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일고 있는 트로트 열풍을 몹시 반기는 음악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교원대학교 음악교육과 교수로 재직중인 손민정 님 입니다. 손민정 님은 본래 전형적인 클래식 애호가였습니다. 작곡 이론을 전공한 손민정 님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뒤 미국 텍사스오스틴 주립대학교에 입학하여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합니다.
손민정 님은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트로트의 가치를 재인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세계의 다채로운 음악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트로트의 독창성을 의식합니다. 손민정 님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음악 인식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고백했지요.
“ 대학 때까지는 클래식 음악이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여섯 살 때 피아노를 시작해 피아니스트를 꿈꾸다가 작곡가가 되고 싶었으니까. ‘내 사랑은 바흐’라는 망언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엘리트 예술에 대한 동경이었고, 문화 사대주의가 심했던 겁니다. 그러다 트로트에 눈을 뜨게 됐고, 음악인류학을 공부하며 기존 음악관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저보고 ‘트로트 덕후’라고 하는데, 학문을 하다 보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
손민정 님은 트로트 박사논문을 준비하며 2000년대 초반 수년에 걸쳐 한국의 수많은 트로트 공연 현장을 찾아가서 유명 가수, 무명 가수를 가리지 않고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는 숱한 트로트 무대를 목격하는 과정에서 온실 속에 갇혀있던 자신이 ‘찐’으로 되어가는 것을 자각했다고 회상했지요.
결국 손민정 님은 한국 트로트가 엄청난 매력이 있음을 대중들에게 알리려고 백방으로 노력합니다. 손민정 님은 2009년 출판했던 저서 ‘트로트의 정치학’에서 다음과 같이 트로트에 대한 정의를 내렸지요.
“ 트로트는 3분의 인생 드라마입니다. 인생의 쓴맛을 모르는 사람은 진정 느낄 수 없는 음악, 꺾어 넘어가는 창법처럼 굴곡 있는 인생을 극복해가는 한국인의 끈기를 담은 음악, 슬프고도 흥겨운 음악입니다. ”
한편으로 손민정 님은 한국 일각에서 드러나는 트로트에 대한 편견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했지요. 손 교수는 2020년 5월 3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클래식이 대중음악보다 우월하다는 고정 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아래와 같이 역설했지요.
“ 교수님, 학교에서 트로트를 가르쳐도 되나요? ” 기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질문이 되돌아왔다. “ 왜 우리는 베토벤, 모짜르트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특정 음악이 다른 음악보다 우월하거나 중요하다고 가르쳐선 안 됩니다. 다채로운 음악을 통해 다채로운 사람을 이해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아닐까요? ”
손민정 님은 세계인들이 한류를 주목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한류를 사랑하는 세계인들은 한국인이 애호하는 트로트에 당연히 호감을 가질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고보니 얼마 전 방영된 한 트로트오디션 프로에서 금발의 미국인 여성이 주현미 님의 노래를 멋지게 부르던 장면이 떠오르더군요.
손민정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