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十二 章 無情한 風雲兒
놀라운 소문이 강호를 흔들었다.
-화산파(華山派)가 봉문(封門)했다.-
가을 바람과 함께 화산에서 들린 소문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화산파라면 칠대문파중 하나가 아닌가?
유구한 전통을 갖고 있는 화산파가 갑자기 봉문했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
는 일이었다.
강호는 겉보기 아주 평온한 상태였다.
오대기문, 그리고 빙차(氷車)와 회천정무문이라는 이대비문(二大秘門)이
있기는 하나 큰 싸움은 없는 처지였다.
모든 것이 평화로운데 갑자기 화산이 봉문을 단행한 것이다.
-화산장문인 매화노인의 시체와 명숙 아홉의 시체가 화산 아래 내던저진
채 발견되었다.-
그런 믿어지지 않는 소문이 들리기도 했다.
일파의 장문인이 비명횡사해 거리의 시체로 남게되다니,
칠대문파가 생긴 이래 가장 치욕스러운 일이 벌어진 것 같아 백도인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화산파 내부에 내란이 생겼다고 추측하는 사람이 많았다.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아쉬운 것은, 사람들이 이제껏 삐뚜러졌던 것이 바로 잡히기 시작한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었다.
암중에 강호를 장악했던 거대한 세력이 한 사람에 의해 서서히 흔들린다는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었다.
X X X
변경성(변京城),
개봉부(開封府)라고도 불리는 변경성 안을 쓸쓸히 걷는 백의인 하나가 있
었다.
아주 깨끗한 백삼을 걸친 약관 젊은이의 등에는 보기드문 장검 한 자루가
달려 있었다.
"개방이 십여 년 전에 폭풍방과 싸워 풍지박산된 상태라니..... 으- 음,
색환랑의 종적은 내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군."
백의서생의 목소리는 아주 청아했다.
허나, 그의 눈빛과 표정은 지독하게 싸늘했다.
스스로를 한정마객이라 부른 사공옥이 바로 백의인이었다.
(화산이 색혈검보라는 사도집단에 놀아났다는 것은 화산 일파에 국한된 일
이 아니다. 칠파가 모두 그런 꼴이기 쉽다.)
사공옥은 개방을 찾다가 실패한 길이었다.
그는 국수와 만두로 허기를 메운 다음, 변경성을 벗어났다.
그의 목적지는 낙양성(洛陽城)이었다.
그곳에 있는 색혈검보가 그를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낙양에 간 다음 소림사(少林寺)로 가보자. 화산이 가짜에게 놀아나고 있
듯 그곳의 장문인도 가짜인지 알아보자.)
사공옥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걷다가 인적없는 곳에 이를 수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없자, 평상적인 걸음에서 축지성촌(縮地成寸) 신법으로 신
형을 폭사시키기 시작했다.
흰빛이 흐르는 듯한 가운데, 그의 몸은 관도의 휘어진 곳까지 한순간에 움
직여 갔다.
얼마를 갔을까?
"으- 응?"
사공옥은 길 한 곳에 이르러 신음소리 비슷한 소리를 내며 몸을 세웠다.
부서진 마차 한 대가 그의 눈길을 끌었다.
본래 아주 화려한 마차인데, 산산이 박살나 나뭇 조각으로 화해 근처에 흩
어져 있었는데 여덟 마리 말의 시체도 보였다.
"마차가 강도에게 당한 모양이군. 말의 피가 아직 식지 않은 것으로 보아
오래 전에 벌어진 일은 아니군!"
사공옥은 마차 부서진 부위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귀를 쫑긋 세웠다.
저멀리서 아련히 들리는 파공성이 그의 주목을 끄는 것이었다.
펑-
수 리 밖에서 큰소리가 나고 있었다.
내가고수끼리 장력을 교환할 때 들리는 소리인데, 실로 엄청나 근처를 지
진같이 뒤흔들고 있었다.
"마차가 부서진 일과 저 소리가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군!"
사공옥은 소리난 곳을 바라보다가 신형을 뽑아 올렸다.
