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1600 Km여행 (붕타우에서 싸파)
남부 호치민(Ho Chi Minh)
베트남의 경제 수도라 불리는곳
예전에 우리들에게 사이공(Saigon)으로 알려졌던 도시로써, 베트남의 수도는 북부의 하노이 이지만
베트남 최대의 도시는 남부의 호치민이다. 천만이 넘는 인구가 살며 곳곳에 신축빌딩,
공장 건설 중으로 한국이 경제 모델이라 한다.
우리와 정서가 비슷한 관계로 한 베 경제부터 긴밀한 관계로 발전하고 이제는 전쟁의
상흔은 희미해져 가고..
남부 경제수도 호치민에만 10만이상 교민이 살고있고 KBS TV 뉴스가 실시간 (2시간 시차)
방송되고 조금늦은 한국드라마가 자막과 더빙으로 인기리에 방송중이다.
가이드의 메콩강(어미젖)의 유래, 구찌땅굴(집요한 공산월남의 250Km길이 두더지작전),
호치민 명승지(작은 빠리) 붕타우(옛 미군휴양 해변)등,
베트남 / 남부 호치민 (구 사이공)
오토바이의 따발총 쏘는듯한 아침의 소음과 함께 신짜오!
로 시작하는 베트남 !
가이드의 메콩강(어미젖)의 유래, 구찌땅굴(집요한 공산월남의 250Km길이 두더지작전), 호치민
명승지(작은 빠리) 붕타우(옛 미군휴양 해변)등, 해박한 베트남의 역사적 해설 !
(붕타우 거대 예수상)
개그맨을 능가하는 특유의 유머는 일행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고 몇몇 참전 어르신 들을
감안한 참전용사 뺨치는 리얼한 월남전 스토리는 여행의 백미였습니다.
투철한 국가관을 가진 베트남 부인을 둔 가이드께서 한국의 최근 좌우논쟁에 우려를 표시하고
IMF 때 현지인들이 교민 대하는 태도가 다름을 느끼고 고국이 잘돼야 해외교민들도
어깨를 펴고 산다는 말에 나라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교훈의 과일 / 부 스어 Milky Tree
교훈을 주는 특이한 과일 !! Vu sua (Star Apple) : 메콩강(메-어미) 지역에서 주로 자라며
나무 가지에 수백 개씩 열려 있는‘부쓰어’ 베트남어로 부(Vu)는 ‘젖’ 쓰어(Sua)는 ‘우유’란 뜻.
어느 어머니와 아들이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말썽꾸러기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기다리다
지쳐서 죽어 한 그루의 나무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 온 아들은 어머니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고 마당에 처음 보는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만 발견하게 되고 배가 고파 과일을 맛보고 이것이 어머니의 젖과 같음을 알고 곧 어머니가
자신을 기다리다 나무가 되어 배고픈 자기를 위해 열매를 맺었음을 깨닫게 된다는
모성의 강함을 일깨워주는 전설의 과일.
중남부 나트랑(Nha Trang) / 퀴논(Qui Nhon) / 다낭(Danang)
호지민에서 북쪽에서 400여 Km떨어진 맑고 깨끗한 해변과 그곳에서 즐기는 해양 스포츠의 낙원으로
동양의 나폴리라는 나트랑(Nha Trang),
호치민에서 670여 km 북쪽에 떨어져 있는 중남부 빈딘성 주도, 퀴논(Quinhon),
옛 맹호 주준지로 아름다운 야자수 가로수의 해변 앞바다가 유명하다.
경제수도 호치민(Ho Chi Minh, 구 사이공) 베트남 수도 하노이(Hanoi) 북동부 하이퐁에
이어 베트남 중부의 제4도시 다낭(Danang)은 북쪽 최후의 왕조 베트남의 경주 후에와
남쪽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호이안에 둘러싸인 항구도시로
새롭게 떠오르는 베트남’의 상징이다.
북부 하노이 (河內, Hanoi)
호수가 많은 1000년역사의 베트남 수도, 오토바이의 따발총 쏘는듯한 소음과 함께 아침의
“신짜오”로 시작하는 베트남의 꽃 아오자이 꽁까이의 속삭이듯 한 말씨를 들으며
기술지원 업무차 파견후 주말을 맞이하여 하노이 구시가지 중심 호안키엠 호숫가를 둘러 보았다.
