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군청 http://www.gangji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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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맥이 두 갈래로 갈라져 남해에 닿은 팔(八)자 형태의 만입지에 위치해 있다. 연안의 충적평야와 간척된 농경지를 중심으로 농업생산이 이루어지고, 특히 근해의 청정수역을 배경으로 수산업이 활발하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고려청자의 생산지로, 조선시대에는 유학자들의 유배지로 유명하다. 강진읍·군동면·칠량면·대구면·마량면·도암면·신전면·성전면·작천면·병영면·옴천면 등 1개읍 10개면 112개 동리가 있다(법정리 기준, 행정리 기준은 287개). 군청소재지는 강진읍 남성리이다. 면적 500.16㎢, 인구 42,109(2006), 인구밀도 83.9명/㎢(2006).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 때 도강현과 탐진현의 2현을 합하고 각각의 글자를 따서 강진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강진군 일대는 삼국시대에 백제의 도무군(道武郡)과 동음현(冬音縣)이 있었던 곳이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757년에 도무군을 양무군(陽武郡)으로, 동음현은 탐진현(耽津縣)으로 개칭하고 탐진현은 양무군 영현이 되었다. 고려조에 들어 940년(태조 23)에 양무군을 도강현(道康縣)으로 개칭하고 광주에 예속시켰다. 1018년에는 영암군에 속했으며, 1172년(명종 2)에 감무가 설치되어 독립했다. 탐진현은 영암군에 소속되었다가 후에 장흥부에 속했다. 1417년 도강현과 탐진현을 합하여 강진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418년에는 지금의 병영면에 병마절도사를 두고 병영성을 축조했으니, 강진은 조선시대에 전라도 병영이 있었던 곳이다. 도강현의 별호는 금릉(金陵)이며, 탐진현의 별호는 오산(鰲山)이었다. 1895년과 1896년의 지방제 개편으로 전라남도 강진군이 되었다. 1914년 면의 폐합이 있었으며, 1936년에 강진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신전출장소가 면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 마량출장소가 면으로 승격되었다.
자연환경
소백산맥의 지맥이 군의 북쪽으로 뻗어 내린 곳에 월출산(月出山 : 809m)이 솟아 있다. 이 산을 중심으로 장흥반도의 부용산맥과 해남반도의 척추산맥이 동서방향으로 이어졌으며, 수인산(修仁山 : 561m)·부용산(芙蓉山 : 609m)·천태산(天台山 : 549m)·서기산(瑞氣山 : 511m)·석문산(石門山 : 272m)·주작산(朱雀山 : 428m) 등이 솟아 있다. 특히 군 중앙부를 가로질러 솟은 화방산(花芳山 : 406m)·비파산(琵琶山 : 400m)·우두봉(牛頭峰 : 439m) 등에 의해 산북·산남 지역으로 구분된다. 또한 강진만이 군 중앙부까지 깊게 만입하여, 전체 지형이 팔(八)자 형태를 이룬다. 군내 최대의 하천인 탐진강은 장흥군 장흥읍 송남리에서 금강(錦江)과 합류하여 군동면을 지나 서류하다가 강진만으로 흘러든다. 또한 칠량면 삼흥리에서 발원한 칠량천(七良川)과 천태산에서 발원한 대구천(大口川)은 각각 칠량면과 대구면을 지나 서남류하며, 이밖에 강진천(康津川)과 석문천도 각각 강진읍과 도암면을 지나 모두 강진만으로 흘러든다.
하천에 의해 형성된 비옥한 충적평야가 넓게 발달하여 탐진강 연안에는 군동평야가, 금강과 강진천 연안에는 각각 성전·작천·병영 평야와 강진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강진만 일대에 발달한 간석지는 1970년대 시작된 간척사업으로 사초·논정 지구가 농경지화되었고, 1989년부터 신전면 사초리 사내지구와 도암면 만덕리 만덕지구가 농경지로 조성되었다. 해안선은 드나듦이 심한 리아스식 해안이며, 해안선의 길이는 총 79km이다. 강진만 남쪽에는 고금도가 가로놓여 방파제 역할을 한다. 가우도·비래도·외호도·호래비섬 등 9개의 섬이 있으며, 가우도만이 유인도이다. 연평균기온 13.5℃ 내외, 1월평균기온 1.4℃ 내외, 8월평균기온 25.6℃ 내외, 연평균강수량 1,583㎜ 정도이다. 젓나무·소나무·사철나무·후박나무·동백나무·팽나무·비자나무 등이 자란다.
