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조금 더 단순한 각도에서 생각해 봤는데 시공간의 압축현상이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았을 때를 떠나서
두 경우 모두 시행착오는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상황이든 변화는 나타나기 마련이고 그것이 더 빠르냐 느리냐 순차의 문제이고 결국 언젠가는 겪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지금과 달리 예전은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는 것에서 만족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의식주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의식주에 근거한 경쟁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모두 같은 형태의 고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공간의 압축여부와 상관없이 사람의 욕망이란 언제든지 생기기 마련이고 사람의 욕심이라는게 형태만 다를 뿐 끝이 있는게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그 기본적인 틀에서 벗어나게 하는 편의를 제공하고 겪어보지 못한 갈등을 겪고 있는 시행착오에 놓여있을지는 몰라도 이러한 시행착오란 언젠가는 마딱들일 것입니다.
욕망의 크기가 커져다면 그것을 분출하고 해결하는 방식도 다양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슬로우 의 열풍도 일종의 그 다양성 중 하나이며 지금 겪고 눈에 보이는 어려움들도 결국 지나가야 될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공간의 압축은 인류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시공간의 압축현상이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았을 때 두 경우 다 시행착오가 발생한다고 생각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두 시행착오중 어느 부분이 더 크게 작용을 할까요? 저는 압축현상으로 인한 시행착오가 더 크다고 생각을 합니다.
압축현상으로 오는 역기능은 목적전치, 인간소외등 인권 및 윤리적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과거에는 의식주가 해결되는 것에서 만족을 느꼇었지만 현대에는 어떤가요? 욕망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상대적 박탈감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시공간의 압축으로 인한 시행착오와 그대로 있음으로 인한 시행착오는 분명히구별되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욕망의 크기가 커져간다고해서 그것을 분출하고 해결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양해졌나 궁금합니다.
욕망의 크기가 커져갈수록 충족을 시키기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그로 인해서 역기능이 생기는것이지요.
슬로우의 열풍이라고 하셨지만 슬로우는 예전방식으로 시공간의 압축을 추구하는 것이아니라 여유를 추구하는 것이죠.
시공간의 압축으로 인한 역기능은 시공간의 압축을 추구하지 않으면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극복할 과제가 아니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시공간의 압축현상이 꼭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첫댓글 박지윤 학우님의 의견에 덧붙이자면 시공간의 압축현상이 인간의 삶에 잉여시간을 창출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적으로 봤을때
그것이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여가시간의 증가로 이어진다기보다 오히려 일과 관련된, 업무시간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인류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보기는 무리가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박지윤 학우님은 누굴까여 병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