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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탄신일’이기도 하였던 5월 25일, 월요일, 8시 54분 출발. 군산이 낳은 천재작가, 문학의 거장 채만식 선생을 만나보는 2015 문학기행. 류명희 회장님 인사말씀, “공사다망하신 가운데 함꼐 해주신 마음 감사드리며 각자 본인을 위해 박수~. 오늘 참석하신 분들은 일당백이라 여기셨으면 합니다. 행사기획을 해주신 문화국장님께 감사드리고 오늘 운전은 한지 공예가인 친구의 부군이기도한 백영기 기사님입니다, 감사 드립니다~”.
문정엽 문화국장님, “부처님께 기도로 오늘 하루 무사하도록 기원합니다. 송남숙 회원님은 친구분까지 오셔서 감사드리고 즐겁고 유익한 시간 되시길. 몸이 부서지도록 봉사하겠다는 정일모 총무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정천모 회원님, “회원으로 직분과 사명을 다할 것”, 여는 시 ‘유리에게 묻는다’(이기철)을 낭송.
송남숙 회원님, “기쁘고 열심히 하루를 보내겠습니다, 친구를 소개합니다”, 친구분 황기임님, “모조록 좋은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김복남 찾시국장님, “목시 요즘 못가서 야유회라도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참석”, ‘꽃’(김춘수)를 낭송.
어제 김제 공연 좋아 회원가입요청이 있으셨고 글쓰시는 분 이셨다는 회장님의 소개말씀. 문화국장님 노래, ‘옛 시인의 노래’, 김복남 국장님, ‘과수원길’, 이진아 부총무님 노래 ‘백지로 보낸 편지’. 군산초등학교 선배이신 군산의 권수복 회원님의 안부 이야기와 폐교 해야할 상황에 놓인 초등학교의 소식에 격세지감을 느낀신다는 문화국장님 말씀. 9시 45분 벌써 채만식관에 도착하였습니다.
군산시청 주민생활국장으로 공무원생활을 마감하시고 문화해설사로 활동하고 계시는 6년차 베테랑 해설사 이종예님께서 배웅을 나와 주셨습니다.
‘탁류’, ‘태평천하’,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 ‘두 순정’ 등 수 많은 걸작을 만들어낸 근대작가 채만식. 그를 기념하기 위한 채만식 문학관에 5월에 5,000명이 다녀갈 정도로 관심이 높아졌다. 채만식은 1902년 6월에 출생 1950년 6월 49세의 나이로 익산시 마동에서 삶을 마감. 장편, 중편, 단편의 300여편의 소설과 평론, 잡문 등 인정받는 글로만 1,000여편이 남겨져 있을 정도로 문학의 거장이다. 중절모의 말끔한 코트에서 보듯 깔끔한 성품. 어린시절 부유한 집안과 풍족한 삶에서 영향을 받은것 같다. 하지만 말년에는 원고지를 사지 못할 정도의 궁핍을 겪어야만 했다. 이웃집이나 친구집에 갈 때 자기 수저를 가지고 갈 정도로 결벽증도 있었다 한다. 막걸리와 담배를 애호했다.
채만식은 ‘가난과 질병 그리고 지식인의 무능과 싸운’ 내용의 글을 주로 썼다. 생가에는 옛 우물이 남아 있다. 와세다 대학 재학시절 축구부 활동에서는 ‘센터포드’로 활약. 토속적 할머니의 정감을 그린 ‘배비장전’등이 친필로 보관되어 있다. 원고료를 받기위해 필명을 여러번 바꾸었는데 그로 인해 지금도 많은 일화들이 양파껍질 벗겨지 듯 탐색연구되고 있다. 원고지 살 비용이 없을 정도의 빈곤하여서 원고지 5권을 지인, 친구들이 사다주면 그렇게 좋아했다 한다. 고교재학시절 집안의 강권으로 불행한 삶의 한편이 된 하숙집 딸인 은선홍과 결혼. 와세다대학은 관동대지진으로 회의감을 품고 중퇴로 귀국. 그 이후 신문사 기자와 글을 쓰는 일을 하였다.
채만식을 소재로 많은 졸업논문을 쓴다. 얼마전에는 서울대 교수 5명과 대학원생 40명이 다녀갔다. 묘소에 가서는 정중한 예의를 갖출 정도로 그의 방대하고 높은 문학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소월의 육필원고’ 1장은 현재 1억2천만원에 간다. ‘한국의 피카소 하반영’의 작품도 1억원을 호가한다. 하지만 채만식의 원고는 자손들의 불란으로 많은 원고가 쓰레기처럼 버려져 버리기도 했다한다. 부인이신 ‘은선홍 여사’는 얼마 전까지 생존해 계셨으며 차남은 현재 구리시에 실제 생존해 있다.
