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일본 제일의 온천지대 벳푸(別府)
일본은 환태평양조산대(環太平洋造山帶)에 자리하고 있어서 화산과 지진과 온천이 많다, 그 중에서도 태평양 바닷가에 있는 벳푸(別府)는 온천이 많기도 하거니와 그 종류가 다양해서 일본 제일의 온천지대로 이름이 나있다.
벳푸역 앞에는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동상 하나가 서있다. 동상은 주인공이 젊잖게 서있는 것이 일반적인데도 도망가는 주인공의 옷자락을 잡고 매달리는 또 한사람이 있었으니 말이다.
아부라야 구마하치(油屋熊八)상이란다. 거기에는 ‘낯선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을 잊지말라.’는 성서 한 구절이 새겨져있고, 그는 벳푸에서 유후인(油布院) 온천을 개발한 사람으로 벳푸의 관광진흥에 크게 기여한 사람이라고 한다.
벳푸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온천 순례에 나섰다. 그런데 온천을 왜 하필이면 지옥이라고 했을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찾아간 지옥 온천은 벳푸 시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여러가지 특색을 가진 온천의 조합을 말하고 있었다.
호기심을 가지고 찾은 첫 번 째 온천은 우미노지고구(海の地獄)이란다. 조그마한 연못에 고인 짙은 코발트색 물은 손을 담그면 금방이라도 파랗게 물들어 버릴 것만 같은데 연못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물안개는 사람의 마음을 환상의 세계로 이끌어 간다. '바다의 지옥' 온천을 '꿈의 바다'로 이름을 바꾸었으면 좋겠다.
이 온천은 물의 온도가 섭씨 98도나 된단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온천 물 속에는 장대 끝에 대바구니를 매달고 거기에다 계란을 넣어 삶아서 관광객들에게 팔고 있다.
그 곁에 있는 야마지고구(山地獄)는 산기슭 바위 틈바구니 곳곳에서 하얀 수증기를 내뿜고 있었다. 마치 산에 불이 났다가 꺼진 후 연기가 솟아오르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섭씨 90도나 되는 온천수를 이용하여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희귀한 동식물을 기르고 있었다.
시리이께지고구(白池地獄)는 야자수가 우거진 곳에 군데군데 방갈로가 섰고 그 앞 연못에는 우유빛보다도 더 희고 짙은 온천수가 괴어 있는데 지하에서 분출할 때에는 무색투명하지만 온도와 압력이 낮아지면서 청백색(淸白色)을 띤다고 한다.
치노이께지고구(血の池地獄)를 보면서 나는 왜 이 온천 조합을 '지옥'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커다란 연못에 괴어 있는 온천물이 붉은 피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사무라이들이 휘둘러대는 칼에 잘린 목에서 뿜어 나온 피가 연못 가득히 괴어 있는 바로 그러한 모습이었다. 아직도 체온이 남아 있는 듯이 하얀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고 있는 피의 연못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한다.
혼보즈지고쿠(本坊主地獄)는 옛날 깊은 사속에 있는 스님이 벌을 받아 빠져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온천으로 뜨거운 진흙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모양이 마치 스님의 머리모양을 닮앗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마지막으로 본 류우마끼지고구(龍卷地獄)는 천연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보기 드문 간헐온천으로 온천수가 25분 간격으로 주기적으로 분출하고 있는 희한한 것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벳푸의 지옥온천은 한 마디로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우선 지하 곳곳에서 물과 수증기가 솟아나고 있다는 것부터가 신기한데 붉고 푸르고 하얀 물이 갖가지 형태로 분출되고 있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벳푸의 온천지옥은 참으로 대단한 온천의 박물관이었다.
유명하다는 스기노이 호텔(Suginoi Hotel)에 들었다. 무려 2,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이 호텔 안에 있는 '꿈의 온천'은 규모가 엄청나게 커서 건물 안에는 갖가지 열대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온천수가 흘러넘치는 연못가에는 산뜻한 정자가 서 있는데 그곳에서 목욕을 하고 있으려니 온천의 이름처럼 내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크기와 내부 장식이 비슷하다는 '꽃의 온천'은 여인들의 온천이라고 한다. 그래서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내일이면 남자들의 온천이 된다고 한다. '꿈의 온천'과 '꽃의 온천'은 남성과 여성을 하루마다 교대로 수용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이 호텔에 묵으면서 두 가지 사실 때문에 일본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 하나는 호텔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으로 그 속에는 일본의 혼이 강하게 흐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 입장하려면 기모노를 입어야 한다니, 그것은 호텔 숙박 객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어쩐지 그것만이 아닌 것 같아서 마음이 불쾌했다.
다른 하나 역시 그들의 혼을 지키고 이어가는 박물관이었다. 박물관에는 총과 칼과 갑옷들이 열병을 하는 병사들처럼 질서 정연하게 진열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일본 전국시대 군사들이 사용하던 것이라는 설명서가 붙어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임진왜란 때 왜군이 우리나라를 침략할 때 사용하던 것만 같아서 가슴이 섬뜩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도자기와 중국의 돌부처, 인도의 코끼리 조각상 등 아시아 각지에서 가져온 유물들을 돌아보고 있으려니 값진 예술품을 감상한다는 기쁨보다는 약한 자의 서러움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전시실 한 곳에 가장 인간적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성기 조각품들이다. 나무로 만든 남성의 성기와, 머리를 남성의 성기 모양으로 조각한 나부상도 인상적이지마는 사기로 만든 남성의 성기를 줄을 매어 끌고 가는 여인상을 보고 있노라니 한 점의 가식도 없는 한 여인의 마음을 보는 것 같아서 연민의 정마저 느꼈다.
하기야 인간의 지상명제가 사랑이고 사랑의 심볼이 성기가 아니던가. 인간은 남녀가 성기로 유희를 하다가 아들딸 낳아서 길러놓고 늙어서 죽어가니 말이다.
벳푸
시가지 근경-군데군데 온천 김이 솟아나는 것이 보인다
아부라야 구마하치(油屋熊八)상
우미노지고구(海の地獄)
야마지고구(山地獄)
시리이께지고구(白池地獄)
치노이께지고구(血の池地獄)
류우마끼지고구(龍卷地獄)
혼보즈지고쿠(本坊主地獄)
스기노이 호텔(Suginoi Hotel)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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