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1호-십사만 사천 마지막 세대 편지: 쓰러진 나무에 꽃이 피었습니다 조지아의 봄은 덕우드(dogwood)나무에 희고 큰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야 비로서 절정에 이릅니다. 마치 커다란 흰 눈꽃들이 가지마다 사뿐히 내려앉은듯, 빛나는 천사의 옷자락이 살짝 바람에 날리듯, 가지마다 층층이 무리를 지어 피어난 덕우드의 하얀, 분홍 색깔의 꽃무더기들은, 햇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다른 색깔로 빛이나 보는 이들의 눈을 황홀하게 합니다. 집 뒷뜰에 쓰러진 큰 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따뜻하고 덥기까지한 날씨가 계속되어 봄을 맞을 준비에 설레던 지난 3월의 어느 날,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더니 쏟아진 폭설을 견디다 못해 쓰러진 나무입니다. 그날 눈이 오던 아침 나절, 몇 년 만에 보는 하얀 눈이 너무 신기하고 아름다워 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하늘을 진 회색빛으로 물들이며 점점 더 거세어지며 휘날리는 눈발에 슬며시 걱정이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전선줄들과 나무들이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밤, 전기가 나간 영하의 밤은 두세 겹 덮은 이불로는 감당할 수 없는 추위를 몰아와 감기라는 반갑지 않은 선물을 주고 갔지만, 더 문제가 되었던 것은 가지에 쌓인 눈의 무게로 픽픽 힘없이 쓰러지는 나무들이었습니다. 덕분에 집 앞으로 나가는 길이 쓰러진 큰 나무로 막혀서 며칠을 작은(?) 환난의 경험을 하며 전기와 난방 없이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뒷뜰에 쓰러진 그 나무가 덕우드나무인지 몰랐더랬습니다. 쓰러져 뿌리가 거의 다 뽑혀진, 몇 가닥의 뿌리만 겨우 땅에 붙어 있는 그 나무에 아름다운 하얀 꽃이 피기까지는&. 큰 벚꽃 모양의 하얀 덕우드 꽃은 늘 아름답지만, 그 쓰러진 나무에 핀, 웃는 얼굴을 한 꽃들은 다른 꽃보다 세 배나 더 컸고, 그 큰 꽃들로 뒤덮힌 쓰러진 나무는 마치 여왕처럼 우아해 보였습니다. 신기한 성령의 능력 성경을 읽다가 하도 신기하고 이상해서 슬며시 웃음이 나기조차 하는 한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다윗이 머물고 있는 사무엘 선지자의 마을 라마 로 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는 성경에 이렇게 써 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 사자들을 보내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의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신이 사울의 사자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혹이 그것을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다른 사자들을 보내었더니 그들도 예언을 한고로, 사울이 세 번째 다시 사자들을 보내었더니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이에 사울도 라마로 가서 세구에 있는 큰 우물에 이르러 물어 가로되 사무엘과 다윗이 어디 있느냐? 혹이 가로되 라마 나욧에 있나이다.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행하며 예언을 하였으며, 그가 또 그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종일 종야에 벌거벗은 몸으로 누웠었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삼상 19:20~24). 사울은 하나님의 택한 종 다윗을 잡아서 죽이려고 부하들을 파송했습니다. 그러나 그 부하들이 사무엘의 마을에 들어가자,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어 예언을 하며 지내다가 다윗을 잡아야 하는 사명도 잊어버리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세 번이나 사자들을 보냈지만 그 신기하고도 이상한 일이 계속되자, 사울은 직접 다윗을 잡으려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악의와 살기에 가득 찬 사울이 라마 나욧에 가자, 그도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어 다윗을 죽이려던 의도도 잊어버린 채, 사무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게 벌거벗고 누워 하루 종일 예언하고, 찬양의 시를 읊고 노래를 하며 지냈습니다. 물론 다윗을 잡아가지 못했던 것은 물론이구요! 성령의 능력은 얼마나 강하고 신기한 것이기에 인간의 악한 욕망을 순식간에 변하게 하는 것일까요? 성령의 능력은 얼마나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것이기에 악한 사울의 살기등등한 마음을 접게 하고, 잠시 동안이라도 아름다운 시와 예언과 찬양의 선율에 빠지게 만들었을까요? 눈부신 햇살 아래, 질투와 교만과 위선의 옷자락을 벗어 던진 채, 갓난아기처럼 순진하게 벌거벗고 누워 있는 사울의 모습이라니요! 아무리 강하게 저항을 해도,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한 성령의 역사를 거스르기에 인간의 힘이 너무나 약하다는 것을 그는 몰랐습니다. 주위에 아무리 악한 조류가 휩쓴다 해도, 그 악한 분위기와 의도를 다 삼켜 버리고도 남을 만큼 순결하고 아름다운 성령의 능력이 우리 속에 가득 차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곁에만 오면, 마음속에 품고 있는 모든 악의에 찬 욕망과 분위기가 눈 녹듯이 사라지고, 기쁨과 행복으로 노래하게 만드는 신비한 성령의 힘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우리 때문에 이 세상이 아름답고 순결한 분위기로 바뀔 수 있다면&. 악한 사울도 감동시켜 어린아이로 만들었던 성령의 사랑의 능력이&. 아직 연결되어 있다면 쓰러진 나무에서 피어난, 흰 눈송이처럼 나무를 뒤덮은 흰 꽃더미들을 보며 생각에 잠겨 보았습니다. 뿌리가 거의 땅에서 뽑혀지고 작은 몇가닥의 뿌리만 흙 속에 붙어있는, 가망 없어 보이는 나무에서 저렇게 탐스럽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날 수 있다면, 아니, 쓰러진 나무에서 저렇게 고운 꽃을 피워내실 수 있는 생명의 성령의 능력이라면, 가망 없어 보이는 우리네 삶과 성품에도 성령의 탐스러운 꽃과 열매를 피워 내실 수 있지 않을까하고&. 아직 가느다란 뿌리라도 하늘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다면, 아직 한 가닥 주님을 잡고 있는 손을 늦추지만 않는다면&. 유난히 큰 꽃송이들을 피워 낸 쓰러진 나무를 보며 기도해 보았습니다. 쓰러진 경험을 하고 난 후에 더 탐스럽고 아름다운 꽃송들이 맺혔듯이, 삶에서 겪은 실망과 시련과 아픔 때문에 생애의 열매들이 더 탐스럽고 아름다워지기를&. 골짜기의 마른 뼈처럼 생기가 마른 채, 영적 힘줄과 살도 없이 말라 비틀어져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일지 모릅니다. 영적 생기가 빠진, 경건의 능력을 행사할 영적 힘줄이 전혀 없이, 생동력 있는 신앙생활을 유지할 영적 살이 하나도 없이 마른 뼈처럼 주저앉아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겔 37:4~6). 마른 뼈에 살이 붙게 하는 성령의 능력, 다윗을 죽이러 갔던 사울의 살의와 악의를 순식간에 변하게 했던 성령의 놀라운 능력을 당신은 믿으십니까? 쓰러진 나무에 꽃이 피었습니다. 어느 나무의 꽃보다 훨씬 더 큰 꽃이&. 우리의 메마른 심령에도 꽃이 필 수 있습니다. 아직 말할 수 없는 염원으로 간절하게 예수님을 붙잡고 있다면&. 아직 아주 작은 몇 가닥의 뿌리라도 하늘의 생명에 붙어 있다면&. 뒷뜰의 쓰러진 나무는 아직도 하얀 꽃의 왕관을 두른 채 여왕처럼 누워 있습니다. 생애의 빛에서 십사만 사천이라는 단어는 그 말만 들어도 이단처럼 들리는 용어입니다. 이 문제는 광신적인 그룹과 교회들이나 떠들어대는 주제처럼 생각되기가 일수인 것이 현재 기독교계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의 각도를 좀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십시다. 만일 14만 4천의 이슈가 정말로 중요한 이슈라면 사단은 그것을 공격하여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 문제를 마치 극단적이며 이상한 가르침인 것처럼 생각하도록 계략을 꾸미려고 총력을 기울이지 않겠습니까? 14만 4천 문제는 성경 요한계시록에서 대단히 중요한 가르침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입니다. 그들이 어떠한 경험을 하는 자들인지, 마지막 시대의 환난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인지, 하나님의 인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심도 있게 강조하고 있는 문제이지요. 이 문제는, 그들이 누구인가보다는, 그들이 어떠한 성격의 사람들이며 어떠한 특징을 가진 자들인가라는 사실에 훨씬 더 중요한 초점을 두고 있는 문제입니다. 이들은 분명히 이 지구상 마지막 시대에 존재하는 자들이며, 그들은 이 지구의 죄의 역사 가운데서 가장 강력하고도 분명한 하나님의 증인들이 될 자들입니다. 그들은 환난을 통과하며 승리하여 나오는 자들일 것이며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일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성경을 그저 부분적으로만 이해하면서 안주하려고 하는 위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무엇인지를 유심히 살피고 나서 그 뜻대로 따라가며 더 밝은 빛 가운데 살아야겠다는 열정들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 역사는 오래 가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아예 성경의 예언 자체가 잘못된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번 호를 통하여 14만 4천인들의 성격과 그들이 이루어야 할 사명, 또한 그들이 일어나는 시기 등등에 관한 중요한 자료들을 발견하게 되실 것입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가정과 영성: 만일 루터가 한국에 태어난다면…. 만일 루터가 한국에 태어난다면 만일 마틴 루터가 한국에 태어난다면 그의 개혁은 성공할까? 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떤 답변을 하겠는가? 루터는 한국에서 태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한국에는 루터와 같은 사람이 태어나도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루터를 필요로 하지 않는 나라에 루터가 태어나도록 섭리하시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계에 루터가 나타난다고 해도 그는 아무런 개혁도 성취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루터는 16세기에 유럽에 필요했던 인물이다.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전 유럽에 갖추어져 있었다. 그래서 루터라는 위대한 인물이 독일 튀링겐에서 태어난 것이다. 루터를 맞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단순한 신학자나 철학자가 아니다. 루터는 양심의 사람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기 위해서 고뇌하였던 사람이었다. 그러한 고뇌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루터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루터를 맞이하기 위해서 유럽은 성경이 예언한 천 년 이상의 종교 암흑시대 동안 양심의 고투를 벌였다. 루터 이전에도 진리의 등대지기들이 있었지만 개혁의 등불을 높이 든 것은 루터였다. 루터가 개혁한 것은 단순히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신앙적 양심 문제였다. 유럽인들이 루터를 위대한 개혁자로 맞이한 것은 그들 자신의 영혼 깊은 곳에 수백 년 동안에 걸친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 사회에는 그러한 고뇌가 없다. 사람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을까? 라는 영혼의 절규가 한국의 교회 안에서 들려오지 않는다. 한국 교회에게 있어서 이것은 상관없는 문제이다. 교인들의 숫자에 관심이 있고, 교인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방법의 예배와 찬양이 난무하며, 날 선 말씀으로 양심을 쪼개고 찌르는 설교들이 주목을 끌지 못하는 교회 속에서 루터가 태어날 수 없다. 한국의 크리스천들에게는 16세기 유럽인들이 가졌던 것과 같은 심령의 절규와 요구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루터와 같은 개혁자를 한국에서 일으키실 수 없는 것이다. 먹고사는 육의 문제에 사로잡혔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에 혼을 빼앗김으로써 하늘이 인정하는 의를 이 땅에 세우는 문제를 완전히 잊고 살아가고 있는 한국 교회들에서 루터의 설교와 개혁은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실패로 끝나게 될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세상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교인들에게 인기를 얻고 권위를 세울 수 있을까라는 문제들에 한국 크리스천들이 몰입되어 있기 때문에 이 땅에 루터가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루터는 그러한 문제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루터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모든 관심은 하나님과 인간에 관한 문제에 있었다. 