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사는 시인 천양희. 그녀가 재혼하지 않은 이유는 인간(남편)에 대한 환멸과 절망 때문이었다(주지하다시피, 천양희 씨의 남편은 정현종 시인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아들 때문이었다) 오로지 생피붙이 아들의 앞날을 빌기 위함이었지만, 실로 지독한 슬픔이었다.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누군가에게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 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든다는 걸.
─ <단추를 채우면서> 전문
그녀의 시집을 넘기면서 눈에 금세 들어온 작품이다. 삶의 끄트머리쯤을 딛으며 ‘누군가에게 잘못하고/절하는 밤’마다 시적 화자는 절망하고 절망한다. 그녀의 삶법은 그러므로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 찾기’와 같다. 그런데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에 이르러 시적 화자는 잘못 채운 오래 전의 삶에 대해 깊은 회오悔悟에 잠긴다. 자연히 ‘잘못 채운 단추가/잘못을 깨운다’는 깨우침. ’96년도 제10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대표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시적 화자로서의 그녀의 현재를 잘 대변하는 시다. 그의 ‘단추 채우기’는 ‘잘못 채운 첫 단추’에서 그녀의 지난했던 삶으로 곧장 이어진다. 그것이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다. 그녀의 솔직한 고백 앞에서 난 잠시 아연해진다. <마음의 수수밭>(부분)도 이런 그녀의 역정(특히 힘겨웠던 생활)을 잘 나타낸 작품이라 하겠다.
개밥바라기별이/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 본다/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쪽도 볼 수 없다/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고/보릿고개를 넘은 세월이 있다/바람은 자꾸 등짝을 때리고, 절골의/그림자는 암처럼 깊다. 나는/몇 번 머리를 흔들고 산 속의 산,/산 위의 산을 본다. 산은 올려다보아야/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저기 저/하늘의 자리는 싱싱하게 푸르다./푸른 것들이 어깨를 툭 친다. 올라가라고
이 시에서 나는 생을 마감하려는 그녀의 그림자가 자꾸 읽힌다. ‘세상을 내려놓’은 이에게 길 한쪽이 보일 리가 없다. ‘바람은 자꾸 등짝을 때리고, 절골의/그림자는 암처럼 깊’은데 사뭇 가슴에 어리는 죽음의 그림자… 천만다행히도 그러나 시적 화자가 올려다 본 ‘산은 올려다 보아야 한’다는 걸 느낀다, 푸름이 새로이 보인다. ‘푸른 것들이 어깨를 툭 친다’는 시구는 정말 새록새록 빛난다. 그런데 내가 왜 그녀의 개인사에 이렇게 집착하는 걸까. 실상, 엄밀히 따지고 보면 시인 천양희는 천양희지 그 이상이나 이하가 아니다. 시인으로서의 천양희면 된다.
처음 밝히는 상세한 연대기
천양희는 1942년 1/21(음 12/13) 부산 사상에서 아버지 千命壽와 어머니 林德順의 7남매중 막내로 태어난다. 4대가 함께 사는 방만한 가계였다. 부친은 당송 시詩에 일가견이 있었다. 어린 생각에도 한 달에 한번씩 사랑방에서 지방 유지들과 운을 나눈 아버지의 기억이 어렵지 않게 떠오른다. 집은 태백산맥 줄기 끝에 의연한 자태로 놓였는데, 작은오빠가 이 절경 속에서 스스로 닦은 문청 기질로 시를 쓰기도 했다. 가족을 위해 아코디언을 켜주던 멋진 오빠였다. 놀이가 없던 시대의 잦은 숨바꼭질, 흐드러지게 동네를 물들이던 진달래꽃, 어린애 무덤(=애장터)에서 발견된 저승행 노잣돈에 놀라던 일 등이 자신을 시인으로 만든 것 같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굿도 잘 벌어졌다. 그런데, 천양희 시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실제로 무기巫氣 서린 눈빛과 만나게 된다(는 느낌이다). 실상 천양희는 당시 대지주의 딸로, 부모님이 큰 과수원을 가진 대농이었다. 어린 양희는 부친을 ‘어르신’으로 호칭하는, 당신보다 연상인 아랫사람의 충직한 모습에 한동안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로부터 ‘애씨’라고 불리우는 게 너무 싫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상초등교를 1953년에 졸업한다. 문학적 재능이 나타나면서 4학년 때부터는 동시 쓰기에 재미를 붙인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너는 시인이 될 거야’라고 말씀하시기에 가슴 설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무렵, 또래들이 만화를 읽을 때 양희는 처음으로 뜻도 잘 모르면서도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경남여중에 합격(당시는 국가고시)하자, 시골마을에서 부산 명문 중학에 합격했다며 온 동네가 떠들썩대는 경사를 치르기도. 꿈 많은 소녀 양희는 3년간 집에서 기차 통학을 하면서 창밖 풍경에 매료되어 한때 화가를 꿈꾼다. 실제로 장애인 화가인 로트렉을 좋아해서 관련자료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절은 교단에서 선생님의 여러 행동을 흉내내는 귀여운 악동이기도 했다며 그녀는 씨익, 웃는다. 웃는 매무새가 어릴 땐 더 이뻤겠다.
경남여고를 ’59년에 졸업하기까지, 3년간의 기차 통학 때 시간 때우기로 그녀는 많은 책을 읽었다. 여러 기억 중에서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전 7권을 통독한 일이 지금도 또렷하다. 그러다가 알 듯 모를 듯, 어린 염세주의에 빠지기도 했다. 이 무렵은 배움 의지가 왕성한 하이틴 시절이었다. 《북경의 55일》이란 원서를 처음 독해하는 재기를 보이면서 그녀는 화가에서 시인으로 자연스럽게 진로를 바꾸었다. 그녀는 나름대로 열심히 시를 쓰며 문학에 대한 열망을 키웠으나, 막상 졸업 때는 원인 모를 병으로 진학을 포기하면서 생애의 첫 좌절을 겪는다. 소녀에서 청년기로 옮아가는 중에 받은 충격은 너무나도 컸다. 어쩔 수 없이 투병생활을 해야 했다. 부산 광복동에 있는 미화당 학원에서 대입 준비를 하던 해가 1961년, 각성제 ‘카페나’를 6개월 동안 복용하며 억척으로 공부한 기억이 아프게 닿는다.
