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보도만 나오면 등장하는 이 사람 '백두산 연구만 20년' 부산대 윤성효 교수
"폭발? 가까운 시일이란 건 100년 이내"
최근 "백두산이 곧 폭발한다"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교수가 있다. 부산대 지구과학교육과의 윤성효(52) 교수다. 하도 자주 등장해 이제는 '백두산 박사'란 별명이 붙었다. 화산(火山) 전공 학자가 몇 안 되는 국내 학계에서 백두산을 연구한 사람은 그 말고는 찾기조차 힘들다.그가 백두산에 '꽂힌' 것은 20년 전. "부산대에서 박사를 마치고 교수로 임용된 지 얼마 안 된 1990년이었습니다. 독일에서 국제화산학회가 열렸는데, 백두산 논문이 하나 있더라고요. 근데 쓴 사람이 일본학자예요. '민족의 영산을 일본인이?'하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 ▲ 지난 4월 화산재를 뿜어내고 있는 아이슬란드의 에이야프얄라요큘 화산. /로이터뉴시스
이후 시간만 나면 백두산에 간다. 1996년에는 중국에 교환 연구원으로 가서 백두산에서 살다시피 했다. 원래도 그의 연구실은 산. 심하면 일년 중 3분의 1만 집에서 잤다. 속리산에서는 사고로 오른쪽 인대가 파열된 적도 있다.
중국인들은 처음에 "화산이 살아 있다"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1996년 중국에서 국제지질회의가 열렸고 서양 학자들도 백두산을 답사했다. 그들이 "위험한 화산"이라고 하자, 중국도 달라졌다. 1999년 '천지화산관측소'를 세웠다. 백두산을 중국인은 '장백산'이라고 부른다. 백두산 화산을 '천지화산'부르는 것은 일종의 타협이라고 볼 수 있다.
"백두산은 세계적으로 또는 과학적으로는 불과 10여년 전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어떤 의미에서는 젊은 화산입니다."
이후 1000년 전의 백두산 대폭발이 인간의 역사가 기록된 이래 최대였다는 점도 밝혀졌다. 그전까지 유사(有史) 이래 최대 화산폭발은 1815년의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폭발로 화산재가 지구 전체를 떠돌아 유럽에 미니 빙하기와 대기근을 몰고 왔다.
이보다 화산재의 양이 더 많았던 백두산 대폭발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당시 화산재는 지금도 함경도에 74m, 홋카이도에도 5㎝ 이상 높이로 쌓여 있다. 윤 교수는 "대폭발은 100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일어나면서 발해 멸망의 원인이 됐다"고 했다.
대폭발이 또 일어나면, 북한 함경도는 화산재로, 백두산의 중국 쪽은 홍수로 초토화된다. 일본 홋카이도와 혼슈 북부에는 화산재가 함박눈처럼 내린다. 한국은 항공기 운항에 타격을 입을 정도의 간접 피해가 예상된다.
- ▲ 지난 2일 부산대 연구실 앞에서 윤성효 교수가 백두산 사진을 보며 설명하고 있다. /정성진 기자
그는 "재해라는 것은 최대의 피해에 대비해야 그보다 약한 것에도 대비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이걸 미리 알기 위해서는 백두산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애국가에서 백두산을 노래부르지만, 우리는 아는 게 더 없다. 일부 책엔 아직도 높이가 2744m로 돼 있다. 일본이 강점기에 잰 것이다. 중국이나 북한은 2750m라고 한다. 그는 "화산활동으로 산이 융기되며 그만큼 높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 북한 쪽 백두산을 조사하지 못했다. 중국에서는 간첩이란 오해를 받은 적도 있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최근 윤성효의 연구가 무슨 뜻인지 보고서를 요구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중국은 관광객 감소를 걱정하기 때문에 화산 폭발 뉴스에 민감하다.
그는 "윤성효 교수에 따르면 2014년 백두산이 폭발한다"는 식의 보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말한 적 없다고 했다. "화산이 가까운 시일 내에 폭발할 수 있다고 할 때 그 시일은 '100년 이내'입니다. 호들갑 떨지 말고 착실히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