만일 루터가 한국에 와서 그의 개혁 사업을 시작한다고 할지라도 한국 교회와 지도자들은 루터의 설교와 개혁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그를 핍박하게 될 것이다. 개혁을 위한 루터의 요구는 한국 교회 안에서는 철저하게 무시당할 것이다. 루터는 한국 교회들이 원하는 개혁자가 아니다. 만약 루터가 한국에 태어난다고 할지라도 그는 시골의 조그만 교회에서 소수의 양들을 돌보면서 인생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95개 조의 개혁안을 교회에 제출하지도 않을 것이고, 교회에서 보낸 파문 통보서를 소각할 필요도 없을 것이며, 라이프찌히의 대토론과 같은 투쟁도 없이 조용히 살다가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에게 그러한 생을 허락지 않으신다. 루터는 싸우기 위해서 태어난 자이다. 그러므로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결코 태어날 수 없다. 그는 16세기에 가난한 광부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의를 갈구하는 영혼을 부둥켜안고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전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애를 불태운 사람이다. 한국 기독교회는 이러한 개혁자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한국 교회의 설교하는 사람들과 가르치는 자들이 맑은 양심과 성결한 생애를 잃어버리면서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에서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하나님의 은사가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들이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믿음이 순종을 열매로 맺지 못하게 되자 교회는 세상과 같아지게 되었다. 희생은 그리스도 혼자서 치르시고 나는 편안히 앉아서 주어진 구원을 받겠다는 식의 생각들이 한국 교회를 채우고 있다. 의를 사모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너무나 적기 때문에 한국 교회 안에서 루터가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루터가 라오디게아 교회에 태어난다면&. 마지막 시대에 루터가 태어난다면 그는 틀림없이 엘리야의 정신을 가지고 태어나게 된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말 4:5). 중세기에는 독일인 루터가 나타나서 교황권의 오류와 부패를 지적하는 개혁의 기별을 전했지만, 말세에는 엘리야의 정신을 가진 루터들이 나타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개혁의 기별을 전할 것이다. 엘리야는 갈멜산의 투쟁에서 무엇이라고 하였는가?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왕상 18:21). 이것이 말세에 나타나는 루터들이 전하게 될 기별이다. 만약 루터가 이 시대에 태어나서 이러한 기별을 전하면 그는 교회 안에서 외톨이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 시대의 엘리야의 경험도 그러했기 때문이다.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인이로다 (왕상 18:22). 엘리야의 정신을 갖고 설교를 하고 복음을 전하면 구약 시대의 엘리야가 그러했던 것처럼 교회 안에서 홀로 남게 된다. 엘리야가 홀로 갈멜산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섰었던 것처럼 마지막 시대의 루터도 홀로 라오디게아 교회를 상대로 투쟁하게 될 것이다.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 한 이 시대의 교회에서 루터는 외톨이가 될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계 3:13~15). 엘리야가 전했던 기별은 번영을 위한 기별이 아니라 책망과 경고의 기별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땅에 삼 년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기별이었다. 온 이스라엘로부터 미움과 반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기별이었다. 마지막 시대의 개혁자들도 듣기 좋은 설교를 하지 않을 것이다. 경고와 책망의 기별을 전할 것이다. 교회는 한목소리로 나를 거절하지만 너희는 그 쪽에 서라. 나는 이 쪽에 서리라. 는 것이 마지막 시대의 루터들이 전할 기별이 될 것이다. 마지막 시대의 루터는 교회를 향하여 어떤 설교를 하게 될까? 틀림없이 그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다음과 같은 설교를 하게 될 것이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 3:17-19). 루터는 교회의 곤고한 형편을 지적할 것이다. 영적으로 눈멀고 가난하며 벌거벗고 있는 처지를 있는 그대로 지적하면서 참된 회개를 촉구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나는 부자라 부족한 것이 없다 고 대답할 것이다. 예수께서 문밖에 서서 아무리 두드리실지라도 오직 라오디게아 교회 중에 귀있는 자들만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에 반응하게 될 것이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계 3:20-22).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시대에 나타날 루터들이 전파할 복음과 그들을 핍박하는 사단의 공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계 12:17-13). 말세에 루터가 전하는 기별의 핵심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 는 말씀으로 압축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시대에 루터들의 기별을 통해서 백성들을 모으시는 동안, 사단은 이적과 기적 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미혹한다. 요한계시록 13장의 짐승의 표가 내려지는 장면에서 사단은 온 세상 사람들을 기만하는 방법으로 이적과 기적을 사용할 것이 나타나 있다.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계 13:13,14). 이러한 사단의 기만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는 아마겟돈 전쟁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더러운 세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계 16:13,14). 사단은 세상 끝에 있을 최후의 영적 전쟁에서 이적과 기적을 사용할 것이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계명과 믿음 으로 인도할 때 그것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느낌과 감정에 의존하는 신앙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적 신앙을 가진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의 계명과 원칙에는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지금 이 시대는 마지막 시대의 루터들이 나타나는 시대이다. 교회는 그들을 핍박하고 외면할 것이지만 들을 귀가 있는 자들은 엘리야의 정신으로 전하는 복음과 기별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지금은 엘리야의 정신으로 일하는 자들과 바알의 제사장들이 투쟁하는 시기이다. 더 이상 중간에서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이제 예수께서 오실 시간이 매우 다가왔기 때문이다. 건강: 목숨 걸고 운동해야 하는 이유 운동은 인체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운동으로 일주일에 500칼로리 정도를 소모하는 수준으로 운동해도 사망률이 감소하는 유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유익은 운동으로 일주일에 3,500칼로리 이상을 소모하는 것이다. 또한, 일주일에 750칼로리가 운동으로 소모되는 경우도 좋은 효과를 얻는다. 운동 프로그램을 짜는 데 도움이 되도록 150칼로리를 소모시키는 운동들이 다음에 나열되어 있다. 지구력 강화가 심혈 관계에 주는 유익 운동이 당뇨병과 고혈압 환자들에게 유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운동은 또한 에너지를 높이고 면역 체계를 강화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다음의 도표에서 나열한 대로 지구력 운동으로 더 큰 효과가 나타난다. 지구력 강화 운동의 다른 유익들 영양과 운동은 훌륭하게 보완 작용을 한다. 영양은 단독으로보다 운동과 함께 더욱 많은 유익을 가져다준다. 심장 질환, 암, 당뇨병과 같은 질병의 경우 이것은 사실이다. 그뿐 아니라 이것은 삶의 질에 대한 부분에서도 사실이다. 운동선수들은 지구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운동과 함께 채식을 통하여 영양을 섭취해야 한다는 운동 과학 보고서는 운동과 영양의 긴밀한 관계를 잘 나타내 준다. 운동은 삶의 질에 대한 효과 중 정신적 활동 분야에도 유익을 준다. 예를 들어 30대 중반 사람들과 심지어 노인성 치매 증상이 없는 80대 노인들까지도 9주에서 10주 동안의 유산소 운동 프로그램을 실천한 후에 기억력이 상당히 좋아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실제로 노령에도 운동량을 늘릴수록 정신적 기능이 점진적으로 향상된다. 한 연구 기사에는 활동 수준과 인지(정신) 능력 사이에는 정비례 관계가 있다. 라는 내용이 실렸다. 국립 정신 건강 연구소에 의해서 소집된 연구진들은 운동에서 얻는 또 다른 중요한 삶의 질을 다음과 같이 규명했다. 운동은 삶의 질을 향상시킴 건강 전문가들이 환자들에게 운동하도록 유발하기 위하여 수년간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 예방에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음에도 그것은 운동을 장려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다. 삶의 질의 다양한 면을 향상시키는 것이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큰 이유이다. 1990년에 Runner s World라는 잡지에서 구독자 700명을 대상으로 운동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문 조사를 하였다. 운동을 하는 가장 많은 이유는 삶의 질과 관련된 것이었다. 심장병과 같은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운동하는 경우는 42%에 그쳤고 나머지는 모두 삶의 질을 높이려고 운동을 하였다. 삶의 질에 운동이 미치는 영향을 알아내기 위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하버드 대학의 연구진은 최근에 운동이 성인 당뇨병 유발 위험률을 감소시킨다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일주일에 한 번만 운동을 해도 당뇨병의 위험성을 29% 감소시킨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규칙적인 운동이 청력 상실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오하이오 주의 마이애미 대학의 헬라니 알레시오 박사와 동료들은 28명의 사람들을 비교적 큰 소음에 노출시켰다.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사람들은 운동으로 말미암아 산소가 풍부한 혈액이 귀에 있는 미세한 혈관을 통하여 순환이 잘 되었기 때문에 청력이 잘 유지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미국의 질병 관리 센터와 스포츠 의학회에서는 운동의 광범위한 유익을 얻기 위한 이상적인 운동 계획표를 제시했다. 종전에는 일주일에 3일씩 운동을 하면 충분하다고 하였지만, 이 계획표에서는 일주일에 7일, 매일 30분 이상 적당한 강도의 신체적 활동을 해야 한다. 고 제시하였다. 운동을 하면 면역 시스템에 중요한 향상을 가져온다. 운동은 폐, 대장, 자궁, 난소, 질 그리고 자궁 경부암과 같은 파괴적인 암에 특별한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일반적인 암의 위험도 감소시킨다. 운동은 면역계를 광범위하게 자극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다수의 자연 면역 살상 세포들과 화학 물질들이 운동에 의해서 증가된다. 암을 예방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운동을 해야 하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꾸준히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중년기 이상의 나이 든 사람들과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은 운동하기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유는 심장마비 유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양의 운동을 하지 않으면 굳이 의사와 상담할 필요는 없다. 지구력 운동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진찰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지구력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진찰받아야 할 사람들 많은 사람이 과도한 피로보다 운동 부족으로 죽어 가고 있다. 