휙!
그는 순간적으로 흰 점 하나가 되어 숲안으로 날아들었다.
해남파의 경공술을 이용해 나는 듯 달리기 잠깐,
사공옥은 숲이 끊어지고 나타나는 바위산 기슭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펑- 펑-
바위산 기슭에서 대치하고 서서 장력을 교환하는 두 명의 여인이 있었다.
한 사람은 장미빛 궁장을 걸친 여인이고, 한 여인은 늙스구레한 회의여인
이었다.
홍의여인의 얼굴 모습은 보오지 않았다.
사공옥 쪽으로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회의여인 모습은 정면으로 보이는데, 아주 기괴한 모습이었다.
머리를 풀어 흐트려 반면을 가리고 있는 회의여인의 나이는 오십 넘어 보
였다.
머리카락은 이미 반백인데, 두눈에서 흐르는 빛은 얼음빛 보다도 더 차가
왔다.
펑-
두 여인의 손바람이 다시 한 차례 맞부닺쳤다.
바윗돌이 장력으로 인해 가루가 되어 분분히 피어 오르는데, 회의여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홍의여인은 일장을 칠 때마다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한빙여마(寒氷女魔)! 나와 무슨 원한이 있다고 나를 잡으려 하느냐?"
홍의여인의 목소리인데 은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듯 아름다웠다.
"나..... 나는..... 너..... 너를 잡을 뿐이다. 이..... 이유는.....
나..... 나도 모른다!"
한빙여마라 불린 여인은 멍한 눈빛을 흘리며 다시 손을 쳐들었다.
(이제 더 버틸 수 없는데.....)
홍의여인은 장력을 교환하던 중 탈진해 한빙여마가 다시 손을 쓰려 하자
눈빛을 흐트리며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너..... 너를 잡아가면..... 차주(車主)가 기뻐한다. 내..... 내가 바라
는 것은 그것 뿐이다. 차..... 차주가 바라는 것이 너의 목이었다면.....
너..... 너는 단 일장으로 박살나 죽었을 것이다."
한빙여마는 바보같이 말하며 손바닥을 활짝 폈다.
"으으-"
홍의여인이 식은 땀을 흘리며 몸을 휘청일 때,
"흠- 보기 드문 광경이로군. 늙은 여인 젊은 여인이 호젓한 곳에서 싸우고
있다니."
바람결에 실려오는 듯 신비한 목소리와 함께 두 사람 사이로 다가서는 백
의인 하나가 있었다.
임풍옥수(臨楓玉樹)같이 영준한 젊은이가 성큼성큼 다가서는 것이었다.
"끼..... 끼어들지 마라-"
한빙여마는 눈길을 백의인 쪽으로 돌리며 왼손바닥을 활짝 폈다.
그녀의 손바닥은 우유보다도 희었다.
(냉기(冷氣)가 지옥 빙굴 같군. 내가 익힌 신공과는 상반되는 한음진기(寒
陰眞氣)를 수련한 여인이로군.)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든 젊은이는 바라 사공옥이었다.
그는 한빙여마가 손을 쳐들자, 싸울 뜻이 없는 듯 손을 흔들며 부드럽게
말했다.
"여인과는 싸우지 않는다. 나는 마차 부서진 의문을 풀기 위해 왔을 뿐이
다!"
그의 말이 끝나기 전,
휘이- 잉-
한빙여마의 손바닥에서 유백색 기류가 몰려나오며 근처를 서리로 뒤덮었
다.
"지독하게 차갑군!"
사공옥은 몸이 꽁꽁 어는 듯 하자, 흠칫 놀라며 손을 쳐들었다.
열화강살공(熱火강煞功)을 쓰려는 찰나,
-열화칠살수는 가급적 사용하지 마라, 용서치 못할 악인에게만 사용해라!-
열화광마존의 충고가 그의 뇌리를 때렸다.
사공옥은 상대방을 무작정 죽일 수 없어, 열화강살공을 쓰려는 마음을 버
리고 삼원일기신공을 일으켜 차가운 바람을 마주쳐 나갔다.
