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月의 합창(合唱)
시인 효암 조돈익
(사)대한수총 문화원장
간밤
소리 없이 지난
이슬비 뒤에
해밀 빛 날 밝는 김삿갓 마을
짙푸른 유월(六月) 산중에
뻐꾹새 울음소리 청아하다.
목가적 풍광
옥수수 밭 너머
아침을 맞는 청록산수(靑綠山水)
산 허리춤에 걸린 몽글한 구름 띠
새벽녘 신선이 쉬었다 간
비단 포 산방(山房)의 운해(雲海)인가.
산 높고 골 깊은 산야(山野)
첩첩이 늘어선 아름다운 병풍산
굽이굽이 옥동천 유려한 계류
맑은 옥수(玉水) 은빛여울
물 씻김 돌 한 점 들어 기쁨을 찾는
석여동락(石與同樂) 석인의 모습 정겹다.
2020년 6월 13일 옥동천에서….
유월 중순에 이른 강원도 영월 김삿갓면 옥동천 주변 모내기를 끝낸 논에 흰 백로가 먹이를 찾고 있는 모습이 여유롭다. 들녘에는 어느새 비어있는 땅 없이 농부의 땀과 수고가 녹아들어 가지런히 자리한 고랭지 농산물 채소와 과수목이 들녘을 채우고, 푸른 잎 튼실하게 자란 옥수수 밭이 여름에 들어선 산골마을 멋을 더한다.
간밤 첩첩산중 산수경관이 수려한 스로시티(Slow City) 김삿갓마을 인근에 이슬비가 내렸다.
탐석대회를 겸한 수석인들의 잔치 수총 ‘2020년 하계워크숍’ 전야제에서 밤이 늦도록 석담과 석정을 나누던 석인들이 김삿갓 아리랑 팬션 대청에 누어 잠든 새벽녘에 반쯤 열어놓은 창을 통해 개구리들 와글와글 합창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린 시절 이맘때쯤 밤하늘 가득히 반짝이던 별들이 내리는 다랑논 뚝 길에서 보고 들었던 정겨운 시골 향수(鄕愁) 자연의 소리다.
“일찍 일어났네요.”
“네! 아침 탐석하러 고씨굴이 있는 각동 쪽에 갈려구요.”
경기도 고양시에서 온 ‘양 철모’ ‘진 광일’ 석우(石友)와 아침인사를 나누고 팬션 숙소 앞뜰에 나섰다. 비가 그친 김삿갓 마을 앞산 기슭에 몽글한 띠구름이 그림같이 걸쳐있는 풍광이 아름답다.
녹음이 짙어지는 병풍산 아래 큰 굽이 돌아내리는 옥동천 넉넉한 들녘 위를 날렵하게 나는 새가 있어 자세히 보니 날씬한 제비가 자태도 우아하게 먹이를 찾아 비상을 한다. 오랜만에 대하는 제비가 새삼 신기하기도하고 반가운 마음 그지없다.
제비가 먹이를 물고 팬션 숙소 통로가 되는 복도를 오가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 벽 바로 아래에 제비둥지 하나가 지어져있고, 어미가 올 때마다 노란 주둥이를 벌린 새끼들이 ‘째재잭 짹짹’ 귀여운 모습으로 먹이쟁탈 경쟁을 한다.
옛적 시골마을 초가집 처마에 흔하게 있었던 제비둥지가 지금엔 이토록 반갑고 귀한 풍경이 되었다.
방랑시인 ‘김 병연’이 한때 살았었고, 묘소가 있는 김삿갓면 와석리의 옛지명은 ‘하동’으로 1982년 안동 김 씨 대종회에서 초야에 묻혀 잊히고 있는 김삿갓 ‘김병연’의 묘를 찾아 봉분을 다시 올리고, 그의 천재적 문학 업적을 재조명함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친숙한 그의 기구했던 삶과 함께 구전으로 내려오던 문언시구 글이 일부나마 알려져 문학적 평가와 그가 남기 시(詩)가 연구되고,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사랑받게 되어 오늘에 이른다.
조선 후기 1807년 세도가 명망가인 안동김씨 일가로 태어난 김삿갓의 본명은 ‘김 병연’이고, 호는 난고(蘭皐), 별호는 ‘김삿갓’ 또는 ‘김립’이다.
김병연이 삿갓을 쓰고 방랑길에 오르게 된 연유는 조선시대 순조 11년(1811년) 평안도 지역에서 있었던 민중 봉기 ‘홍경래 난(亂)’이 일어났을 때 김삿갓의 할아버지가 난(亂)을 평정하기위해 전장에 나갔다가 홍경래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그때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부지하기위해 홍경래에게 구걸을 하였고, 그에게 벼슬까지 받았다. 그러나 난이 평정된 후에 그동안의 일들이 알려져 자신의 처지가 난처하게 된 조부 ‘김익순’은 죄를 면할 요량으로 다른 사람이 벤 적장의 목을 돈을 주고 사서 자기의 업적으로 내세웠으나 이것이 들통이 났다. 당시 조선시대에 임금을 속이는 일은 기군망상(欺君罔上)으로 대역죄가 되어 할아버지 ‘김익순’ 은 사형되는 형(刑)을 받았다.
김삿갓 김병연은 어릴 적에 집안에서 ‘조부(祖父) 김익순’의 행적에 대해 절대 언급을 금했기에 이 사실을 몰랐다. 그런데 그가 열여섯 되던 해 과거를 보았는데 그날 과시(科試)가 홍경래 난(亂) 때 죄인 ‘김익순(祖父)’을 비판하라는 주제였다. 청년 ‘김병연’은 그 사실도 모른 채 출중한 글 솜씨로 할아버지를 비판하는 글을 써서 과거급제를 하였으나 후에 모친으로부터 모든 사실을 알게 되어 몹시 괴로워하였다고 한다.
