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 좋은 불멸의 계곡
아름답고 감동 주는 이곳은 신도들
많이 찾는 곳이네.
사시사철 길 따라 가 볼만한 곳이네.
봉황산 일붕사는
신라시대 삼국을 통일한 신라 태종 무열왕 김춘추 장군의 첫 요새지로서
신라 최고의 군 부대였던 봉황대였던
이 곳의 봉황대 이름을 따 봉황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서기 727년 신라 성덕대왕 26년에
신라의 해초 스님이 중국과 인도의 성지를 순례하고
돌아오던 중 꿈에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절벽에서
지성 보살님이 환하게 웃으며
이곳에 호국영령들을 위로해 줄 불사를 하면
훗날 큰 보배가 될 것이라 하여
귀국하는 길로 성덕대왕께 고하고 전국의 명산을 찾아 헤매다가 꿈에 본
기암절벽과 모습이 흡사한 이곳 봉황산에 사찰을 건립하였다.
당시 성덕대왕의 이름을 따 성덕사라고 하던 것이
현재 일붕사의 전신이다.
그 후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사찰이 자주 소실되어 감히 복원을
못하고 있던 터에 1987년 해운스님이 산의 정기가 너무 강하여
화기를 빼야 한다는 큰 스님들의 조언을 받아 들여 대웅전의
위치를 현재의 위치로 바꾸고 화재로 소실될 염려가 없는
자연 그대로의 거대한 바위를 이용하여 동굴법당의
대불사를 하게 됐으며 사찰명 또한 일붕사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는 해설이다.
琴山IT교육장Team의
문병률님, 심기종님, 최대주님, 성득찬님과
정기옥 강사님, 오장환 강사님과 이충령강사님과 나(나는 김기홍외다.)는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한 마음으로 뜻을 모아
현장학습을 실시하기로 하였겄다.
때는 불기 2562년 동짓달 초하루
곳은 일붕사一鵬寺와 한우산寒雨山을 찾기로 하였겄다.
임들은 일곱으로 출발한다.
열 점 이십분에 최대주님의 따릉~따릉을 받는다.
당황한 목소리다.
“열 점 삼십 분에 가기로 해서 왔는데,
아무도 없어서…….”
몹시 당황한 기색이다.
선도차에 가서
방법에 의해서 해후하기로 한다.
최대주님과 한 몸 되어
무궁화 꽃 가슴에 달고 목표길 찾는다.
엊그제 같이
노오란 황금 들판이었는데
삭막한 초겨울의 들판이다.
길은 좋아
삼가역이다.
삼가는 자주 찾던 곳이라
소개를 하려고
오장환 교장선생님을 찾는 데
벌써 내가 소개하고픈 식당에 와 계시다.
‘아하, 이 집은 소문은 난 곳이구나!’ 알 수 있다.
‘얌냠’을 잘 한다.
앞 나들이 때에
소개 했듯이
금산IT교육장은 새 지식을 배우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람됨을 배운다는 것이다.’
넘 좋다. 한 생을 살면서 이 나이에 배운다는 것은 넘 좋다.
오늘도
서로의 덕담과 해학으로 배움의 바다는 열렸다.
오장환 교장선생님의
세밀한 계획과 경험의 길을 따라
목적지를 찾는다.
가는 길
난 처음이다. 나도 역마살이 많아
돌고돌아 많이 돌았는데
처음길이다.
우리 차의 탑승 분은 ‘넘넘’ 좋아한다.
난 전신의 전율을 느낀다.
고불고불 길에 급경사에
‘띵띠라빵빠’가 고갯길 높아 헐레벌떡하며 오른다.
재를 넘어 산골의 마을
삶의 터전 땅이 있어
삶의 뿌리 내리겠지. 생각의 터널을 지난다.
삶이 살찌는 시간이다.
일붕사一鵬寺
초겨울이지만
온기는 살아있다.
자연의 신기함에 감동을 받는다.
큰 산에 그 산은 신묘한 자태를 보여준다.
희열이 꿈틀거린다.
‘세세히 맘에 담으리다.’ 다짐한다.
셔텨Shutter는 계속 춤을 춘다.
두 번째 목적지를 찾는다.
큰
산 좋고 물 좋은
참 좋은 계곡을 오르고 올라는데
산의 머리에서
“찰비계곡이란다.”
의령과 합천 대가는
한우韓牛가 유명해서
韓牛로 생각을 했는데
寒雨란다.
아아! 차운 비의 뜻에서
‘찰비’라는 이름 태어났구나.
저절로 추측을 풀이한다.
꼬불꼬불 산길 오른다.
‘쇠목재’가 나온다.
하여튼 정상
정상표말을 중심으로 하여
앞쪽은 자굴산,
우향우 하면 지리산 천왕봉,
날씨가 흐려 흔적이 어둠에 숨어 있다.
심청의 후손께서
떡을 만들어 오셨다.
심기종님은 넘 예의범절이 몸에 배여 있는 분이시다.
고마움에 모두들 고마워 한다.
차비 만 원을 받는데
억지로 받았다.
아아! 글쎄 집에 와서 보니 오 만원이다.
짐작할 수 있다.
오 만원하면 안 받을 것이니
만 원 해서 받게 하는 성득찬님의 유머에 웃음을 보탠다.
돌아와 생각하니
오늘은
즐거운 현장학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