"손을 거두시오!"
벼락치는 호통소리가 여운을 맺기 전,
꽈꽝!
근처가 뒤흔들리며 바위 조각이 눈처럼 피어 올랐다.
사공옥은 그 순간 상체를 휘청였다가 자세를 급히 바로 잡을 수 있었다.
반면,
쿵- 쿵- 쿵-
한빙여마는 세 걸음 뒤로 물러났다가 자세를 바로 잡으며 사공옥을 빤히
바라봤다.
"너..... 너는 나보다 강하다. 강..... 강자를 만나면 피하라는 것이 차주
의 명이었다. 그..... 그 명이 사라질 때 다시 너를 찾겠다!"
한빙여마는 더듬더듬 말하다가 위로 훌쩍 날아올랐다.
"잠깐!"
사공옥이 크게 소리쳤으나 한빙여마는 듣지 못한 듯, 쉬임없이 몸을 날려
사공옥의 망막에서 사라져갔다.
(아주 이상한 여인이군. 살아 있기는 하나 혼백(魂魄)은 없는 여인같군.)
사공옥이 그녀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고 있을 때,
"고..... 고맙습니다."
등뒤에서 가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마워할 것 없오!"
사공옥은 여인의 말에 무뚝뚝히 답하며 등을 천천히 돌렸다.
"으- 음-"
그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희게 물들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인이다.)
사공옥의 눈에 들어오는 여인의 얼굴은 서시(西施)의 얼굴에 비교될 수 있
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이었다.
활짝 피어난 장미꽃이라기 보다는 피어나기 직전의 봉우리 같이 신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인데 유난히 긴 속눈썹이 보기 좋았다.
아쉬운 것은 혈색이 아주 나쁘다는 것이었다.
"자..... 자칫했으면 잡힐 뻔 했읍니다. 죽도객(竹刀客)이 저의 칠호법(七
護法)을 유인해간 다음 한빙여마가 나타나 저를 잡으려 했지요. 잡혔다
면..... 저의 가문(家門)에 먹칠을 할뻔 했읍니다."
여인의 목소리는 끊어질 듯 이어졌다.
(나는 여인의 마음을 믿지 않는다. 저 가냘픔 뒤에 배반과 탐욕의 정신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사공옥은 여인이 애처롭게 말하는 데에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저..... 저는 강호 나들이를 하는 중입니다. 강..... 강호가 험난한 줄은
알았지만..... 이..... 이 정도인 줄은 몰랐읍니다. 으으....."
홍의여인은 말하며 추운 듯 오들오들 떨었다.
"낭자는 어떤 신세요?"
사공옥은 그녀가 떨건 말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저..... 저는..... 이연주(李娟珠)라는 여인입니다. 안탕산(雁湯山)에 살
고 있읍니다. 사형(師兄)들을 찾아 강호로 나왔지요. 으으-"
이연주는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쿵-
그녀는 나뒹굴며 다시는 말을 하지 못했다.
"꾀병이 아니었군. 진짜 아팠었군."
사공옥은 무안해 하며 얼른 곁으로 다가갔다.
이연주의 얼굴은 이미 사색(死色)이었다.
"음- 이제 보았더니..... 한빙여마의 한음진기(寒陰眞氣)가 심맥(心脈)을
뒤틀어버린 것이군."
사공옥은 그녀의 피부가 자색으로 변화하자 혀를 끌끌 차며 그녀의 몸에
손을 댔다.
부드러운 피부가 손에 닿으며 기분이 조금 이상해졌다.
여체(女體)!
그것은 사내들을 피끓게하는 것이 아닌가?
사공옥의 피가 끓어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허나,
"흥! 계집들과 살을 접촉해야하다니!"
사공옥은 일부러 모질게 말하며 손아귀에 힘을 가해 이연주의 완맥을 거머
쥐었다.
그때,
"으- 추워- 추워-"
이연주가 벌벌 떨며 두 손을 들어 그의 목을 휘감았다.
