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nomad21.com%2Fbbs%2Fdown%2Fboard%2Fboard_nomad_gisaJwEditor%2F20119291525%5B1%5D.jpg)
방콕 수완나폼 공항 게이트에 인천행 TG656편의 탑승 안내가 뜬다. 비행기에 올라 타 자리를 찾아가는데, 예쁘장한 승무원이 나에게 태국말로 말을 건다. 대충 들어보니 좌석위치를 알려주는 듯하다. 내가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라고 하니 미안하다고 한다. 그런데 왜 미안한 거지? 난 괜찮은데. 그동안 여행을 하며 동남아의 삘과 외모를 많이 닮아갔나 보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nomad21.com%2Fbbs%2Fdown%2Fboard%2Fboard_nomad_gisaJwEditor%2F20119291525%5B2%5D.jpg) <자정쯤의 한가한 수완나폼 공항, 아저씨 팔자 좋아 보여요>
비행기에 약간 늦게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는 넉넉하게 비어있었다. 원래 내 자리는 복도 자리 였는데 야경도 보고 편하게 갈 겸 비어있는 창가자리로 옮겼다. 그렇게 편하게 갈 수 있다는 달콤한 상상에 빠져있을 때쯤 푸켓행 연결편이 도착했다는 소식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이 비행기 안으로 몰려들었다. 내 자리를 뺐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동시에 어떤 아가씨가 나를 손가락으로 가르치며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오빠 우리자리에 사람 있어.
죄송합니다.
어떡해, 어떡해! 한국 사람이었어.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nomad21.com%2Fbbs%2Fdown%2Fboard%2Fboard_nomad_gisaJwEditor%2F20119291525%5B6%5D.jpg) <라오스의 시내버스 안에서도 각자의 자리가 있는 것이늘...>
그렇게 두 번 정도 창가에서 쫓겨나다가 결국 원래 내 자리로 왔다. 태국 국내선 연결편이 연착되는 바람이 내가 탄 인천행 비행기도 예정시각 보다 한 시간 정도 늦게 떴다. 스케줄 탓인지, 내가 탄 비행기는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커플들로 가득 찼다. 물론 내가 앉은 3열 좌석 옆 두 자리도 신혼부부들이 점유를 하고 있었다. 비행기가 어둠을 뚫고 이륙하는 순간 내 옆의 커플들은 담요를 날다람쥐처럼 활짝 펴놓고선 키스를 하고 있다. 그냥 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가리니 뭔가 더 있을 거 같아 눈은 몰래몰래 그들을 향하고 있다. 아 더욱더 심란해지는구나.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nomad21.com%2Fbbs%2Fdown%2Fboard%2Fboard_nomad_gisaJwEditor%2F20119291525%5B7%5D.jpg) <니들끼리만 맛있는 거 먹으니 좋니?>
인천까지 남은 시간은 4시간 반. 처음에 여행을 시작할 땐 비행기에선 그렇게 잠이 잘 오더만 지금은 이상하게도 잠이 안 온다. 이어폰을 꽂고 맥주를 마시며 수많은 허니무너들 사이에서 고독을 씹었다. 그 순간 이어폰에서는 사라브라이트만의 “Time To Say Goodbye” 가 흘러나온다. 그 노래를 들으니 진짜 안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길 위에서 만났던 사람들, 같이 쌓아온 추억들을 이생에서는 다시 접할 수도 없다는 생각을 하니 눈물이 핑 돌려고 한다. 어수룩하고 남루하며 가진 것 없던 내가 풍요롭게 여행할 수 있었던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들 덕분에 힘든 여행 와중에도 항상 살아있음에 감사할 수 있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nomad21.com%2Fbbs%2Fdown%2Fboard%2Fboard_nomad_gisaJwEditor%2F20119291525%5B8%5D.JPG) <야심한 시각 수완나폼 공항의 야경(출처:Google Earth)>
그렇게 감상에 빠져 있는 동안 기내에서 맥주 7캔을 거덜 냈다. 종류도 비어창에서부터 싱하를 거쳐 하이트까지 다양하게 섭렵했다. 그래도 잠이 안 오고 멀뚱멀뚱하기에 하나를 더달라고 하니, 이젠 승무원이 더 이상 안 된다며 거절을 한다. 그래서 화장실을 가는 척 하며 다른 승무원에게 내 자리로 몰래 맥주좀 가져다 달라고 해서 겨우 하나를 먹을 수 있었다.
