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오회장님의 카톡에서]
● 하버드 대학 에드워드 슐츠 교수, 세계사 강연회에서 한국과 일본의 진실을 …
한국 역사의 숨은 진실에 세계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한국사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
이에 발맞춰 세계 최고 명문대학교 하버드에서도 한국 역사의 숨은 진실에 대한 강연회가 열렸습니다.
이에 일본 유학생들은 집단으로 반발하며 수업 거부 움직임까지 보였다고 하는데, 도대체 하버드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오늘 포스팅을 통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결코 군사적으로 지배할 수 없는 민족이었습니다."
세계적인 역사학자인 에드워드 슐츠 교수. 동아시아 역사의 권위자인 그는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등 세계적인 명문대학교에서 역사 강연을 하고 있는데, 슐츠교수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열린 세계사 강연회에서 "일본은 한국에 과거의 잘못을 사죄해야 한다"라고 주장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와 같은 소식은 하버드 교내신문에도 실리며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일본인 학생들은 "하버드가 한국인들의 거짓말에 속고 있다"라며 단체로 항의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버드는 예정대로 에드워드 슐츠 교수의 강연을 진행했는데, 에드워드 슐츠 교수는 "해당 강의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일본인 학생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들의 뻔뻔한 태도에 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역사란 오로지 진실만을 알리는 학문이여야 하며,
다른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이 수업을 듣기 싫은 학생이 있다면, 결석 처리를 하지 않을 테니 강의실에서 나가라.
나는 진실을 숨기려는 자들과 타협할 생각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버드 학생신문에 실린 슐츠교수 강의 내용
이어서 에드워드 슐츠 교수의 특별 강연이 시작되었는데, 그는 "일본은 한반도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이주민들이 세운 나라다. 일본 왕실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의 수도 서울을 근거지로 삼았던 백제 왕가가 나온다"라는 말과 함께 한국과 일본의 역사에 대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일본에게 있어서 한국은 늘 동경심과 열등감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스승과도 같은 존재였다.
일본과 달리 한국인들은 결코 군사적으로 지배할 수 없는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강압적인 군인들에 의해 통치되는 동안, 한국은 현대 국가와 마찬가지로 고등 교육을 받은 엘리트 관료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라고 말했는데, 그는 분명한 어조로 "수천 년 동안, 한국은 일본보다 훨씬 선진적인 국가였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서 슐츠교수는 "1861년. 일본에서는 다시 없을 기적이 일어났다.
일본을 강제로 개항시킨 미국에서, 남북전쟁이라는 내전이 벌어졌던 것이다. 꼼짝없이 미국의 식민지가 될 운명이었던 일본은 가까스로 독립을 지킬 수 있었다.
강요된 개항으로 인해 서양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게 된 일본은,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보다 앞서 나가게 되었다. 그들은 곧 오랜 은인이었던 한국에 칼을 들이미는 배은망덕한 행위를 저질렀다"라며 일본의 한국 침략을 언급했습니다.
일본이 저질렀던 수많으 범죄 행위를 들은 하버드 학생들은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는데, 일제가 한국에 저지른 강제징용, 식량 수탈, 문화재 도굴, 위안부 강제 동원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가슴아픈 역사를 듣고 눈시울을 적시는 학생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에드워드 슐츠 교수의 강연이 끝나자, 한 하버드 학생이 뜻밖의 질문을 던졌는데, 그건 바로 오래전부터 자행되어 온 일본의 역사 왜곡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나는 예전에 일본인 교수가 쓴 역사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에서는 한국이 먼저 일본에 보호를 요청했다는 잘못된 내용이 쓰여 있었다.
오늘 교수님의 강의를 통해 늦게나마 진실을 알게 되어 너무 다행이다. 일본의 이런 말도 안되는 역사 왜곡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는데, 그의 말을 들은 에드워드 슐츠 교수의 대답은 강연장에 있던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덤덤한 어조로 "그때 당시에는 일본이 한국보다 강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는데, 그의 한마디에 강연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지고 말았습니다.