교훈 / 4보문(報門)
의 報義, 덕 報德, 은 報恩, 복 報福門이라 새겨진 작은 4報 門 에는 남녀노소, 신혼, 청춘객 들이
주로 사진을 찍으며 인간으로서 바르게 살며 덕을 쌓고 은혜를 알면 복된 삶을 누린다는
메시지 를 전하는 명소이다.
폐쇄된 북한과는 달리 자본주의 문호개방으로, 사화주의 국가로 발전을 거듭하는 나라 베트남 !
이제는 한국-베트남 상호 경제협력 파트너 국가로 중국 다음으로 큰 시장으로 변한
모습을 보며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낀다 !
베트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1호 후에 왕성 2호 하롱베이 3호 호이안 구시가
싸파(Sapa)
베트남의 또다른 세상,
오지인 최북단 소수몽족마을 SAPA 고산 산악지대, 인도차이나 최고봉 3,143 m 판시판산이 있는 곳 !
(수도 하노이에서 침대칸 열차로 10시간 걸려 중국 접경 라오까이역 도착,
다시 버스로 2시간 걸려 싸파도착 ! )
베트남의 3대 관광지로 하롱베이, 후에, 호이안 과 더불어 새로이 떠오르는
고산몽족 마을,
4월 27일(토) 주말과 국경일에 하노이역에서 밤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홍강(Red River) 줄
기를 따라 칠흑같은 밤을 지나 아침을 맞이하니,
베트남의 최북단에 위치한 중국 변방 라오까이(Lao Cai) 역에 도착, 다시 버스를 1시간반 달려
해발 1650m 에 위치한 인구 3만의 싸파(SAPA)에 도착하였다,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안은 베트남 서북방 350여 Km거리 변방의고산지대 소수민족
"몽족" 의 오지 마을로 향했다, 노스 스타 호텔에 여장을 푸니 창밖에는 보슬비가 내린다,
이곳은 고산지대라 하루에도 몇번씩 비오다 흐리다 맑은날씨가 반복되는곳이다,
가이드 이야기로는 프랑스 지배할때 휴양도시로 개발하였다고 한다,
자연과 순응하며 욕심없이 사는 유난히 작은체구의 순수한 몽족들..
베트남에서 제일 높은 3,143m 높이의 “판시판”산이 보이는 계곡 중턱에 올라보니
작은 마을과 계단식 다랑논과 밭이 기하학적 곡선형으로 파노라마처럼 독특하게 다가온다,
이틑날 트레킹을 하며 계곡을 따라 마을에 들어서니
우리나라 60년대 모습같은 자연친화적인 가옥 사이로 꼬마들이 흑돼지, 염소, 강아지와
한가족인듯이 자유로이 놀고 전통 물레방아, 직물짜는 베틀 여인네의 모습속에
길가 토산품 가계에서는 독학으로 배웠다는 영어를 구사하는 몽족여인들이 기념품을 사라고 한다,
교훈 / 욕심없이 자연과 순응하며 사는 삶
그들만의 독특한 전통을 유지하며 오염되지 않은 자연속에서 욕심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소음과 공해, 인간의 욕망으로 찌든 도시화된 인위적 틀속에서 같혀 지내는듯한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
베트남 참전
< 훈련 / 맹호(보병) - 근무 / 십자성(100군수) - 전속 / 주월사(공지단) >
월남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72년 4월경 "월남 지형과 유사한 강원도 오음리" 에서
맹호마크를 달고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한 4주간의
"혹독한 실전 지옥 훈련"을 마치고(훈련중 사상자 발생, 유격훈련은 그림자도 비교가 안될 ! )
춘천에서 특별열차를 타고 부산항 제3부두에 도착 하였다.
(사진 : 월남전 자료 인용)
만 21세의 나이로 미국무성에서 파견한 15000톤급 수송선을 타고 미래의 불확실성을
애써 떨쳐버리고 사즉생의 각오를 다지며
전우들과 함께 원형 차창밖의 갈매기를 벗삼고 난생 처음 입에 맞지 않는 서양식을 먹으며
5일만에 미지의 세계 야자수 우거진 베트남 중남부 퀴논항에 도착하였다,
(훗날 30여년 만에 퀴논에 있는 기술학교 파견근무)
옛 맹호 주둔지 퀴논 ! 하선하는 맹호용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트랑으로 향하며
무운을 빌던 72년도 봄 ~ 여름 그날 !