인구
1960년대 전반까지는 완만한 인구증가 현상을 보였으나, 1960년대 후반부터는 이촌향도에 의한 인구감소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는 곳이다. 1960~70년에는 2%의 인구증가율을 보였으나, 1970~80년에는 11만 7,818명에서 9만 177명으로 22.1%의 인구감소율을, 1980~90년에는 23%의 높은 인구감소율을 나타냈다. 2006년 현재 인구이동 상황은 전입이 4,929명, 전출이 5,525명으로 전출의 비중이 높으며, 전출인구 중 56.2%가 도외전출이다. 강진읍(1만 5,985명)에 군 전체인구의 38%가 분포하고 있으며, 인구분포가 가장 적은 곳은 옴천면(950명)이다.
산업과교통
총경지면적 142.14㎢ 가운데 논이 111.31㎢, 밭이 30.83㎢이며, 경지율은 28.4%에 이른다(2006). 벼농사가 주로 행해지며, 쌀의 연간생산량은 4만 8,450t이다(2006). 임천·월남·금사·서산·성전·동령·삼흥 저수지를 비롯하여 성전제·당전제·송월제·화산제 등이 주요 관개용수원이다. 주요농작물은 쌀·보리·콩·조·수수·옥수수·채소류 등이다. 딸기는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며 강진읍·군동면·작천면을 중심으로 생산된다. 그밖에 참깨·들깨·땅콩·면화 등의 특용작물과 사과·배·포도·유자 등이 생산된다. 축산업은 소규모로 행해지며, 한우·젖소·돼지·사슴·산양·오리·꿀벌 등이 사육된다. 임야면적이 전체면적의 58.3%를 차지하나 산지의 이용도는 낮은 편이다. 밤과 표고버섯의 생산이 늘고 있으며, 은행·대추·약초·산나물 등이 생산된다. 1978년 청정수역으로 지정된 강진만을 중심으로 수산업이 활기를 띠며, 은어·숭어·멸치·대합·바지락·김 등이 생산된다. 특히 칠량면 봉황리를 중심으로 바지락 양식이 활발하며, 국내외로 가공판매된다.
현재 가동중인 광산은 7개소(2006)이며, 유리와 도자기의 원료인 규석과 고령토는 각각 마량면과 강진읍을 중심으로 채굴된다. 군내의 큰 공장으로는 강진읍에 해태유업강진공장이 있으며, 대부분의 공장은 영세업체이다. 예로부터 도자기를 구울 수 있는 자연적 조건을 갖추고 있어 도자기제조업이 발달했으며, 대구면과 칠량면을 중심으로 고려청자도요지가 광범위하게 산재해 있다. 고려청자의 제조가 사양길에 들어서게 되자 칠량면 봉황리에서 이른바 칠량옹기를 생산하게 되었다. 현재는 판로가 어려워 정윤석 집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시장은 강진읍에 상설시장 1개와 강진읍·칠량면·도암면·신전면·성전면·작천면·병영면·마량면에 5일 정기시장이 있다. 교통이 편리하고 농수산물의 집산지로 상업활동이 활발했으나, 대도시에 상설시장이 늘어나면서 소규모의 정기시장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목포-부산의 국도가 군의 중앙부를 동서로 통과하며, 나주-완도의 국도와 성전면에서 만난다. 강진읍을 중심으로 23번과 8번 국도가 교차하며, 이밖에 국도에서 분기된 지방도가 장흥군·해남군·영암군 방면으로 연결된다. 도로총길이 276.55km, 도로포장률 85.9%이다(2006). 마량항은 정기여객선이 완도군 고금도와 30분 간격으로, 생일도와 2시간 간격으로 운항하며 해상교통의 중심지를 이룬다.
유적 유물 관광
국가지정문화재(국보 1, 보물 9, 사적 3, 천연기념물 5)와 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10, 무형문화재 3, 기념물 10, 민속자료 2) 및 문화재자료 3점, 등록문화재 1점이 있다. 칠량면 송정리의 지석묘군(전라남도 기념물 제66호)을 비롯하여, 대구면 수동리, 도암면 지석리, 성전면 월남리·월하리 일대에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으며, 성전면 성전리에서는 마제석검이 출토되었다. 만호성지와 신라시대 군마 방목장으로 이용한 연해산성지(沿海山城址)가 마량면 마량리에 있으며, 대구면에 구수리성지, 병영면에 병영성지가 있다. 불교유적으로 성전면 월하리의 무위사극락전(국보 제13호)·선각대사편광탑비(先覺大師偏光塔碑 : 보물 제507호), 월남리 월남사지 내의 모전석탑(模塼石塔 : 보물 제298호)·석비(보물 제313호), 도암면 만덕리 백련사 내의 대웅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6호), 군동면 파산리의 금곡사5층석탑(金谷寺五層石塔 : 보물 제829호), 대구면 용문리의 정수사대웅전(淨水寺大雄殿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01호)이 있다.