그녀의 팔은 비단끈 같이 그의 목을 착 휘어감았다.
"어- 엇!"
사공옥의 얼굴이 대추빛으로 붉어질 때, 이연주는 사공옥의 몸에서 일어나
는 열기에 끌린 듯 자신의 몸뚱이를 사공옥의 품안에 내던졌다.
탄력있는 젖가슴이 사공옥의 단단한 가슴에 이상한 느낌을 만들었다.
"나..... 나를 꼬옥 안아줘요. 으으-"
이연주는 얼음 굴안에 빠진 비둘기 같이 애처롭게 떨었다.
(한 가닥 연민지정 마저 금할 수는 없군.)
사공옥은 그녀의 몸을 매정히 밀어내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며 그녀의 맥
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한빙여마의 진기가 그녀의 심맥을 비틀어버린 후였다.
그대로 두면 오래지않아 내공력을 모두 다 잃어버리고 말 정도로 심한 내
상이었다.
"내가 돕지 않으면 크게 다치겠군."
사공옥은 쓴웃음 짓다가 장심에서 열류를 발휘했다.
(나의 진기는 한음진기에 극성이니 쉽게 나을 것이다.)
사공옥은 장심에서 활화산 분화구에서 피오오르는 화염같은 열기를 일으켜
이연주의 내상 부위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이상한 일이군. 하단전(下丹田)에 막강한 잠력(潛力)이 머물러있는 이유
가 무엇일까?"
사공옥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무심결에 손바닥을 내밀어 이연주의 아랫배를
매만졌다.
이연주의 아랫배에는 비둘기 알만한 혹이 들어 있었다.
"이것이 무엇일까?"
사공옥은 강한 호기심을 느끼며 이연주의 아랫배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때,
"무례하군요?"
노한 목소리와 함께 흰 그림자가 얼굴에 와 닿았다.
짝!
"으- 음-"
사공옥은 얼굴이 화끈거리자, 눈을 부릅뜨다가 아차하는 심정이 되었다.
(내가 미친 짓을 했군. 여인의 배를 쓰다듬다니.....)
사공옥은 깜짝놀라 두 손을 한데 모았다.
그의 뺨에 와닿은 것은 바로 이연주의 오른 손바닥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이연주는 사공옥이 뱀에 물린 사람같이 놀라 손을 거두자 덩달아 얼굴을
붉히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미..... 미안하게 되었오. 낭자의 배속에 이상한 것이 있어..... 나도 모
르게....."
사공옥은 감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그가 눈길을 돌리고 말하자,
"호호..... 쌍극신단(雙極神丹) 때문에 놀라셨군요?"
이연주가 까르르 웃었다.
"쌍극신단이 무엇이오?"
"제 배속에 있는 것이 바로 쌍극신단입니다. 십년 전에 먹은 것인데, 아직
다 녹지않아 단단히 뭉쳐있는 것입니다."
"아!"
"할아버지 말씀 그대로라면..... 그것을 다 녹이게 되면 저는 할아버지 다
음 가는 고수가 된다 하셨읍니다. 그렇게되면 한빙여마 정도는 저의 일초
상대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연주는 그 사이 다 나은 듯 아주 밝은 표정이었다.
"낭자의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시오?"
"호호..... 그것은 말씀드릴 수 없읍니다. 할아버지께서 비밀을 지켜야한
다고 하셨기 때문이지요. 헌데 대협은 어떤 분이십니까?"
"과객(過客)으로만 아시오."
"지금 어디로 가시는 길이신지요?"
"낙양으로 가는 길이오!"
"낙양이오? 호호..... 저도 지금 낙양으로 가고 있는데..... 호호, 인연이
있지않으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연주는 사공옥의 외모에 흠뻑반한 모양이었다.
(이런 분이 세상에 있다니..... 아- 이런 분을 만나게 되다니..... 내가
몰래 키워 오던 꿈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이연주는 두 볼에 깊은 보조개를 만들었다.