이어서 "역사란 강자의 손에 의해 쓰여진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또 다른 사실이 있다. 그건 바로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것이다. 일본이 아무리 미화하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것,
그건 바로 일본이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를 침략하여 온갖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다.
나는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들인 여러분이 이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주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는데, 그의 말은 100% 사실이었습니다.
일본은 오랜 스승과도 같은 나라인 한국을 침략해 수많은 범죄 행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역사적 사실을 "한국인들이 먼저 일본에 보호를 요청했다"라는 거짓말로 왜곡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이 신처럼 떠받드는 일왕이 "일본 왕실은 한반도에서 건너왔다"라는 충격적인 진실을 밝혔을때도 총리가 직접 나서서 "일왕의 역할은 제사에서 기도를 하는 것뿐이다"라며 이를 숨기려하기 바빴습니다. 이 모두가 일본 역사의 추악한 진실을 가리려는 비열한 술책이었습니다. 지난 수십년동안 일본은 한국보다 강한 국력을 지닌 나라였고,
그렇게 때문에 이런 일본의 역사왜곡에 속아 넘어간 세계인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한국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선진국으로 도약했고, 세계인들 모두가 한국의 과거와 미래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먼저 나서서 한국의 올바른 역사를 세계에 알려야 합니다!
220423
https://figaro76.tistory.com/entry/%ED%95%98%EB%B2%84%EB%93%9C-%EC%84%B8%EA%B3%84%EC%82%AC-%EA%B0%95%EC%97%B0%ED%9A%8C%EC%97%90%EC%84%9C-%ED%95%9C%EA%B5%AD%EA%B3%BC-%EC%9D%BC%EB%B3%B8%EC%9D%98-%EC%A7%84%EC%8B%A4%EC%9D%84-%EC%95%8C%EB%A6%B0-%EC%97%AD%EC%82%AC%ED%95%99%EC%9E%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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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톨스토이를 통해 배우는 인생의 의미
유명한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
「부활」, 「안나 카레니나」 등과 같은 좋은 작품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톨스토이가 세계적인 작가가 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백작의 아들로 태어나 1천여명의 농노를 거느린 영지에서 부유하게 자랐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했으며, 피아노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교양이 풍부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섯 남매를 남겨 놓고 톨스토이가 태어난지 1년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7년 뒤 아버지 니콜라이도 뇌출혈로 돌아가셨고, 할머니도 그 충격으로 9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청년이 되어 대학 입학시험을 보았지만 낙방하였고, 다시 도전하여 대학에 들어갔지만 허무함으로 대학 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고향 땅에 돌아가 농노들과 함께 이상적인 농촌을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농노들과 하나가 되지 못하여 그 꿈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는 군에 입대하여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크림 전쟁의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아버지의 가족과 어머니의 가족을 모델로 삼아 「전쟁과 평화」라는 작품을 쓰게 되었는데 그 작품으로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갈채를 받았고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삶의 허무와 죄에 대한 공포, 불안한 마음은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적한 시골길을 걸어가던 중 어느 시골 농부를 만났습니다.
그의 얼굴에 유난히 평안해보였고 톨스토이는 그가 너무 부러워 농부에게 평화의 비결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기에 언제나 기쁠 뿐입니다."
그 말을 들은 톨스토이는 모든 것을 다 갖췄고 많은 재산과 성공, 세상적 즐거움을 누리며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골농부보다 더 불행하게 살고 있는 자신을 되돌아보며 그날부터 진지하게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톨스토이는 "나의 회심"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5년 전 나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나의 전생애가 변했다. 이전에 욕망하던 것을 욕망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이전에 구하지 않았던 것들을 갈망하게 되었다.
이전에 좋게 보이던 것들이 좋지 않게 보이고, 대수롭지 않게 보이던 것들이 이제는 중요한 것으로 보이게 되었다.
나는 소위 행운의 무지개를 찾아다니며 살았는데 그 허무함을 알게 되었다. 거짓으로 나를 꾸미는 것이나, 여인들과의 성생활이나, 술에 취해 기분 좋아하는 것들을 더 이상 행복으로 간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세 개의 의문"이란 글에서 우리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그는 이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시간은 지금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은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일이다.