함께 훈련받은 1진 맹호병력은 퀴논(Qui Nhon)에서 하선하고 주특기에 따라
기술병과 였던 나는
다시 십자성부대로 알려진 100군수 지원사령부가 있는, 현지에서는 “나짱”
이라고 부르는
나트랑(Na Trang)의 "3통신지원중대"에 배속 되었다,
전후방 없다는 전쟁터 월남이지만
당시 인사장교의 호명에 따라(보병 / 기술병) 어쩌면 삶과 죽음의 갈림길 일지도
모를 희비가 교차 !
전투보병 "맹호"에 비해 후방 군수지원인 "십자성" 부대로 호명 (10%)
십자성 부대에서 몇달간 보초 근무와 작전용 차량을 담당 하던 중,
당시 작은 빠리 라고 불리는 자유월남 수도 사이공 (현재의 호치민)의
주월사에 특과병으로 전속되어 공지단 파견 "탄손누트 공항" 안내병으로 근무 하다가
73년 3월 휴전으로 귀국하였다,
(한국군, 미군, 철수후 자유월남 1년만에 패망 ! )
당시 호랑이 별명의 이세호 사령관 께서 "우리는 명예로운 임무를 완수하고 귀국"을
강조" 하시고
다낭에 주둔하여 용맹을 떨친 청룡부대의 100명을 남기고 일반병으로는 마지막으로
73년 3월 15일 민간 항공기 DC - 8기를 타고
완전군장 상태(사령관 명령)로 수원 공군기지에 귀국 하였다,
오래지 않아 자유월남은 버팀목 이었던 한미군이 철수한후 계속된 정부의 부패와
자유수호 의지가 약한 틈을 노린 월맹, 베트공의 공세와
적색분자들의 선동과 사상 혼란으로 패망하였다. (75년 4월)
★★★ 자유와 평화를 위해 가난했던 조국을 위해 이역만리 월남땅에서 산화하신
파월용사 분들의 명복을 빌며 ! ★★★
그후 제대하여 국가 시책으로 기능인력 양성을 위한 공공직훈 교사로 근무하고 퇴직후인
99년 3월, 희미하게 잊혀졌던 베트남 땅,
아이러니컬 하게도 72년도 맹호 주준지 퀴논의 앞바다에 수송선상에서 멀리서 보았던
야자수 숲속에 위치한 기술학교에 27년이 지난 99년도에 전문가로
3개월 동안 파견 근무하게 되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무상으로 300만불상당의 국산장비, 인력을 지원하는
기술학교 개선사업을 계기로 양국간의 관계개선에 큰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그후 그곳 교사들이 직종별로 한국의 초청연수 프로그램으로 국제 HRD센터에 연수도
다녀가고 2011년에는 개교 기념식에 교장으로 부터
초청받아 퀴논 학교를 다녀왔다,
베트남 에서의 오랜 경험으로 얻은것은 부패하고 사회가 혼란 해지면 자유월남 처럼
나라가 망한다는 교훈과, 중국 다음으로 아시아 제2의 경제 협력관계로 발전한
베트남을 보며 과거 상흔은 잊고 상호 발전적으로 협력하면
"국제사회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는 오직 국익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절감 하였다,
태극기와 함께 휘날리는 공산 사회주의 베트남공화국 국기(태극기오른쪽 붉은 바탕에 노란 별 !
40년전 서로 총부리 맞대다가 아시아 제2의 경제 협력국, 국제사회는 적도 친구도 없는 국익에 따라
변화하는 냉혹한 현실 ! 역사의 아이러니, 일반인 한국과 정서가 비슷한 친절한 민족 !
남부 퀴논에 이어 2013년에는 북부 하노이의 "하노이 기술학교"에 3개월 동안 근무하며
따듯한 마음을 갖은 민족으로 (지원받는 입장을 고려해도) 우리와 정서도 비슷하고
가까운 이웃임을 깨닳는 계기가 되었다 !
신임 퀴논교장 공항전송 / 퀴논에서 36Km 거리
인천 자유공원 - 수봉현충탑 - 팔미도 (인천상륙작전 섬)
수도 하노이
호안키엠( 환검 / 還劒) 공원
용이 하늘로 오르다 뜻 (Thang Long) / 탕롱 - 옛 하노이 이름
구시가 호안키엠호수 주변 번화가
신시가지 왼쪽 건물 대우호텔(98년도 벌판위의 최고층 건물, 지금은 ...
옥산사찰 (호안키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