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경록 제2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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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지음 |
송성수 번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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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온갖 진리와 세속 등의 법에는 각각 본체[理]ㆍ현상[事]과 통(通)ㆍ별(別)의 행상(行相)이 있고 과보도 뚜렷하거늘 어떻게 한결같이 자기에게서만 녹아 없어지는가. 아직 이 종(宗)에 들지 못하면 ‘공’의 소견을 이룰까 두렵다. |
[답] 근본을 얻어야 끝이 분명하여지며 끝을 붙잡으면 종(宗)에 어긋난다. 만약 마음을 관하지 아니하면 법에 오는 처소가 없고, 유위의 일과 행을 닦기만 하여 제 마음의 무위에 통달하지 않으면 현상[事]에 미혹하고 종을 잃어서 결과는 생멸에 돌아가며, 본체[理]를 친히 하고 현상을 행하면서 쌍으로 비추며 어김이 없으면 한결같이 치우치게 닦아서 본체와 현상이 다 같이 상실될까 두렵다. |
『대보적경(大寶積經)』에서 이르기를 “가령 보배 탑을 만든 수가 항하 모래만큼 많다 하여도, 찰나 동안에 이 경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못하다”라고 한 것과 같다. 또 한 마음이 바로 만행(萬行)의 원인이어서 이것으로 동체대비를 일으켜 무연(無緣)의 교화를 할 수 있을 뿐이다. |
『기신초(起信鈔)』에서 이르기를 “만약 한 맛의 공의 도리를 믿으면 기쁨과 싫음이 온통 끊어지고, 만약 한결같이 법의 모양을 믿기만 하면 성인과 범인이 매우 차이가 나나니, 이 모두는 행을 일으켜 닦아 나아갈 수 없다. 이제 한 마음이 바로 범부와 성인의 근원이로되 다만 미혹과 깨침의 탓으로 다름이 있게 된다 함을 믿게 하고자 하니, 이는 곧 반드시 행을 일으켜 닦아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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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부처의 과위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
이러므로 참 마음은 제 성품을 지키지 않고 인연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며 과보가 뚜렷함을 알게 된다. |
또 인연을 따르면서 제 성품을 지키지 아니하며, 인연은 거짓이라 진실이 없고 경계와 지혜는 그윽하고 고요하다. |
그런 까닭에 『기신론(起信論)』에서 이르기를 “이른바 비록 모든 법의 제 성품이 나지 않음을 생각한다 하더라도, 다시 이내 인연이 화합한 선악의 업과 괴로움과 즐거움의 과보 등이 상실되지도 아니하고 파괴되지도 아니함을 생각하며, 비록 인연의 선악 업보를 생각한다 하더라도 역시 생각하는 성품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
만약 과보가 상실되지 않는다 하면 이내 만행을 골고루 닦아야 하고, 만약 성품을 얻을 수 없다 하면 이것은 한 마음일 뿐임을 알아야 한다. |
또 만행의 최초는 5계(戒)보다 우선한 것이 없다. 만약 사상(事相)에 의하면 과보는 인간과 천상에 있다. 장교(藏敎)는 무상함만을 증득하고, 통교(通敎)는 공하여 제 성품이 없으며, 별교(別敎)는 구별을 매겼으나 인과가 원융하지 아니하고, 원교(圓敎)의 관심(觀心)만이 곧 법계를 갖춘다. |
그런 까닭에 『대열반경(大涅槃經)』에서 이르기를 “비록 별상(別相)을 믿는다 하더라도 한 체성으로서 차별이 없는 모양을 믿지 않으므로 믿음이 갖추어지지 않았으며, 믿음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온갖 금계(禁戒)가 역시 구족하지 아니하며, 때문에 온갖 다문(多聞) 역시 완전히 갖추어지지 아니한다”라고 했다. |