그가 82세로 하나님 앞으로 가기 전 이런 일기를 남겼습니다.
“아버지여, 생명의 근원이시여, 우주의 영이여, 생명의 원천이여, 날 도와주소서. 내 인생의 마지막 며칠, 마지막 몇 시간이라도 당신에게 봉사하며 당신만 바라보며 살 수 있도록 날 도와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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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록도 스테파노 할아버지의 신앙」
지금은
전국의 나병 환자 마을이
많이 없어졌지만,
제일 유명한 곳이
소록도입니다.
저는 신학교 여름, 겨울 방학을
소록도에서 보냈습니다.
큰 가방 하나를 들고
소록도의 비탈진 길을오르는데,
처음에는 정말 개(犬)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팔다리가
하나도 없는
나병 환자 였습니다.
배에 타이어를
반으로 자른 것을
대고
팔꿈치로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저씨 어디가세요?"
하며 얼굴을 보니
흉칙했습니다.
구멍만 보일뿐
코도 없어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저 언덕위 성당에
기도하러 가시는중 이었습니다.
목에는 묵주를 감고 계셨죠.
그래서
‘아저씨,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안아 드리면
안될까요?
전 신학생입니다.’
그랬더니,
아저씨가 오늘 천사를만났다고
고마워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은 5분이면 갈 거리를
이 분은 지렁이처럼 기어가니
3~40분이 걸리는 힘든 일입니다.
게다가 비탈길에
눈이오면
열심히 올라가다
배에 있는 타이어가 죽 미끄러지고~
그 분 성함이
'스테파노' 셨어요.
산 중턱에
공소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어느 날 저도
기도하러 그 공소를 들어 가려는데,
공소 밖에서
'스테파노'
할아버지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할아버지, 왜 못 들어 가셨어요?’
세상에,
문고리를 잡을 손이 있어야
문을열죠.
다른 때 같으면
머리로 몇 번 문을
두드리면
안에서 문을 열어 주었대요.
그런데 그 날은
너무 추워서
기도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닫힌 문을
머리로 열려고 하다가
머리를 다쳐 얼어 붙은 거예요.
그래서 밖에서
여기가1처겠다~,
2처겠다 ~ 하면서
혼자 배로 기어가면서
14처기도를 하고
계셨어요.
‘아이구, 아저씨 저랑 같이 해요.’
정말 아기 몸뿐이
안 되는
아저씨를 품에 안고
함께
14처를 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신부가 되고
어느 날 소록도에 ㅎ계시는 수녀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스테파노 할아버지 아시죠?’
‘네, 잘 알죠.’
‘지금 위독하신데
자꾸 신부님을
찾으시는데
오실 수 있으실까요?’
밤에
차를 몰아 소록도까지갔습니다.
‘할아버지
눈 떠보세요.
저 왔어요.
왜 빨리
천당 못가시고 힘들게계세요.
이제 가셔도 되요.’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물어보고 싶으신게
있다고 하십니다.
‘신부님, 저는 평생 이 몸뚱아리로
살아 왔습니다.
소록도 바위에서
자살을 5번이나
시도했는데
모진 목숨이라
하느님이 살려주셨지.
난 주님을 알게 된 후
몸 성한 사람이 부럽지 않았어.’
그런데 부러운 것이
손가락 두 개만
있으면,
내 손으로 묵주기도 한 번,
묵주알을 굴려 보았으면!
그 분은 팔꿈치에
고무줄을 걸고
거기에 나무를
입으로 끼어,
땅바닥에
묵주를 펼쳐 놓고
하나하나 집어가면서 기도하셨어요.
자신은 손가락 5개도
필요 없대요,
하나는 걸고 하나는 돌리는
손가락 2개만 있으면 족하대요.
그러면서 ‘신부님,
나 죽으면 청년 시절처럼
부활시켜 주실까요?
