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난 몰랐네
어느 날 퇴근길,
저녁 약속이 없어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가수 임 희숙의 라이브 노래가 듣고 싶어졌다. 그래서 운전기사인 이 대리에게 말했다. "임 희숙의 라이브 쇼하는 곳으로 가요." 이 대리는 이 주문을 듣고 "그 말씀을 지금 하시면 어떻게 해요?"라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자기가 모시는 분이 어떤 가수 노래를 좋아하는지, 그 가수가 저녁에 어디에서 노래를 하는 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프로기사 아닌가?”라고 하고는
“그럴 필요 없어요. 그냥 집으로 가 주세요."라고 하였다.
사실 나는 몰래 조용필, 나훈아, 조영남, 박완규, 최백호, 김수미, 최성수, 주현미 등 유명 가수들의 콘서트를 자주 다녀왔다. 그들의 공연을 감상하면 마음이 풍부해지는 것 같았다. 이는 내가 즐기는 취미 중 하나로, 그 경험들은 나에게 큰 즐거움을 줬다.
그러나 이 경험이 있은 후 6개월 동안 나는 임희숙 가수의 라이브 카페에 가자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사이에 이 대리는 임 희숙 가수의 매니저와 연락을 해서 언제 어디서 공연을 하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알아두었다. 그래서 이 대리는 내가 그녀의 라이브 카페에 가자고 얘기하기를 내내 기다렸다고 한다. 모시고 갈 준비가 다 되었으니까....
나는 이런 사실도 모른 채 어느 날 집으로 퇴근 하던 중에 예전에 얘기한 것처럼
“이 대리! 임 희숙이 노래하는 라이브 카페에 가요.”라고 주문을 했더니
“네”하면서 나를 종로 5가의 어느 ‘재즈 카페’로 데리고 갔다.
웨이터가 안내한 좌석은 무대가 잘 보이지 않는 자리였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분위기 깬다고 일부러 후미진 자리로 안내하는구나 생각하고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안경을 쓴 30대 중반 여성이 내 자리로 다가와 "박 회장님이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내가 아는 여성이 아니라 의아해하며 "누구신지요? 회장은 아닌데요."라고 대답했다. 그 여성은 다시 "박 상태 회장님 아니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이름은 맞지만 회장은 아니고 사장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여성은 매우 반가워하며 자신이 임 희숙 선생님의 매니저라며 소개했다. "사장님 기사 분이신 이 대리께서 얼마나 자주 전화를 했는지 몰라요. 자신이 모시는 사장님이 임 희숙 가수의 노래를 좋아하는데 언제, 어디서 노래를 부르는지 항상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고 했어요. 드디어 박회장님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는 너무 후미진 곳이네요. 제가 무대를 아주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여 자리를 옮겼다. 나는 이 대리가 그동안 임 희숙이 노래하는 카페를 수소문하느라 많은 노력을 했구나 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드디어 1시간 동안 진행되는 임 희숙의 라이브 쇼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대 실망이었다. 재즈 카페인만큼 재즈만 부르니 내가 무슨 내용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괜히 왔다고 생각하며 시계를 보니 쇼가 10여분 정도 남았을 즈음이었다. 그때 노래 하나를 마무리하고 난 임 희숙은 "손님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귀한 분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라며 "그 분은 저 멀리 여의도에서 대형 신용평가 회사를 운영하는 박 상태 회장님이십니다. 박 회장님 일어서시어 주위에 인사를 나누시지요."라고 해서 조금은 당황해하면서 반쯤 일어서서 좌우로 인사를 했다. 계속해서 그녀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박 회장님이 회사 사정상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 제 노래를 듣기 위해 6개월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이는 저에게 큰 감동입니다. 그런데 저분이 요청하신 곡은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와 <진정 난 몰랐네>입니다. 사실 임 희숙하면 알려진 노래로는 이 두 곡밖에 없지요. 그런데 이 카페는 재즈 카페로 유명하여, 저 역시 재즈만을 부르도록 계약이 되어 있답니다. 마침 카페 사장님이 저쪽에서 보고 계시는군요. 그러나 여러분들이 이 두곡을 불러도 좋다는 동의의 박수가 있으면 사장님도 양해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이 같이 말을 하자, 젊은이들이 우뢰와 같은 동의의 박수를 보내 주었다. 이에 그녀는 내가 요청한 두 곡을 열창했다. 그 순간 나는 큰 기쁨과 만족을 느꼈다.