경쟁률 8:1의 첫 예비국가고시에 합격(’62)하고 다시 본과를 치른 뒤 이화여대 국문과에 입학, 처음으로 부모로부터 해방되어 이대 ‘진관 305호’에서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다. 한 방에 4명이 기거하고 저녁 9시에 점호였는데, 영화광이던 여대생 천양희는 자주 규율을 어겨 사감한테 불려가기도 했다고. 다행히도 퇴사당하진 않았지만 아찔한 순간이 많았다고 한다. 교수님 강의가 신통치 않다고 여겨질 땐 건방지게도(?) 자릴 박차고 일어나는 만용을 서슴치 않았다. 실제로 수업보다는 도서관에서 책읽기에 더 열중한 기억이 많다. 간혹 강의시간을 빼먹고 태능 배밭에 가서 화안한 배꽃을 바라보다가 돌아온 추억도 아련하다. 그 눈수업도 그녀만의 색다른 공부였다고 주장한다. 이때 열렬한 문청이었던 그녀는 교지 《綠苑》《이화문학》《이대학보》 등에 자작시를 열심히 발표하게 된다. 이때 여러 대학으로부터 수차례 동인 모임 제의를 받았으나 문학은 스스로 체득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어서 거절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외국문학(특히 러시아 문학)에 심취,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세계에 매료되면서 독서와 정신의 폭을 함께 넓혔다(’63∼’64).
드디어 바라던 등단 기회가 왔다. 박두진 선생의 추천으로, 당시 유일한 문예지이자 관문이 힘든 《현대문학》에 시 <庭園 한때><아침><和音>으로 1965년에 데뷔한다. 3학년 때 3회 추천 완료로, 남이 부러워하는 대학생 시인이 된 것이다. (당시는 여대생 작가가 매우 드물었다.) 이러한 등단을 계기로 정현종 시인과 연애를 하게 된다. 고전 음악감상실 <르네상스><뮤즈><설파> 등을 문우들과 함께 기웃거리며 클래식에 몰입하기도 하는 등, 진실로 가장 순수하고 치열했던 시절이며 꽃 핀 인생의 젊은 한때였다면서 그녀는 다소 쓸쓸히 회상한다.
이대를 졸업하지만, 원하던 대학원 진학도 아버지가 권하시던 유학도 포기하고 정 시인과 연애에 몰두한다. 이때는 시인 고은·이제하, 평론가 김현·김치수·김병익·김주연과 작가 이청준·최인호 등도 함께 교유하던 호시절이었다. 그러다가 박두진 선생의 주례로 연애 5년만에 시인 정현종(’39년생)과 서울 신문회관에서 결혼식을 치른다(’69). 정 시인의 박봉으로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강서구 화곡동 10만 단지 내에서 어렵게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서울신문사에서 받은 그의 봉급이 당시 2만 1천원. 매우 낮은 대우로, 당시는 신문사 급료가 타기관에 비해 형편없었다.) 하지만 결혼 6개월만에 생활난으로 그녀는 할 수 없이 소규모 의상실을 자영自營, 이대 앞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소중한 문학도 버리고 억척스런 생활 전선에 뛰어든 것이다. 이때의 심경을, 시인은 소월상 수상작품집 <문학적 자서전>에서 이렇게 담담히, 참담히 옮긴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이라는 걸 하면서 나는 문학을 버렸다. 생활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문학을 버린 건 내가 나를 버린 거나 다름없었다. 아무도 아무 것도 돌이킬 수 없었다. 삶이 이런 거라면….. 차라리…… 나는 문득, 죽을 생각으로 살아보자며 다시 일어섰다. 한 권의 시집은 커녕 방 한 칸도 없이, 나는 살기 위해 아침 일곱 시에서 밤 열한 시까지 일했다. 가게에서 자기도 하고 하숙을 하던 때도 있었다.
그 와중에 아들 弼勝이 ’70년 8/10(음7/9, 새벽 3시 12분)에 태어난다. 그녀의 몸과 마음이 매우 어려울 때 얻은 아들이라 더욱 귀히 여겼다. 이 시점에서 시인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나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시중 드는 아가씨가 아메리칸 커피를 각각의 찻잔에 하나 가득 따라주고 조심히 비켜간다. 연기처럼 따스히 향을 피우는 김. 수증기의 꼬불림… 내가 눈으로, ‘왜 그러세요?’ 채근하자 문득, 깊은 생각에 다시 잠기는 그녀. 이윽고 밝힌 기막힌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그녀는 만삭의 몸으로 고향 부산으로 애를 낳으러 갔다. 한번 겪은 결핵은 이미 나았지만, 힘든 출산과 양육으로 병이 재발할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권유로 어린 핏덩일 친정에 맡기고 서울로 오른다. 그러나 우유값 등, 양육비를 보낼 돈이 없었다. 어떨 때는 우유값을 제때에 못보내면 그녀는 왼종일 찬물만 먹었다고.
