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나를 잘 대접하자
얼마 전 딸이 제게 생일 카드를 보내왔다. 카드 겉봉투에 큰 글씨로 “아빠, 완전 사랑해요.”라고 쓰여 있고 그 봉투 속 카드에는 아름다운 “인생 3막”을 여는 5가지 열쇠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노는 법을 배워보세요
행복 네트워크를 구축 하세요
누군가의 성공을 돕는 일을 시작 하세요
고독과 친구가 되는 법을 미리 훈련 하세요
자기 자신을 사랑 하세요
이상의 인생 3막을 여는 다섯 가지 열쇠 중에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세요.”가 가장 많은 생각을 자아내게 한다. 딸의 눈에 내가 어떻게 비쳤기에 이런 말을 덧붙였을까.
내가 지금 나답게 살고 있는가 한 번 뒤 돌아본다.
저는 내 목표치가 남들보다 높은 편(one size bigger hat)이다. 그래서 항상 더 높은 곳을 향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 했다. “매사에 열정을”이라는 가훈을 마음속에 새기면서 “아직 목표까지 남았어! 힘내서 열심히 하자가 아닌, 어 이거 밖에 안 되는 거니? 모자라니까 더해. 남들보다 더해야 보통은 가니까 더하라고.“ 버틸 때까지 더 이상 못할 때까지 채찍질 하는 것이다. 인생을 숙제하듯 나 자신을 옭아매고 그 속에서 허덕여 왔다. 스트레스를 주는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저의 옷차림은 수수하다.
톨스토이는 "옷은 남이 흉보지 않을 정도, 먹는 것은 허기를 면할 정도, 집은 비바람 막고 두 발 뻗고 잠 잘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하다."고 가르쳐 주었고 그리고 함석헌 선생님은 "사람은 '속 살림'을 해야지 '겉 살림'을 해서는 아니 된다."고 가르쳐 주셨다. 이 두 분 말씀이 나의 뇌리에 꽉 박혀 있어 70여 평생 이 같은 생활 태도를 지니고 살아 왔다. 구두, 양복 등은 5년, 10 여 년 전 것, 아직 헤어지지 않았기에 아직도 신고, 입는다. 엊그제도 구두 뒤축을 갈아 신었다. 유행하고는 거리가 한 참 먼 나의 모습이다. 생활 태도가 이러하니 딸의 눈에 아빠가 궁상스러웠던 모양이다.
저의 식생활은 소박하다.
외식은 싸되 맛나는 곳을 잘도 찾아다닌다. 손님이 있거나 가족이 다 함께 하는 저녁식탁은 넵킨이며 수저며, 쟁반이 있을 자리에 제대로 놓여 격식을 차린 식탁준비를 한다. 그러나 나 혼자 앉게 되는 경우 그 차림은 모양이 전혀 다르다. 허술하기 짝이 없다. 뚝배기 채로, 아니면 남겼던 음식을 그대로 올려놓기도 하여, 갑자기 하녀 밥상 모습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생각을 해본다. 내가 나를 대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대접해 줄 것인가. 혼자 먹는 식탁일수록 스스로 우아한 모양 갖추기를 해야 하지 않는가......
내가 왜 그렇게 살아왔을까? 행복의 조건들은 완벽하고 만족할 만한 상태에 있는 것들이라기보다 조금은 모자란 상태이다. 모자란 것을 더 채우려 하다 보니 힘이 부대꼈다. 부족함에 만족해야 하는데 이것을 몰랐던 것이다. 더 나아가 내 욕심을 내려놓을 줄 몰라서 그랬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자신에게 대접을 잘 하지 못했다.
목표치를 높이 세우고 나를 채찍질해왔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수수한 옷차림과 소박한 식생활은 절약과 검소의 영역이라기보다 무관심과 홀대 그 자체였지 않았을까. 그 동안 내가 나 자신에게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 스스로 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당장 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진 못하겠다.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좀 더 사랑할 수 있을까. ‘나 자신을 사랑해주는 것이 그리 어렵나요.’라는 반응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인 듯하다.
그래서 빠른 생활 속에 매몰되어 버린 나로부터 빠져나와 나를 조망해 볼 수 있는 여유를 갖기 위하여 서울을 떠나 한적한 예쁜 길을 걷는다. 걷다가 멈춰 선다. 푸른 숲 계곡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눈을 감고 물소리, 바람소리, 풀벌레 울음소리 들으면서 내가 어떤 욕심과 잣대를 요구해 나를 괴롭혀 왔는지, 나의 부족함을 채우려 아등바등 해 왔는지 가늠해 본다.
근심, 걱정, 모든 시름 내려놓고 조용히 눈을 감고 이 세상 단 하나 뿐인 명품, 나 자신의 이름을 불러 본다. 자랑스럽고 사랑하는 상태야! 그동안 수고 많았어. ‘지금까지 잘살아 주었잖아’하면서 저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일상생활에서 겪었던 그 상처와 아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를 어루만져 주면서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꼬옥 보듬어준다. 울고 싶으면 엉엉 울어도 본다.
이처럼 나와 나와의 관계를 돈독히 가져가니 좋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의 마음을 돌보고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나 자신만의 시간, 나를 진지하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보자고 다짐한다.
