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는 게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쉽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우리말이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우리말을 배우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우리의 한글이 형용사적 표현이 매우 다양하고 미묘한 데다가 존칭어, 또는 경어(敬語)를 쓰는 표현 또한 적잖이 까다로운 때문이 아닐까가 한다. 그렇지 않다면 주어가 생략되거나 주어가 때에 따라서는 여기저기로 쉽게 옮겨 다니는 데서 오는 어려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한글이 나의 모국어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어렵지만은 아닌 언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우리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듯이 우리의 말은 의성어로 매우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언어이어서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국인들에게 진지한 태도로 우리의 말을 가르쳐주게 되면 의외로 쉽게 이를 깨우치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다. 우리의 알파벳이 매우 복잡해 보이지만 일단 그 선입견을 버리고 이를 정확히 가르쳐주면 그다음부터는 신기할 정도로 쉽게 우리의 말을 이해하게 되는 것을 보았다. 그 이후에 문제가 되는 건 그 어느 말을 배우는 데 있어서와 같이 수많은 어휘를 익히고 그 활용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의 뜻을 제외한다면 우리말처럼 의성, 의태적 언어의 표현이 적확하고 쉬운 말은 없지 않나 싶다.
글자도 배우고 말도 배워야 하는 이중고를 겪어야 하는 중국어와 같은 언어에 비해서 우리의 말은 배우기가 무척 쉬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영문의 알파벳을 빌려 쓰고 있지만, 음성 구조가 워낙 특이한 베트남어나, 알파벳의 모양이나 구조가 더욱 특이해서 어려움이 있는 아랍어나 태국어에 비해서도 우리의 말은 배우기 쉬운 언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말에 대해 한 가지의 과신하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즉, 우리의 말이 존칭이나 존칭어(尊稱語)가 잘 발달 돼 있어서 대단히 품위가 있고 우수한 언어라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하자면, 다른 이를 배려하는 사려 깊은 마음이 우리의 말에 잘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렇다. 우리말처럼 상대방의 신분이나 지위, 또는 인적 관계에 따라서 그 말의 쓰임새가 다양하고도 미묘하게 변화되는 말은 아마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과거 왕실에서 쓰던 궁중어는 별도로 하더라도 우리말의 존칭어를 생각해보면 그런 부분의 말이 너무도 잘 발달 되어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심지어는 모국어로 우리말을 사용하고 있는 우리 스스로마저도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이 없지 않다.
하지만 말이 그런 구조로 생겨 있는 것과 그 말을 쓰는 데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기본적인 언어의 구조나 어휘가 발달 되어있다는 것과 그 말이 쓰이는 사회적인 현실은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또 같은 말이라 하더라도 이를 쓰는 이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값는다’는 속담이 있기도 하다. 또 ‘같은 말이라 하더라도, 어 다르고 아 다르다’라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말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또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말의 씀씀이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영어와 우리 한글을 비교해 보면 서로가 언어의 형식 구조가 서로 크게 다르지만, 이를 사용하는 표현의 방식 또한 적지 않게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우리의 말은 단편적인 어휘 중심의 존칭어가 잘 발달 되어있지만, 영어의 경우에는 그 표현이 매우 중립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우리의 경우 주어를 생략한 글이 적지 않지만, 영어의 경우 주어가 생략된 글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더욱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언어 구조적인 특징이 아니라 그 말이 쓰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고자 하는 말의 표현 방식이 서로 적지 않게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영어의 경우 우리의 ‘당신’이라는 이인칭 대명사는 ‘you’라는 말 한마디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you'라는 표현으로 ‘당신들’이라는 의미의 표현까지 가지고 있으니 상대방에 대한 언어적인 기본 배려는 아주 단순하고 간편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말의 ‘당신’과 같은 말을 찾아보면 ‘너’로부터 시작해서 ‘그대’ 또는 ‘귀하’라는 여러 가지 말이 있다. 또 당신이라는 말은 세 가지의 다른 뜻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더구나, 손윗사람이거나 상사에 대해서는 ‘당신’이라는 말을 사실상 쓸 수도 없는 것이 우리말이다. 가장 친밀한 관계를 나타내는 부부간의 ‘당신’이라는 말은 서로의 언쟁이나 감정이 크게 격화된 상황에서 상대를 무시하는 말로 쓰인다.
우리의 말은 겸양이나 존칭과 관련된 어휘, 또는 상하 간의 위계질서를 고려하여 윗사람을 공대하는 어법이 잘 발달 되어있다. 하지만, 우리말은 대등한 대화 상대자 간의 겸양이나 존중에 대한 배려에는 상대적으로 인색한 듯하다. 오히려 우리말과 같은 공대나 존칭어가 잘 발달 되어있지 않은 다른 말에 비해서 훨씬 직선적이고 공격적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영어의 예를 보면 우리와 같은 존칭, 또는 공대 어법이 잘 발달 되어있지 않은 대신에 대화 상대를 서로 존중하는 상식적인 배려가 그들의 말에 잘 나타나 있는 것 같다. 서로 간에 지나치게 까다로운 존칭어를 쓰지 않는 만큼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의 씀씀이가 일상의 말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는 듯하다.