그런데 이 해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시인 김지하의 <五敵> 필화 사건에 정 시인이 연루된 것이다. 평론가 김현을 앞세운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불법적으로 가택 수색을 당한 치욕스런 사건이었다. 무지막지한 그들이 마루 위를 구둣발로 들이닥치는 몰상스런 행동에 격노한 천양희는 ‘여보시오, 내려가시옷! 신분증 제시하세욧!’ 하고 악을 쓰며 소릴 친다. 옆에는 남편 정 시인이 꼿꼿이 서 있었다. 결국 그를 비롯하여 김현·이문구 씨 등, 여러 명이 끌려가 고초를 겪고 거의 열흘 만에 풀려나기도 한다. ’71∼’72년, 자유실천협의회 사건으로 남편이 서울신문에서 권고사직당한 뒤 2년 6개월 동안 실직 상태로 소일함으로써 가계는 더 어렵게 되고, 그녀 역시 의상실 운영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73년 2월 15일, 정현종 씨와 불의의 일로 헤어진다. 그는 어느날 아이와 책만 가지고 다른 여자의 집으로 가버렸다. 그동안의 말 못할 고생이 충격으로 와,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었다. 원망같은 것은 차라리 값싸 보였다. 그녀가 남대문 시장에서 가게를 하는 고향 선배언니의 개봉동 집에 얹혀 있던 두 달 동안 정현종 씨가 몇번이고 찾아와 재결합을 요구하기에, 선배언니의 충고를 받아들여 광화문 <귀거래다방>에서 정 시인을 딱 한번 만났다. 이때 정 씨가 ‘진실한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았다’고 말했으나 그땐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비겁한 인간으로 보였다. 이때만큼은 그녀가 정 씨의 제의를 분명히 거부한다.2)(천 시인은 이 부분때문에 지금까지 자기에 대한 뒷소문이 안 좋은 것 같다고.) 아무튼 문학도 버리고 병고에 시달리던 ’74∼’80년은 생애에 가장 쓰라린 시절이었다. ’81∼’82년 동안은 병이 심해져서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병원을 자주 드나들며 집에서 혼자서 씁쓸한 칩거 생활로 들어간다. 정 씨에 대한 절망감이 너무 컸다. 진실로 사랑한다 해놓고… 그때는 대학 3학년 때부터 연애를 시작했었다. 그 후, 한 남자의 아내가 되기로 작정하면서 개인의 모든 걸 포기했다. (데이트 장소는 이대 앞 <빠리다방>이 주 무대였다.) 결혼 무렵, 8개월 간의 감기로 얻은 결핵으로 파스와 나이드라지드 등을 복용하는 동시에 3년 동안 SM주사(스트렙토마이신)를 맞으며 지친 삶에 매달린다. 그녀 나이 32살. 전제했듯이 아들을 그에게 보낸 이유가 자살하려는 일념에서였지만 묘하게도 실패를 거듭했다. 다시 폐병이 재발, 3발三發. 갑상선이 붓고 약을 먹어 위를 세척하는 등, 38Kg 그녀의 지친 삶은 지옥 그 자체였다. 오로지 죽고만 싶었다. 누구하고도 만나지 않았다. 오죽하면 당시 토막시체 사건이 일어나자 형제들이 달려가 무연고 시신을 확인하는 소동까지 벌였다고.
이때 자살을 결심한 그녀는 전남 부안 내소사 근처 직소폭포를 찾는다. 이름 그대로 소로가 끝나는 곳에 갑자기 길이 끊어지면서 거기 폭포가 있었다. 입이 벌어지면서 말 못할 놀라움! 그때 불현듯 내뱉은 외마디. 아, 살아야겠다… 그녀는 폭포의 곧은 물줄기에서 분명히 보았다. 어떤 신비주의 정신, 그 선비정신 같은 것을. 영육이 비로소 깨어난 순간이었다. 백색 정토와 무소유를 시적 화자인 그녀가 본 것이다. ’92년 지은 <직소포에 들다>(부분)는 실로 13년 전(’92년 기준)의 메모를 살린, 죽음을 재촉한 시절의 뼈 시린 기록이다.
와! 귀에 익은 명창의 판소리 완창이로구나.
관음산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정상이란 생각이 든다
피안이 이렇게 가깝다
백색 淨土! 나는 늘 꿈꾸어 왔다
무소유로 날아간 무소새들
직소포의 하얀 물방울들, 환한 水宮을.
어느 해 겨울의 끝. 강원도 어느 암자를 찾아 그녀의 거덜난 생을 끝내려다가 미끌어진 산길바닥. 아픔도 순간, 소복한 눈 사이의 푸릿한 나무싹을 보고 그녀는 모진 생명성에 와락, 얼마나 울었던가. 이러한 2년간의 자살 시도는 직소포 체험과 강원 산골 암자 체험을 끝으로 죽음의 유혹과 잠시 결별한다. 피붙이 아들을 위해서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생은 모질었다. (그로부터 그녀에겐 한때 묘한 버릇이 생긴다, ‘죽고 싶을 때 여행을 떠난다’는.) 아들 문제는 어쩔 수 없는 일로, 그앤 지금도 어미 가슴에 돌부처의 침묵으로 잠겨 있다. 이때부터 절실한 체험을 겪을 때마다 그녀는 충격으로 붓이 잘 나가지 않는 습관이 들었다고. ’65년 등단 후 23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단 4권의 시집을 낸 과작寡作의 시인. 18년 만에 첫시집을 낸 독한 그녀다. 실로 18년만의 침묵을 깬 첫시집 출간이었다. 가장 변모된 4시집이 발간된 뒤부터 그녀는 문단의 본격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시집은 ‘물’이란 소재가 많이 나오는데, 그녀가 이맘때쯤 동양학에 관심을 가진 것도 우연은 아닐 듯.
1983·제1시집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평민사)
1988·제2시집 《사람 그리운 都市》 (나남출판사)
1992·제3시집 《하루치의 희망》 (청하)
1994·제4시집 《마음의 수수밭》 (창작과비평사)
1996·문학사상사 주관, 제10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1998·현대문학사 주관, 제43회 현대문학상 수상
1998·제5시집을 창작과비평사에서 9월경 출간 예정3)
메모狂 독서狂 천양희
그녀는 정말 메모광이었다. 작은 노트가 몇 권, 큰 백 사이로 얼핏 보인다. 지하철을 타다가도 방금 떠오른 ‘착상’을 기록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그녀다. 메모에는 나도 뒤지지 않는데. ‘시를 쓰려면 피의 여로旅路를 거쳐라’란 나름의 경구도 이때 얻은 대목이다. 그러나 그녀는 신인들이 금방 시집 내고, 시를 마치 여가 선용의 도구로 삼는 듯한 경박한 태도가 몹시 못마땅하다. 지금은 주로 창비 쪽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책읽기는 평생 필연의 코스. 그녀는 말한다, 독서란 ‘괴로운 기쁨’이라고. 요샌 밀턴의 《실락원》과 자결한 미시마 유끼오의 《금각사》 등을 다시 읽고 있다. 요즘의 시적 화두는 ‘침묵·마음·물’―. 다만 그녀의 심경도 여느 국민처럼 같아서 IMF 대란이 일어 편치 못하다고. 도대체 우리가 왜 이처럼 처참한 꼴이 됐는가… 위정자들이 말하는 고통 분담론이 억울하지만, 어쩌랴. 수용할 수밖에.