"낭자는 어이해 한빙여마와 싸우게 되었오? 한빙여마는 어떤 사람이오?"
사공옥은 그녀가 설마 자신에게 매혹당했으랴 여기며 담담한 투로 물었다.
"한빙여마는 죽도객)竹刀客)이란 자와 함께 빙차(氷車) 쌍위(雙衛)입니다.
천하에서 가장 못된 자들입니다. 그들과 회천정무문이 없어져야 강호가 평
화로와 진다는 말을 듣지 못하셨읍니까?"
"빙..... 빙차라는 말은 들었오. 한빙여마가 빙차의 호위라면..... 그 주
인은 어떤 사람이오?"
"설영선자(雪影仙子)라는 계집인데..... 제 할아버지와 원한을 갖고 있읍
니다. 그 계집은 감히 할아버지께 덤비지 못하고 저를 잡아 인질로 해 할
아버지를 위협할 작정으로 쌍위를 보낸 것입니다. 그자들이 저에 대한 것
을 알고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낭자를 인질로 잡으려 했단 말이오?"
"예, 대협이 아니었다면..... 큰 일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이연주는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사공옥이 다정히 말해주기를 기다렸다.
사공옥은 그녀에게 신비감을 느끼며 몇 마디 더 물어 보려다가, 갑자기 몸
을 일으켰다.
"나는 가야겠오!"
"예?"
"저기 일곱 사람이 오고 있오. 급히 달려오는 것으로 보아..... 낭자의 칠
호법인 듯 하오. 이만 실례하겠오!"
사공옥은 무정히 말하며 위로 훌쩍 날아올랐다.
"자..... 잠깐!"
이연주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으나, 사공옥을 만류시키지는 못했다.
사공옥의 모습은 순간적으로 자취를 감췄다.
바로 그때,
휘휙- 휙-
일곱 명의 홍의노인이 비오듯 떨어져 내리며 모두 감격한 표정이 되었다.
"공주(公主)께서 무사하지 못했다면 저희 칠노(七老)는 자결해야 했을 것
입니다."
"어떻게 한빙여마를 퇴치하셨읍니까? 그 계집은 죽도객보다 오히려 강한
데!"
"방금 전 여기를 떠난 사람은 누급니까? 아주 빠른 신법으로 보아 보통사
람은 아닌듯 한데?"
일곱 노인은 모두 백세 이상이었다.
그러나, 이연주 앞에서는 늙은 종같이 굴 뿐이었다.
"죽도객은 어찌 되었오?"
이연주는 짜증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속하들을 끌어낸 후 멀리 도망쳤읍니다. 한빙여마가 지금쯤 공주님을 사
로잡았을 것이라며-"
"무사하심에 천만다행입니다."
"하늘이 돌보신 듯 합니다."
칠노는 이연주가 무사하다는데 안도의 숨을 거듭 내쉬었다.
그녀의 솜털 하나는 그들의 목숨보다도 값나가는 것인 듯,
허나,
이연주는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않고 사공옥이 사라진 곳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사람으로 만들리라- 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지위에 있으니, 그 사람이 어떤 신분이건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
다.)
이연주는 입술을 빨다가, 급히 말했다.
"어서 낙양으로 가요."
이연주는 차게말한 후 사공옥이 사라진 곳을 향해 훌쩍 날아올랐다.
일곱 노인은 얼떨떨해 하다가 급히 그뒤를 따랐다.
모두 이연주보다는 정교하고 빠른 신법들이었다.
사공옥은 쉬지않고 혼신 공력을 다해 치달렸다.
밤이 깊어갔으나 그는 쉬지 않았다.
"칠정사부님의 한을 푼 다음 할아버지의 한을 풀자. 칠정사부님의 원수는
이름이 있는 자이니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만..... 할아버지의 원수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으니 찾는데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다."
사공옥은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야음을 꽤뚫고 달렸다.
새벽이 될 무렵,
그는 조금도 지친기색이 없이 낙양성(洛陽城) 안으로 발을 들일 수 있었
다.