천국에서는
내 손가락으로
묵주기도
할 수 있을까요?
신부님 입을 통해
확인 받고 싶어
못 죽고 있어요.’
‘암, 그럼요,
깨끗한 몸으로 바꿔 주실 거예요.’
언제가 그 분의
빛바랜 사진을
보았는데
정말 잘 생기고
준수한 청년이었어요.
할아버지는
‘그럼 안심하고
가겠습니다.’
마지막 강복을 받고
'스테파노' 할아버지는 제 품 안에서
아이가 잠자듯 숨을 거두셨습니다.
일주일이 지났을까?
제가 꿈을 꾸는데
꽃밭 한 가운데 있었어요.
순간적으로
여기가 천국이구나
생각했죠.
별의별 꽃이
다 있었어요.
그런데 저 쪽에서
누가 막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오는 거예요.
가까이 올수록
어디서뵌 분인데?
다시 보니
그 흑백사진에 '스테파노'
할아버지의
젊었을 때
모습이었습니다.
손가락마다
묵주를 감고
나를 끌어 안으면서
‘신부님,
손가락이
10개 생겼어요.’
여러분!
꿈에서
울어본 적이
있으세요?
그 분을 끌어안고
정말 '성모님
우리 아저씨에게
손가락을 10개나 주셨네!
이제는
아저씨 손가락으로
묵주기도 드릴 수 ㅎ있겠네!‘
그분은 하느님을 체험하고 난 다음
숨이 끊어질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
라고 하는
그 별만을
바라보면서
한눈 팔지 않고,
비록 몸뚱이는
짐승 같고
배로 바닥을 기어
다니는
처참한 몰골 이었지만,
그 분은 성인 이셨어요.
제가 이 세상 살면서
존경하는 분 중
한 분이 바로
'스테파노' 할아버지였습니다.
나도 저분의 신앙
백분의 일이라도 닮자,
그러면 나도
성인 사제가 될 수 있다.
여러분들
묵주 알을
굴릴 수 있는
손이 없으십니까?
성당 문턱을
넘어 설 수 있는 발이 없으십니까?
얼마나
여러분들은
은총 가운데
부자인지 모릅니다.
우리들이 짊어진
등의 십자가는
포기할 수도
버릴 수도 없습니다.
끝까지 용기 잃지 마시고
희망을 갖고 정진하시면
언젠가는
밝은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ㅡ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ㅡ
🍀🌷💜💙💚💛💓💗💖 ✝️ 💖💗💓💛💚💙💜🌷🍀 🍒
☆ 친구는 스승 입니다.
소탈(疏脫)한
친구(親舊)를 만나면
나의 속됨을 고칠 수 있고,
통달(通達)한
친구(親舊)를 만나면
나의 편벽(偏僻)됨을
깨뜨릴 수 있고,
박식(博識)한
친구(親舊)를 만나면
나의 고루(固陋)함을
바로 잡을 수 있고,
인품(人品)이 높은
친구(親舊)를 만나면
나의 타락(墮落)한
속기(俗氣)를
떨쳐버릴 수 있고,
차분한 친구(親舊)를 만나면
사치(奢侈)
스러워져 가는
나의
허영심(虛榮心)을
깨끗이 씻어낼 수 있다.
친구(親舊)는 모든 면에서
나의 스승이다.
좋은 친구(親舊)를 원한다면
자신이 먼저
좋은 친구(親舊)가
되어 보자.
오늘도
멋진 친구(親舊)
멋진 만남을 위해
최선(最善)의 노력을 하고,
항상(恒常) 함께여서
감사(感謝)한 마음으로
행복(幸福)합니다.
어찌 친구(親舊)
뿐입니까?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스승이었습니다.
덕분(德分)에
성장(成長)할 수 있어서
진심(眞心)으로 고맙습니다.
그러므로
나와 관계(關係)된
모든 분들에게
감사(感謝)의 마음으로
축복(祝福)을 보냅니다.
따뜻한 손은
따뜻한 대로
찬 손은 찬 대로
모두 유익(有益)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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