작년 6월엔 몸 속에서 담낭(쓸개)을 떼어낸다. 중지만한 갈색 돌멩이가 나왔다. 담당 의사가 웃으며 가져가겠느냐고 해서 놀란 그녀가 거절했다고. 그저 천양흰, ‘도(道)는 못 닦고 돌만 키웠다’며 주위를 웃긴 일도 있었다고 허스키 음音으로 말한다. 이러구저러구 주변에서 얻은 별칭이 ‘쓸개 빠진 여자’. 이 글을 마칠 때 쯤해서 그녀의 편지를 받는다, 그녀의 망설임을 받는다. 나는 잠시 머뭇거린다.
꽃샘바람이 꽃을 시샘하는 듯 세게 불고 있습니다. 어제는, 오랜 만에 만난 김시인에게 묵은 얘기 꺼내느라 좀 힘들었습니다. 누구한테도 긴 말하지 않고 침묵하리라 했는데, 말하지 않아도 하늘이 알아주리라 했는데 인간의 삶은 그게 아닌가 봅니다. 진실을 밝힐 때가 되었다는 생각으로 말했지만, 한편으론 김시인을 많이 신뢰한 것 같습니다. (…후략…) ’98. 3. 20. 千良姬.
편지에 담긴 깊은 침묵을 접으며 나는 말을 잃는다. 함께 부쳐온 자료를 읽다가 가슴 한 켠이 뭉클해온다. (놀랍게도 거의 모든 자료가 직접 자필로 쓴 것들이었다.) 얼마나 버거웠을까. 그녀 삶의 중량이… 나는 전혀 그녀의 삶을 미화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여기선 오직 시인 천양희가 그 대상일 뿐이다. ‘시인 천양희의 삶’을 논하는 것이지, ‘천양희적的 삶’을 멋스레 소개하는 것도 절대로 아니다. 그녀는 냉혹 엄정히 말해서 나의 피사체일 뿐이다. 나는 그녀를 향해, 말없이 나의 화살을 계속 쏘아댄다. 그녀만 고독한 게 아니리. 그녀는 李箱의 시 <가정>처럼 ‘우리집이앓나보다(…중략…)그냥門고리에쇠사슬을늘어지듯이매어달렸다문열려고안열리는문을열려고’ (이미) 몸부림치고 있었다. 또 그녀의 과거는 개인의 단순 사생활로 묻어둘 수도 있었다.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 시에 접근키 위해선 지금까지 어디에도 밝히지 않던 진실을 드러내야 했다. 나도 그녀의 고통스런 첫 육성을 지나쳐선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린다. 시의 온 생명성 앞에 온 몸을 내동댕이치며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발긴 시인의 모습을 보라. 처연하진 않지만, 자세히 보면 이는 그녀만의 ‘고통의 축제’일 것이다. 진지해지고 싶다. 내 식으로 말해 미지의 독자인 당신과 나는 문학 광장에서 객관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전문객專門客’으로 그치자. 그리고 5분쯤 지나서, 우리 냉정해지자. 어디까지나 천형의 현재적 삶은 오로지 천양희 그이만의 것이므로.
그리고 남은 이야기
한동안 그녀는 ‘가족’의 의미를 기억에서 지우며 살았다. 알 수 없었고 알기도 싫었다. ‘홀로’를 즐긴 게 아니라, 혼자 사는 여자의 통증을 스스로 감내하며 살았다고 봐야 한다. 좋은 문인들에 대해 묻자, 돌아간 김현 씨의 비평 감각과 김정란·정끝별·백지연 등의 여류, 서울대 조남현·서울여대 이숭원 교수와 남진우·방민호 등의 젊은 비평이 좋다는 생각을 피력한다. 지금 그녀는 젊은 축에 드는 시인을 여럿 안다. 김승희·김혜순·이경림·나희덕·이진명·최정례·김상미·이정록·고재종·이윤학, 그리고 송재학 시인이 좋은데 특히 그들의 진정성이 돋보인다고. 그(녀)들이 시인으로서 치열한 정신이 좋다. 다만 젊은 시인들이여, 한번쯤은 존 밀턴의 《실락원》에서 참 고통의 실체를 새로이 읽자꾸나.
그녀는 시단의 문제점에 대해 의견을 펼친다. 문학상의 상업화, 비평의 근친 상간, 무분별한 장르 파괴로 인한 작품성 상실, 학연·혈연 등의 섹트주의, (문예지 게재 등에 있어) 작품 선정 기준의 무원칙성, 액세서리처럼 ‘장미/틀니/잇몸 부대’(=시인, 죄송!)를 양산하는 함량 미달의 잡지나 문화센터의 횡포, 순수문학이 아닌 비소설류의 일반화한 대량광고, 작가를 장사꾼으로 만드는 일부 출판사의 전횡, 가짜 작품들의 좌충우돌, 유명무실해져서 피곤한 기존 문단, 추천 절차의 지나친 간소화 등을 꼼꼼이 적어와 제시하는 치밀함에 나는 저으기 놀란다. 시인 쟝 폴랭의 말, ‘세상의 비밀아, 너는 어디에?’가 그렇게 매력적이라는 천양희. 그리고 참말 어렵게 토로한 죽음에 관한 한 가지 비밀!4) 그렇다. 이젠 그녀에게 시를 쓸 일만 남은 것이다. 천양희는 거침없이 말을 잇는다. ‘시에는 가고 오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살아있는 시를 쓰자. 죽어있는 시를 쓰면 자신을 죽이는 일이기도 하지만, 시인이 이 사회를 죽이는 일과 같다.’ 많은 이야기감을 성실히 준비한 선배 천양희에게 나는 경의를 표한다. 수십년 전의 기억이 아주 정확한, 뛰어난 기억력에 다시 경탄하고 만다. 방을 기필코 봐야겠다는 나의 ‘숭한’ 요구에 그녀는 안 된다며 완강히 버틴다. 사실상 취재에 도움이 되는데 말이다. 안 되는 이유가 지저분하고 질서롭지 못함이라 했지만, 그건 사실 아닌 듯했다. 정결한 책장과 홀로 차를 마실 다탁이 보고 싶었는데… 그 꼬맹이부처랑.
