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들 - 김태형
커튼 뒤에 숨어 있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
비좁은 장롱 속에 들어가는 것은
더없이 쉬운 일이다
이불 밑에 납작하게 누워 있어도
피아노 의자 아래 네 발로 기어들어가
새끼 고슴도치로 웅크려 있어도
금세 웃음소리를 찾아낼 수 있다
발코니 구석에서 은빛 물방울이 되고
유리창에 달라붙은 햇빛이 되고
발가락까지 오그린 투명한 숨소리가 되는 아이들
그렇게 아무리 숨어 있어도
가면을 몇 개씩 찾아 쓰고 있어도
얘들아 이 집에서만큼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단다
물풀 같은 하얀 종아리가 다 자라고 나면
굳이 숨으려 하지 않아도
이 세상은 너희들을 사라지게 할 거야
보이지 않게 만들 거야
다른 그 무엇이 될 수 없게 서류 속에 집어넣을 거야
그때까지만이라도 숨은 그림을 그려야지
유령과 싸워야지 커튼 뒤에서 장롱 속에서
시인은 아이가 어른이 되어 겪을 슬픈 술래잡기를 예감한다. ‘나’라는 고유한 존재는 없어지고 명함이나 서류에 이름으로만 존재할 때, 있어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될 때, 그래서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술래 ‘나’를 찾아야 할 때, 그것은 놀이가 아니라 두려움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정신이 없을 그때,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셰익스피어, <리어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