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열린 개천절
환웅(桓雄)이 천신(天神)인 환인(桓因)의 뜻을 받아 처음으로 하늘문을 열고 인간계에 내려와 홍익인간(弘益人間)·이화세계(理化世界)의 대업을 시작한 날. 환웅은 어버지 환인으로부터 3천의 천인과 천 부 인을 전해받아 가지고 왔는데 이때 전해진 경전이 천부경, 인부경, 지부경으로 현재는 천부경만 전해집니다.
하늘의 부호를 뜻하는 천부경은 천·지·인 원·방·각(○ □ △)의 철학체계와 천부8음(ㄱ.ㄴ.ㄹ.ㅁ. ㅂ. ㅅ.ㅇ.ㅈ)의 한글자음인 교육체계로 나뉩니다. 인간세상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어여삐 여긴 환웅이 하늘의 부호를 가지고 와서 천상의 법을 전해준 날이 개천절이며 한글은 우리민족의 사상이요 교육체계인 것입니다.
현재에는 약 500년 전, 조선 세종25년(1443년)에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세종28년(1446년) 반포한 것 (세종실록)으로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등 집현전 학자들이 어명을 받아 그 일을 완수했다고 합니다. 한글의 모양은 발성기관을 본뜬 것(훈민정음해례)이며 뜻글자가 아닌 소리글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한단고기 - 단군세기 편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단군조선 제3대 갸륵단군 경자2년(B.C, 2181년)
" .......아직 풍속은 하나같지 않았다. 지방마다 말이 서로 틀리고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진서(眞書)가 있다 해도 열 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백리되는 땅의 나라에서도 글을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에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어 이를 가림토(加臨多)라 하니 그 글은 다음과 같다........ "
이렇듯 한글은 그 기원이 훨씬 오래전이고 세종대왕때에는 신미대사로 하여금 옛글자를 모아 정립하여 한글을 복원하고 사라져가는 민족혼을 일깨우려 했던 것입니다.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을 김종* 등의 무리들이 단종을 앞세워 한글을 없애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화하려 하자, 수양은 결단은 내리게 됩니다.
거사 전날 어떻게 알았는지 딸 세령공주가 이는 반역이라며 울며 뛰쳐나가자 부하를 시켜 사랑하는 딸을 죽이라는 명을 내립니다. 발설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상황이었기 때문에... . 자신의 큰 뜻을 알 리 없는 딸의 목숨을 거두는 비정한 아버지, 조카인 단종을 죽여야만 했던 가혹한 운명. 이 모든 것을 홀로 떠 안은 채 한글을 지키고 또 전하고자 했던 인물이 수양대군, 바로 세조입니다.
세조가 아니었더라면 한글은 지금의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명나라의 눈치보기에만 급급했던 조정신료들과 사대부들은 백성들이 글을 깨우치는 것을 극구 반대(거의 필사적이었음)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한 몸을 바쳐 백성을 위하고자 했던 진정한 왕인 세조가 권력을 탐한 사람으로 치부되는 현재의 역사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다회가 10월 3일이어서 개천절인 우리 역사를 돌아보느라 글이 길어졌습니다.
이제 본론인 우리의 다회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강태공님이 이곳으로 오신지가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실컷 다회한다고 해서 왔는데 방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설마, 말이 그렇지 강태공님은 우리를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거야.'
무성하게 자란 아주까리들.
오늘을 위해서 강태공님은 아주까리를 가꾸어 왔답니다.
봄에 씨를 뿌리고 새싹이 돋아나면 물을 주고 풀 뽑아주는 정성을 들였는데 어떤 날은 작업을 하러 왔다가 하루종일 풀만 뽑고 간 날도 있었다네요. 그 말을 들으니 미당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싯귀가 떠올랐습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빠일간 아주까리 열매.
명하님은 저렇게 붉은 아주까리는 처음이다 하시면서 참 좋아라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에 이름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아주까리는 일본말 같기도 하고 진짜 이름이 뭐예요?"
"피마자가 맞지 않나.. 어렸을때 그렇게 많이 불렀는데."
"노래도 있잖아요. 아주까리 정~자는 구경자리.. 아주까리가 맞는 말 아닐까요.?