‘금강’이라는 서봉택 회장께서 쓰신 글이 걸려있는 영상세미나 실. 금강은 조치원과 청주의 물줄기가 공주의 곰나루에서 만나고 다시 추풍령과 차령산맥의 충청산맥이 진천에서 만나 이어오다 백마강에 이른다. 이어 강경나루로 흐르고 서천과 군산던덕의 군산항구에 다다르게 된다. 백마강까지는 맑은 금강권이지만 이 이하로는 탁류다. 소설 ‘탁류’는 강권, 강간, 강법, 가난에 대한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순진한 초봉이 살인까지 하게 되는 혼탁했고 혼란속 무법천지였던 당시 사회상. 문학관을 나와 금강하구댐과 진포해안가로.
문학관 앞의 기찻길은 수탈을 회상케 한다. 군산의 70%의 곡물을 수탈했다. 150량의 기차 300만석의 쌀을 실어 날랐다. 역사적으로 백강, 기벌포, 진포전투가 유명하지만 이곳 진포항은 나·당연합군이 전투를 벌인 곳이기 하다. 운좋게도 어청도에서 54㎞를 날아온 가마우지 때가 마침 관광객을 반긴다. 물질하는 가마우지들의 모습이 참 재미를 더해 줍니다. 보는 방향에 따라 바다의 풍광이 달리 보인다. 해외 어느 곳에 못지않을 만큼 절경을 이루고 있다. 진포대첩은 최무선 장군이 화포로 왜구를 무찌른 싸움이며 이곳에 그의 용맹성을 기념하기 위해 화포, 지식인을 상징하는 자전거와 산업을 상징하는 자동차가 같이 탑에 세워져 있다.
11시경. 금강 하구둑에는 뱀장어, 황복 등의 어류가 가득하다. 아닌게 아니라 하구둑 아래를 내려다 보니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가득합니다. 앞으로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됨에 따라 많은 공장이 들어서고 새아(기아)특수강 등의 군산공업단지(1,000만평)의 공장들이 많은 산업용수가 필요하다. 둑을 헐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향후 금강 하구둑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설이라 할 수 있다. 3년 가문에도 버틸수 있고 홍수 조절기능도 되어 있다. 참고로 비응도에는 30만톤의 선박(아파트 20층높이)이 건조되는 장관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얼마전 증권협회 정관계 원로들이 왔다가 금강하구둑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도 하였다. 증권가치의 상승과 연결지어보는 그 분들의 비즈니스 감각.
진포시비공원에 이르러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해안가도 바라보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의 시도 정일모·문정엽 회원께서 낭송도 하고, 해당화, 푸른 나무들, 시원한 바닷바람에 흣 날리는 풀들이 있어 더욱 상쾌하게 느껴지는 곳, 시가 숨쉬는 곳에서 시에 흠뻑 젖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12시경. 함경도 병마사를 지내고 충청 수군을 담당했던 최호장군 묘역에 도착. 이순신 장군과 칠천량 해전을 함께 참전했으며 이순신 장군보다 연배가 앞섰으나 호남사람이라는 이유로 조명을 받지 못한 것 같다. 참배 후 뒷편에 있는 활쏘는 시설로 이동. 참 화살은 ‘쏜살같이 날아갑니다“.
12:25. 군산 발산리 5층 석탑이 있는 곳으로 도착. 폐교된 발산초등학교를 유물전시장소로 활용하고 있는 곳으로 옛 일본인 농장지주는 이곳 학교에 있는 창고에 많은 귀한 유물들을 보관하였다 합니다. 자기, 서화, 음식 등. 육각등에 용이 요동치는 기둥 그리고 그 위의 연꽃모양의 석조물이 있는 석등. 국보로 지정된 유물이고 만주에도 유사한 방식이 있다는 해설사님의 설명. 점심장소로 이동.
‘깐치멀’이라는 정보화 농촌마을. 마을 운영위원장님이시고 중학교 교사도 역임하셨다는 서헌익 위원장님께서 배웅해주시고 운영하는 식당에서 청국장으로 맛있는 점심을 하였습니다. 문국장님의 건배사, ‘전북재능시낭송을 위하여~’ ^^ ‘깐치멀’은 예날에는 지형이 까치가 날개짓 하는 모양이라서 ‘작촌’이라 하였지만 더욱 친근한 우리말로 ‘깐치멀’이라 바꾸었다 합니다. 서위원장님의 친절과 고마운 마음을 뒤로하고 ‘진성창지’로 이동.
