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8일 월요일, 이 스테파노 내외가 '엠마우로가는 길', 배론 성지순례
를 제의, 우리 부부는 쾌히 동의, 8시 출발, 10시 30분경 도착,
11시 배론 성지 성당 미사 전례 참례,
주임 신부님의 강론,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라는 천사의 말
에 마리아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고 응답, 믿음에 찬 순명으로 하느님 뜻에 따라 당신 자신
을 바치심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다'라는 강론 말씀에 감동.
미사 전례 후 성지 경내 순례
최양업 신부 일대기
1821년, 충남 청양(靑陽) 화성면 농암리에서 출생, 본관 경주 아명
양업(良業), 관명 정구(鼎九) 아버지는 최경환, 어머니는 이성례 기해박
해 때 모두 순교.
1836년, 프랑스 신부 모방에게 최방제(崔方濟), 김대건(金大建)과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 중국으로 돌아가는 신부를 따라 책문(柵門)에 도착,
1837년 6월 7일, 샤스탕 신부 도움으로 마카오 파리 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 도착, 조선신학교에서 사제 공부.
1844년 12월 10일, 김대건과 함께 신학교 졸업 부제(副祭).
사제 서품을 먼저 받고 페리올 주교와 함께 조선으로 입국, 김대건 신부
병오박해로 체포 순교, 최양업 부제는 조선으로 입국하지 못하고 홍콩
으로.
1847년, 프랑스 함대를 따라 조선으로 향했지만 배가 좌초, 전라북도 고
군산군도(선유도)에 상륙하였다가 상하이로 회귀.
1849년, 상하이에서 마레스카 주교의 집전으로 신품 받고 조선 천주교
사상 두 번째의 신부.
조선 귀국 위해 백령도까지 갔으나 약속된 배가 오지 않아 다시 중국으로.
이후 요동에서 중국인을 대상으로 사목활동, 13년 만에 홀로 조선으로
귀국. 전국에 흩어져 있는 교우촌 신자들을 위한 순방, 1850년부터 1861
년까지 프랑스 선교사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을 맡아 사목활동을 전개.
경신박해, 경상도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에 은신, 베르뇌 주교에게 사목활
동 보고 위해 서울로 가던 중 문경에 있는 교우촌에서 과로로 사망.
배론 성지의 최초로 지은 성 요셉 성당-지금은 성체 조배실
이어서 배론 성지 세 가지 보물 순례
1. 황사영 토굴
천상임금님(천주)의 신하가 되어 순교자 황사영 알렉시오가 흰 비단
위에 신유박해의 전말과 그 대응책을 흰 비단에 적어 중국 북경의 구베
아 주교에게 보내고자 한 편지(밀서)를 쓰며 지내던 곳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도움의 편지(백서)를 쓰던 순교자의 마음이 느껴
진다.
2. 성 요셉 신학당
한국 최초의 서양식 신학당(1855년-1866년)
하느님의 사랑을 가르치고 배우던 두 프랑스 신부와 신학생들의 배움의
현장, 1855년 메스르트 신부가 설립, 교우촌 회장 장주기 요셉(갈매못에
서 순교)이 자신의집을 신학당으로 봉헌, 1856년 푸르티에 신부 교장,
프르니콜라 신부 교수로 재직 두 교수 신부 는 새남터에서 순교.
3.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묘소
덤으로 하느님의 작품, 아름다운 경내 풍경 탐방
'하느님 이렇게 함께할 수 있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아멘!'
오늘,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성지에서 예수님과 동행,
다시 한번 새로운 믿음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이 성지를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