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48/'마늘 기적奇蹟']럴수, 럴수, 이럴 수가?
지난 6일, 마늘을 1298개 심었다(11구멍×118줄). 오전에 ‘하기 싫은’ 집안 대청소를 끝내고 단감 하나 따먹으려고 뒷밭에 갔다. 세상에나, 만상에나, 마늘 심은 한 두럭에 뾰족뾰족 싹이 솟아나있다. 세밀히 살펴보니, 안나온 구멍이 없었다. “백퍼(100%) 성공” “흐미-”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런 게 농사꾼의 즐거움일 터. 앞으로도 무슨 ‘재난’이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나, 일단 기분만큼은 째지게 좋았다. 즉시 사진을 찍어 아내에게 보냈다. 아내의 “애썼어요” 하는 짧고 건조한 인사말은 너무 밋밋했다. 하지만 이 기분을 부부라고 어찌 똑같이 공유, 공감할 수 있을까.
재밌는 것은, 조금은 외설스럽지만 말하자. 비닐 구멍 가운데에 심는다고 심었는데, 가양(옆)으로 심어진 마늘은 싹을 내미는데, 비닐이 큰 장애였으리라. 구멍 옆의 비닐이 조금씩 솟아올라 있는 것은 백퍼 마늘싹이 솟으려다 장애물에 걸린 것이다. 여기저기 비닐을 뚫고 솟아나오려는 마늘싹들이 안쓰러웠다. 아아- 새벽에 양기가 충천하여(우리말로 텐트친다고 한다) 팬티가 불쑥 솟은 것을 경험한 남성들이 많으리라. 이제는 육십이 넘어 한달에 한번도 택도 없는 소리이지만, 나도 젊어 한때는 에브리데이 그랬었다. 꼴려야 거시기이지 꼴리지 않으면 어떻게 거시기라 할 수 있겠는가? 옛날 선비들의 아침인사는 "진지 잡수셨습니까""가 아니고 "조양朝陽은 여전하시죠?"라고 했다는 말과, 백기완 선생이 '특히'의 순우리말을 '땅불쑥하니"라고 썼던 생각이 났다. 또한 고등학교때 체육선생이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라는 '새마을 노래'를 개사해 '새벽X이 꼴렸네, 너도 나도 일어나 XXX를 칩시다'로 부르자던 생각도 났다. 지금 생각하면 그 선생님은 유신과 새마을운동에 대해 엄청 반감이 있는 '반골교사'였으리라. 최근 어느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비속어를 썼다하여 징계받는 사건도 있었지만. 아무튼 “거대한 뿌리” 분기탱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멋진 풍경'이다. 뛰어다니다시피, 구멍마다 일일이 손으로 비닐을 찢어 햇볕을 잘 받도록 넓혀 주었다. 숨통이 트인 마늘 싹들은 이제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마땅히 숨을 쉬고 바람을 과 이슬을 맛보며 하늘을 향해 비상해야 하리라. 그러니 부지런한 주인장이 얼마나 고마울 것인가. “땡큐, 마스터”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아무튼, 마늘 한 두럭 심는데도 제법 힘이 들었다. 먼저 굳어진 땅을 일일이 삽질하여 부수고 골라 두럭을 만들어야 한다(하루 작업). 다음에 고자리약을 뿌리고 뿌리발육 촉진제, 그리고 퇴비를 아주 넉넉히 뿌려 흙과 함께 뒤섞었다. 세상에, 96세 아버지가 삽질을 하려고 나서도 질색을 하며 말렸다. 이것은 ‘젊은 넘’들이 하는 짓인 것을, 멀칭(비닐 치기)도 만만찮다. 바람이 좀 자는 날, 친구와 함께 ‘완벽하게’ 비닐 단장을 한 후, 하루쯤 지나, 마늘을 일일이 구멍 정중앙에 심었다. ‘이것이 제대로 싹을 틀 것인가’ 초미의 관심사는 ‘완판승’이었다. 이제 가끔 뿌리 주변의 충해(뿌리썪음병 등)만 막으면 겨우내 추위를 이겨낸 마늘은 짱짱하게 뿌리를 내릴 것이다. ‘6쪽 마늘’이니 제대로만 되면 수확은 6배가 확실하다. 마늘도 그렇지만, 벼를 생각해 보자. 씻나락에서 싹튼 모 한 포기가 알배기(배동바지)를 하여 도대체 몇 백배, 몇 천배의 나락을 우리에게 안겨주던가. 초보농사꾼 3년차, 이런 것을 볼 때마다 ‘이것이 기적이니 무엇이 기적이냐’고 사방팔방 아무에게나 웨장을 치고 싶다. ‘너희가 게 맛을 아느냐’는 광고멘트도 있었지만, 내가 3년새 겪고 체험한 ‘자연의 신비’는 이렇게 말도 못할 지경이다. 그러니, 내가 농사 짓는 것이 어찌 재미가 없겠는가. 몸은 힘들수록 정신은 은화처럼 맑아지거늘.