하지만 그녀 시에서도 낯선 구석은 있다. 문학적 단상에서 ‘시의 길은 가도 가도 원, 고지(원고지)가 보이지 않습니다’란 언어유희 같은 것이 시에서도 가끔 등장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골과 목이 콱, 막히는 것 같아/엉거주춤 나는 길 안에 섰다//나는 아직 걱정없이 산 적 없어/무우無憂, 무우無憂하다 우우, 우울해진다’(<오래된 골목>), ‘詩는 내 自作나무/너가 내 전 집(全集)이다/그러니 시여, 제발 날 좀 덮어 다오’(<後記> 전문), ‘보리밭을 지나다/언 땅 뚫고 나온 보리를 본다/冬安居 끝낸 수행자 같아/나는 지금 菩提를 생각하고 있다/보리밭을 갈아엎어/보리수를 심을까 궁리하는 동안’(<보리밭을 지나다>), ‘꽃이 져도 배나무는/배의 나무인 것이야’(<배밭을 지나다>), ‘공평리에 가서 公平! 하고 부르면/사방이 들판처럼 평평해질까’(<공평리>), ‘강변역이 강변에 있지 않고/학여울역에 여울이 없다니요?’(<왜요?)) 등을 보면, 그 착상의 기발함에 놀라면서도 조금 가벼이 느껴짐은 어쩐 일일까. 펀pun, 즉 말장난을 즐기려는 혐의? 그런데.
<마음의 수수밭>에서 <물에게 길을 묻다>로
…그런데 이상하다, 그런 시들이 이상하게 살아있어 우리를 작품 속에 콱 붙들어 놓는다. 이럴 수가! 그녀는 사물에 가볍게 가볍게 접근한다. 슬쩍 만지다가 슬쩍 놓아주며 비켜준다. 개중에도 전문 <後記>의 ‘詩는 내 自作나무/너가 내 전 집(全集)이다/그러니 시여, 제발 날 좀 덮어 다오’는 압권이다. 전생에 살던 집(全集)의 ‘전∨집’이란 발상법은 유희적 측면(혐의?)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본다. 천양희 시의 비밀이 엿보인다. 시와 사람 모두 원숙圓熟에서 완숙完熟으로의 바람이 부는 것 같다, 내 살을 감촉한다. 참을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 천양희는 오래 살았다. 연령에 비해, 너무 많은 것들을 체험하고 아퍼했다. 그러나 그녀는 더욱 결심의 고삐를 땡긴다. 더 살아야지, 시의 나이를. (시라는 예술의,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매력적 부분이다.) 연이어 시적 화자는 깨닫는다. ‘절벽을 오르니, 千佛山이/몸 속에 들어와 앉는다./내 맘 속 수수밭이 환해진다’고. 그녀를 만나기 전에 나는 전혀 우수의 그림자를 눈치채지 못했다. 물론, 어쩌다 지나치듯 만났으므로.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한참 물오른 듯, 시 삼매三昧에 빠진 그녀와 시적 화자는 반드시 재결합해야 한다. 그녀만의 소중한 시적 화자를 내팽개치면 안 된다… 그래서 천양희 자신의 참된 행로를 위해 <물에게 길을 묻다>(부분)를 명상했을까.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고 누가 말했었지요
그래서 나는 물 속에서 살기로 했지요
(…중략…)
그러다 문득 물가의 잡초들을 힐끗 보았지요
눈비에 젖고 바람에 떨고 있었지요
누구의 生도 물 같지는 않았지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물같이 사는 것이었지요
그때서야 어려운 것이 좋을 수도 있다는 걸 겨우 알았지요물 먹고 산다는 것은 물같이 산다는 것과 달랐지요
물 먹고 살수록 삶은 더 파도쳤지요
오늘도 나는 물 속에서 자맥질하지요
물같이 흐르고 싶어, 흘러가고 싶어.
물의 명상. 누군가 부드러운 물이라 했던가. 물의 길을 향한, 물의 험로를 타는 시적 화자의 노젓기는 자맥질로 험난하지만, 시인은 그 길을 스스로 선택한다. (모든 시인들이 그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시인의 생이 물에 녹는다. 녹아든다, 마치 하얀 분말처럼. 그렇다. 그녀는 오래 살아 남아야 한다, 조금만 더 살아야 한다. 갖은 수모를 당했다고, 생이 너무 아리고 슬프다고 그 언제쯤 죽으면 안 된다. ‘내(중생)가 곧 부처’임을 감안한다면, 부처 이름자에 대한 모독이다. 모독은 푸르다. 푸른 것 두려운 것 모두 푸름을 띤다. 청청하고 외롭다. 외로우나 청청하다. 만일 천양희 당신이 바다 한가운데서 말끔히 사라지고 싶다면, 거기서 다시 환생의 울렁거림을 느껴 이승 쪽으로 노 저어 되돌아오시라. 어차피 삶은 멀미인 것, 그래 멀미나는 삶이다. 당신, 놀이터에서 바이킹이란 해적선을 타보았는가. 양 극단의 정점에 머무르는 순간, 악,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지 않던가. 정점은 고비다, 고비는 기회다, 기회는 희끄름한 희망이다. 희망은…, 글쎄 모르겠다. 멀미 내며 생애를 구토해내기 전에 천양희, 당신은 버젓이 살아야, 살아남아 있어야 한다. 저승에서도 당신은 또 ‘그놈의 몸쓸 시’를 지겹게 쓸 여자니까. 그게 천양희의 푸로메테우스적 운명의 사슬이니까.
우두커니 나는 풀밭에 서 있어 그때마다 발끝이 들려//풀 베다 본다/한 뿌리 모두 여러 갈래다/같은 땅인데 길조차 여러 갈래/풀섶이 내 속에 들어앉는다/풀씨만한 한 生이 꿈틀거린다/풀아 날 잡아라/내가 널 당겨 일어서겠다.
