다. 이를 ‘솟을대문’이라고 한다. •솟을대문은 외바퀴가 달린 초헌을 타고 출입하기 위해 지붕을 높이고 바퀴가 지나갈 수 있도록 문지방 중간을 끊어 놓았다. 낙선제 솟을대문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솟을대문이 마치 양반의 상징처럼 되어 초헌을 타지 않는 일반 사람들도 앞다투어 솟을대문을 만들면서 널리 보급되었다. •초헌을 타고 출입하지 않는 경우에는 행랑과 같은 높이로 대문간을 만들었는데 이를 ‘평대문’이라고 한다 •솟을대문 다음으로 많이 사용된 것이 ‘사주문(四柱門)’이다. 사주문은 행랑이 아닌 담장에 대문을 설치할 때 주로 이용된 것으로 기둥을 4개 세워 단칸에의대문 칸을 만들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주문은 일반적으로 맞배지붕이며 문을 열어도 지붕이 있어서 빗물로부터 보호된다. 대문 이외에 중문이나 협문을 이런 형식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으며 해인사 장경판전에 들어가는 출입문과 같이 살림집 이외의 건물에서도 사용되었다. •서민들은 양반집과 같이 격식있게 대문을 만들지 못하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었다. 일반적인 것이 싸리나무로 엮어 만든 ‘사립문’이다. •싸리로 엮어 만들었기 때문에 사립문이라고 불렀는데 차츰 민가 대문을 통칭하는 명칭으로 통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싸리가 아닌 나뭇가지, 수숫대, 대나무 등으로 만든 대문도 사립문이라고 한다. •사립문은 담장에 외기둥 문설주를 세우고 문얼굴 없이 엮어 달기 때문에 똑바로 서지 못하고 비스듬하여 이를 지게 작대기로 받쳐 놓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유래하여 사립문을 ‘지계문’이라고도 한다. |
•궁궐 대문은 ‘정문’ 또는 남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오문(午門)’이라고도 한다. 경복궁 광화문(光化門), 창덕궁 돈화문 (敦化門), 창경궁 홍화문(弘化門), 덕수궁 대한문(大漢門), 경희궁 흥화문(興化門) 등이 궁궐 대문에 해당한다. •궁궐 대문은 특별히 세 칸으로 만들고 중층으로 하여 한층 높은 격식과 권위를 강조하였다. 문을 세 칸으로 만드는 것은 권위와 유계성의 표현이다. 궁궐 정문이 세 칸인 것은 가운데 문은 특별 의례나 왕만이 출입하는 것이고, 양쪽 작은 문은 평상시 신하들이 드나드는 문이다. 역시 위계성의 표현이며 이를 ‘삼문’이라고 한다 •삼문은 궁궐이나 성곽 정문을 비롯하여 서원이나 향교 및 사당 정문에 사용되었다. 삼문 중에서 가운데 칸을 특별히 높여 보다 격식을 갖춘 문을 ‘솟을삼문’이라고 하며 사당 정문인 신문 등에 많이 사용되었다. 반면 세 칸의 높이가 같은 삼문을 ‘평삼문’이라고도 부른다. |
•제주도 대문은 특이하게 양쪽에 돌기둥을 세우고 구멍을 세 개 뚫어 장대를 건너질러 놓는다. 평상시에는 장대를 내려두지만 외출시에는 장대를 건다. 하나를 걸었을 때는 잠깐 외출, 세 개를 걸면 멀리 외출이다. 이런 대문 형식은 서인도 사막의 흙집에서도 볼 수 있다. 제주도에서는 이를 ‘정낭’이라고 한다 |
2. 중문과 협문 |