훨씬 많은 사람이 닳아 없어지기보다 녹슬어 없어지고 있다. 야외에서 적당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활발하고 좋은 혈액 순환을 하게 될 것이다. 자유롭게 하늘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서 걷거나 꽃과 작은 열매들 그리고 채소를 가꾸는 아침 운동은 건강한 혈액 순환을 위해 매우 필요하다. 이는 감기와 기침 그리고 뇌일혈과 폐울혈, 간, 신장, 폐의 염증과 기타 수많은 질병을 방지하는 가장 확실한 예방책이다. 적당한 운동이 명백히 면역계에 유익하다고 할지라도 과도한 운동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완전히 탈진되기까지의 운동은 면역력을 감소시킴으로써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창조 교실: 성경과 과학 북편 하늘의 거대한 허공 우리 태양계가 속해 있는 은하계의 지름은 약 10만 광년, 두께는 15,000광년이 된다. 그러나 은하의 헤일로(halo)까지 따지면 20만 광년이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 이웃 은하계인 안드로메다의 지름은 약 40만 광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 은하에는 약 천억 개가 넘는 태양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억이라면 얼마나 많은 걸까? 만약 1초에 하나씩 세어서 천억을 세자면 무려 3,170년 이상이 걸린다. 981년 10월 미국 과학회에서 발간되는 Chemical and Engineering N-ews에서 북극성 주위에 약 2000여 개의 은하수가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거대한 공간이 있다는 것을 발표했다. 즉 아무 별이나 은하계가 없는 텅빈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은 기원전 1500년 전에 이미 그 사실을 말했다는 것이다.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욥 26:7). 지구의 보호막 오존층 오존층은 지구로부터 약 25km~30km 상공에 위치해 있다. 오존층이 하는 역할은 태양으로부터 날아오는 모든 해로운 광선을 차단해 주는 것이다. 오존층은 피부암과 조기 노화, 면역성 약화 등 각종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준다. 과학자들은 1902년에 들어서야 비로소 지상에서 약 30km 지점에 오존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성경은 기원전 1055년 경에 이미 그 사실을 말했다. "그가 하늘을 차일(遮日)같이 펴셨으며 거할 천막같이 베푸셨고" (사 40:22, BC 700).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주께서&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며" (시 19:4, 104:2, BC 1055). 나누어진 대륙 우리가 잘 알듯이 지구는 5대양 6대주로 나뉘어 있다. 물론 남극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지구의 대륙은 원래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독일의 지질학자였던 웨게너(Wegener)는 1914년 대륙이동설을 발표한다. 그 전의 사람들은 대륙이 원래부터 여섯 개로 나뉘어져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경은 기원전 1500년 경에 이미 그 사실을 말씀하였다. "그가 땅을 움직여 그 자리에서 미신즉 그 기둥이 흔들리며(he shakes the "earth" from&)" (욥 9:6). "주께서 땅을 진동시키사 갈라지게 하셨사오니 그 틈을 기우소서 땅이 요동함이니이다." (시 60:2, BC 1055). "그 지식으로 해양이 갈라지게 하셨으니" (잠 3:20, BC 700). 공기에도 무게가 있다 대기권을 채우고 있는 공기에도 무게가 있다는 것을 아는가? 다만 우리가 그 압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우리 몸 안의 기압때문에 그렇다. 갈릴레오의 제자였던 에반젤리스타 토리첼리는 1644년 실험을 통해 공기에도 무게가 있음을 증명하였다. 성경은 기원전 1500년 경에 이미 그 사실을 말하였다. "바람의 경중(무게)을 정하시며" (욥 28:25). 만유인력의 법칙 만유는 서로 밀어 주고 잡아당겨 주면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만일 태양이 지구를 놓아 버린다면, 지구가 그 중력을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아수라장이 되고 말 것이다. 모든 물질에는 잡아당기는 힘이 있어서 그것으로 인해 서로를 지탱해 주고 있다. 뉴턴에 의해 만유인력의 법칙이 증명된 것은 1666년경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AD 62년경에 그 사실을 말하였다.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섰느니라(by him all things consist - 다른 번역엔 "서로 잡아 준다"로 나옴)" (골 1:17).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up-holding all things - 서로 지탱해 주고 있다는 뜻)" (히 1:3). 인간의 과학이 발전할수록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임이 증명된다. 우리는 이 놀라운 과학을 하늘에 가서 창조주로부터 계속 배우게 될 것이다. 창조 교실: 민들레의 여행 봄이면 들판에 노란 민들레가 피어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그런데 조금 있다 보면 민들레가 하얀 솜털을 날리며 씨를 퍼뜨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민들레뿐만 아니라 모든 식물은 자손을 번식시켜야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지요. 그래서 화려하고 예쁜 꽃을 피우거나, 혹은 식물에 따라 곤충들이 좋아하는 냄새로 곤충들의 힘을, 또 바람의 힘을 빌어 수정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종자를 만들어 자손을 번식시킬 목적 때문에 그렇게 하지요. 민들레는 약 10여 cm의 꽃대를 높이 세워 곤충이나 바람의 힘으로 수정되게 합니다. 그런데 수정이 되면 꽃대를 땅바닥 가까이 바짝 숙인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1차적으로 수정이라는 임무를 완수했다는 신호인 동시에, 곤충들이 수정이 안 된 다른 꽃들을 빨리 찾아가도록 머리를 숙여 다른 민들레 꽃들이 수정하도록 돕는 행위입니다. 또 자신도 꽃대를 세워 불필요한 양분을 소모하느니 그 에너지를 열매에 쏟아 넣겠다는 지혜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흘러 열매가 성숙하게 되면, 이번에는 꽃대의 높이를 훨씬 더 높이 올립니다. 약 2배가 넘는 크기로. 민들레의 종자는 방사형으로 많이 달리는데, 색깔은 갈색이고, 모양은 편평하며, 양끝이 뾰족한 원기둥 부리처럼 생겼고, 그 부리처럼 생긴 종자의 끝에 하얀 털과 같은 관모가 달립니다. 그런 후 종자가 하나씩 떨어져 나가 바람 따라 날아갈 준비를 한답니다. 솜털 같은 하얀 관모가 붙어 있기 때문에 상처를 입지 않고 어디에나 사뿐히 내려앉을 수 있고, 설령 나뭇가지에 걸린다 해도 바람이 불면 다시 날아가 먼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날아가다가 짐승의 털에 붙을 수도, 또 지나는 행인들의 옷에 붙어 생각지도 않은 곳에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민들레의 씨는 설령 자리를 못 잡아도 쉽게 썩지 않으며, 또 장마나 폭우로 흙 속에 묻힌다 해도 몇 년을 기다려서라도 햇볕만 만나게 되면 순식간에 눈을 틔워 잎을 내고 꽃을 피워 다시 임무 수행에 들어간답니다. 이 땅속에는 그렇게 묻혀서 햇볕을 기다리는 종자들이 무수히 많답니다. 그래서 땅속을 Seed Bank(종자 은행)라고도 하지요. 긴 여행 끝에 꽃을 피우는 민들레를 보면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이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잘 견뎌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싶지 않으신가요? 병아리처럼 고운 노란 색깔의 민들레를 보며 참 신기한 창조주 하나님의 솜씨에 다시 한 번 감탄해 봅니다. 신앙: 1부 - 십사만 사천은 누구인가? 십사만 사천은 마지막 시대에 이루어야 할 중대한 사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매우 특별한 무리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십사만 사천에 대한 연구는 기독교계에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며, 이 주제에 대하여 언급하기만 하면 이단이나 광신으로 취급받는 이상한 조류가 기독교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십사만 사천의 주제 속에는 매우 귀중한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가 독자들의 신앙에 큰 유익을 주게 되기를 바랍니다. - 편집실 - 십사만 사천은 누구인가? 도대체 그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 흥미로운 주제는 오랫동안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질문과 호기심을 유발하는 주제가 되어 왔다. 그러나 이 중요한 주제에 대한 연구는 별 진전이 없이 봉함된 채 현재까지 이르고 있고, 주의를 끌 만한 정확한 연구의 부재로 인해 이 의미심장한 주제로부터 배울 수 있는 중요한 진리가 간과된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제는 땅에 묻힌 진리인 십사만 사천에 대하여, 그리고 이 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영적 교훈을 위하여, 이 주제를 연구해 보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왜냐하면, 주님의 재림과 마지막 때가 가깝기 때문이다. 십사만 사천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그들의 사명은 무엇인가? 함께 연구해 보자. 십사만 사천"마지막 세대 " 십사만 사천 인에 대한 언급은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 나온다.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계 7:1~4).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계 14:1).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 14:3). 이 성경 절들을 읽어 보면 십사만 사천은 마지막 때와 관련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십사만 사천은 사방의 바람이 놓이기 전, 즉 마지막 심판의 바람이 불려고 하는 시점에 등장하며,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치는 시점, 그리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이 오기 직전에 등장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계시록 14장 1절에 나오는 구원을 받아 하늘로 승천하여 시온산에 서서 구속의 노래를 부르는 십사만 사천은, 그 전 장인 13장에 언급된 짐승의 표 환난을 이기고 승리하여 구원을 받는 마지막 세대인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심판과 재림과 구속은 모두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때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십사만 사천은 마지막에 일어나는 마지막 세대(last generation)인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세대라는 말은 성경에 나오는 남은 무리 와 연관이 있다. 남은 무리 는 영어로 remnant 인데, 이 단어의 뜻은, 천의 남은 자투리 , 곧 마지막 남은 천 이라는 의미가 있다. 성경은 이 세상 마지막 시대에 생겨날 하나님의 남은 무리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닷모래 위에 섰더라 (계 12:17). 그런데 그 남은 무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마지막까지 견디는 믿음을 가진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 14:12). 십사만 사천은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한 무리의 사람들, 즉 하나님의 남은 무리인 참 백성을 말한다. 십사만 사천"인을 받은 사람들 "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계 7:2~4).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계 14:1). 계시록 7장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 을 가지고 올라오는 천사가 사방 바람을 잡고 있는 네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천사는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바람을 놓지 말라고 외치고 있는데, 인맞은 자들의 수가 십사만 사천인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계시록 14장 1절에는 구원받은 십사만 사천이 시온산에 서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들의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십사만 사천은 하나님의 인을 맞은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사람들인 십사만 사천이 이마에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인은 무엇인가 잠깐 살펴보자. 