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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이 머지 않은 어느 밤.
천태산에는 월광이 부드럽게 깔리고 있었다. 하나 밤의 정취는 단말마의 비명과 폭음 소리에 무참한 유린을 당하고 있었다.
창창! 꽈광 꽝!
"크아아악......!"
광대한 천태산의 산자락 곳곳에서 혈풍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어림잡아 그 수는 삼십만을 훨씬 넘을 것 같았다.
그들은 바로 진미문과 사패천의 무인들이었다.
실로 천지개벽(天地開闢)의 대혈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진미문 측에서는 총단을 중심으로 다섯 방위로 나누어 각각 적의 공세를 막아내고 있었다.
사패천은 예정된 날짜보다 이틀이나 앞서서 공격을 감행했다.
뒤따라 올 풍신우길이 오지 않자 일부가 홍택호로 돌아가 봤던 것이다. 그들은 무참한 시신들을 보고 일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정보가 누설되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해서 사패천은 날짜를 당겨 천태산 주변에 모여들기 무섭게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한 것이었다.
천태산에서 북서쪽으로 오십여 리 떨어진 깊은 계곡이었다.
계곡에는 온통 풀로 덮어 위장한 막사가 즐비하게 있었다.
그 중 한 막사 구석에는 백리황과 점소이들이 굴비처럼 줄에 묶인 채 초췌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돌연 막사 밖에서 크악! 하는 비명이 연달아 울리더니 한 무리가 안으로 들어섰다. 백리웅천과 진미문 내안 분타원들이었다.
객점 식구들은 감격했다.
"으흑! 이게 꿈이냐? 생시냐?"
백리웅천은 백리황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그 동안 분타원들이 그들의 줄을 끊었다.
백리웅천이 이 곳에 나타난 것은 사패천의 주력이 떠난 후였다.
그는 남아 있는 사패천 무인들을 제압하여 아후라의 진영을 알아낸 후 막사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백리웅천은 백리황과 점소이들을 위로한 후 분타주에게 명했다.
"자네들은 이 분들을 책임지고 안전한 곳으로 후송하게. 그것이 자네들의 임무야. 싸움에 가담할 필요는 없어."
"존명!"
백리웅천은 분타원들이 백리황 등을 데리고 떠나는 것을 확인한 후 신형을 날렸다. 그가 향하는 곳은 진미문의 수비망 중 육상아와 색초가 담당한 지역의 경계였다. 이들의 무공이 다른 곳을 책임진 자들보다는 약하기 때문이었다.
천태산의 북서쪽 자락은 그 어느 곳보다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숲 속의 공터마다 수백 명이 병기를 부딪치며 어우러지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진미문과 사패천의 숫자가 대등하게 싸우는 것 같았다.
비탈진 경사를 따라서 풀만 가득한 구릉이었다.
색초가 삼십 명의 검수에 둘러싸여 공격을 받고 있었다.
삼십 자루의 검이 일으킨 검기가 색초의 전 방위를 노리며 덮쳐들었다. 그 순간 색초가 두 팔을 번쩍 들자 흰빛의 강기막이 그의 전신에서 일어났다.
검기가 강기막에 닿았다. 그러자 느닷없이 아학! 하는 교성이 줄기차게 울려 퍼졌다. 검수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찰나 검기는 그들을 향해 되돌아가고 있었다.
"크악!"
비명과 함께 검수 열댓 명이 자신의 검기에 가슴을 관통당했다. 나머지는 정신을 차리며 급히 검기를 피했다. 하나 그 직전 색초의 바지 중심부가 들썩거리며 뭔가 요상한 빛줄기 수십 가닥이 연달아 뻗어나갔다. 환희열락요도투광이었다.
빛줄기는 여지없이 검수들의 몸통을 관통했다.
"크하하! 이놈들아, 짜릿한 죽음의 맛이 어떠냐? 내 오늘 환희열락오대마공을 맘껏 써먹는구나!"
색초는 광소를 터뜨리며 우측으로 몸을 날렸다. 오 장 정도 거리에서 진미문도 삼십 명과 사패천 검수 열댓 명이 어우러져 있었다. 색초는 음양합일장을 연달아 격출하여 상황을 정리했다. 그리고는 진미문도들에게 명했다.
"숫적 열세가 보이는 쪽을 찾아서 뛰어들어. 빨리!"
진미문도들은 존명!을 외치고 급히 다른 쪽으로 달려갔다.
이때였다.
"와아아아아아!"
아득한 허공에서 우렁찬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깜짝 놀란 색초가 고개를 드는 순간 한 인영이 쏜살같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색초는 환성을 질렀다.
"문주!"
막 착지한 인영은 백리웅천이었다.
"상황이 어떻소?"
색초는 가슴을 탕! 탕! 두들겼다.
"여긴 염려할 것 없네. 빨리 헌원우상이 있는 곳부터 가보게."
백리웅천은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무슨 소리요?"
"오랜만에 살풀이 한번 신나게 해야겠다고 다른 사람의 십분의 일도 안 되는 병력만 끌고 나섰단 말이네. 그나마 고수급의 숫자도 아주 적어. 헌원우상 그 놈은 자기가 무공의 신인 줄 착각하는 것 같아."
"상아가 있는 쪽은 어떻소?"
"그쪽도 괜찮네. 장찬비나 관세걸 등 적야성 출신 고수들은 거의 그쪽에 있어. 숫자도 제일 많아."
"알겠소."
백리웅천이 몸을 날리려는 찰나였다.
"잠깐, 문주 자넨 내게 고마워해야 해."
백리웅천은 멈칫하며 물었다.
"무슨 소리요?"
이때 백리웅천의 눈에 색초 후방 십여 장 거리에서 사패천 검수들이 날뛰는 모습이 보였다. 동시에 색초의 눈에는 백리웅천 뒷쪽 십 장 거리에서 사패천 검수들이 진미문도들을 핍박하는 장면이 보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목옆으로 손을 뻗어 장력을 꽝꽝! 갈기며 말을 주고받았다.
"자네의 쌍둥이 부인들이 돕는답시고 설치다가 죽을 뻔했어. 내가 구해서 지금 총단으로 후송시켰네."
이때 그들의 장력이 날아간 곳에서 끄악!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고맙소."
"말로만 고마워하지 말고 비연각 계집애들을 딱 절반만 떼줘. 더 이상은 이런 생활을 못 견디겠어. 이 나이에 혼자서 그 짓이나 하고 있으니......."
백리웅천의 안면이 가볍게 경직되었다.
"십분의 일로 합시다."
"안돼! 반은 줘야 돼."
"그럼 구분의 일, 그 이상은 양보 못하오!"
"욕심도 많군. 최소한 삼분의 일은 줘야 돼."
두 사람이 흥정하는 동안 주위의 싸움소리는 멀어지고 있었다. 이쪽은 확실히 진미문이 승기를 잡은 것 같았다.
"그럼 할 수 없소. 팔분의 일로 결정합시다."
색초는 열이 받은 듯 홱 몸을 돌렸다.
"삼분의 일 아니면 나 안 싸워."
백리웅천은 다급히 손가락 네 개를 펴 들었다.
"사분의 일이오! 사분의 일!"
"음! 사분의 일!"
색초는 멈칫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순간 백리웅천은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이쪽은 색고문만 믿겠소."
색초는 그가 날아가는 허공을 보며 중얼거렸다.
"노부가 오대마공의 최강인 열락진원폭출성강을 터득했다는 소리도 못 듣고 그냥 가버리는군. 거시기 모양의 강기 덩어리가 발사되는 걸 보면 기절초풍할 텐데......."
그는 씨익 웃은 후 싸움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