다들 긴가민가 하는데 요즘 시대가 시대인지라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아주까리가 우리 말이고 피마자(蓖麻子)는 한자네요."
"아~! 그렇구나."
다회에 와서도 공부를 합니다. 우리 다우림은 학구열이 대단히 높습니다.
아주까리 꽃.
코끼리 조형물.
실물과 너무 흡사한 주름이며 모양이 단단한 나무로 되어 있음에 놀랐습니다. 강태공님이 직접 만든 것은 아니고 수입품이라네요.
한 동안 뜸하시던 영산님이 오셨습니다. 아주까리 그늘로 둘러쌓인 정자에서 다담을 나누는 모습.
대구로 자리를 옮기신 어릴적 꿈님(가운데)도 간만에 오셨습니다.
꿈님은 작년에 이곳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셨는데 기억에 한 100곡은 불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후기에 꿈님에 대한 언급을 한마디도 하지 않자 개인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왜 나는 뺐냐고..
오늘에야 가슴속에 간직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여차저차 해서 이러쿵 저러쿵 하는 바람에 본의아니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가까스로 화해를 하고 이번에는 제대로 꿈님을 써 볼려고 했는데 밤에 급한 용무로 가버리셨습니다.ㅠ
어릴적 꿈님, 바쁘시더라도 다회에 자주 오세요^^
늙은 호박과 그리운 사랑.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그리운 것이 느나 봅니다.
젊었을 땐 꿈이 많더니 나이들수록 추억이 많아집니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 깊이 묻어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후회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들국화 노래 중.
먹감나무 사이를 서성이던 소엽님이 갑자기 나무 틈새로 들어가시더니 사진좀 찍어보라며 얼굴을 내미셨습니다.
지금껏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잠시 당황하였지만 최선을 다해 찍었습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소엽님이 먹감나무 아가씨로 데뷰해서 홍보대사를 하시려는 야망을 보이시는구나!
이렇게 이해를 하니 기쁜 마음이 일었습니다.
탄력 받으신 소엽님이
"어, 저건 원피스같다. 한 번 입어봐야지."
"어때요, 잘 어울리나요?
"네, 아름다우세요..."
앞으로 인사동 전시실에서 보게 될 먹감나무.
잘 손질하여 전시회를 하시면 여러사람 애간장 녹일 물건들입니다.
근데 전시회만 하고 안팔고 도로 갖고 오실지도 모릅니다. 왜냐면 아까워서..
나무 속을 다 파내고 과일이나 차를 담도록 만들었습니다.
단단한 나무를 파내는게 쉬운 일이 아닐텐데 이런게 몇 개 더 보입니다.
경매장에서 사오신 백자.
사람들이 저마다 갖고 싶은 물건을 고르고 가격 경쟁을 하느라 치열한 경매장에서 강태공님은 저걸 만원에 샀답니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싸게 사요?"
"별거 없어요. 물건 나오자 마자 만원 불러놓고 일어서서 눈을 부릅뜨고 뒤를 훑어보면 돼요."
"그런다고 다른사람이 안살까요?"
"그러니까 볼 때 손들면 가만 안둔다는 마음을 눈빛에 담아 째려봐야죠ㅋㅋ"
다회는 이제 안방 다실로 이어집니다.
웬만한 사람은 절대 못들어 온다는 다실..
저 다화는 제가 했습니다. 이제는 소엽님이 안하시고 저(물 흐르듯)한테 시키십니다.
상주예술촌 구석구석 찾아 헤매다 발견한 꽃을 다화꽂이에 꽂고 다회를 시작합니다.
제가 해놓고도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나도 이 정도면 제법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엽님이 믿고 맡길 정도의 실력을 갖춘 제가 자랑스럽습니다.
이 글은 우연히 이 곳에 오게 된 명필께서 강태공님의 인품을 알아보시고 감격에 겨워 즉흥적으로 벽에다 쓰셨다고 전해지기도 하고 먹감나무의 먹색에 반하여 붓을 들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둘 중 하나는 진실이겠지요.
강태공님이 글을 해석해 주십니다.
강설 [江雪]
千山鳥飛絶 萬徑人蹤滅 孤舟蓑笠翁 獨釣寒江雪.