사찰로는 무위사·백련사·금곡사·화방사·정수사·고성사·석문사가 있다. 유교문화재로 강진향교(康津鄕校)·남강서원(南康書院)·주자갈필각(朱子葛筆閣)·수암서원(秀巖書院 : 전라남도 기념물 제39호)을 비롯하여, 이순신·김억추를 봉안한 강진금강사(전라남도 기념물 제81호), 다산초당(茶山草堂 : 사적 제107호) 등이 있다. 특히
다산초당은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되어 살았던 집으로, 이곳에서 〈
목민심서〉 등을 저술하여 실학을 집대성했다. '다산초당'이라는 현판은
김정희(金正喜)의 글씨로 유명하다. 이밖에 고려시대 가마터로 대구면 사당리의 도요지(사적 제68호)와 칠량면 삼흥리의 도요지(전라남도 기념물 제81호)가 있으며, 조선시대 가마터로 대구면 용운리, 칠량면 명주리·봉황리에 도요지가 분포하고 있다. 병영면 성동리에는 조선 숙종 때 숭록대부가 태어난 기념으로 축조했다고 전하는 홍교(虹橋)가 있으며, 강진읍 남성리에 강진영랑생가(전라남도 기념물 제89호), 칠량면 단월리에 강진염걸장군묘소(康津廉傑將軍墓所 : 전라남도 기념물 제36호)가 있다. 천연기념물로 대구면 사당리에 푸조나무(천연기념물 제35호), 마량면 마량리 까막섬의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172호), 병영면 삼인리의 비자나무(천연기념물 제39호), 도암면 만덕리 백련사의 동백림(천연기념물 제151호)이 있다.
무위사의 극락전 /무위사의 극락전(1476 이전), 국보 ...
주요관광자원인 많은 불교유적과, 유배되었던 유학자들의 유적지, 도요지 등이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성전면 월남리의 월출산 남쪽 사면은 경치가 뛰어나 금릉경포대라 불리며, 이곳에서부터 서쪽으로 월하리에 무위사가 있고, 그 경내에는 벽화로 유명한 극락전이 있다. 만덕산 계곡에는 동백림으로 유명한 백련사가 있으며, 정약용이 귀양살이를 했던 많은 유적이 있다. 대구면에는 원형으로 복원되어 전시장이 운영되고 있는 사당리의 당전도요지를 비롯하여 약 100여 개의 도요지가 흩어져 있다. 마량면 앞바다는 도미낚시로 유명하여 주말이나 여름 휴가철이면 낚시꾼들이 찾아와 관광객 유치에 큰 몫을 한다.
교육과문화
전통 교육기관으로 강진향교·남강서원·수암서원·서봉서원·주봉서원을 비롯하여 금강사·강덕사·금산사·덕호사·구곡사·화암사 등이 있다.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은 1910년에 설립된 병영융흥학교이며, 1914년에 병영공립보통학교로 변경되었다. 강진공립보통학교와 성전공립보통학교가 1911년에 설립되었으며, 1920년대부터 보통학교가 계속 증설되었다. 중등학교로는 1937년에 2년제 강진공립농업학교가 설립되었다. 2007년 현재 유치원 15개소, 초등학교 15개교, 중학교 9개교, 고등학교 5개교가 있으며, 성화대학이 있다. 1964년에 개원한 강진문화원에서는 다산학술강연회, 금릉문화제 등을 통해 향토 문화예술을 발굴·전승하여 문화발전에 공헌하고 있다.
또한
모란촌문학동인회가 1974년에 조직되어 김영랑 동상제막, 영랑문학강연회 등을 실시했으며, 문학종합지 〈모란촌〉을 발간한다. 강진군립도서관은 청소년들의 면학에 도움을 주며, 마을문고사업이 활발하다.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땅뺏기놀이·줄다리기·다리밟기 등이 있다. 특히
땅뺏기놀이는 이 지역 특유의 놀이로 유월유두나 칠월백중에 행해지는데, 1975년 남도문화제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설화로서 〈연지전설 蓮池傳說〉과 〈장군바위전설〉을 비롯하여 〈어상보전설〉·〈까막섬전설〉·〈만리장성전설〉·〈장고바위전설〉 등이 전해진다. 구전되는 민요들은 논이 많기 때문에 노동요가 대부분이며, 육자배기목의 선율을 특징으로 한다.
강진군은 과거 천주교박해사건으로 손꼽히는 '주문모사건'·'신유사옥'·'황사영 백서사건'과 관련된 천주교인의 유배지였다. 2006년 현재 의료기관은 병원 2개소, 의원 18개소, 치과의원 5개소, 한의원 5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11개소가 있다. 사회복지시설은 아동복지시설 1개소, 노인복지시설 1개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