인 이란 영어로 seal 이다. 고대에는 여러 가지 중요한 문서들이나 자신의 소유에 봉인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것을 가리켜 인(seal) 이라고 불렀다. 고대에는 인 을 도장으로 사용했는데, 도장에는 주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인이 쳐지면 그것은 그 인을 친 사람의 소유라는 것이 인정되었다. 하나님의 인이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물이라는 표로서,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정신을 가진 사람들, 즉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의 성품으로 온전히 변화한 사람들의 이마에 쳐지는 하나님의 인정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은 하나님의 성품과 정신이 그대로 표현된 하나님의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받게 되며, 사단의 모든 시험과 마지막 환난의 시련들을 통과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긴 마지막 백성들이 받게 되는 표이다. 출애굽기 33장 18, 19절과 34장 5, 6, 7절을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하자,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선포하시면서, 당신의 성품을 말씀해 주시는 장면을 발견하게 된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곧 하나님의 성품을 말하는 동일어이다. 재림 직전에 사는 구원받을 그리스도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는데, 이것을 하나님의 이름이 이마에 기록된 것으로 계시록 14장 1절은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하나님을 닮은 품성을 소유한 자들 위에 쳐지는 특별한 인이며, 또한 어린양의 이름이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셨을 때에 아버지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신 거룩한 성품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그리스도인이 회개하고 거듭날 때에 받는 성령의 인과는 다르다. 에베소서 1장 13절에 설명된 성령의 인은 구원 얻을 자들이 모두 다 받아야 할 인으로서 성령의 거듭남을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계시록 7장이 말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성격이 좀 다르다. 그것은 사방 바람이 놓이기 직전에 쳐지는 것으로 마지막 환난이 닥쳐오는 세상 종말에 사는 자들이 받게 되는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이란, 회개하여 성령의 인을 받고 나서 계속하여 매일 자아가 죽고 성령을 통하여 예수께서 마음에 내재하시는 경험을 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나 열매를 맺은 성도들에게 쳐지는 것이다. 구원 얻는 모든 성도들은 다 성령의 인침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 사는 마지막 성도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다. 모든 죄를 극복하고 마지막에 늦은 비 성령을 받아 바벨론을 향하여 큰 소리 외침을 할 준비를 갖춘 자들 위에만 쳐지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계명을 지키는 경험을 하는 자들이다. 십사만 사천은 그들의 마음과 정신에 하나님의 계명이 기록되는 경험, 새 언약의 경험을 한 사람으로 죄를 승리하는 사람들이며, 그리하여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는 것이다. 십사만 사천"짐승의 표를 이긴 사람들 "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계 15:1~3). 십사만 사천 인은 짐승의 우상과 짐승의 표를 이긴 사람들이다. 요한계시록 14장에 나오는 시온산에 어린양과 함께 서 있는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가진 사람들과 15장 1~3절에 불이 섞인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무리는 같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특히 15장에는 세상에 내릴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고, 또한 하나님의 진노가 마친 후에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묘사된 것을 보면, 이 사람들이 마지막 시대에 구원함을 받을 사람들인 것이 틀림이 없으며, 이 마지막 시대에 구원을 얻는 사람들은 짐승의 우상과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승리한, 곧 짐승의 표 환난을 견디고 승리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앙: 2부 - 십사만 사천의 특징 구원받은 십사만 사천이 시온산에서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는 요한계시록 14장에는 십사만 사천 인의 특징이 언급되어 있다. 마지막에 하나님의 증인이 되어 하나님을 변호하고, 생명을 불사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위하여 충성할 십사만 사천은 매우 독특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함께 연구해 보자.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계 14:1~5). 특징 1.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함 십사만 사천 인의 특징을 살펴보면, 제일 먼저 그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 한 사람들이라고 나온다. 구약 성경에서 행음 이나 음행 이라는 단어는 이교의 우상 숭배와 관련이 있는 표현들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않았다. 는 것은 이교의 가르침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진리를 그대로 지키고 믿는 것을 말한다. 요한계시록에는 두 종류의 여자가 등장하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참 교회를 상징하는 정결한 여자 이고, 다른 하나는 바벨론 교회들을 상징하는 음녀 이다. 요한계시록 17장에는 바벨론을 음녀 라고 표현하였다.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계 17:5) 음녀 의 성서적인 정확한 개념을 이해하려면 그 반대의 의미가 있는 정결한 처녀 (여자)에 대하여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성경에서 여자 또는 정결한 처녀는 하나님의 진리를 가진 참 교회를 상징한다.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라 (고후 11:2). 그러므로 정결한 처녀 (참 교회)와 반대 의미가 있는 음녀 는 거짓 가르침과 거짓 교리를 가지고 있는 바벨론 교회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십사만 사천의 특징인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 했다는 구절에서 더럽히다. 라는 표현을 쓴 것을 보아 이 여자는 정결한 여자가 아닌 음녀인 것을 알 수 있다. 음녀는 간음을 하는 창녀를 말하는 단어이다. 영적으로 오류와 간음을 범하는 교회를 음녀라고 성경은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사만 사천은 음행을 범하는 바벨론 교회와 완전히 대조되는 마지막 시대의 참 백성, 참 교회로서, 그들은 음녀(바벨론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들에 의하여 더럽혀지지 않았으며 순결한 진리를 끝까지 따라가는 사람들이다. 즉, 음녀의 취하게 하는 포도주에 취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계 14:8). 현재 기독교에는 성경의 순수한 복음과 진리에서 변질된 오류의 가르침들이 성행하고 있다. 마지막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편에서 진리를 위하여 충성할 사람들은 변질되지 않은 복음, 바벨론의 포도주에 취하지 않은 순수한 복음과 가르침을 깨달은 사람들인데, 이것이 십사만 사천의 첫 번째 특징이다. 특징 2.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 14:3)는 구절은 참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의미심장한 교훈을 던져 준다. 여기에는 십사만 사천 밖에는 부를 수 없는 노래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는데, 왜 십사만 사천 외에는 이 노래를 능히 부를 사람이 없는 것일까? 그리고 그 의미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 노래는 바로 십사만 사천 인 각 개인들이 겪은 경험에서 나온 노래이며, 그것을 체험한 사람 외에는 부를 수 없는 경험의 노래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다면, 그 경험이란 무엇인가?그것은 바로 어린양 되신 예수께서 그들을 인도하시는 과정에서 겪은 경험들이다. 십사만 사천은 어린양이신 예수께서 그들을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순종하고 따라가는 사람이다.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간다는 말의 뜻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곳이면 어느 곳이라도 순종하며 따라간다는 말인데, 예수님께서 가신 길, 예수님께서 당하셨던 경험을 그대로 하며 따라가는 것을 말한다.그것은 주님을 따르는 데 걸림돌이 되는 모든 것을 버리는 일, 주님을 따르는 길에 닥쳐오는 고난과 시련과 역경을 견디는 일, 또한 주님을 따르기 위해, 진리를 위해 그리고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 자아를 포기하는 일과 세상의 우상들을 포기하는 일, 그리고 세상의 쾌락이나 재물이나 명예를 포기하는 일들을 포함하고 있다. 십사만 사천은 무엇이든지 주님의 뜻이면 순종하고 따라간다. 그렇게 주님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그들은 고난을 견디며 극기와 인내를 배우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꼴 지우시고자 하는 대로 꼴 지워진다.그리하여 그 모든 과정을 견디며 그들은 그들만의 경험의 노래를 배우는 것이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고, 또 부를 수도 없는 경험의 노래를&.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훈련하시기 위하여 한 계단씩 계속해서 인도하신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여러 가지 점들을 제시하신다.어떤 사람들은 한 가지 점은 견디지만, 다음 것에는 넘어진다. 걸어나가는 모든 지점에서 마음은 시험을 받고 점점 더 철저하게 연단을 받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한 가지 점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시험하시는 다른 점을 제시하시면, 그들은 뒤로 물러서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 마음속에 있는 어떤 우상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며 그 우상을 포기해야만 주님을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들은 그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내쫓는 그 무엇이 있는지를 볼 기회를 얻게 된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주님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있다. 주님의 진리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무엇이 있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예수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우상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따르고자 모든 것을 희생하는지를 드러내기 위하여 일정 기간 동안 시험을 받게 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진리를 순종함으로 순결해지지 않고 이기심과 교만과 악한 정욕을 극복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 사람은 그들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홀로 있게 버려두라. 는 하나님의 선고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과정을 통과하고 모든 시험을 견디고 이긴 사람들은, 어떠한 대가도 감수하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을 받고 승천하기에 합당한 자들이 될 것인데, 이런 사람들이 바로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라가는 자들이며 자신들만의 경험의 노래를 가진 사람들이다. 특징 3. 처음 익은 첫 열매 성경은 십사만 사천 인을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 라고 말하고 있다. 