(천산조비절 만경인종멸 고주사립옹 독조한강설)
첩첩산중엔 새도 날지 않고 모든 길엔 사람 발길 끊어졌네
외로운 배에 삿갓 쓴 노인 춥고 눈 내리는 강에 홀로 낚시를 드리우네
"이 시는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인 유종원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입니다. 여기를 보세요. 고독함이 절로 묻어나는 노인이 고기를 잡는 모습의 이 글씨는 한자에 300만원 입니다. 이 분 글씨가 그렇게 유명한데..."
파리채를 지휘봉삼아 열변을 토하시는 강태공님.
듣고 있던 제가 글자를 세어보았습니다.
"글자가 총 스무자인데 한자당 300만원이면.. 허~억 자그마치 6000만원!
포크레인 불러다 벼랑박(벽) 통째로 떼어내 갖다 팔면 부자되겠네요."
"ㅋㅋㅋ"
"깔깔깔"
"하하하"
이렇게 농담도 하며 다식으로 맛있는 빵도 먹고 즐거운 다회를 하였습니다.
창가에 여주가 달려 있었는데 여주가 익으면 끝이 벌어진다기에 밖에 나가 확인해 보았습니다.
정말로 끝이 벌어지고 속의 씨는 빨갛네요.
여주는 당뇨에 효과가 좋다고 알려졌습니다.
따가지고 다실에 들어와 저마다 신기한 여주를 감상하였습니다.
이 때 여주를 이리저리 만지던 소엽님이
"이거 마이크 하면 딱이네...하하하하하하"
작은 방엔 나무로 침대를 만들어 놓으셨네요. 튼튼하고 잠도 잘 온답니다.
그래도 가끔은 공구창고 손바닥만 한 공간에서 잠을 자곤 하는데 넓고 아늑한 것만 찾는 자신을 경책하기 위함이랍니다.
작년 다회때는 난방이며 편의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다우님들이 많이 오다보니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보일러 기름도 가득 채워놓았고 온수시설도 급구해서 조금의 불편함 없이 완벽하게 준비했노라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덕분에 따뜻한 방에서 등을 지지며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영산님이 길가에서 할머니한테 사온 거창 포도와 소엽님이 준비해 오신 사과와 귤.
떡.
저 떡은 예사 떡이 아닙니다.
상주의 대표미인 두 분이 상주시내를 돌고 돌아 어렵게 구한 두텁떡과 쉽게 구한 바람떡입니다.
강태공님이 고등학교시절 반항기가 충만할 때 태권도를 배웠는데 그 때 관장님 따님이 꼬맹이였답니다.
그 꼬맹이 아가씨가 태권도를 하는 모습이 귀여워 예뻐했었더랬죠.
시간이 흘러 우연히 만났는데 이번에 예술촌까지 방문하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상주의 대표미인으로 성장한 그 여성분은 뭐라도 들고 오려 했고 강태공님은 떡을 사오라고 했는데 그 떡이 저 떡입니다.
바람떡은 어딜 가나 있지만 두텁떡은 상주시내를 아무리 돌아다녀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어렵게 구했다며 웃으셨습니다.
강태공님은 "꼬맹이 태권소녀가 지금은 태권도 4단입니다."
우리는 깜짝 놀라 "4단이요?"
장난기스런 말투로 소개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던 몽중지인님이 우려스런 말투로
"그런 분한테 농담하다 맞으면 어쩌실려구요."
하며 강태공님을 걱정하셨습니다. 저는 몽중지인님께
"걱정 안하셔도 돼요. 강태공님은 맷집이 4단이에요.ㅋㅋㅋ"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맷집이 없는 저는 떡을 접시에 담을 때 정성을 다해 담았답니다.
점심으로 등장한 오리훈제.
식사 도중 영산님이 일본 사케를 가져오셔서 건배하는 모습.
이에 강태공님이 송이주를 내오셨습니다. 송이향이 진하게 나는 술이었습니다.
강태공님은 술을 입에 대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집 여기저기 술들이 많이도 숨어있더군요.
송이주를 맛보고 있는데 이번에는 2002년에 담근 더덕주라며 또 한병을 내오셨습니다.
다회에 오시면 '꿀먹은 벙어리' 또는 '꿔다 논 보리자루'마냥 말도 않고 묵묵히 찻잔만 홀짝이다 가시곤 하던 몽중지인님이 더덕주를 한모금 입에 대시고는 드디어 말문이 열리셨습니다.