그 일이 있은 후 ‘김병연’은 “나는 조상을 욕되게 하였으니 하늘을 볼 자격이 없는 자(者)다.” 하고 스스로 자책하여 “평생을 삿갓을 쓰고 살아가겠노라”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는 이후에 자책하여 페인처럼 지내다가 고향땅 양주를 떠나 떠돌던 중에 깊은 산골 영월군 김삿간면(옛지명, 하동) 와석리 ‘어둔’으로 옮겨 은둔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가는대로 삿갓 쓰고 세상 명승지를 돌면서 풍류 시(詩)를 읊으니 일부가 구전으로 전해져 지금에 이른다.
그가 읊은 시(詩) 중에 “나와 삿갓” 글에는 그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내 삿갓은 정처 없는 빈 배 한번 쓰고 보니 평생 함께 떠도네. 목동이 걸치고 송아지 몰 며 어부는 그저 갈매기와 노닐지만 취하면 걸어두고 꽃구경 흥이 나면 벗어들고 달구경 속인들의 의관은 겉치레 체면치레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내사 아무 걱정도 없네.”
방랑시인 김삿갓 마을은 영월 상류로 첩첩이 높고 낮은 산이 에워싸고 있는 옥동천변에 있기에 예로부터 경관 수려한 수석산지로 애석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대한수총’에서 일박이일을 하는 여정 둘째 날 이른 아침 탐석에 나서는 ‘청수수석회’ 양 철모 석우의 차에 동행을 하였다.
활짝 내린 차창을 통해 싱그러운 유월 아침바람 부드러운 공기가 온 몸을 흩고 간다. 맑은 공기 아침바람이 좋다.
옥동천 아카시아 풀숲 방죽 아래 낚시꾼들이 길을 낸듯한 비탈길로 냇가에 이르러 맑은 계류 물여울에 발 담그고 가석(佳石) 한 점을 들어 마음을 비운 애석인(愛石人) 눈으로 바라보았다. 모처럼 도심을 벗어나 물 맑고 산수 좋은 옥동천에서 우리 일행은 자유로운 아침 탐석을 하면서 나오는 대로 즉흥 시(詩) 한 소절 주고받으며 풍류를 즐겼다.
그곳에서 ‘진 광일’ 석우는 쑥색 청둥호박 같은 모암에 담호가 있는 호수석(湖水石)을 찾아 큰 기쁨을 보았고, 양 철모 석우는 단발머리 소녀 모양을 한 형상석(形象石)과 인연이 되었다. 나 또한 조금 작지만 치마폭 다소곳이 앉은 여인상 문양이 있는 가석(佳石) 한 점을 탐석하여 흡족한 마음이다.
지난밤 영월지역 옥동천 주변에는 이슬비가 잠시 흩고 지나갔지만 남부지방에는 어제 밤부터 큰비가 내렸다는 TV 뉴스가 흘러나왔다. 남부지방에 일부 물난리가 있다는 전갈이 있어 수총 하계 워크숍을 오전으로 앞당겨 마무리하였다.
만나면 반갑고 함께 하는 시간들이 늘 기쁘고 즐겁기만 한 사람들. 다정스런 지기지우(知己之友) 석인들 헤어짐이 아쉬워 손 잡아보고 안아보고 두 손을 흔들어 아쉬운 작별을 했다.
물 좋고 산수 좋은 아름다운 김삿갓면 옥동천에서 보낸 “2020년 (사)대한수총 하계워크숍” 정(情)이 많은 애석인 석우들과 헤어짐이 많이 아쉽다.
아침에 옥동천에서 인연된 쑥색 돌 한 점. 여인상 문양이 곱게 들어있는 물 씻김 좋은 돌을 들어보니 어제부터 일박이일 그동안 함께 한 추억들이 그 안에 모두 녹아 있다.
다정한 모습으로 환하게 웃는 얼굴들….
만남이 반갑고 늘 기쁨을 주는 좋은 사람들, 그들이 있어 삶에 기쁨과 행복을 얻는다.
❉ 여기부터 3P 한 장 더 부탁합니다
물 좋고 아름다운 경관이 있는 옥동천에서 청수석석회 ‘진 광일’ 석우와 인연(因緣) 된 단아한 물고임 돌이 참하여 여기 시(詩) 한 줄 읊어 칭송한다.
맑은 물 내리는 옥동천
인연된 돌 한 점
청둥호박처럼 정감(情感) 있어라.
단아한 무봉석포(無峰石布)
암팡지게 패인자국
가히 호수(湖水)의 기개
내 맘에 담호(潭湖)로다.
억겁세월(億劫歲月) 물 씻김
쑥 빛 나는 고운질감
오묘한 연못 하나
시경(詩景)의 소호(沼湖)로다.
갈대밭 연못에
낚시 대 놓아볼까
개구리 연밥 수련을 키워볼까.
별이 내리는 밤
호수에 잠긴 둥근달 바라보며
주석지기(酒石知己) 좋은 벗
석정(石情)을 나눠볼까
솔바람 부는 날
좋은 벗과
그곳 소호(沼湖)에 둘러않아
내 아끼는 술 향기 함께 하리라. ■
(사)대한수총 35주년 2020년 하계워크숍
-백월초당 현석 주명섭 자문 / 퍼포먼스 휘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