십사만 사천은 마지막 시대에 구원 얻을 자들을 표상하는 첫 열매들이며,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 이다. 첫 열매라는 단어는 대부분 그리스도인에게 그렇게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첫 열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절기에 나오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함께 공부하여 보자. 너는 매년 삼 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너는 내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내 절기 희생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지니라.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출 23:14~19). 위의 성경 구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 가지 흥미 있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있는 모든 남자라면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지키라고 명령하신 삼대 절기에는 꼭 첫 열매를 드리는 의식이 선재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무교절과 오순절과 장막절은 보리와 밀과 나무 열매들을 추수하는 계절에 들어 있는데, 그 각각의 절기들에서 첫 열매를 드리는 일이 선재하지 않고서는 추수가 시작될 수 없다는 사실을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까? 첫 열매가 먼저 준비되지 않고서는 추수를 시작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첫 열매는 밭에서 제일 먼저 익고 가장 좋은 극상품이어야 한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추수하시기 위하여 항상 그 세대 세대마다 첫 열매들을 먼저 준비시키시고, 각 세대마다 첫 열매들이 준비된 이후에 그들을 통하여 세상을 추수하여 오신 사실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보면, 이스라엘은 온 세상의 추수를 대표하는 하나님을 향한 첫 열매였고(렘 2:3 참조), 예수를 믿은 유대인들은 유대 나라에서 거두어지게 될 추수의 첫 열매였으며(롬 11:14~16 참조), 초대 교회는 온 세상의 추수를 위해 드려진 첫 열매였고,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들이었다(약 1:18, 롬 8:22,23 참조).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첫째 부활의 아침에 일어날 모든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이셨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0).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으면 의인들의 부활도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초대 교회는 첫 열매였다. 그들이 먼저 성령을 받고 준비되는 일이 없었더라면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십사만 사천이 첫 열매가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십사만 사천, 즉 마지막 세대가 먼저 준비되어 완전히 영그는 일이 먼저 생기지 않는다면 세상의 마지막 추수가 있을 수가 없다. 제일 먼저 잘 익은 첫 열매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이 있기 전에는 마지막 추수도 시작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이 마지막 시대에도 진리를 통하여 먼저 영글고 성품이 준비되어 인침 받은 남은 자손들이 준비되기 전에는 세상 끝의 추수 사업이 시작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의 첫 열매들을 기다리고 계시는데, 이 첫 열매들은 바로 십사만 사천이다. 그들은 예수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경험을 먼저 하는 자들이다. 첫 열매 되신 예수께서 성령 충만하시어 모든 죄의 유혹에 승리하셨던 것처럼 온전히 죄를 승리하는 경험을 먼저 하는 첫 열매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여자의 남은 무리라고 불리는 것이며, 그래서 그들의 특징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성경은 말하는 것이다. 특징 4.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 입에 흠이 없는 사람은 완전한 성품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말은 그 사람의 생각과 성품을 드러낸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눅 6:45). 성경은 십사만 사천은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 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흠 없는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다. 성경은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잠 29:20),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 (잠 25:28)라고 말한다. 인생의 어려운 일, 괴로운 일, 불쾌한 일들 대부분은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데 원인이 있으며, 그 다스리지 못한 감정으로부터 나오는 말이 화근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혀를 재갈 먹이고 사납고 참지 못하는 말은 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여야 한다. 자기의 입의 말과 혀를 제어하는 사람은 통과하도록 부름을 받은 모든 인내의 시험에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는 자신을 다스리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의 능력으로 생각과 말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킬 수 있다. 참된 신앙은 정서를 의지의 지배 아래 두고 혀를 훈련시킨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있는 것처럼 생활하며, 우리를 상관하시는 분의 눈앞에 모든 생각이 공개되어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셋째 계명인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는 말씀은 모든 의미 없는 빈말과 어귀들에 관련되고 있다. 이것은 사교계와 사업계에서 유행하는 가식적인 인사, 진실을 떠난 속임, 아첨하는 말, 과장, 상업상의 속임수 등을 정죄한다. 이것은 또 자신의 본 모습이 아닌 것을 나타내고자 애쓰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진실하다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한 번의 눈짓, 한마디의 말은 물론 음성의 억양까지도 거짓의 결정적인 방조자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하는 모든 것은 햇빛과 같이 투명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진리이신 분의 인도를 끊임없이 받지 않는 한 진리를 말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희 말은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르게 함같이 하라 (골 4:6).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 4:29). 이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보면, 농담, 실없는 소리, 상스러운 대화 등은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거역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 말씀은 우리의 말이 진실할 뿐만 아니라 순결하기를 요구한다. 그리스도를 배운 사람들은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예하지 말 (엡 5:11)아야 할 것이다. 생활에서와 마찬가지로 말에서도 단순하고 정직하고 참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남은 백성인 십사만 사천은 그 입에 거짓말이 없 는 순결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듯이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다면, 철저한 회심이 없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속에 분명해질 것이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평가하든지 그것이 다시 우리를 평가할 것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둔다면, 우리는 말하는 데 더 조심하게 될 것이며, 우리의 태도는 더 부드럽고 관대해질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그분 자신에게 복종시키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지만, 논쟁의 힘이나 명령의 소리로 순종을 요구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선을 행하시고, 평화와 사랑에 속한 것들을 가르치고 다니셨으며, 투쟁을 불러 일으키지 않으셨고, 개인적인 상처에 분개하지 않으셨으며, 모욕과 거짓 고소와 잔인한 채찍질을 겸손하고 온유한 복종으로 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본이시다. 그분의 생애는 그분의 가르침의 실제적인 예증이었다. 그분의 품성은 선을 행하고 악을 극복하기 위한 살아 있는 모범이었다.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 (약 3:2).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의 말이 알려 주고, 우리의 행동이 나타낼 것이다. 만일, 그것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이라면 세상적인 것이 될 것이고, 그것이 하늘 불멸의 유업에 있는 것이라면 말과 행동은 하늘에 속한 흠 없고 순결한 것이 될 것이다. 마지막 십사만 사천 인에 속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매일 자아에 대하여 죽고, 혀를 굴레 씌우듯이 제어하고, 말을 지배하고, 불평과 비난의 말은 한마디도 입술에서 새어 나오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십사만 사천을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신앙: 3부 - 십사만 사천의 사명 마지막 주자 십사만 사천 1. 우리가 아니면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 11:40 하단). 히브리서 11장은 성경의 믿음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 믿음 장에는 믿음의 조상들의 이름뿐만 아니라 그들의 믿음과 의로운 행실에 대하여 열거하고 있다. 그런데 마지막 절인 40절 하단에는 의미심장한 구절이 등장하는데, 그 구절은 다름 아닌, 우리가 아니면이라는 구절이다. 히브리 11장에는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한 가지 중요한 사상이 있다. 그것은 이 지구 역사 믿음의 싸움에 마지막 주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 믿음으로 모세는 , 믿음으로 노아는 이라고 아무리 믿음의 선조들을 언급해 놓았다 할지라도, 마지막 주자가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이 믿음의 싸움, 즉 선악 간의 쟁투는 의인의 승리로 돌아갈 수 없으며 온전함을 이룰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마지막 세대)가 아니면 저희(믿음의 조상들)가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란 마지막 세대, 즉 이 세상에서 믿음의 완성을 이루어야 할, 마지막 시대에 사는 하나님의 참 백성을 가리키는 데, 그들이 바로 십사만 사천 인이다. 2. 우리가 필요한 이유 하늘에서 시작된 선악 간의 대쟁투는, 인간이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범죄하고 타락함으로 인해 이 지구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시초부터 사단은 하나님의 정부와 법을 비난하며 하나님 정부의 법은 지킬 수 없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을 때, 그 사랑의 십자가는 온 우주에, 하나님에 대한 사단의 고소가 잘못되었다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나타낸 법, 곧 계명의 정당성을 완전히 드러내었다. 그러나 선악의 대쟁투는 아직 끝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 말고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남은 무리가 생겨야 하기 때문이다.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 (계 12:17)이 생겨나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사단의 고소에 대해 하나님의 편에서 하실 수 있는 증명은 다 하신 셈이다. 