10여분의 오롯한 추억이었다. 웨이터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가격이 너무 비싸지도 않고 너무 싸지도 않은 중간 가격대의 와인 한 병을 주문했다. 그때, 내가 앉아 있는 자리로 임 희숙 가수가 다가와서 인사를 건넸다.
"박 회장님! 저는 임 희숙입니다. 제 노래를 좋아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노래를 직접 듣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는데, 그녀가 옆자리로 와서 인사까지 하니 기분이 더 좋아졌다. 임 희숙 가수는 이어서 말했다.
"회장님, 저는 범띠에요.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것 같아요."
"나도 범띠에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어머! 정말요?" 하며 악수를 청했다. 그녀는 서글서글한 성품이었다.
"회장님, 음식은 무엇을 좋아하세요?" 그녀가 물었다.
"나는 북창동 순두부 같은 것을 좋아해요."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나도 순두부를 엄청 좋아해요. 저랑 식사한 번 같이 하기로 해요.”하며 제안했다.
그래서, '임 선생님, 메니저와 내 회사 비서가 서로 연락하도록 하시지요.' 라고 말하고는
“나는 2,500여 명의 직원이 있는 회사의 사장이라서 직원들 월급 줄 돈을 많이 벌어야 해서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요. 그럴 때마다 임 선생의 노래를 듣곤 해요. 임 선생의 열정적인 노래를 듣다 보면 스트레스가 많이 풀려요. 임 선생처럼 열정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자책하던 마음도 다독여주죠. 또한, 제 또래인 CEO들도 임 선생의 노래를 듣고 힐링을 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니까, 임 선생은 임 선생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다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노래를 부르셔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오늘 정말 소중한 말씀을 들었어요. 제게는 우뢰와 같은 박수보다도 더 큰 응원이 됐어요. 귀한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노래하겠습니다. 정말 힘이 되는 말씀이에요." 라고 대답했다.
이어서 나는 "꼭 그렇게 하시길 바랍니다. 자, 이제 일어나세요. 다음 공연장으로 가서 돈 벌어야죠." 라고 말했다. 그녀는 손목시계를 보며 "맞아요. 아닌 게 아니라 다음 공연장으로 가야 할 시간이군요. 우리 꼭 순두부 같이 먹도록 해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눴다.
이날 이후로 그녀와의 연락이 끊겨 순두부 식사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임 희숙 선생의 노래를 듣기 위해 콘서트에 두 차례나 다녀왔고, 저녁 카페에서 한 차례 더 그녀의 노래를 듣게 되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굴곡진 삶의 흔적이 담겨있는 듯했다. 짙은 허스키한 소리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바이브레이션 창법은 매우 독특했다. 요즈음 가끔씩 그녀의 두 곡을 듣곤 했는데, 그녀의 노래를 들을 때면 그날 저녁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곤 해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1960년대 말에 한국 흑인 음악의 선구자로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소울의 대모'로 불리기도 했다. 특히 <진정 난 몰랐네>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그녀는 결혼 후 5개월 만에 이혼하고, 재혼했으나 또 다시 이혼했다. 이후 우울증과 음주로 인해 자살까지 시도하기도 했으며, 대마초 파동에 휩싸여 한동안 활동하지 못했다. 그러나 1984년 5월, 쓰레기통에 버렸다가 건져낸 노래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는 그녀를 부활시켰다. 이 노래는 시인 백 창우의 고단한 삶과 중견 여가수의 아픈 과거가 어우러진 작품이었다. 그녀의 굴곡진 인생의 나이테가 이 노래에 겹겹이 쌓여 있는 듯하다.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가사 중에 있는 '등을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라는 구절 때문에 나 혼자 주저앉아 소리 없이 굵은 눈물을 뚝뚝 흘러내릴 때도 있었다. 그래서 그 노래는 들어도 또 듣고 싶은 노래가 되었다. 자신만의 독특한 빛깔을 지니고 무대에서 열창하는 그녀를 보며 힘들고 어려워도 버티면 언젠가 기쁜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느낀다. 좋아하는 가수의 인생 여정을 자세히 알고 나서 그의 노래를 듣다 보면 가사가 가슴 깊숙이 스며든다. 감동이 함께 하게 된다.
나이가 든다는 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간다는 게
좀 쓸쓸한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 살아있어~~~
가수의 허스키한 목소리의 애잔한 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미 젊음을 소진한 나에게
약간의 위안을 준다.
젊은 시절의 열기는 없어도
작은 위안이라도 내 마음에 온기를 전해주니 고맙지 않을 수 없다.
음악으로 버틴 임 희숙 선생의 삶에 박수를 보내며,
그 음악으로 우리를 위로해준 그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