사랑은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을 말한다. 자! 이제 남 사랑에 앞서 나를 사랑하는 습관을 길러보아야 하겠다고 마음먹는다. 줄서고, 줄 세우는 인생놀이에서 줄을 못섰더라도, 줄에서 빠져나오더라도 무조건 괜찮다고 다독인다. 부족한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나답게 살아보면 편하지 않을까. 내가 나를 인정하고 허용하는 것은 진정 내가 자유롭게 되는 것이니까요.
이제야 편안함이 무엇인지, 나를 사랑하는 게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덜 훌륭한 나, 마뜩치 않은 나이지만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지 않는가.
좀 바보면 어때?
좀 부족하면 어때?
좀 어눌하면 어때?
조금 모자람을 즐기며 그냥 편하게 사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첩경이 아닐까.
남은 인생을 손꼽아 본다. 그 중에서 내 뜻대로 살 수 있는 날은 며칠인가. 시간이 많지 않다. 내게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만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은 배우자를 위해, 자식을 위해, 부모를 위해, 친구를 위해 쓰는 시간 말고 순수하게 나만을 위해 할애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요.
상태야! 그동안 고단한 삶을 견뎌내느라 수고가 많았다며 나에게 자유로운 하루를 선물한다. 무엇이든 우선순위를 나에게 두고 자신이 자신을 최고로 여기고, 자신을 대접하자.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줄 알자. 늙어 가면서 나만의 방식으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아보자.
입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것, 먹는 것도 분위기 있는 장소에서 내가 먹고 싶은 폼 나는 성찬을 스스로에게 대접하자. 보고 싶은 영화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찾아다니고, 배우고 싶었던 강의를 등록하고, 좋아하는 곳을 찾아가며, 사고 싶은 것을 사고, 몸이 허락하는 한 일 년에 한 번은 나에게 주는 상으로 해외여행을 가는 것만으로도 '나를 위한 선물' 이 된다.
여행의 목표는 여행을 가서 '무엇을 하고 싶다'로 설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거창해야 할 필요는 없다.
축제에 참여해보기, 영화촬영지 찾아가기, 독서여행, 시장에 가보기, 바다 걸어보기, 사막에서 별 보기,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이동하기 등의 작은 목표라도 있으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나이 들어 쓰는 돈은 절대로 낭비가 아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우아해지려는 자기 노력을 해본다. 내가 나에게 상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따뜻한 날을 잡아, 딸 아들과 함께 제 집과 가까운 한강고수부지로 갈 예정이다. 아들이 성찬(?)을 위해 테이블과 의자, 식탁보와 촛대를, 딸과 며느리는 맛 나는 것들을 준비 할 것이다. 해질녘 강변에서 촛불을 켜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식사를 한다. 나를 위해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을 연출해 보고 싶다.
또 무엇을 할까? 내 욕망에 충실하고,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따르는 것이 결국 나를 사랑하는 첫걸음임을 조금씩 알아간다.
앞으로 일 년에 몇 번 만이라도 나를 위한 날을 만들자.
사소한 것이라도 자신에게 선물하게 되면 색다르고 설렘을 맛보게 된다.
나 자신이 심심하지 않도록 취미를 만들어주고..
친구를 사귀어서 외롭지 않게 해주며..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함으로 우울공화국의 비자를 받지 않도록 하고..
미래에 나 자신이 비참하지 않게 이런 저런 대비를 하고..
너무 많은 슬픔을 가슴 속에 담아 두지 말고 가끔은 펑펑 울어도 주고..
하루 중 잠깐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 다정한 말 한 마디를 내게 건네주어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어야지..
좋은 사람, 좋은 음악, 좋은 책, 좋은 말, 좋은 영화, 좋은 공연, 좋은 향기, 좋은 장소가 주는 기쁨과 위로를 내 스스로 즐기자.
최근에 부산에서 있었던 나훈아 콘서트를 다녀왔다. 수 천 명이 모였다. 그는 관객을 울렸다, 웃겼다 했다. 환상적이었다. 모처럼 즐거웠다. 전혀 본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름다운 추억 하나가 새로 생겼다.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가수, 나 훈아가 존경스러웠다. 나는 조 용필, 임 희숙, 최 백호, 박 완규, 주 현미, 박 상규 등의 콘서트를 찾아다니곤 했다. 그들의 노래 부르는 열정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래서 찾아다닌다. 오늘도 내일도.
왜 우리는 남이 우리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 때까지 기다려야할까. 왜 우리는 평가에 그렇게 의존하며 살아야 할까. 만약 그 어느 누구도 나를 중요하게 평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자신을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기용해보면 어떨까.
노년의 길목에 서서 애써 감추려 하지 말고 늙어가는 것을 가슴으로 느끼며 사랑하자.
몸은. 의사에게 맡기고, 목숨은 하늘에 맡기고, 마음은 스스로 책임지자.
앞으로 나 자신을 최고로 여기고 스스로 자신을 대접하며 살자!
이렇게 절실히 나를 사랑하면서 새로운 모습의 나로 거듭나고 싶다.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