이제는 인간의 편에서 하나님의 계명은 온전히 지킬 수 있으며, 그것만이 우주의 행복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는 일만이 남아 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법, 곧 계명은 폐할 수 없으며, 그 계명에 합당한 품성을 소유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사람이 필요해지는데, 그 일을 마지막 세대인 우리가 해야 하며, 그래서 우리 가 필요한 것이다. 십사만 사천의 사명 1. 증인으로서의 사명 과연 온 우주에 하나님의 입장을 변호하며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증인들이 나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성경은 마지막 선과 악의 대쟁투에서 하나님의 명예를 걸고 사단과 싸워 마침내 승리할 남은 무리, 즉 하나님의 증인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14:12). 그들은 이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있으며(계7:2~3), 또 이마에 어린양과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 있으며(계14:1),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며,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사람 가운데 구속을 받아 시온산에서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할 사람들(계14:1~5)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십사만 사천의 가장 중대한 사명은 증인으로서의 사명이다. 그들은 우주에 하나님을 변호하는 증인이 되어야 하는 사명이 있다. 그들은 인간의 역사 중 가장 극심한 환난인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 즉 가장 어렵고 견디기 힘든 시험과 시련과 고통을, 그리고 짐승의 표 핍박과 고난을 통과하는 사람들이다. 과거 역사상 인간이 결코 겪어 본 적이 없는 시험과 고난을 통과하면서도 그들은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하며, 죄와 유혹을 이기고 승리한다. 그러므로 십사만 사천 앞에서는 그 아무라도 죄에 대한 변명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들 때문에 사단의 고소는 잠잠해지고, 하나님의 법이 옳았고 공의롭다는 것이 온 우주에 증명되는 것이다. 증인이 없으면 사단이 고소한 하늘에 걸려 있는 소송 사건은 끝날 수 없으며, 하나님의 공의를 증명하는 일이 지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사만 사천의 증인으로서의 역할은 지구의 역사를 마치는 장에 있어서 중차대한 몫을 담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전 어느 세대에도 하지 못한 사명을 우리 세대, 즉 이 마지막 세대가 감당하여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갖게 되는 엄숙한 사명감은 마지막을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분기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2. 큰 소리 외침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1~4). 위의 성경 절은 지구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큰 성령의 운동을 말하고 있다. 계시록 18장의 운동은 지구 역사의 마지막 외침이며, 이 기별로 인하여 온 세상은 구원과 멸망 양자 간에 선택하게 될 것이며, 이것을 위해 준비되고 결정지어지게 될 것이다. 도대체 이 말이 무슨 뜻인가? 계시록 18장에 큰 권세를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 네 번째 천사는 누구이며, 그의 사업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며, 언제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일까? A. 천사는 누구인가? 계시록 18장에 나오는 천사가 큰 권세를 가지고 그의 영광으로 땅을 환하게 하는 사건은 바벨론을 향하여 외치는 큰 소리 외침을 말한다. 계시록 18장 2절의 말씀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천사는 힘센 음성으로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외치고 있다. 그렇다면, 계시록에 등장하는 하늘로부터 오는 기별을 전하는 세 천사는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 실제로 하늘에서 천사들이 우리 눈에 보이게 하나님의 기별을 전달하기 위하여 하늘을 날아 왔다갔다하며 복음을 전해 주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이 세 천사는 진리를 받고,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펼치는 사람들, 즉 하나님의 기별자들을 나타낸다. 이 세 천사는 하나님의 백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자들이다. B. 천사가 될 수 있는 자격 복음을 펼치는 천사가 되려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려면 복음의 의미를 체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복음을 모르거나 스스로 복음을 체험하지 못하고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펼칠 수 있겠는가? 또한, 그냥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온 땅이 영광의 빛으로 환해지도록 능력 있게 복음을 전한다고 성경은 언급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계시록 18장의 넷째 천사의 운동은 마지막 하나님의 백성들이 전하는 복음 사업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다. 로마서 1장 16절은 복음 은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복음의 능력은 그리스도인들을 죄와 바벨론의 습관과 사고방식과 생활에서 구원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이해하고 복음을 체험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천사가 되는 것이다. C. 넷째 천사의 운동 계시록 18장에 나오는 넷째 천사의 운동은 계시록 14장에 나오는 세 천사의 기별을 믿고 체험한 주의 백성들이 마지막 짐승의 표 환난을 통과하면서 늦은 비 성령을 충만히 받아 나아가서 큰 소리 외침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마지막 남은 무리인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 십사만 사천이 세상에 외칠 때 주의 영광으로, 즉 그들 속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과 빛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환하여지는 것이다. 온 땅의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기며 짐승을 따르듯이, 또한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인 십사만 사천을 보면서 온 세상 사람들이 그들에게 주의를 집중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큰 소리 외침을 듣고 무엇이 참된 복음이며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문을 닫으시기 전에 마지막 자비의 경고 기별을 세상에 보내시기 위하여 마지막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용하신다. 넷째 천사의 영광스러운 운동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을 체험한, 곧 셋째 천사의 기별을 경험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을 자기들 속에 이룬 하나님의 종들이 나가서 마지막 경고의 기별을 외치는 운동을 말한다. 첫째 천사의 기별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는 의미는, 우리의 품성에서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또한, 셋째 천사의 기별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품성을 이룬 사람들이 죄를 승리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하나님께만 충성하게 된다는 기별인데, 이 세 천사의 기별을 이해하고 체험한 사람들이 나아가서 세상을 향해 크게 외치는 것이 넷째 천사의 운동이다. 이렇게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들이 성령의 큰 능력을 힘입어 큰 소리 외침을 하게 될 때, 준비된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게 되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환난의 시기를 잘 통과할 수 있도록 활력을 주고 준비시키게 될 것이다. 그때에 온 세상은 그들이 전하는 마지막 능력 있는 기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으로 환해질 것이다. 3. 바벨론의 정체를 폭로함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무엇에 대하여 큰소리 외침을 하는 것인가? 계시록 18장 2절부터 4절까지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그들이 어떤 내용의 큰 소리 외침을 하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벨론이 무너졌으니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외침이다. 그런데 그뿐 아니라 큰 소리 외침을 하는 사람들은 바벨론의 죄악상에 대하여 폭로한다고 성경은 말한다. 곧, 큰 성 바벨론이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다. 고 외치는 것이다. 현재 기독교에서는 성경이 말하는 참된 복음으로부터 변질된 거짓 복음이 가르쳐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진정한 복음을 이해하고 체험하여 변화되어야 할 사람들이 값싼 은혜의 가르침과 거짓 평안 속에서 영적으로 잠자고 있는 현실이다. 기독교에 성행하는 거짓 가르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위하여 준비되지 못하고 있으며, 곧 도래하는 천국에서 살 수 있는 성품으로 변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바벨 은 혼잡 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바벨론이 무너졌다는 것은, 성경이 말하고 가르치는 하나님의 복음과 하나님의 법을 변개하고 바꾼 교황권의 잘못된 오류에 따라 기독교 속에 온갖 거짓된 가르침과 복음들이 난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십사만 사천은 하나님의 예언을 따라 바벨론이 귀신의 처소와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 이 되었다고 경고하며, 그 죄악에 참여하지 말고, 그 받을 재앙을 받지 말고 나오라고 외치는 것이다. 요즈음 교회에서 성품의 변화와 생애의 개혁을 강조하는 가르침을 찾아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며, 하나님의 뜻에 자아를 굴복하고 포기하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성화의 가르침도 사라진 지가 오래된 것을 본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늘의 성품으로 변화하는 신령한 역사는 무시된 채, 많은 교인들은 그저 눈에 보이는 기적과 이적과 치유와 방언의 은사를 성령의 역사라고 맹신하며 현시적인 현상들에만 치우치고 있다. 이렇게 내적인 변화가 아닌 가시적인 초자연 현상에만 끌리는 사람들은 앞으로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 (계 13:13,14)는 사단의 속임수에 다 넘어가게 될 것이며 짐승의 표를 아주 쉽게 받게 될 것이다. 십사만 사천은 바벨론의 정체를 폭로하며 영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무너진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바벨론의 습관과 생활과 사고방식에서 나오라고 외치는 사명을 받았다. 그들은 바벨론의 오류로 더럽힘 받지 않은 자들로서, 바벨론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나오라고 불러낼 증인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먼저 모든 잘못된 가르침들에서 벗어나 진리를 통하여 준비되고 인쳐지는 첫 열매의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것이다. 신앙: 4부 - 십사만 사천만 구원받는다는 말인가? 십사만 사천을 연구하면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다. 십사만 사천 문제를 연구하다 보면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르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마지막에 하나님의 인을 받고 환난을 통과하고 승리하여 예수 재림을 맞이하는, 즉 살아서 구원 얻을 사람들은 십사만 사천인들만이라는 것이다.그렇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인을 받고 환난을 통과하고 살아서 예수님의 재림을 맞아 하늘로 승천할 사람은 십사만 사천 인뿐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에 구원을 받는 사람이 십사만 사천뿐이란 말인가? 