•한국 건축은 기능에 따라 채를 분리하고 공간을 나눈다. 공간과 공간사이에는 담장이 있고 담장에는 각종 크기와 형태의 문이 달린다 대개 중심축선상의 주요 건물이 오고 양 옆으로 부속건물들이 배치된다. •대문을 제외하고 중심축선상에 놓인 문들을 ‘중문 (中門)’ 또는 ‘중문(重門)’이라고 한다. 경복궁을 예로 든다면 광화문과 근정전 사이에 있는 근정문(勤政門)이나 근정전과 편전인 사정전 사이에 있는 사정문(思政門) 등이 중문에 해당한다. •고려이후 삼중문 제도가 도입된 사찰을 例로 든다면, 일주문이 정문에 해당하고 사천왕문이나 인왕문, 해탈문이 중문에 해당한다. 양반집에서도 규모가 있는 집에서는 중축선상에 여러 공간이 중첩되기 때문에 중문이 설치된다. •조선 후기 표준형 양반집으로 대표되는 창덕궁 연경당(演慶堂)의 경우에는 대문을 통과하여 들어가면 남녀 동선을 분리해 내행랑에 두 개의 문을 또 설치하였는데 이것이 중문에 해당한다 •‘협문’은 중심축선상이 아닌 측면 부속 건물로 이동하기 위해 샛담에 달린 문을 가리킨다. 창덕궁 연경당과 같이 안채와 사랑채가 나란히 있고 그 사이에 샛담을 두는 경우 여기에 설치된 문을 협문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종묘에서 정전과 영녕전 사이에 연결된 문도 협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건물 측면 담장에 설치된 문을 협문이라고 한다. •협문은 사주문 등의 형식을 갖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기둥이 두 개인 ‘일각문(一脚門)’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일각문은 담장에 의지해 두 개의 기둥만을 세워 일주문처럼 지붕을 올리고 그 사이에 외짝 또는 두짝 판문을 다는 것이 보통이다. 이때 기둥보다 담장이 두껍기 때문에 마치 용지판을 대듯이 기둥 양쪽으로 조각판재를 대 담장 마구리를 막아 준다. 이를 ‘여모판(廉隅板)’이라고 한다. 창덕궁 주합루에 올라가는 어수문 여모판의 당초문양은 매우 뛰어나다. •일각문은 매우 작다는 의미로 ‘쪽문’이라고도 하는데 대개 쪽문은 외짝의 극히 좁은 문을 가리키는 협의의 의미로 사용 한다 원래 의미는 사랑채와 안채를 연결하는 툇마루나 쪽마루에 설치된 주인만 이용하는 아주 작은 샛문을 가리켰던 것으로 추정된다. 연경당에서 그 사례를 볼 수 있으며 양반주택에서 흔히 보인다. |
3. 일주문 |
•사찰 정문으로 기둥이 일렬로 서 있는 문이다. •‘일주문(一柱門)’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불교건축에서 삼중문(三重門) 제도가 도입된 고려 중기이후라고 추정된다. •삼중문 제도는 일주문과 중문인 사천왕문, 해탈문을 길게 늘어 놓음으로써 대웅전에 다다르기 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주고 공간의 리듬감과 종교적 신비감을 주기 위한 방법이었다. •일주문은 문짝이 없다. 물리적인 통제의 문이 아니다. 마음의 문이라는 의미다. 일주문은 사찰의 상징처럼 되어 이제는 모든 사찰에서 일주문을 만들고 있다. •일주문은 보통 두 개의 기둥으로 만들어지는 단칸 일주문이 보편적이며 지붕은 맛배와 팔작 등으로 다양하고 대개는 다포를 올려 화려하게 꾸민다. •범어사 조계문(一柱門)은 3칸으로 보기 드문 형식이며 하부의 거친 돌기둥과 일주문 가구의 육중함이 조화를 이뤄 거칠면서도 정제된 장중한 아름다움이 있다. |
4. 누문 |
•중층 누각 건물 아래 설치한 출입문이다. •경복궁의 중문인 근정문, 창경궁에 홍화문, 창덕궁의 돈화문 등이 누문이다. •서원에서는 정문의 삼문 대신에 유식 공간의 중심 건물인 누각 아래에 정문을 설치하는 경우가 있다. •사찰에서는 대웅전 앞에 누각을 두는 것이 보통이고 누각 아래를 통과하여 출입하도록 하였다. 봉정사(鳳停寺) 극락전 앞의 만세루(萬歲樓)나 부석사(浮石寺) 무량수전 앞에 안양루(安養樓) 등이 대표적인 누문이다. |
5. 홍살문 |
