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그기들은 팬텀이 나타나면 줄행랑을 치고
나는 늙으막에 글을 쓴다. 무슨 문학성 높은 작품을 남기기 위해 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록을 남기기 위해 리포트를 쓰는 것도 아니다. 또한 철학적 사유 깊은 글을 써서 뭇 사람을 계도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 그도 저도 아니면 무료한 시간을 떼우기 위해서 하는 짓거리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그저 마음이 내키면 내키는 대로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휴대폰 자판을 두드릴 뿐이다. 속된 표현을 빌리자면 꼴리면 꼴리는 대로 하는 행위일뿐이다.
팬텀 퇴역식에 참석한다. 내가 보기에는 새파랗다 못해 어린 사람 같이 느껴지는 후배들이 성대하게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을 잘하고 있다. 기지도 옛 모습 그대로가 아니고 옛날 미군 부대처럼 부티가 흐르는 기지로 변모해 있다.
지난 55년 세월. 한 때는 내 생명을 의지하고 인생의 전부를 걸고 날았던 애기愛機가 이 지구상에서의 수명을 다 하는 날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말이 좋아 퇴역식이지 사람으로 말하면 장례식이라고 하는게 맞는 말이나 아닌지 모른다. 단지 진혼곡과 조총 소리만 울리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지난 날의 성공적인 영공 수호 임무를 현양하고 앞으로의 막중한 임무를 후속 전투기에 이양하는 역사적 사명만이 강조될뿐이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 생의 젊은 한 시절이 끝내 막을 내리는 듯한 서글픔이 감돈다. 또 그 동안 임무 중 순직한 동료 조종사들의 희생이 가슴 한자락을 시리게 할 뿐이다. 어쩌면 가슴 속에서는 TAPS의 긴 트럼펫 소리가 길게 길게 여울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팬텀을 타기 시작한 것은 1970년 초 부터였다. 그 때는 전 후방석 모두 조종사였고 어느 정도 후방석에서 비행을 하면 전방석으로 전환 시키는 시스템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지휘부에서 그 만큼 팬탐을 애지중지 했던 것 같다.
첫 팬탐 부대인 제151전투비행 전대 조종사 휴게실 잘 보이는 곳에는 "자주국방의 전위, 팬탐 공군" 이라고 쓴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휘호가 게시되어 있었다. 또 대통령께서 항상 관심을 가지시고 대구를 방문하실 때면 대대까지 오셔서 조종사들의 근무 환경도 일일이 확인하시곤 불편 사항이 없는지도 묻곤 하셨다.
한번은 대대를 순시하시고 조종사 휴게실까지 와서는 조리기구가 놓인 카운터 안을 들여다 보셨다. 그리고 휴게실 아가씨에게 조종사들이 뭘 주로 마시는지 물어보셨다. 아가씨가 커피나 캔 음료(당시 펭귄표 쥬스)를 마신다고 답하니 조종사들이 자비로 마시는지 무료로 마시는 지를 물으셨다. 아가씨가 각자 자비로 마신다고 답하니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하는 모습이시더니 경호차 마침 곁에 서있던 경북 경찰청장에게 "당신이 앞으로 조종사 음료 책임져" 라고 하셨다. 그래서 전 조종사가 비상대기실과 대대 휴게실에서 그 분이 재직하는 동안 음료를 무료로 마신 일도 있었다. 그 만큼 팬텀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대단하셨던 거다.
마지막 2기 편대의 F-4E 팬텀이 최종 임무를 마치고 착륙을 한다. 그리고 제동 낙하산Drag chute를 개산하고 속도를 줄인다. 서서히 줄어드는 속도가 사그라 드는 인간의 혈류처럼 느껴진다. 행사장으로 지상 활주해 들어와 시동을 끌 때 들리는 팬텀 특유의 쇳소리가 오늘은 껄덕 거리며 마지막 숨을 내쉬는 임종호흡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진다.
