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은 행복의 길이다"
한글 성경에서 ‘율법’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토라’는 ‘가리키다’, ‘지시(指示)하다’는 뜻이다. 율법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율법은 우리가 행복한 세상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알려 준다. 요약하여 말하면, 율법은 인간이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도록 하나님이 주신 삶의 나침반이다. 우리를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세상으로 안내하는 인생의 내비게이션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가운데에는 율법을 폐기된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더 이상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십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식이다.
혹자가 그렇게 생각하고 주장하는 배경에는 이런 논리가 자리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는 율법이 구원의 길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를 모두 대속하신 이후로는 율법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는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실천하도록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헛된 것으로 만드는 공로주의(功勞主義)라고 비난한다.
그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 율법이 폐기되었으므로 기독교회에서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거나 지키라고 하면 안 되는 것인가? 대답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율법이 폐기되었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한 소리이다.
물론 사람이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는 것은 인간의 공로(功勞) 때문이 아니고, 전적으로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 때문에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엡 2:4-5).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이다(엡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롬 3:28).
그러나 이것이 율법을 버려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율법을 가볍게 생각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믿음으로 의를 이루는 것이지만, 여전히 율법에 담긴 근본정신을 실현하도록 애써야 한다.
율법은 그리스도인이 구원 받은 성도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려 준다. 율법은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안들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도 율법을 존중하고, 힘써 지켜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율법은 여전히 삶의 지침이다. 바른 믿음은 율법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담긴 근본정신을 구현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 바울 사도는 로마서 3장에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된다는 것을 역설한 다음 마무리 부분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
율법을 가볍게 여기고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값싼 은혜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기독교회에서는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율법을 잘 가르쳐야 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힘써 지키도록 해야 한다. 율법에 담긴 근본정신을 삶의 현장에서 구현해야 한다. 그리할 때 이 땅 위에 행복한 세상이 펼쳐진다. 성령 안에 있는 의(義)와 평강(平康)과 희락(喜樂)의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출처 : 아산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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