"저는 발렌타인 21년 산 같은 것은 줘도 안마시고 30년 산 정도 되어야 입에 대는 사람인데 이 더덕주는 정말 좋네요."
저도 맛을 보았는데 술과 더덕이 하나로 완성된 맛과 향이 정말 좋은 술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다 마시고 싶었지만 아직 낮이라
"몽중지인님, 우리 있다가 밤에 이 더덕주 다 마셔요."
"그래요."
이렇게 약속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상주의 삼백다례원 원장님과 회원님들이 차를 내는 곳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삼백다례원 원장님이 말차를 격불하는 모습.
소엽님이 따끈한 말차를 마시는 자리에 상주의 대표미인 두 분 중에 한 분이 마침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이 분이 태권소녀는 아닙니다.
송화가루 다식.
차를 마시고 상주의 들판을 보며 낙동강으로 향했습니다.
올 해도 풍년이라는 쌀농사.
우리가 쌀을 배불리 먹게 된 것은 얼마되지 않습니다. 1970년 통일벼가 생산되고 1977년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쌀의 자급자족이 이루어졌는데 실지로 우리가 쌀걱정을 안하고 산 때는 1980년대 중 후반 이후부터 입니다. 불과 30여 년 밖에 되지 않은 쌀밥의 역사인 것입니다.
길을 가다 길가에 피어있는 억새와 갈대를 보았습니다.
물 흐르듯 "라사님은 억새와 갈대의 차이를 확실히 아세요?"
라사님 "알아요. 갈대는 어쩌고 저쩌고 억새는 중얼중얼"하며 말끝을 흐리자
아는 척을 하고 싶었던 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설명을 합니다.
"억새는 억새풀에서 나며 이렇게 생겼습니다."
"갈대는 강이나 바닷가 습지에 살며 이렇게 생겼습니다."
라고 설명을 하니 가슴이 후련해지더군요.
낙동강가에 앉은 잠자리.
몽중지인님과 라사님이 강가를 걷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물 흐르듯 "두 분이 같이 서 보세요."
몽중지인님 "그래요, 이쪽으로 보시고 찍어요."
라사님 "아니.. 오늘의 컨셉은 서로 다른 곳을 보는 거예요."
이 사진.... 더 이상의 말은 생략합니다.
몽중지인님 "어.. 바람이 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해가 집니다. 원래는 저녁먹고 갈 예정이었는데 강태공님의 회유도 있었지만 운전자인 몽중지인님이 약주를 드시는 바람에 하루를 더 머물게 되었습니다. 뻔한 변명..
상주의 밤이 깊어 갑니다.
통기타 가수의 노래와 숯불에 고기도 구워지는 여유로운 밤.
가을 밤에 들려오는 기타소리는 감미롭습니다.
가을과 잘 어울리는 쓸쓸한 사랑노래를 함께 불러봅니다.
낮에 먹기로 한 더덕주를 잊고 있었던 저는 나중에서야 소엽님의 증언으로 몽중지인님의 만행을 알게 되었습니다.
혼자 몰래 빠져나가 개를 한 마리 앞에 두고 벗삼아 반병이나 드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아.. 나는 개에게도 밀렸구나. 서당개 삼년이면 뭐하나.'
허탈감이 밀려왔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은 반병은 제 몫이라고 절대 누구에게도 줘서는 안된다고 강태공님께 신신당부하고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 다시 와서 기필코 더덕주를 마실 생각입니다. 올 해가 가기 전에 말입니다.
가수분들과 다정한 시간.
영산님과 라사님이 주워오신 함양산 밤.
강태공님이 다우림을 위해 헌신한다고 주신 나무에 밤을 담았습니다.
상주의 다회가 있어 더욱 풍요로운 가을이 되었습니다.
다우림과 함께 하는 차생활은 인생을 살찌우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다 우 림 茶 雨 林]
첫댓글 참 멋스럽고 존경하는 선배님들이십니다.
ㅎㅎ 현장감이 좀 느껴지나요?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상주와의 만남이 무산되었습니다.
무지무지 아쉽다는..