이어 F-15, F-16, F-35 등 최신예기가 배턴 터치를 약속하듯 저고도로 훌라이 바이fly by를 한다. 팬텀같이 육중한 맛은 없지만 세련되고 유려하게 빠진 모습이 차세대 전투기 답다는 생각이 든다. 이어 블랙 이글스 팀의 화려한 곡예비행으로 행사의 대미를 장식한다.
좌우를 둘러본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들이 눈에 뛴다. 세월의 탓인가 그 팽팽하던 얼굴들이 주름지고 머리도 세었다.
우리는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
내가 사관학교 생도 대장이었던 시절. 생도였던 39기들이 벌써 신중년의 시기로 접어들게 되었다. 미주알 고주알 옛날 얘기들이 쏟아진다.
그때는 생도와 생도대장 관계라 다소 거리가 있었는데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되었다. 이 사람 저 사람 안부를 묻다가 벌써 한 분이 코로나로 세상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다. 한 순간 또 가슴이 썰렁해진다.
아내는 수원체력단련장에 운동하기로 약속이 되어 아침에 같이 왔다. 행사 오찬은 마쳤는데 티업tee- off한지 얼마되지 않았단다. 어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막막해진다. 그 때 대구 작전부장시절 작전과에서 같이 근무했던 후배에게서 전화가 온다. 구세주를 만난듯 반갑다. 임시 주차장에서 만나 골프하우스로 가서 커피라도 한 잔 하기로 한다. 그 때 행사장이 넓어 서로 만날 수 없었던 후배에게서 또 전화가 온다. 버스편으로 왔으면 자기가 집까지 데려다 주겠단다. 그럴 필요없이 만나 수다나 떨자며 골프 하우스로 오라고 한다. 그랬더니 머리가 하얗게 센 7년 선배님과 함께 온다. 내가 있다기에 얼굴이나 보려고 오셨단다. 이렇게 해서 아내 골프 끝날 때까지 옛 얘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팬텀 도입하고 얼마 동안은 북괴의 공중도발이 심했다. 동해에서 또 서해와 백령도에서 심심하면 불쑥불쑥 우리 영공을 넘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팬텀이 선봉을 서곤했다.
그 때 나는 미그MIG기와 조우해도 자신감이 넘쳐났다. 왜냐하면 팬텀에는 당시 여타 기종에는 없던 AIM-7 sparrow 미사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패로우 미사일은 사정거리 약 20km로 전천후 세미 에티브 레이다 홈잉 방식 마사일이다. 적이 알아채기 전에 멀리서 보고, 멀리서 쏘고, 그대로 현장을 이탈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동해 도발시에도 백령도 사태 때에도 미그기들은 팬텀이 나타나면 줄행랑을 치곤 했다.
또 대간첩 작전. 무장간첩선 격침도 팬텀의 로켓 포탄 아래 산산조각이 나곤했다.
또 남태평양을 가로 지르는 정거리 항법에도 팬텀이 앞장서 리드해 나가곤 했다. 관성항법장치 INS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팬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다목적 전투기였다. 생긴 것도 항공기 기동성능도 묵지근 하니 안정감이 있었다. 또 초음속의 세계에서도 엄청난 출력으로 가속 능력이 뛰어나 음속의 2.3 배까지 순식간에 가속되곤 했다.
그런던 팬텀이 이제는 맡은 임무를 다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려 한다. 보내는 사람은 안타깝지만
"전설을 넘어 미래로"
"국민의 손길에서 국민의 마음으로" 라는 행사구호 처럼 영웅의 해피엔딩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잘 가라. 팬텀아!
그 동안 수고했다. 그리고 고맙다.
글. 예비역 공군장성 최성열
2024.6.7
첫댓글 우리가 임관 하고 신예기라고 난리 법석을 떨었는데~~
이젠 늙어서 퇴역하네~
우리도 언젠가 퇴역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