•두 개의 기둥으로 만들어지며 문짝을 달지 않는 상징적인 문이다. 일주문과 다른 점은 지붕이 없다는 것이다. •홍살문(紅箭門)은 기둥이 얇기 때문에 일주문처럼 자력으로 서 있지 못하고 기둥하고 양쪽에 지주석을 세워 쐐기를 박아 고정시킨다 기둥 상부에는 가로대를 길게 건너 지르고 그 위에는 세로살대를 촘촘히 박아 구성한다. 세로살대 중간은 태극문양 등으로 장식하기도 한다. •홍살문은 모두 붉은색 주칠(朱漆)을 하는데, 그래서 홍살문(紅箭門)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붉은색은 벽사의 의미가 있다. 우리 풍속에 동진날 붉은 팥죽을 쑤어 먹거나 대문에 뿌리는 것 등은 붉은색을 귀신이 꺼리는 색이라 하여 악귀를 물리치고 집안의 안녕과 무병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홍살문의 붉은색도 이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것으로 추정한다. •홍살문은 서원이나 향교를 비롯해 능 앞에 설치된다. •홍살문 앞에는 대개 ‘하마비(下馬碑)’를 세운다. 아무리 지체 높은 사람도 홍살문 앞에서 부터는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 라는 뜻이다. 홍살문부터는 청정하고 신령스러운 공간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
6. 정려 및 효자문 |
•정려문(旌閭門) 또는 효자문(孝子門)은 출입을 위한 문이 아니라 충신, 효자, 효부, 열녀 등을 기리기 위해 세운 상징적인 건물이다. 여기에는 정려비나 현판처럼 만든 정려기를 모시는데 그래서 정려각 또는 효자각이라고도 부른다 •정려각이나 효자각은 규모가 작은 단칸 건물의 맞배지붕으로 하고 공포는 익공 정도로 간단하며 벽은 홍살로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정면만 홍살로 하고 나머지 3면은 화방벽으로 하기도 한다. •정려각이나 효자문은 대개 마을 어귀에 세워 귀감이 되도록 했으며 따로 담장을 둘러 쪽문을 설치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정려기나 효자기를 대문칸 홍살에 거는 경우도 있는데 정여창 고택이 대표적인 例이다 .영광의 연안김씨 종택은 대문 중앙 칸 한 칸을 2층으로 올려 효자기를 건 독특한 효자각의 실내로 이로 인해 문 이름도 삼효문(삼효문)이라고 하였다. |
7. 머름 |
•머름(遠音)은 창 아래 설치된 높은 문지방으로 출입을 위한 문에는 설치하지 않는다. 높이는 30~45cm 정도로 사람이 팔을 걸쳤을 때 가장 편안한 높이이다. 머름은 신체적 편안함과 아울러 심리적 안정감을 주며 사생활 보호 역할도 한다. •일반적으로 머름은 가구식기단을 만들듯 짜 맞추는데 기둥 사이에 인방재를 위아래로 보내고 그 사이에 짧은 기둥을 일정한 간격으로 세운 다음 기둥 사이는 얇은 판재로 막는다. 이때 아래 인방재를 ‘머름하방’이라고 하며 위 인방재를 ‘머름상방’ 또는 ‘머름대(遠音竹)’라고 한다. •머름상방은 문짝이 달리는 문지방의 역할을 한다. 머름하방과 상방 사이에는 짧은 기둥을 일정간격으로 채우는데 이를 ‘머름동자(遠音童子)라고 한다. •머름동자 중에 양쪽 끝은 약간 폭이 넓은 것을 쓰는데 이를 ‘어의동자’라고 부른다. •머름동자 사이에는 얇은 판지를 끼는데 이를 ‘머름청판’이라고 한다. 머름동자는 머름상방에 제비초리맞춤으로 결구하며 어의동자는 연귀맞춤으로 한다. 결구와 치목이 정밀하고 고급스러운 부분이다. •때로는 가구식으로 만들지 않고 통나무를 건너 질러 머름을 대신할 때도 있는데 이를 ‘통머름’이라고 한다. 통머름은 머름하방과 상방만 설치하고 사이는 동자주와 청판을 생략하고 토벽으로 만들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