마늘이 성공적으로 자라면 몇 접(1접 100개)이나 될까? 최소 12접은 되어야 형제자매들과 나눠 먹을텐데. 여분이 있으면 친애하는 친구들에게 주리라. 그게 얼마나 된다고 ‘make money’를 꿈꾸겠는가. 생업生業이 아닌 이상, 수확물이 있으면 무조건 나눠먹어야 한다. 말년에 농사꾼이 된 보람이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That is my pleasure’라는 걸 피부로 느낀다. 마늘쫑을 뽑아먹는 것도 별미이고, 장아찌로 담가 제법 오래 먹을 수도 있다. 우리 두 아들네도 마늘(garlic)을 어떻게 심고, 어떻게 자라 우리 식탁에 오르는지도 모르면서, 그럴듯한 양식당에서 ‘마늘피자’를 즐겨찾는다. 나는 그런 것을 보면 좀 ‘한심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1년에 한번이나 할아버지집이라고 오는 아들과 손자에게 자세히 알려주고 싶다. “애들아. 이게 모라는 것이고 벼가 되어 나락을 베어 방아를 찧으면 우리가 먹는 쌀이 된단다. 할애비가 곧 햅쌀을 보내주마” 더불어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도 알려주고 싶다. 나는 왜 그렇게 일일이 알려주고 싶은 게 많을까? 허나, 듣는 귀 있는 아들이나 손자가 요즘 세상에 얼마나 될까? 그것이 문제로다! 그래서 내가 ‘60대 꼰대’일 것이다. 꼰대라고 비웃어도 좋지만, 나는 기초한자와 바둑, 더 나아가 나도 아직 잘 모르는 ‘자연의 섭리攝理’를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어떻게 좀 안될까? 이 애비, 할애비 ‘체면’을 봐서라도 상당히 못마땅해도 ‘들어주고 귀 기울여주는 슬기’를 가지면 안될까, 이 말이다. 이넘들아!
나는 늘, 못내 궁금했다. 대체 땅 속에서는 ‘무슨 작용’을 하길래 씨만 꽂고 심어놓으면 이렇게 ‘대박의 수확’을 할 수 있는지 지금도 신기할 따름이다. 땅콩 한 알에 수 백개의 땅콩이 따라올라오는 것을 보고 솔직히 ‘기절氣絶’할 뻔했었다. 올해는 ‘그놈의 두더쥐’에게 고스란히 소중한 수확물을 백퍼 뺏겨버렸지만 말이다. 대봉시도 그렇다. 태풍에 싸그리 떨어질 것은 또 무엇인가. 이제 곧 마늘두럭 옆에 만든 또다른 두럭에 양파를 심을 것이다. 양파도 그렇다. 모종이 마치 실과 같다. 이렇게 야리야리한 양파 모종이 어떻게 거센 추위의 겨울을 이겨내고 따뜻한 봄이 되면 주먹만한 양파로 모습을 바꿔 우리의 식탁을 맛나게 하는가. 환골탈태換骨奪胎가 따로 없다. 재밌는 것은, 양파는 각종 병충으로 인한 고통은 호소하지 못하면서 캘 때가 되면 줄기를 땅으로 뉘인다는 것이다. 기특하게도 ‘때가 되었으니 캐 드세요’ 자진신고를 하는 것이다. 수박도 꼭지부분에 무성한 ‘털’이 떨이지면 딸 때라고 한다. 콩도 잎을 다 떨구고 줄기만 남으면 낫으로 베어 털어야 한다.
평생 농사꾼 자식이었으면서도 나는 왜 이런 ‘간단한 진리’를 모르고 있었는지 생각하면 한심하기 그지 없다. 흔히 논농사는 전부 기계로 하니까 할 일이 없고 일도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물꼬 보는 게 사실 장난이 아니고, 이삭비료나 제초제 원반던지기 등을 때에 맞춰 해야 한다. 초보가 어찌 알겠는가. 언제까지 물을 대야 하고, 언제부터 논을 말려야 하는지, 피를 전멸시키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고 뛰다 죽을 노릇이었다. 3년차인 내년에는 잘할 수 있을까? 그것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피와 악성풀을 악착같이 뽑는 시간은 잡다한 인간세상을 생각하는 시간이다. 피같은 사람, 깜부기같은 사람은 어디서나 반드시 있게 마련. 한 세상 살면서 어떤 경우에도 민폐民弊를 끼치면 안된다. 주변에 도움이 되면 되었지, 저 잘난 맛 독불장군처럼 공해公害가 되면 될 일인가. 일찍이 안동의 현자 전우익 선생은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라는 책을 내었다. 한 두럭에 온전히 솟아난 마늘을 보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잠긴다. 가을이 깊어간다. 나는 외로운 것인가? 충만한 것인가? 아지 모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