성경은 이 점에 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이 문제에 관하여 가장 성서적인 방법으로 검증하며 함께 연구하여 보기로 하자. 살아서 구원을 받는 십사만 사천 십사만 사천이 살아서 구원을 얻는 것에 대한 고찰 1. 재림 때에, 땅에서 구속함을 얻는 십사만 사천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계 14:1~5). 위의 성경 절을 읽어 보면 십사만 사천에 대하여 땅에서 구속함을 입은 십사만 사천 인 이라고 묘사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는 계시록 7장을 살펴보면, 이 땅을 해할 권세를 받은 천사가 잡고 있던 사방의 바람을 막 놓으려고 하는 찰나에, 즉 세상에 멸망이 막 이르려고 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종들이 이마에 인을 받는 일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7장의 인을 치는 일에 대한 기록이 나오기 바로 전장인 6장을 보면 예수 재림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되어 있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계 6:15~17).이것으로 미루어보아 6장에 누가 여호와의 큰 날에 설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7장에 그날에 설 자들, 곧 하나님의 인을 받고 환난을 통과하여 구원을 얻을 무리는 십사만 사천이라고 대답처럼 기록되어 있는 것을 우리는 유추해 낼 수 있다. 그러므로 십사만 사천은 예수 재림 때에 땅에서 구원을 받는 사람들인 것을 알 수 있다. 2. 큰 환난에서 나온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은 사람들 계시록 7장에 언급되어 있듯이,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는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소유라고 확실하게 인을 치고 봉하기 위해서도 이지만, 또 다른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환난을 통과할 때 해를 받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보호하려는 조치이기도 하다. 7장을 계속 읽어 보면 인을 치는 묘사가 나온 후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구원받은 큰 무리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성경은 그들을 큰 환난에서 나온 사람들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또한, 7장 16절에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라고 기록하여 놓은 것으로 보아서 그들은 뜨거운 햇볕과 같은 뜨거운 기운, 즉 천연계의 변화로부터 오는 재앙이나 천연 재해 등 때문에 고생했던 사람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에서 큰 환난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냥 보통 환난이 아니고, 다니엘 12장의 언급처럼 개국 이래로 없던 큰 환난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개국 이래로 없던 큰 환난을 통과하고 살아남아 구원을 받는 자들이 십사만 사천 인이다. 3. 짐승의 표를 이긴 사람들 계시록 20장 4절을 보면, 하늘에 올라가 예수님과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을 할 구원받은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그 사람들은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하니." 이 성경 절로 미루어 보아 십사만 사천은 마지막 짐승과 짐승의 우상이 세워질 때 그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을뿐더러 이마와 손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다. 여기서 특별히 짐승의 환난을 이긴 자들이 왕 노릇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십사만 사천은 짐승의 표가 강요되는 마지막 시대에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하나님의 증인으로 설 사람들을 말하고 있다. 4. 살아남은 자들이 재림을 맞을 것임 바울은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사람들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그중에는 주 안에서 죽었던 사람들과 살아남아 주님을 맞이할 사람들 두 종류의 사람들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6~17).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은 사람은 죽을 수 없다. 인을 받은 십사만 사천은 환난 중에 고통을 당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소유라고 인이 찍혀져 있기 때문에 사단이 그들의 생명을 건드릴 수 없다. 은혜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이 세상에 구원받을 사람과 멸망 받을 사람들이 이미 다 결정되었고, 더 이상 순교자의 피와 증언에 의하여 개심하고 하나님을 받아들일 사람이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죽음을 통하여 세상의 열매와 결실을 거둬들일 시기가 아니므로, 재림 직전에 하나님의 증인들로 이 세상과 우주에 하나님의 공의를 증명할 십사만 사천은 죽을 필요가 없고 그러므로 그들은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사람들인 것이다. 그렇다. 십사만 사천은 죽음을 맛보지 않을 자들이다. 그들은 예수의 믿음과 능력을 통하여서 죄의 세력을 온전히 승리하는 경험을 한 첫 열매들인 것이다. 구원을 얻는 다른 무리들 1. 마지막에 일어날 많은 순교자 성경을 연구해 보면 마지막 시대에 살아서 구원을 받을 사람들 외에 구원받을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 절들을 살펴보면서 공부해 보자.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하니(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 (계 20:4~6).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계 6:9~11) 위의 성경 절들을 보아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순교의 피를 흘림으로 추수를 위한 사업에 동참할 수많은 순교자가 있을 것을 알 수 있다. 다섯째 인은 시기로 보아 재림의 장면이 묘사된 여섯째 인이 떼이기 바로 전이기 때문에, 이로 보아서도 재림 전 환난의 시기에 주님을 위하여 진리를 고수하며 순교 당할 사람들이 있을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들은 저희의 가진 증거, 곧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깨달음과 확신과 자신들만의 신앙의 간증과 체험을 가진 자들로서 죽기까지 충성하며 중세기에 있었던 많은 순교자처럼 주님을 위하여 순교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자비로운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사람이나 노약자나 어린아이들처럼 환난을 견디기 힘든 사람들은 미리 잠재우실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2. 죽은 당대의 의인들 장차 오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고 믿고 죽은 당대의 의인들이 예수 재림 때에 부활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히브리 11장 믿음 장에서 본향을 바라보고 소망 속에서 죽은 사람들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였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히 11:13~14). 또한, 죽은 의인들이 구원을 얻을 것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여 놓았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6~17). 살아남은 십사만 사천과 주 안에서 먼저 잠든 의인들이 재림 날에 공중으로 끌어올려 사랑하는 주님의 얼굴을 뵙고 영원히 주와 함께 하늘에서 살 것이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재림의 소망인가! 신앙: 5부 - 왕들이 몰려온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마지막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개선장군들, 왕들을 준비시키고 계신다. 사실 지구의 역사에 있어서 개인적인 구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선과 악의 전쟁이다. 이 전쟁은 하나님 정부의 질서와 우주의 평화를 위하여 해결되어야 할 매우 중요한 것이며, 이것이 해결되어야 모든 죄의 역사가 끝나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마지막에 하나님의 증인이 되어 하나님의 법이 옳았다는 것을 온 우주에 증명할 사람들, 그리하여 구원을 받아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할 사람들에 대하여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하니(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 (계 20:5,6).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계 20:23~27). 왕이 누구인가? 1. 승리한 사람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 3:21). 마지막에 나타날 왕은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한 사람들이다. 무엇을 이기고 승리하는 것인가? 그것은 예수께서 이 땅에 사실 때에 이기시고 승리하신 모든 유혹과 죄이다.성경은 여자의 남은 무리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것이 무슨 뜻인가? 모든 계명을 지킨다는 말은 모든 죄를 승리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같은 인성을 가지고 성육신 하셔서 모든 일에 한결같이 시험을 당하셨지만, 전혀 죄를 짓지 않으셨다. 우리도 같은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죄를 승리할 수 있으며 그렇게 승리하는 사람들이 이기고 주님과 함께 보좌에 앉는 왕들이 되는 것이다. 2. 왕의 성품과 기질을 가진 사람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서 왕 노릇할 사람은 왕 같은 제사장의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주님의 능력으로 어두운 흑암의 죄의 권세에서 구속함을 받고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그 놀라운 변화와 능력을 증거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성품을 생애에서 나타내고 그 덕과 빛을 선전하며 사는 사람들이 왕 같은 제사장들인 것이다. 옛날 제사장들은 앞이마에 여호와께 성결 이라고 쓴 두건 같은 것을 머리에 쓰고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을 받는 것을 상징했다. 그러므로 왕 같은 제사장은 생애가 정결하고 거룩하며 성품이 하나님의 성품과 같이 변화된 사람들이며, 기질도 왕과 거룩한 제사장처럼 변화된 사람들이다. 3. 심판하는 권세를 가짐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심판하실 때, 어떤 사람들을 사용하실까? 주님과 함께 악인을 심판할 사람들은 죄의 악함과 참상을 눈으로 친히 목격하고 죄의 쓰라린 결과를 겪은 사람들, 그러나 죄의 유혹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승리하고 견디어 의롭게 산 사람들이다. 특히 순교자들과 짐승의 표 환난을 통과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가장 많이 고난을 당한 자들일 뿐 아니라, 죄의 권세와 악함과 그 결과를 통감한 사람들이며, 그 죄를 승리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심판 때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심판할 자격이 갖추어지는 것이다. 왕의 새로운 족보 탄생 1. 다윗의 뿌리 구약 성경에 보면 유대 나라에 더 이상 왕이 없을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선택된 국가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또 이스라엘의 왕들이 하나님 선지자의 기별과 명령을 따르지 않고 직접적으로 반역하므로 인해, 진짜 다윗의 후손과 뿌리이시며 이스라엘의 참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이스라엘에 더 이상 진정한 왕이 없을 것이라는 예언이 주어졌던 것이다. 이에 관련된 성경 절들을 읽어 보자. 이 사람 고니야(여호야긴 왕)는 천한 파기냐. 좋아하지 아니하는 그릇이냐. 어찌하여 그와 그 자손이 쫓겨나서 알지 못하는 땅에 들어갔는고.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이 사람이 무자 하겠고 그 평생에 형통치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니라 (렘 22:28~30). 