무엇을 믿음이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하느냐 하면, 하나의 법이 곧 온갖 법임을 분명히 모르거늘 믿음인들 어찌 원만하겠는가. 무엇을 금계가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하느냐 하면, 계의 성품이 허공과 같음을 아직 모르거늘 금계인들 어찌 갖추었겠는가. 무엇을 들음이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하느냐 하면, 여래가 언제나 설법하지 않음을 듣지 못하면서 바로 다문을 두루 갖추었다 여기거늘 들음인들 어찌 갖추었겠는가. |
만일 종경(宗鏡)에 들어가면 어찌 계율과 착함뿐 이리요. 내지 모든 부처님의 과덕(果德)과 보살의 만행으로서 하나의 법도 영향 받지 않은 바 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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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생각마다 분명히 알고 법마다 원만해진다. |
또 5계와 같은 것의 계율은 마음으로부터 생기고 마음은 계율로 인하여 성립된다. 만약 마음이 일어나지 아니하면 4덕(德)과 만행의 기초가 되고, 만약 마음이 허망하게 나면 6취(趣)와 3도(塗)의 근본이 되므로, 착함마다 거두지 아니함이 없고 악함마다 거두지 아니함이 없다. |
그러므로 태교(台敎)에서 이르기를 “이 5계는 역시 대승의 법문으로서 이 5계를 묶어 삼승(三乘)으로 삼는다. 곧 3무실(無失)ㆍ3불호(不護)ㆍ3륜부사의화(輪不思議化)ㆍ3밀(密)ㆍ3궤(軌)ㆍ3신(身)ㆍ3불성(佛性)ㆍ3반야(般若)ㆍ3열반(涅槃)ㆍ3지(智)ㆍ3덕(德) 등의 한량없는 세 가지 법문에 상대되며, 가로나 세로나 끝이 없고 허공과 법계와도 평등하여 역시 무진장법문(無盡藏法門)이요, 역시 무량의삼매(無量義三昧)이다”라고 했다. 요점을 들어 말하면 바로 이는 온갖 불법이다. |
『천태금광명경소(天台金光明經疏)』에서 이르기를 “5계란 천지에서 매우 꺼리는 것으로서, 위로는 5성(星)에 상대하고 아래로는 5악(嶽)에 짝지우며 중간으로는 5장(藏)을 이루나니, 그를 범하면 하늘을 업신여기고 땅에 덤벼듦이라 스스로 그의 몸을 치는 것이다.” |
첫째 살생하지 않음[不殺]이니, 생명을 살해하면 현상의 살생[事殺]이라 하고 생명을 살해하지 아니하면 현상의 불살생[事不殺]이라 한다. 법의 문[法門]으로 풀이하면, 법을 가르면 본체의 살생[理殺]이라 하고 법을 체달하면 본체의 불살생[理不殺]이라 한다. |
만약 뜻을 지어 지키면서 마치 말에 굴레를 씌우듯 소를 치며 채찍을 잡듯 하면 그 과보는 인도(人道)에 있으면서 1백 20년 동안 육안(肉眼)을 얻을 뿐이며, 만약 저절로 성품을 이루어 마치 강물이 바다에 흘러들 듯하면 과보는 6천(天)에 있으면서 극히 오래 사는 이는 9백 26억 7천만 살을 살면서 천안(天眼)을 얻을 뿐이며, 만약 선정과 계율과 무상ㆍ고ㆍ공ㆍ무아 등의 지혜를 더욱 닦으면 과보는 변역(變易)에 있으면서 수명이 7백 아승기요 혜안(慧眼)을 얻을 뿐이며, 만약 항상함과 무상함 등의 지혜를 더욱 닦으면 과보는 연화장해(蓮華藏海)에 있으면서 법성신(法性身)을 받아 일부는 다섯 가지 눈[五眼]을 얻고 일부는 항상하는 수명[常壽]을 얻거니와 부처님에 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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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하면 오히려 이 모든 감관은 온전하지 못하고 수명도 모자란다. |
만약 원교인(圓敎人)이 현상의 불살생 계율을 지니거나 또 본체의 불살생 계율을 지니거나 하면, 무너지지 않는 몸의 인연은 언제나 한 모양[一相]을 따르고 끊이지 않는 어리석음과 욕망은 명(明)ㆍ탈(脫)을 일으키며 음(陰)ㆍ계(界)ㆍ입(入)을 체달하여 훼상한 바가 업고 종자거나 열매거나 간에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아니하며 지혜를 성취하고 적광토(寂光土)에 살며 항상하는 수명은 잠연하고 다섯 가지 눈을 두루 갖추며 감관의 자재함을 얻고 수명의 자재함을 얻어서 길고 짧음에 마음대로 하나니, 이것을 마지막의 계율을 지니고 모든 감관이 구족하며 수명이 줄어들지 않음이라고 한다. |