내가 맥주를 게걸스럽게 먹는 게 부러웠는지, 내 옆옆 자리에 앉아있던 아가씨가(신혼부부 중 여자) 나에게 맥주 하나만 주문해 달라고 한다. 그러다가 같이 맥주를 마시며 몇 마디를 나눴는데 사무이로 신혼여행을 다녀오는 길이라 한다. 가운데 자리에서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신랑을 사이에 두고 새댁이랑 맥주를 먹으며 수다를 떠니 기분이 묘했다. 왠지 불륜 같은 느낌이 혼자 들어 빨리 말을 끊었다(오버하고는). 그렇게 맥주 8캔에 와인까지 곁들여 끝을 보고 화장실을 5번 정도 왔다 갔다 하니 어느새 동이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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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제 진짜 한국에 왔구나. 집에 가서 어떤 음식을 가장 처음에 먹을까? 돼지고기 슝슝 썰어 넣은 김치찌개?...요우! 맛있겠는걸. 내 인생에 신나고, 어려웠고, 배고팠고, 고생했고, 화려했던 3개월은 그렇게 돼지고기 김치찌개와 함께 아무렇지 않게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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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nomad21.com%2Fbbs%2Fdown%2Fboard%2Fboard_nomad_gisaJwEditor%2F20119291525%5B11%5D.jpg)
연재를 시작하기전 밝혔듯이 이번 여행은 정말 즉흥적으로 급작스럽게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남들에게야 신나고 자유롭게 산다는 식으로 포장을 하며 떠났지만 사실 모든 게 두려웠던 도피성 여행이라 함이 맞을 것입니다. 이쯤에서야 밝히는 것이지만 전 그렇게 자신감 없이, 좌절과 갑갑함으로 무장한 닫힌 마음을 안고서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렇게 웅크린 채로, 평균이하의 여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길 위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저를 있는 그대로, 날 것 그대로 넉넉하게 받아들여 주더라고요. 이번 여행을 통해서 저는 소소한 행복과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있는 하루하루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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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여행을 떠났던 6월, 저는 정말 자신감 없고 자기 방어적인 고슴도치의 마음으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누구에게 말도 먼저 못 걸었고, 간혹 나에게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이 있으면 참 어렵고 당혹스러워 했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한 달이 지난 7월 정도가 되니, 이런 외롭고 찌질 하고 불편한 생활도 적응이 되면서, 슬슬 지루함이 쌓여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8월엔 지루함을 타파하기 위해 사람들 속으로 자연스럽게 섞여들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자신감도 생겼구요. 마지막 9월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아쉬움으로 보내며 열심히 여행 했습니다. 아니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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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남들만큼 대단하게, 멋있게 부지런하게 다니지도 못했습니다. 때로는 무기력하고 찌질 하고, 외롭게 다녔으며 사기도 당하고 강도도 당하며 평균이하로 여행을 했습니다. 그나마 대부분의 불행과 어려움들이 글로서 희화와 되고 포장이 되었기 망정이지, 사실은 이 보다는 더 안쓰럽게 여행을 했습니다. 하지만 처음 글을 쓸 때부터 얘기한 바 있듯이, 이 글을 보고 평균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과, 싸구려 열패감, 소심함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읽고 공감했음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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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치고 생업에 매진하고 있는 지금에도 사실 변한 것은 없습니다. 여전히 잔뜩 웅크리고 있고, 소심하고, 걱정 많고, 겁 많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 3개월 동안의 찬란했던 추억만큼은 살아가는데 있어 행복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굳게 믿습니다. 어찌됐건 저 같은 사람도 이렇게 무사히(?) 여행을 마쳤습니다. 세상에서 도피를 하든, 열심히 일한 후 기분전환을 하든, 여러분들도 바로 가방을 싸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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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연재가 끝났습니다. 그래도 여행에서의 생생함을 곱씹으며 행복하게 썼던 것 같습니다. 우선 여행을 위한 군자금과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신 청년지오그라퍼님, 개질량님, 벤또님, 숭늉님 등을 비롯한 수많은 지인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3개월 만에 집으로 오는 길, 마중도 안 나오시고 아파트 베란다에서 제 이름을 크게 불러주시던 부모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미약하고 엉성한 글을 한 번이라도, 아니 한 문단이라도 읽어주신 몇몇의 분들께 정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 더 재밌고 새로운 연재로 찾아뵙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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