<풀 베는 날>(부분) 역시 <물에게 길을 묻다>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나는 이 작품에서 모진 삶을 이으려는 그녀의 혼신의 힘을 감득한다. ‘풀씨만한 한 生이 꿈틀거린다/풀아 날 잡아라/내가 널 당겨 일어서겠다’는 몸부림을 보라. (생을 마감하려던 강원도 암자가 연상된다.) 서늘해진다. 그녀는 또 ‘건설중인 빌딩 꼭대기에/둥지를 튼 송골매 두 마리가 새끼를 낳아/다른 곳으로 날아갈 때까지/공사를 중단했다는’ 감동어린 이야기를 시로 옮긴다. 그런데 무심히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은 내용의 까치 한 마리 기사를 읽다가 ‘이것이 사랑하며 얻는 길이’고 ‘득도의 길’이며 ‘아름다움과 자비는 어디에서나 자랄 수 있는 것’(<어떤 하루> 부분)이라고 깨닫는다. 또 <모래내>는 살 저미듯 잔잔한 아픔이 서린 아름다운 시다. ‘모래내 버스 종점, 막차가 막 들어온다. 막일 끝낸 사람들 몇, 막차에서 내린다. 마른 가지끝이 흔들린다’는 스산한 분위기를 비치면서 시인은 우리에게 뭉클한 따스함을 전하고 있다.
세상은 너무 미끄럽다니까
냉기도 뒤집으면 훈기가 된다고?
냉기에서 훈기를 발견하는 시인의 심성이 따끈하다. 그녀는 모래내 버스 종점의 끝에 서서 ‘지난 시간의 반짝이는 모래들, 모래톱들/누가 손을 넣어 그의 가슴을 뜯어내려는 건가/세상에는 물보다 더 맑은 눈물이 있다는 걸/水色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제 모래 속을 제가 들추어 보려는 듯/거기, 모래톱을 안고 사는 모래천변 사람들/지상의 그물 속에 그, 물 속에 걸리는 것은 모래뿐이지/물같이 흐르고 싶은 밤, 모래 위에 앉아/밤새도록 꾸벅거리는 모래내를, 그렁거리는 소리를/듣는다’. 저들끼리의 냉기에서 ‘따슨기’를 읽는 그녀의 마음은 은은히 은근히 아름답다. <돌을 던지다>에서는 ‘던진 돌에 맞은 건 강인데 내가 다 아프다’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강에게 자꾸 돌을 던지지 말자고 약속한다. 참 예리하고 홍미로운 눈빛이다.
흥미진진한 시 <진로를 찾아서>는 그녀의 끼(끼와 장난기:천양희는 끼가 많은 듯.)가 거듭 느껴지는 독특한 작품이다. 제목의 ‘진로’는 처음엔 ‘眞露’소주인지 ‘眞路’인지 ‘進路’인지 도무지 알지 못한다. 시의 흐름을 따라가보면 화자는 지금 <예술의 전당>을 찾아가고 있다. 진로 도매센터를 만나고 바른 길(眞路)을 몰라 머뭇거리며 진로進路를 다시 찾고자 생각한다. 그러나 화자는 결국 우리들 생애에 ‘길 같은 길’은 없다고 투덜댄다. 그래서 ‘사람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관심을 쏟고 종내는 ‘비로소 진로란/우리들 생이 그렇듯/비뚤비뚤하거나 비틀비틀한 것이라고/중얼거린다.’ 언어의 혼재가 의식의 혼돈을 가져오고, 급기야는 가야할 방향(=進路)마저 잃는다는 과정을 그린 수작秀作이다. 그러나 나는 <山行>(부분)이 더 좋다. 이 작품은 중년의 육신적 삶의 방식이 정신의 삶으로 전이轉移, 지향하고 있음을 보이는 시다. ‘절은 절대로 길에선 보이지 않는구나/언제나 길의 끝에 가서야 있구나/(…중략…)/살 터를 찾아/저 적요 속으로, 반야 속으로 딸려가/아마 나는 피안거리를 걸었을 것이다//산 끝에 가서야/나는 몇번이나 아제아제 불러본다.’
신작시 중에서 <흑포>는 ‘누가 저 세상을 밀어내고 있다는 것일까/꽃밭을 맴돌면서 꽃은 또 피고 싶은 꽃이/따로 있다는 것일까,/돌아보면 하루를 이곳에 다 옮겼다/봉선꽃집 지나 방아꽃집 지나 민들레꽃집 지나/시름꽃집 지나 눈물꽃집 지나… 꽃에도 상처가…’라고 읊다가 ‘상처가 곧 꽃이니!’라는 명제를 얻는다. 찾아간 흑포에서 본 꽃잎에서 상처 이미지를 발견하지만, 실상 ‘상처를 피운다’는 인식론으로 발전시켜 ‘상처꽃’ 효과를 얻기도 한다. 물론 미운 꽃송이는 없다. 꽃이 아름답기까지는 저들만의 고통이 내면에 서렸기에 가능하다는 해법은 어떨까. <흐린 날> 역시 시인의 삶의 불투과성을 그린 듯 싶다. ‘나는 꿈 속에서도 어안이 벙벙한 물고기를 보았다. 물의 세계란 그런 것일까. 물까지도 한 잔의 물 속에선 흐르지 않는다. 나는 또 자주쓴풀 몇 포기 뽑아 잘근잘근 씹는다. 산다는 건 자주 쓴 맛을 보는 것이라’는 시인의 상념은 우리에게 하나의 삶법을 가르친다. 그런가 하면 ‘시냇물에 빠진 구름 하나 꺼내려다/한 아이 구름 위에 앉아 있는 송사리떼’를 화사한 동심으로 그린 <한 아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 눈부신 존재’로 부각시키며 우리를 황홀감에 젖게 만든다. 일견 ‘생명성’, 이를 새록새록 감지하는 그녀다. 고맙게 마련해준 미발표작 몇 편을 감상해보자. 어쩌면 그녀의 새로운 경향이라고 여겨지는 <나는 택하고 싶다>(부분)는 시의 빛깔이 참 빛난다, 물 흐르듯.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를 읽다
자기가 환자임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간》을 두 번 읽는다고백하거니
나도 한번쯤 택하고 싶다
유일한 인간. 정신없는 시대의 유일한 인간.
