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의 세 번째 만남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있었던 일-
三溪 金 鶴
삼세판이라 했던가? 남북의 정상은 그날 세 번째로 만났다. 그날따라 날씨도 맑고 포근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축하하려는 듯 미세먼지마저도 숨을 죽이고, 텔레비전 생중계를 시청하는 듯했다.
정장차림의 문재인 대통령은 걸어서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남쪽 군사분계선에 이르렀고, 인민복 차림의 김정은 국무위원장 역시 북녘의 판문각에서 걸어 나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문재인 대통령에게로 다가와 악수를 나누었다. 때는 2018년 4월 27일 오전 9시 29분. 그 때 누가 더 손아귀에 힘을 주었고, 두 정상은 그 순간 마음이 어떠했을까?
세 번째 정상회담의 주역들은 전임자들처럼 호들갑스럽지는 않았다. 맨 처음 정상회담을 가졌던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은 2000년 6월 13일 평양순안공항에서 만나 반갑게 포옹부터 했었다. 두 번째로 정상회담을 가진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10월 2일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지나 방북한 뒤 4‧25문화회관 광장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악수를 나누었다. 그런데 세 번째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판문점 선언문을 발표한 뒤에 포옹을 했다. 몸이 비대해서 그런지 포옹에는 인색한 것 같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와서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를 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은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았다. 예상치 못한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북녘 땅을 밟은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두 정상은 갑작스런 이 깜짝쇼를 연출하면서, 남과 북의 국민들도 그처럼 자유롭게 남과 북을 오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두 정상은 초면인데도 구면처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어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이들에게 기쁨과 안도감을 주었다. 생중계로 실황을 보도하는 텔레비전 화면 왼쪽 상단에는 ‘평화, 새로운 시작’이란 글자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잠시도 텔레비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악수를 하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두 정상을 보니, 60대 중반의 문재인 대통령과 30대 중반의 김정은 위원장은 마치 다정한 아버지와 아들 같은 분위기였다.
두 정상은 우리의 3군의장대를 사열한 뒤 양측 수행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레드 카펫을 밟으며 걸어서 회담장인 평화의 집으로 들어갔다. 두 정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성공적인 회담이 이루어지기를 빌었다.
한반도 분단의 비극을 고스란히 간직한 판문점이 오늘처럼 세계인의 주목을 끌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것은 분명 하늘의 뜻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이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말씀에 공감이 갔다.
판문점의 하루는 온통 뉴스의 바다였다. 프레스센터에는 국내외 기자들이 3천여 명이나 몰려들어 취재열기로 뜨거웠으니 말이다. 그들이 쏟아낸 뉴스들이, 온종일 8천만 배달겨레는 물론 세계인들을 얼마나 놀라게 했던가? 우리는 잠시도 텔레비전에서 눈을 옮길 수가 없었다.
남북정상은 100여 분 동안 회담을 가진 뒤 각자 수행원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그 뒤, 두 정상은 다시 만나 수행원도 없이 도보다리를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통역이 필요 없는 대화이니 얼마나 홀가분했겠는가? 두 정상은 판문점 습지의 도보다리를 걷다가 탁자가 마련된 의자에 앉아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두 분의 표정만으로도 진지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구나 싶었다. 무슨 이야기꺼리가 저리도 많을까? 아마 이 자리에서는 남북문제는 물론 북미정상회담에 필요한 정보까지도 교환했으리라. 이날 남북정상회담으로 고장 났던 한반도 시계는 다시 재깍재깍 돌아가기 시작했다.
오늘의 남북정상회담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가져다 준 보너스였다. 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고 응원단과 공연단, 태권도시범단 그리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일행이 찾아와 불안하다던 평창 동계올림픽이 평화올림픽으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남북 간에 특사가 오가더니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까지 끌어내기에 이르렀다.
오늘 처음 만난 남북정상은 둘도 없는 다정한 길동무 같았다. 종일토록 박수를 치고, 악수를 나누며, 웃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을 것이다.
오후 4시 30분, 두 정상은 판문점 소떼길 길가에 1953년생 소나무 한 그루를 심고, 백두산과 한라산의 흙을 섞었으며, 한강물과 대동강물을 뿌려 주었다. 그 곁에 두 정상의 이름과 날짜 그리고 ‘평화와 번영을 심다’란 표지석을 세웠다. 남북정상은 판문점에 또 하나의 볼거리를 마련한 셈이다.
오후 6시, 남북한 정상은 함께 마이크 앞에 서서 ‘완전한 비핵화’로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인들에게 엄숙히 선언했다. 우리는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역사의 땅 판문점에서는 두 정상의 목소리로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소개했다. 얼마나 감동적인 장면인가?
세계인의 관심꺼리인 핵문제는 ‘완전한 비핵화’를 하기로 선언하니, 마치 앓던 이가 뽑힌 것 같았고, 10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 느낌이 들었다. 또한 연내 종전선언을 하고 나아가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로 했다니, 이 역시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남북의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완성한 판문점 선언을 공동으로 발표한 뒤 열린 만찬장은 축제분위기였다. 문재인 김정숙 부부와 김정은 이설주 부부가 참석한 만찬장에서는 독한 문배주를 마시며 덕담을 나누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얼굴이 불콰해진 남북의 정상들을 비롯하여 참석자 모두가 일가친척 같은 분위기였다. 특히 이날 제주소년 오연준 군이 부른 ‘바람이 불어오는 곳’도 좋았지만 앙콜 송 ‘고향생각’은 더 호응이 높았다. 북에서 온 이들도 따라 불렀으니 말이다.
이어서 이들은 평화의 집 마당에서 ‘하나의 봄’ 환송공연을 본 뒤 예정보다 늦게 아쉬운 작별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밤 9시 26분 문 대통령의 배웅을 받으며 승용차에 올라 북으로 떠났다. 그 승용차를 에워싼 경호원 12명의 민첩한 움직임이 눈길을 끌었다. 그들은 똑같은 복장에 똑같은 헤어스타일이어서 누가누구인지 분간할 수도 없었다.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은 이렇게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번 성공적인 회담으로 남남 같았던 남과 북은 같은 핏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판문점 평화의 집 회담장 벽에 걸린 두 개의 둥근 벽시계는 30분 차이가 나는 서울과 평양의 표준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달라진 이 두 시각은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뒤 옛날처럼 서울 표준시로 통일이 되었다. 한반도의 시간이 먼저 통일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가을에 평양을 방문하고 나면, 가까운 시일 안에 우리도 평양으로, 원산으로, 함흥으로 여행을 갈 수 있으리라는 새로운 꿈을 하나 키울 수 있게 되었다. 내년으로 다가온 내 희수(喜壽:77세) 여행도 머나 먼 외국이 아니라 가까운 북녘 땅으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018. 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