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소녀
황선유
같은 교회를 오래 다녀도 그리 가깝지는 않았다. 그럴만한 까닭이야 그이에게도 있을 것이나 나의 이유는 예수쟁이로도 너절하고 보통의 관계로도 개운하지 못했다. 한 사람은 많이 배운 티가 나서, 한 사람은 많이 가진 티가 나서. 그런데 오늘 보니 둘 다 나이 들어 참 예쁘다. 다시 소녀를 본 듯하다.
교회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저쯤 의자에 나란히 앉은 두 분 권사님이 서로 머리를 맞대다시피 하고 있다. 나누는 대화가 심오한지 시선도 표정도 사뭇 진지하다. 저런 풍경은 지난주도 그랬고 그전에도 몇 번 본 적 있다. 그때마다 목인사만 하고 지나쳤는데 오늘은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주위를 잊은 듯한 열중에도 한치 풀지 않은 다소곳한 앉음새에 내 걸음이 이끌렸음인지, 있음 직한 그간의 거리가 줄어든 듯도 하다. 나는 한 분의 집이 교회 근처인 걸 들먹이며 자주 지하철을 타고 어디 가시냐는 말로 인사를 건넸다. 권사님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별일이나 하다 들켜 부끄러운 듯 답한다.
“배웅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그런답니다.”
왜 아잇적에 그런 적 있지 않던가. 동무들과 놀다 헤어지기 아쉬워 겨끔내기로 서로 바래다주곤 했던…. 지금 일흔의 두 분 권사님이 딱 그런 소녀만 같다.
그날 밤 연회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예순의 내가 막내뻘이 되는 여학교 동문 문인들의 문학기행이다. 문학이 아니더라도 자기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동문들의 기운이 해운대의 밤을 너끈히 지배할 판이다. 여든을 훌쩍 넘긴 한 분이 순서에 있는 자신의 시를 낭송하고서는 두 손을 배꼽 위에 맞잡고 소녀처럼 무릎을 까딱거리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참 선배의 뜬금없는 전개에 들음들음 술렁거렸으나 나는 아랑곳없이 따라 불렀다. 세상에 이 노래! 코끝이 시큰했다. 가사 한 줄 한 줄이 어제 부른 듯 명징하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
과꽃 예쁜 꽃을 들여다보면
꽃 속에 누나 얼굴 떠오릅니다
시집간 지 어언 삼 년 소식이 없는
누나가 가을이면 더 생각나요
초등학교 삼 학년인가. 군용 지프를 타고 전쟁 때 미사일 기지가 있었다는 소오산 꼭대기에 올라가 군인들 앞에서 이 노래 ‘과꽃’을 불렀다. 저기 여든의 선배처럼 손을 맞잡고 무릎을 까딱거리면서…. 때때로 혼자 이 노래를 부르며 과꽃 닮은 소녀였을 내 모습을 그리곤 한다.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멀리 두고 왔을까. 들썩이는 질문과 함께 소녀적 나와 지금 나와의 거리를 성찰하기도.
과꽃의 노랫말에 이입되어 가만히 서러웠던 적도 있다. 사십 년 가까이나 지난 이야기이다. 결혼 후 직장과 시집살이의 몇 달 동안 친정 나들이는커녕 친정붙이도 만나지 못했다. 당시 영유아 예방접종을 담당하는 육아상담실이 내 근무지였는데 한창 상담 중에 전화를 받았다. “오빠다. 부산에 볼일 보러 왔다가 전화했다. 잘살고 있제?” 수화기 너머 큰오빠의 목소리였다. 나는 수화기를 든 채 그야말로 꺼이꺼이 통곡했다. 테이블 건너의 젊은 엄마가 놀라 밖으로 나가고 직원들이 달려왔을 때 이미 전화기는 꺼져 있고…. 참, 과꽃은 시골집 꽃밭에 지천으로 피던 꽃인데 요즘은 꽃 보기가 영 드물다.
아무렇든지, 지금 내 앞의 그이들에게 봄풀내 풋풋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여러 번 잘 헹군 빨래에서만 난다는 청신한 새물내라면 그만이겠다. 오직 나의 소녀는 밉지 않을 것 그리하여 흐뭇할 것.
가만 둘러보면 주위에 그런 소녀들이 참 많다. 아파트 목욕탕에서 자주 만나는 그이가 얼마간 안 보이더니 그동안 ‘얼굴이 더러워서’ 피부과에 다녔단다. “딸이 자꾸 뭔 소리를 해서, 내 얼굴이 아니라 지 얼굴이 부끄러울까 봐.” 그 말을 할 때 영락없는 소녀 폼이다. 오늘도 M 시인의 차림 표정 목소리가 소녀처럼 사랑스럽다. 여든이 넘은 시인은 명문여고와 명문대학을 나온 인텔리 할머니다. 그런 그이와 함께 십수 년 문학회 동인으로 있는 동안 누굴 나무라거나 하다못해 군담이라도 하는 걸 들은 적이 없다. M 시인에게는 사람의 좋은 점만 골라보는 DNA가 따로 있는지 언제고 궁금하다. C 선생은 여든 또래인 Y 선생의 건강에 자꾸 애가 쓰인다. “아프지 말아요.” 그 말을 할 때는 안을 듯 Y 선생의 허리에 팔을 두른다. 어이 그러시냐 짓궂게 놀려도 괘의하지 않는다. 도무지 밉지 않은 C 선생 때문에 수필 수업 내내 흐뭇하다.
생각하면 마냥 쓸쓸한 기분이 들게 하는 그런 그이도 있다. 교회 휴게실에서 만난 그이는 머리 염색 시기를 한참이나 놓친 티가 표났다. “아들이 대학 갔다면서요?” 나를 반기는 인사에 어떤 말로 답을 하나 잠시 머뭇거리자 옆에서 대신한다. “대학 간 지가 언젠데요.” 그날 휴게실을 나오면서 나는 좀 슬펐다. 벌써 십여 년 전에 지금과 똑같은 말로 덕담해 주셨건만…. 그이를 맨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진주목걸이를 한 고운 목을 기억한다. 아, 세월이 궂게 흘렀구나. 아무래도 다시 소녀 같다는 말은 못 드릴 것만 같아 송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