‘아웃사이더’와 ‘유일한 인간’―. 이 두 어휘 사이에 시인이 개입된 건 아닐까. 시적 화자가 ‘정신없는 시대의 유일한 인간’을 ‘택하고 싶다’? 무엇을? 시인 자신의 목마름인데 나는 자꾸 조심스레 조바심친다. 아래의 <너는 나다>(전문)란 시는 우릴 더욱 엉거주춤하게 만든다. ‘죽어가면서 빛을 달라고 한 사람이 있다/다시는 태어나지 않을 내가 있다’ 앞에서 나는 이 작품이 사물(존재)과의 화해가 아닌 사물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듯해 사뭇 서성거려진다. 예시한 벼·새·벌레·파도·개울 등의 사물은 그들 나름의 생존 방식으로 존재를 부각시킨다. 대체로 음성성을 지닌 부정적 사고의 유발이다. 그녀, 시적 화자의 심리 속 울혈이 문제다.
함께 있어도 거리를 지키는 벼가 있다
우짖음으로 자신을 지키는 새가 있다
울음소리로 존재를 알리는 벌레가 있다
하루에 몇십만번 물결치는 파도가 있다
물살이 역류하는 개울이 있다
나무 위에 사는 나무가 있다
잎끝에 돌기를 가진 꽃이 있다
한평생 물 안 먹는 짐승이 있다
죽어가면서 빛을 달라고 한 사람이 있다
다시는 태어나지 않을 내가 있다.
다시 <우리는 말했다>(전문)에서 시인은 말한다. 여기선 시인의 아픈 독백을 접할 수 있다. 관객 없는 모노드라마를 훔쳐보는, 아웃사이더로서의 슬픔가지를 꺾는 그녀. 조금만치라도 우리에게 빈 틈을, 내게도 여백을 나눠 주시지. 그녀는 타인에게 조금의 공간도 허락치 않는 눈치다. 미지의 독자가 속삭인다. 천양희 씨, 겨울 ‘추위’를 함께 나누시죠. 당신이 혹시 ‘비바람(을) 견딘’, ‘나이테가 많’은 나무는 아닌지요. 지금은 춥기만한 계절, 그래서 당신은 지금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건 아닌가요, ‘나’와 미지의 ‘그’와 함께. 시인이 춥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요…
바람 멈추니 유정나무 그늘 더 깊다. 나뭇잎들 무수히 떨어진다가을나무 껍질 두꺼우면 겨울이 춥대… 가을이 끝날 무렵숲을 지나다 내가 말했다. 비바람 견딘 나무에
나이테가 많대… 겨울이 시작되자 그가 말했다
우리는 나무에 대해 말했을 뿐이다. 저 나무! 할 때마다바람이 뚝뚝 열매를 따간다
내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그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벌써 冬至다.
몇 가지 평문들
강웅식은 <현대시와 자연 체험>이란 《마음의 수수밭》 시집 평에서 ‘활력’을 느낀다며 이것이 ‘강력한 흡인력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끈다고 끄적인다. 이건 근년의 삶을 일단 정리하면서 얻은 ‘반성적 회의’의 소산이란다. 그게 곧장 ‘삶의 진정성’으로 발전했다고. (진정성? 허나 난 여전히 불안하다. 오히려 생의 평이한 고독감이 그녀만의 고적감으로 다가서면서 비치는 잿빛 허무감이, 차라리 내게 아름답게 빛뿌리던데.) 소월상 시집평 <無憂殿과 천양희의 시세계>에서 반경환도 일단 허무주의적 색채를 지적한 바 있다. 《마음의 수수밭》을 ‘불가능의 세계를 가능성의 세계로 현실화시킨 시집’으로 상찬함과 동시에 천양희 시 해설을 멋지게 접으며 말한다, ‘우리 인간들의 삶은 질문되거나 회의되기 이전에 향유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숭원은 <막막한 길에서 은빛 수평선까지>라는 해설문에서, 천양희 시가 ‘시적 자아의 고통과 번민을 드러내는 개개의 시편들이(은) 어느새 감정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어떤 정신의 기품 같은 것을 느’낌을 역설한다. 한마디로 응축해서 ‘상실에서 희망으로’, 이것이 그녀의 시적 구호라는 것이다. 이같은 이중성/대립성은 그녀 시의 결을 한결 드높이는 듯. ‘언제나 자아와 세계와의 관계를 성찰하면서 자아의 번민을 드러내고 있어’ 진정한 서정시로서의 품격을 지닌다는 이숭원의 못질은 꽤 단단하다.
김헌선은 <不二의 시인, 천양희의 시적 지형도>에서 주로 ‘화해’를 말한다. 초기시에서 보인 고독과 절망감에서 ‘너와 나가 구분되지 않고 속세와 초월이 갈등하지 않고, 욕망과 허무가 양립하지 않는 불이의 세계를 (그녀가) 시로 터득’했다는 극찬이다. (관념스런 표현이 얄궂고 좀 불만스럽다.) ‘비장미’? 그렇다. 김헌선의 말대로 그녀에겐 분명히 비극적 아름다움이 서려있다. 얼굴과 내면에도, 가슴에도 눈빛에도 분명히… 무엇보다도 이문재의 미려한 문체와의 만남이 나를 더 설레게 한다. ‘계절에 대한 감수성을 노출하지 말라, 하지만 나는 도무지 이런 봄을 이겨낼 방도가 없는 것 같다, 자심해지는 봄멀미, 어쩌구…’ 이렇게 시작한 천 시인과의 만남 기록에서, 이문재는 그녀의 독신생활에서 ‘두 부양가족’ 즉, ‘시와 부재하는 아이’를 꼽아내어 우리에게 적시한다. 그도 ‘세상과 혹은 자기 자신과의 화해’를 지적한 것이다. 부드럽다. 나아가 유성호의 ‘모성애 찾기’ 작업(<길 위에서 노래하는 모성의 시학>)도 읽을 만하다. 어쩌면 모성애란 고통의 본질 찾기의 단초일 것이다. 이것은 그녀의 존재 이유이거나 현 실존의 필연적 양상이리라.