13:50경. 진성창지(倉地)는 옛날 나라에 바치는 곡물을 비축해 놓았던 전국 12개 창고중의 하나. 토성(마을을 향한 전방에 흔적이 남아 있음)을 쌓아 방어했고 언덕이 있는 곳이어서 왜구가 쉽게 약탈을 해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합니다. 이곳에서 쌀이 올라와야 관료들의 봉급을 줄 수 있었다 합니다. 태응바다를 건너 예성강으로 해서 개경으로 곡물을 날아 실었다 합니다.
14:15경. 채만식 선생의 생가도착. 지금은 다 헐려있고 터와 주축돌과 우물시설만 남아 있었습니다. 해설사님께서 앞으로 많이 복구해야하지만 우물에 죽은 개를 잡아 넣기도 했다는 동네사람들의 한심한 작태에 개탄하기도 하였습니다. 생가는 비교적 번화한 읍내의 한켠에 있었습니다. 조금 위쪽으로 사신과 고급관료들이 오면 연회를 베풀었다는 연지(蓮池)와 옛날 유림들이 많이 이용했다는 지금은 양로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노성당(老星堂).
조금 더 위쪽에 있는 향교로 향했고 향교의 대성전(大成殿)에서는 시낭송도 했습니다. 여는 시로 정천모 선생님의 ‘자화상’(서정주), 마지막 ‘우리가 물이 되어’(강은교)를 류명희 회장님이 그리고 해설사님께서 2004년 10월 새벽에 일어나 쓰셨다는 자작시를 낭송해 주셨습니다.
15시분경. 채만식 선생의 집필가옥과 산소가 있는 곳에 도착. 뒤편 소나무가 있는 동산마루가 보이는 집필가옥은 거의 헐려져 있는 폐가의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마당에 모두 엉덩이를 데고 앉아 채만식 선생의 필력의 기운을 받기위해 사진도 찍고 했습니다. 채만식 선생께 닭잡아 주고 막걸리 갖다 주었던 이웃에 살던 한 분을 해설가님이 직접 뵙기도 하였다 합니다. 채만식은 막걸리를 직접 병체 입에 대고 마셨고 그 수고의 댓가로 궐련 두 대를 얻어 피었다 합니다. 삶과 성품을 실감할 수 있는 이런 향토적인 얘기를 해주어야 한다고 해설가님께서는 말씀 하였습니다. 집필가옥 우측 길로 산소에 도착하여 묘소에 예도 표하고 대문호가 잠들어 있는 곳에서 잠시 상념에도 잠겨보았습니다. 비석은 두 개가 서있는데 후손들의 불란으로 인한 것이라 합니다. 묘석 하나의 뒤편 글자도 훼손된 모습도 자손의 불란 때문이어서 안타깝게 하였습니다. 묘소를 나왔습니다. 15시 15경.
임피중학교에 도착하여 옥구농민 항일 기념유적지를 둘러보았습니다. 채만식 선생이 다녔던 중학교라 합니다. 익산의 심기면 농장까지 관할했던 이엽사(二葉社)라는 일제 영농회사가 이곳에 있었다 합니다. 수확량의 70%를 세금으로 거둬들이려 했던 일제의 악질적 수탈에 항거하여 일으킨 농민항일운동, 소작쟁의(1927.8~1928.9). 만세삼창도 외쳐보며, 임피역으로 향했습니다. 일제 이엽사 농장이 수탈해 갔던 농토가 드 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라는 시를 다 같이 연상해 보았습니다. 실제 역사의 현장을 통해 정확한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임피역. 15시 45분경. ‘레디메이드 인생’의 장면이 많이 소재화 된 곳이라 하였습니다. 열차를 전시관으로 한곳에 옛 기차역의 추억의 모습, 역시 수 많은 수탈의 역사와 함께 옛 우리 한국인의 그립고 정겨웠던 삶을 많이 보고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총리를 지내신 ‘고건’씨도 바로 임피가 고향이라 하셨습니다. 오포는 옛 일본이 정오 12시에 강대국을 상징하기 위해 쏘아 올렸던 대포. 12시 열차는 밥과 묵을 이고 오는 아낙네들로 밥차가 지나간다 하였다 하였습니다. 잠시 여행의 한숨을 돌려 역사 앞 터에 나있는 토끼플로 어린시절을 추억하며 꽃목걸이 꽃반지를 만들어 보며 눈부신 햇살이 비추는 늦 봄 즐거운 한때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16:30경. 군산근대문학관이 있는 시내 해변가로 향했습니다. 소설 속에 등장했던 채만식이 무서움으로 지나가곤 했다는 공동묘지도 지나, 가난한 옛 시절 풀뿌리, 나무껍질, 특히 ‘콩깻묵’을 먹을 수 밖에 없었는데 먹고 나서는 항문이 막혀 고통받았던 애환들. “뭐가 찢어지게 가난했다‘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 시간 관계상, 근대역사박물관, (구)조선은행, 승려 고은선생님께서 계셨다는 동국사, 일본식가옥 방문은 생략되었습니다. 경장동에는 검정고무신부터 고무신으로 유명한 경성고무가 이었고, 팔마자리에는 쌀집산장소 였다 하였습니다. 야구게임이 최초로 개최되었으며, 군산은 최대의 도정공장이 있었고, 뻘의 모래가 고와 사람이 거꾸로 쳐 박히기도 했고, 서울을 왕래했다는 서래-경포촌의 이야기를 들으며 왔습니다.