언제나 상주의 붉은 아주까리를 볼 수 있을려나요..
부럽사옵니다...ㅜㅜ
그러네요. 유독 상주만 함께하지 못했네요.
현곡님 안오셔서 허전했어요
먹감나무와 뷹은 아주까리를 보셨으면
시 몇 편 창작하셨을텐데...
아무래도 저와 동행하여 훌쩍 가야하지 않을까요? 현곡님.ㅎㅎ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현곡님 거주하시는 곳이 어딘지 여쭤도 될런지요?
제가 좋아하는 분과 같은 이름이어서 혹시,하여 여쭙니다.
대전에 살고 있습니다. 현곡은 이름이 아닙니다. 아버님이 지어주신 호이지요. 제 이름은 박순입니다. 생각하고 계시는 분과 맞는지 모르겠네요.
@현곡 아 그러시군요, 실례가 컸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분도 현곡이라는 호를 가지고 계십니다.
서예와 차를 하시는 분인데, 혹시 그 분인가 싶었습니다.
다우림 현곡님도 언젠가 꼭 뵙고 인사드릴 기회가 있길 바라겠습니다.
@매듭 매듭님 서예하시는그분도 좋은분이지만 이쪽현곡이 쪼매 더 좋은분일거에요^
다회 후기를 이렇게 맛깔스럽게 적어주시니 고맙습니다 다만 사실과 조금 다른 사항이 있어 몇 자 적어봅니다 음악 감상에 빠져 있는 물님을 방해하지 않고 싶었고 저는 음치라 음악에 별로 흥미가 없어서 혼자 있다 보니 남은 술이 있어 몇 잔 먹었고 그 때 앞에서 개가 얼쩡거린 것이 우연히 다른 사람 눈에 뛰인 것입니다 그리고 발렌타인 17년산이든지 21년산이든지 공짜로 주면 당연히 마십니다 제 돈을 주고는 사먹지 안는다는 것이죠 그리고 저는 무심히 지나친 것들을 물님께서 이렇게 아름답게 그려내는 물님의 솜씨가 부럽기만 합니다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개가 얼쩡거려 오해를 받으셨군요.
이런 긴 댓글 처음이야~~
제목; 몽중지인 말문열렸네^^
@물 흐르듯 사진도 글도 예술입니다.^^
물님의 시선으로 본 다회
아주까리 열매처럼 아름답습니다
정겹고 갈대와억새는 확실하게 짚고 갑니다 ㅎ
그런데 연로한 제사진을 너무 심하게 올려놓아 ᆢ 민망합니다 우리다회 평균연령44입니다 ^
연로? 언제 보아도 아름다우시다는..^^
늘 넉넉한 품으로 상주다회를 추진해주신 강태공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여의치않아 함께하진 못했지만 숙녀님 관가정님 현곡님 모카님 안부전해주셨습니다
관가정님도 못가셨다니 위안이 됩니다.ㅋㅋ
@숙녀 그러게요 ^^
애고~ 상주다회 다녀온 후 어찌 이리 분주해지는 건지
소엽선생님,강태공님.물님,.애쓰셨습니다
그리고 몽중지인님 반가웠습니다
다회소감도 피력못하고 제주도로 가을여행 갑니다
상주다회의 여운을 머금고 한라산 정기를 감촉하고 오렵니다
항상 그렇듯이 모두모두 애쓰셨어요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명하님의 넉넉함에 찻자리가 더 빛이 났습니다.
제주의 가을을 옮겨다주세요 명하님~~
어릴적 보았던 아주까리. 아름답다 못해 현란한(?) 물님의 후기를 하던 일 멈추고 읽고 또 읽고.....얼마의 세월이 흘러야 바람따라 느낌따라 좋은 님들과 함께 할 수 있을지 아쉽기만 합니다. 사실 토요일 아침부터 일행에서 빠져나와 상주로 달리는 길을 그려보며 애를 태웠건만.... 또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음이 설레임으로 다가섭니다.
1박 할 줄 알았으면 오시라고 했을텐데.. 후기로 아쉬움을 달래게 해드려 죄송스럽고, 기쁘게 읽어주셨다니 위안이 됩니다.
물 흐르듯 님 다큐 작가로 데뷔하셔야겠어요~~~
그..그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