원교의 사람[圓人]이 어찌 이의 계율만을 지닐 뿐이겠는가. 살생이며 자비일 뿐이어서 역시 현상의 살생도 짓고 본체의 살생도 짓는 것이니, 마치 선예 대왕(仙預大王)이 5백의 바라문을 죽이고 그들과 함께 부처님의 눈을 보고 그들과 더불어 10겁(劫)의 수명을 누린 것과 같다. |
또 법의 문으로서 살생을 짓는다 함은 세속의 너저분한 일을 꺾어 없애고 모든 번뇌를 깨끗이 함은, 마치 수신(樹神)이 나뭇가지를 부러뜨리어 원망스런 씨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과 같고 마치 겁화(劫火)가 나무를 불태워서 재와 숯이 모두 없어져버리는 것과 같다. |
그러므로 『능가경(楞伽經)』에서 이르기를 “무명의 아비를 죽이고 탐애의 어미를 해치며 수면(隨眠)의 원수를 끊고 음(陰)의 화합을 파괴하며 7식(識)의 몸을 끊는다”고 했다. |
이렇듯 짓는 이는 현재에 법신을 증득하리니, 이 역(逆)은 바로 순(順)이다. |
앙굴(鴦崛)이 이르기를 ‘나는 맹세코 음ㆍ계ㆍ입을 끊되, 불살생의 계율은 지닐 수 없다’고 했다. |
온갖 진로(塵勞)는 바로 여래의 종자요 이 종자를 다 끊어야 비로소 부처라 하며, 금강의 미묘한 법신을 성취하여 맑고 고요히 온갖 것에 응하면서 형상을 아홉 갈래[九道]에 드리워 그 마땅한 바에 따라 길거나 짧은 수명을 보이고 그의 보는 바에 맡겨 모자라거나 온전한 감관을 이용하면서 그들을 교화하고 제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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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도둑질하지 않음[不盜]이니, 주지 않은 것을 가지면 현상의 투도[事盜]라 하고, 준 것을 가지면 현상의 불투도[事不盜]라 한다. |
법의 문으로서는 부처님께서 말씀한 ‘다른 이 물건을 가지지 않으면 법의 문의 불투도라 하느니라’고 하심과 같다. |
만약 계율을 지니어 업을 짓되 뜻에 맞는 결과를 구하면, 무상은 빠르게 썩히는 것이라 모두가 이는 다른 이 물건으로서 악취는 마치 똥덩이와 같고 해독은 마치 독 섞인 밥과 같다. |
지혜 있는 사람이면 구하지 않아야 할 바거늘 어떻게 은근히 구린 것을 마시고 독을 먹으면서 스스로가 훼상하겠는가. |
돌아 흐르는 여울에서 고생하는 것이 어찌 허물이 물의 흐름에 있으랴. 세 가지 장애[三障]가 부처를 장애함은 제일의천(第一義天)으로 버리고 여읠 바이니, 이것이 투도요 불투도가 아니다. |
또 2승은 네 가지 진리의 지혜로써 몸[身]ㆍ느낌[受]ㆍ마음[心]ㆍ법[法]을 관하며 생사를 싫어하고 열반을 바라나, 열반의 마음이 일어나면 바로 다른 물건을 취하는 것이어서 곧 때 아닐 적의 증득이요 곧 말할 바 원인을 상대하지 않나니, 불에 볶은 종자는 나지 아니한다. 괴로움을 보고 쌓임[集]을 끊으며 도를 닦아서 지어 없앰이 법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열반이 있다 하면서 열반의 소견을 이루거나 만약 공에 집착함이 있으면 모든 부처님도 제도하지 못한다. |
키는 3백 유순이면서 두 날개도 없이 세 가지 무위의 구덩이[無爲坑]에 떨어져서 굶주리고 야위고 몸에는 부스럼과 옴이 났거늘, 어찌 가난하며 괴로운 것이 아니겠는가. |
또 부처님도 뵙지 못하고 법도 듣지 못하며 대중의 수에도 들지 못하거늘, 어찌 제1의천을 멀리 여읜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오히려 투도요 불투가 아니다. |
만약 별교의 사람[別人]이면 얕은 데로부터 깊은 데로 이르며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취하며 온 뒤에는 다시 또 오고 간 뒤에는 다시 또 가므로 모두가 이는 가고 오는 모양을 욕되게 하는 것이며, 역시 주지 않은 것인데도 가지며 가진 뒤에는 버리므로 역시 가난하며, 버린 뒤에는 다시 가지고 자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