군산의 윤혜련 선생님께서 마중해 주셨습니다. 회원일행에 차도 사주셨고. 바닷가 찻집에서 맛본 시원한 주스, 커피와 한방차의 맛 다들 일품이었겠지요 ^^ 아울러 청소년 수련관 관계자분께서 오셔서 류명희 회장님등과 이번 여름에 있을 ‘여름시낭송학교’일정 조율에 관한 논의시간도 있었습니다.
17:40분경, 마지막으로 ‘여름시낭송학교’ 개최장소인 청소년 수련관으로 향했습니다. 유명한 ‘이성당’ 빵집도 보이고 ‘이성당’빵집 출신의 사람이 같은 빵을 만든다는 ‘영국빵집’도 보았습니다. 군산은 중동 ‘호떡’, 복성루 ‘짭뽕’도 군산에 오면 한번씩은 맛봐야 하는 곳이라 하였습니다.
편백나무 숲이 접해 있는 ‘청소년 수련관’의 시설은 통영의 ‘청소년 수련관’과는 또 다른 정감이 느껴지는 곳인 것 같습니다. 진한 편백나무 향이 가득한 숲을 잠시 걷다 윤혜련 선생님과 작별하고 아쉽지만 귀향길을 재촉했습니다. 중간에 ‘꽃게’를 사러 수산물 가게를 드렸습니다. 당일 잡아온 꽃게와 갑오징어가 매우 싱싱하고 탐스러웠답니다. 공무원으로 부이사관까지 하시다가 지금은 해설사로 군산 문화와 역사를 아름답게 가꾸고 그 소중한 가치를 전파하고 계시는 “부지런히 자기를 따라 다녀야 하루 일당을 건진다‘는 유머도 해주시면서 군산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 주신 이종예 문화해설사님께 감사를 끝으로 전주로 향했습니다. 18시 45경.
19:30분경 전주도착. 숨가쁘게 달려온 하루였습니다. 하루일당 건지기 위해 ^^. 한국 문학의 거장 채만식의 깊은 문학의 향기를 느끼고, 8월이 있을 ‘재능시낭송협회 시낭송여름학교’를 위한 준비의 시간도 갖을 수 있었던 멋진 문학기행의 시간이었습니다. 모조록 세상의 모든 ‘탁류’를 정화하는 전북재능시낭송회가 되기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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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빈집 / 정일모
왼 종일 쏘다니다가
해질 무렵 식구들
찬거리 챙기는 아낙
내게도 꽃게 두 마리 주면서
쪄 먹어란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내 집에는
처자식이 없다
나네.
처자식 생기면 꼬옥 꽃게 두마리 드리리다.
군산을 가장 많이 알게해준 시간이었다.
전쟁의 아픔도 도 가장 많이 알게 해 주었지요.
하루의 흔적들
바람이 흔들면 흔드는데로 나부끼는 꽃잎처럼
순간 순간의 흐름을 필설로 요약하신 그대가 있어
기억의 책장속으로 들어갈 기역을 다시 돌아보았읍니다^^
늘 소소한것 까지이렇게 기억을 되살릴수 있게 해 주시는 동주샘 감사합니다^^
에구, 잘 다녀가셨어요?
하필 아파트에 일이 있어서 오전 8시~오후 9시까지 근무(?)하느라고...
혹여 누가 전화라도 하면 그 핑계대고 외출 좀 할까 했는데..쩝~!
8월에 잠시 뵈얄 듯 합니다.
아니..그 전에 전주 가서 뵈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