[출처] 천양희 시인의 시세계|작성자 웹진 시인광장
자연을 위한 헌사
자연은 한권의 통사(通史) 같다 볼수록 눈앞이 환해진다 나무는 반성하듯 그늘을 옯기고 바람은 새의 둥지를 낮춘다 새들이 세상에 와 첫눈을 뜰 때 무엇을 먼저 보았을까 가지 끝에 걸린 바람소리였나 잎새 깨우는 햇살이었나 새는 또 공중에 가득한 저의 길을 보았을까 숲에서 부산한 날갯짓이 시작되면 나는 것만이 저들의 일이란 걸 알았을 것이다
자연은 신이 쓴 자서전 같다 지나온 길 구불텅해 산바람이 마을까지 따라온다 나보다도 더 오래 길 위를 헤맨다 헤매는 누구라도 길을 잃는 것은 아니다 너는 알았구나 어떤 최고봉도 하늘 아래 있다는 걸 알았구나 오늘따라 산세가 더 잘보인다 낮은 산이라도 봉우리 보여주고 높았다 낮았다 다시 솟아오른다 정상! 추락할 때마다 우린 정상을 꿈꾸었지
자연은 나를 서기(書記)로 만든다 이번 생은 비루해! 반성문을 쓰게 한다 탈 수만 있다면 저 산 넘고 싶었으나 나는 나를 겨우 넘었을 뿐이다 능선에 올라 늪 같은 숲 바라본다 숲은 왜 낮에도 어둡고 나무는 왜 평생 서 있기만 하는가 해가 지니 산 그림자 깊어진다 산 것들의 바람이 저처럼 깊어지면 새소리여, 너는 사람에 대해 무엇이라 노래할까 또 노래할 수 있을까
-시집《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2011년 창비》
외딴 섬
어려운 일은 외짝으로 오지 않는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은 실존 때문이라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아직 밟지 않은 수많은 날들이 있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자기에 이르는 길이라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이 세상은 내가 극복해야 할 또 다른 절망이라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내가 일어설 때까지는 믿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외딴 섬이라는 것을 이제야 겨우 믿게 되었다
흐린 날
생각이 먼저 기슭에 닿는다. 강 한쪽이 어깨를 들어올린다. 下
端이 저 아랜가. 문득 갈대숲에서 물떼새들이 달려나온다. 여름
이 가는군. 나보다 먼저 바다로 든 길이 중얼거린다. 언제 내가
길 하나 가졌던가. 물줄기를 한참 당기면 마음에 들어와 걸리는
수평선. 세상이 평등하기를 저것이 말해준다. 이런 날은 물가에
오래 앉을 수 있겠다. 물에도 길이 있다고 하였으나 물방개, 소
금쟁이, 물잠자리들, 물이 좋아 물 먹고 산다는 것일까. 나는 꿈
속에서도 어안이 벙벙한 물고기들을 보았다. 물의 세계란 그런
것일까. 물까지도 한 잔의 물 속에선 흐르지 않는다. 나는 또 자
주 쓴풀 몇 포기 뽑아 잘근잘근 씹는다. 산다는 건 자주 쓴맛을
보는 것이라던 선배의 말이 오늘은 옳았다.
벌새가 사는 법
벌새는 1초에 90번이다
제 몸을 쳐서
공중에 부동자세로 서고
파도는 하루에 70만번이나
제 몸을 쳐서 소리를 낸다
나는 하루에 몇번이나
내 몸을 쳐 시를 쓰나
-시집 <너무 많은 입> 2005년 창비
상일동 아침
아침마다 뻐꾸기가
복국(復國), 복국 울고
아침마다
상일(上一) 세탁소 아저씨가
세탁(世濁), 세탁 외친다
세상 탁해, 세상 탁해
탁한 세상
세탁하라는 소리 같아
그 소리
높이 들어올린 아침
탁한 몸 한 벌
세탁하고 싶네
뒤편
성당의 종소리 끝없이 울려 퍼진다
저 소리 뒤편에는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있을 것이다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
지나간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고 벼르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세상은 그래도 살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지나간 것은 그리워 진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랑은 그래도 할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절망은 희망으로 이긴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슬픔은 그래도 힘이 된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가치있는 것만이 무게가 있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소한 것들이 그래도 세상을 바꾼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바람소리 더 잘들으려고 눈을 감는다.
'이로써 내 일생은 좋았다'고
말할 수 없어 눈을 감는다.
오래된 골목
길동 뒷길을 몇 번 돌았다
옛집 찾으려다 다다른 막다른 길
골목은 왜 막다르기만 한 것일까
골과 목이 콱 막히는 것 같아
엉거주춤 나는 길 안에 섰다
골을 넘어가고 싶은 목을 넘어가고 싶은 골목이
담장 너머 높은 집들을 올려다본다
올려다볼 것은 저게 아닌데
높은 것이 다 좋은 건 아니라고
낮은 지붕들이 중얼거린다
나는 잠시 골목 끝에 서서
오래된 것은 오래되어서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래된 친구 오래된 나무 오래된 미래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나무가 미래일까
오래된 몸이 막다른 골목 같아
오래된 나무 아래 오래 앉아본다
세상의 나무들 모두 無憂樹 같아
그 자리 비켜갈 수 없다
나는 아직 걱정 없이 산 적 없어
無憂 무우 하다 우우, 우울해진다
그러나 길도 때로 막힐 때가 있다
막힌 길을 골목이 받아적고 있다
골목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고 있다고
옛집 찾다 다다른 막다른 길
너무 오래된 골목
구르는 돌은 둥글다
조약돌 줍다 본다 물 속이 대낮 같다
물에도 힘이 있어 돌을 굴린 탓이다
구르는 것들은 모서리가 없어 모서리
없는 것들이 나는 무섭다 이리 저리
구르는 것들이 더 무섭다 돌도 한자리
못 앉아 구를 때 깊이 잠긴다 물먹은
속이 돌보다 단단해 돌을 던지며
돌을 맞으며 사는 게 삶이다 돌을
맞아본 사람들은 안다 물을 삼킨 듯
단단해진 돌들 돌은 언제나 뒤에서
날아온다 날아라 돌아, 내 너를
힘껏 던지고야 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