또 유다 왕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그가 이 두루마리를 불사르며 말하기를 네가 어찌하여 바벨론 왕이 정녕히 와서 이 땅을 멸하고 사람과 짐승을 이 땅에서 없어지게 하리라 하는 말을 이 두루마리에 기록하였느뇨 하도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유다 왕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그에게 다윗의 위에 앉을 자가 없게 될 것이요" (렘 36:29~31).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의 악이 기억을 일으키며 너희의 건과가 드러나며 너희 모든 행위의 죄가 나타났도다. 너희가 기억한 바 되었은즉 그 손에 잡히리라. 너 극악하여 중상을 당할 이스라엘 왕아 네 날이 이르렀나니 곧 죄악의 끝 때니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관을 제하며 면류관을 벗길지라. 그대로 두지 못하리니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예수 그리스도)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 (겔 21:24~27). 예언대로 구약에는 진정한 왕이신 다윗의 뿌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이 땅에 오시기까지 더 이상 왕이 없었고, 주님께서 이 땅에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을 때 진정한 왕의 새로운 족보가 생기게 되었다.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2,33). 2. 영적 이스라엘 다윗의 후손들 이제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이스라엘, 곧 진정한 다윗의 후손들인 왕이 될 사람들을 모으고 계신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약 1:1).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이을 사람들, 그리스도와 함께 이기고 보좌에 앉아 왕 노릇할 사람은 마지막 하나님의 남은 무리인 십사만 사천인 것이다. 그들은 왕의 기업을 물려받을 자격, 곧 죄를 승리하고 이긴 진정한 왕의 후손들인 것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왕의 아들들이 왕의 열조를 계승할 것이라. 왕이 저희로 온 세계의 군왕을 삼으리로다"(시편 45:6,16). 신앙: 6부 - 십사만 사천이 준비되고 있다 지금은 십사만 사천이 일어나는 셋째 화의 시대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리로다 하니 (계 11:14). 그동안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을 구독해 온 독자들은 잘 알고 있듯이, 예언의 성취로 보아 현시점은 성경의 일곱 나팔 예언의 세 가지 화 중 마지막 화인 셋째 화의 시기에 이른 것을 알 수 있다. 계시록에 나오는 세 가지 나팔들의 사건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 심판의 상징인데, 괴롭게 하는 일들이 진행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래서 그것들을 세 가지 화 라고 표현한 것이다. 첫 번째 화, 즉 다섯 번째 나팔은 로마 제국을 멸망시키지는 말고 괴롭게만 하라고 말씀하고 있고, 두 번째 화인 여섯 번째 나팔은 로마 제국을 쳐서 멸망시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전체를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3분의 1만 죽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 세 번째 화, 즉 일곱 번째 나팔은 온 세상 전체를 심판하며 멸망시키는 사실을 담고 있다. 특히 세상을 파괴하는 자들, 곧 세상을 부패케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라는 예언이 이 세 번째 화 속에 포함되어 있다.(일곱 나팔 예언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71호를 참조하세요.) 일곱째 나팔, 즉 세 번째 화는 하나님 심판의 결론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 심판은 온 세상 전체에 대한 심판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다. 그런 후 이 세상이 드디어 그리스도께 그 주권이 돌아간다고 선포한다. 여기에 보면 심판의 끝에 가서 하늘에 있는 24장로들이 하나님께 경배하며 영광을 돌리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드디어 심판의 마지막 국면이 이르러 오고 하나님께서 마귀와 악한 자들을 심판하시고 성도들과 의인들을 변호하시며 옹호하시는 일을 하시자, 감사와 찬송이 온 하늘과 우주를 가득 채우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의롭고 정당하며 이 지구의 죄의 역사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심판이 너무나 합당하고 의롭다고 말이다. 일곱 나팔 예언을 연구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첫째와 둘째 화에서 이슬람 세력을 일으키셔서 배도한 교회와 그 교회를 지지해 주는 이 세상 나라의 세력을 심판하신 것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중세기의 타락하고 배도한 교회는 바로 로마 교황권의 교회였다. 로마교회는 이교의 가르침을 교회 안으로 들여와 진리와 섞어 놓았으며, 하나님의 교회와 온 세상을 부패시킨 장본인이다. 성경에 보면 이 세력은 세상의 왕들과 백성들을 진노의 포도주로 취하게 한 세력이다. 그리고 그 세력을 지지해 주고 있던 나라가 바로 이교 로마 제국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슬람 세력을 통해 바로 이 교황권과 로마 제국을 괴롭게 하고 치는 일을 하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첫 번째와 두 번째 화에서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그러므로 그 세 번째 화에서도 하나님께서 이슬람 세력을 통해 배도한 교회와 그 세력을 지지하는 나라를 심판하시는 것이다. 이 마지막 시대의 배도한 기독교의 세력은 바로 미국 안에 있다. 미국의 개신교회는 더 이상 개신교회가 아니다. 오히려 교황권을 지지하는 배도한 교회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그뿐 아니라 교황권의 세력을 온 세상의 지도자의 권위로 세워 주는 일에 앞장을 서서 일하고 있으므로 배도한 교회를 지지하는 정치적인 세력이 된 셈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슬람 세력을 통해 배도한 교회요 동시에 배도한 나라인 이 미국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세 번째 화가 예언하고 있다. 현재 이슬람의 테러를 기점으로 이슬람의 세력이 갑자기 기승을 부리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세계적인 형세는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다. 우리는 지금 눈앞에서 셋째 화가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슬람의 공격을 사용하시어 배도한 교회와 세상 나라들을 치시고 계신 것을 보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셋째 화가 지나가면서 과연 어떠한 영적인 큰 사건이 일어나게 될 것인가? 것은 다름이 아닌 하나님의 남은 무리인 십사만 사천이 준비되고, 그들이 마지막 성령의 큰 역사를 받게 되어 일어나 큰 소리 외침을 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벨론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나오라고 불러 내는 놀라운 역사가 생길 것이다. 계시록 18장 1~4절의 넷째 천사의 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지금은 십사만 사천이 준비되고 있는 시기이다. 아니, 십사만 사천의 수가 거의 차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우리의 앞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을 때이다. 지금은 사방의 바람이 막 놓이려고 하는 때이며, 세상에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이르려고 하는 찰나이다. 이런 때에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는가? 십사만 사천은 회개한 사람들이다. 죄를 버리고 거듭나고 변화된 사람들이다. 있는 죄를 버리지 않고 고집하거나 고의로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예수께서 피로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실 뿐만 아니라, 능력을 주셔서 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것을 믿는 사람이며, 또한 자신 스스로 그런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성품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어 입에 흠이 없고 욥과 같이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입을 열어 범죄하지 않는 사람들이며, 그리하여 환난, 즉 개국 이래로 없던 마지막 큰 환난을 지날 때에도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굴복하고 성령의 충만하심과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계명을 마음으로부터 온전히 사랑하고 지키는 사람들! 그리하여 선과 악의 대쟁투에서 하나님께 승리를 가져오며 우주의 법정에서 하나님을 변호할 증인이 될 사람들! 지금 이 십사만 사천 인이 준비되어 가고 있다. 마지막 역사의 밤은 깊어 가고, 세상 곳곳에 일어나는 재화들은 증가하고 있으며, 선과 악의 대쟁투는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이제 마지막 최후의 승리를 가져올 십사만 사천이 준비되어 가고 있는데, 우리는 이 중대한 사건을 위해 어떻게 준비해야 하겠는가? 십사만 사천에 들어가고자 노력하는 독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질문과 답변: 적그리스도는 누구인가요? 다니엘 7장에는 적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분명하게 밝혀주는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누구 또는 무엇인가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다니엘 7장에 기록되어 있는 9가지 특징을 모두 완전하게 만족시킬 수 있는 한 세력을 찾아야만 한다. 우리는 매우 신중하고도 지혜로운 방법으로 이 중요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가장 권위 있는 백과사전 중의 하나인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는 다음과 같은 증언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사상이 루터와 다른 종교 개혁자들로 하여금 개혁 운동을 주도하게 만든 강력한 힘의 원천이 되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1962년도 판 2권 61페이지).어떠한 사상이 종교 개혁자들로 하여금 그토록 강력한 힘으로 종교 개혁 운동을 추진하도록 만들었는가? 그것은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적그리스도의 예언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중세기의 종교 개혁이 성공하게 된 두 가지 중요한 이유는, 첫 번째, 종교 개혁자들이 인간의 구원에 대한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행함과 공로와 의식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믿는 수많은 민중들의 믿음을 로마서에서 비춰 나오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라는 빛으로 옮기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과 생애를 바쳤다. 두 번째, 개혁자들은 다니엘 7장이 말하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무엇인지를 민중들에게 분명하게 말해 주었다. 이 두 가지가 천 년의 암흑시대를 끝내고 종교 개혁 시대의 아침을 열었던 것이다. 종교 개혁자들이 다니엘 7장에서 발견한 적그리스도의 9가지 특징은 무엇인가? 1. 7, 8절: 서부 유럽에서 일어난다. 2. 8, 24절: 로마제국의 분열 이후에 강성해진다. 3. 8절: 세 뿔 (세 부족국가)을 뿌리채 뽑아 버린다. 4. 24절: 국가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5. 24절: 열 뿔 과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다. 6. 8, 25절: 하나님께 대적하는 큰 말 을 한다. 7. 25절: 성도들을 핍박한다. 8. 25절: 때와 법 을 변경시킨다. 9. 25절: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의 전성기를 갖는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는 1260년이라는 긴 기간을 의미한다. 1260년에 대한 예언이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서 7번이나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하나님께서는 1260년 동안 성도들을 핍박하는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여러 가지 모습으로 7번이나 성경에 기록하여 두심으로써, 그분을 진정으로 따르고자 하는 진실된 그리스도인들을 적그리스도의 기만으로부터 보호하고자 계획하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