그는 성문을 통해 들어가지 않고 성곽을 타넘어 낙양성 안으로 들어갔다.
성문이 아직 열리지 않은 이른 새벽이기 때문이었다.
새벽이라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사공옥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을 골라 아주 빠른 속도로 달렸다.
얼마 후,
그는 낙양성의 남쪽 외곽 지대에 세워져 있는 한 채의 철옹성을 바라보는
위치에 이를 수 있었다.
"거만한 자들이군. 수십만호(數十萬戶)의 성민(城民)들이 머무르는 곳에
무림의 방파를 세우다니....."
사공옥은 민가와의 호젓히 떨어진 거대한 보(堡)를 바라보며 살광을 폭사
해냈다.
(나의 짐작대로라면..... 저 놈들은 내가 온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
이다.)
사공옥은 장원을 바라보며 천천히 다가갔다.
거대한 정문은 꽉 닫혀 있었다.
정문 위, 가로 걸린 편액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색혈검보(索血劍堡).>
핏빛으로 쓰인 편액 글씨는 공포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저 안에 있는 자들이 화산을 우롱한 장본인들이란 말인가? 흠- 간담이 큰
놈들답게 장원 규모도 대단하군."
사공옥은 장원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사람의 눈길이 미칠 수 없는 후미진
숲안에서 사건을 꺼내 얼굴을 휘감았다.
잠시 후,
그는 전날 인마(人馬)에 짓밟힌 흔적 역력한 대로(大路)를 따라 색혈검보
의 정문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색혈검보에서 십 장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까?
"흐흐..... 그곳에서 발을 돌리지 않으면 목이 잘릴 것이다."
어디선가 음침한 목소리가 들렸다.
"손님을 대하는 투가 무례하기 짝이 없군."
사공옥은 기다렸다는 듯 더 빨리 걸었다.
다섯 걸음 갔을까?
돌연,
피- 잉-
귀를 찢는 파공성과 함께 허공에서부터 떨어져 내리는 한 자루 단검(短劍)
이 있었다.
휘- 익-
단검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종되는 듯 허공에서 몇 차례 방향을 바꾸
며 사공옥의 머리 속으로 파고 들려했다.
"어검술(馭劍術)을 쓰다니 보통이 아니군."
사공옥은 검이 한 치 근처로 다가설 때까지 잠자코 있다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 하나를 가볍게 튕겼다.
순간,
꽝!
어검술에 의해 그의 정수리를 향해 날아들던 어장검(魚藏劍)이 시꺼먼 쇳
조각이 되어 주위에 산산이 뿌려졌다.
"이.....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정문 위쪽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검술을 쓴 자가 기절초풍 놀라 내뱉는 말이었다.
사공옥은 십지분음양(十指焚陰陽)을 발휘해 단검을 산산이 박살내는데 성
공하자 회심의 미소를 짓다가 소매를 흔들었다.
"받아라-"
핑-
그의 소매 속에서 한 장 배첩(拜帖)이 튀어나와 혈판쪽으로 선을 그으며
폭사되어 갔다.
"어- 엇!"
현판 위쪽에서 다급한 소리와 함께 홍영 하나가 튀어나오는 찰나, 번개같
이 빠르게 날던 배첩이 속도를 줄이며 나비같이 살랑살랑 떨어져 내렸다.
"하하..... 겁낼 것 없다. 하수를 죽이는 취미는 없는 사람이니까!"
사공옥은 앙천대소를 터뜨리며 여유있게 팔짱을 꼈다.
숨어있다가 튀어나온 자는 배첩이 속도를 줄이자 분노하고 겁먹은 듯 아무
소리 못하다가 배첩을 거머쥐고 사뿐히 떨어져 내렸다.
잠시 후,
"으- 음-"
그는 배첩 안을 열어본 다음, 식은 땀을 흘려 얼굴을 적시며 사공옥을 빤
히 바라봤다.
칠순 나이인데, 표정은 공포에 젖어 있었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납니다
고맙습니다.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