우리말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주인이 되어 상대방을 시키는 형태로 되어있는 말이 많은 것 같다. 쉽게 말해 우리의 말이 상대방을 명령하는 쪽이라면 영어는 간접적으로 상대방의 이해를 구하는 쪽인 것 같다. 예를 든다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을 때 새치기하는 사람을 보고 던질 수 있는 말을 비교해 보자. 우리는 대뜸, ‘새치기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하기 쉬울 것이다. 이런 경우 영어의 일반적인 표현은 ‘Can't you see the line?(당신은 줄을 볼 수 없습니까?)’라는 식으로 말을 한다. 보다 직선적이고 상대방에게 명령하는 듯한 우리말과 는 많이 다른 화법이다.
가까운 사이의 말이겠지만 ‘상관하지마’라는 우리의 말도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눈곱을 뜯으며 엄마가 아침을 준비하는 부엌으로 들어서는 어린이에게 아마도 우리는 ‘너 왜 아침 인사 안 하니?’, 또는 ‘너 아침 인사 잊어버렸니?’하는 식으로 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상관하지마’와 같은 의미의 영어 표현은 ‘It's none of your business(그것은 당신의 일이 아니야)’. 두 번째 경우의 상황에서 그들은 ‘What happened to say Good Morning?(아침 인사에 무슨 일이 일어났니?)'식으로 말한다. 비슷한 상황에서 하게 되는 같은 의미의 말이라고 하더라도 그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나는 걸 알 수 있다.
이발사에게 우리의 경우라면 ‘머리 좀 깎아주세요’라는 능동의 어법으로 말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머리를 깎으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도 같은 뜻의 말이지만 영어의 표현을 보면 ‘Please, have my hair cut(내 머리가 깎이도록 해주세요)’라는 수동?의 표현을 쓴다. 이 말에서는 내 머리가 깎여질 수 있도록 당신이 어떤 조치를 해달라는 조금은 조심스러운 뉘앙스를 느낄 수 있다. ‘이름이 무어예요’라고 대뜸 물어보기보다는 ‘May I have your name( 당신의 이름을 내가 가져도 되겠어요)’라는 식의 요청을 하는 것이 그들의 대화 방식이다.
여러 사람이 모임을 하는 중에 그중 한 사람이 먼저 자리를 뜨려고 할 때, 우리의 경우 ‘미안하지만, 나 먼저 갈께’라고 직선적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의 영어의 표현을 보면 ‘May I be excused?(내가 실례해도 될까요?)’라고 말하는 게 일반적이다. 일방적으로 통보를 하기보다는 상대의 양해를 구하는 것이 그들의 표현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의미의 말을 하면서도 그 방식의 차이가 또 다른 점을 다른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말은 최상급의 표현에 있어서 비교적 관대하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 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하는 식으로 어찌 보면 극상의 단정을 쉽게 예단하는 언어적 표현을 보여준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정적인 너그러움이 우리의 말에 그대로 표현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정확히 말하면 ‘엄마’를 ‘우리 엄마’, ‘아내’를 ‘우리 아내’라고 표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의 너그러움에서 비롯되는 것일 것이다.
① 이에 비해 영어에서의 같은 표현을 보면 ‘one of my best friends’ 또는 ‘one of my favorite songs’과 같이 거의 예외 없이 ‘가장 어떠한 것 중의 하나’라는 식으로 어떤 대상을 쉽게 단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 엄마’가 아닌 분명한 ‘my mum(나의 엄마)’이고, ‘우리 아내’가 아닌 ‘my wife(나의 아내)’라고 말한다. 정확하게 그들의 생각이나 뜻을 표현한다.
우스갯소리로 영어를 쓰는 나라에 가서 세 마디의 말만 잘하면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 있다. ‘Thank you’, ‘You are welcome’, ‘Excuse me’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 말만 잘 써먹으면 충분히 배려받을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해석이야 어떻든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때로는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유(You)’라고 표현하는 막돼먹은 말을 쓰는 이들이라고 우리가 곧잘 그들을 우스갯소리로 쌍놈들이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그 누가 들어도 즐겁고, 또 기분 좋은 간단한 말들을 그때그때 즐겨 우리보다도 한결 더 자주 사용한다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실례합니다’ 또는 ‘미안합니다’라는 세 가지의 말을. 또 우리는 ‘안녕하세요’라는 아침 인사를 보통은 하루 내내 변함없이 사용한다. 그도 ‘진지 드셨습니까?’ 또는 ‘아침 드셨어요?’ 우리 특유의 인사법이 비교적 무난하게 들리는 말로 바뀐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하루 한 번의 인사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아침 인사 따로, 오후와 저녁 인사를 따로 만들어서 하루에 적어도 세 번씩의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다. 공대의 정도를 떠나서 인사의 횟수로 본다면 그들이야말로 예의지국의 사람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언어가 가지고 있는 겸양의 아름다움과 품격의 깊이를 단편적인 어휘, 언어의 구조 등과 같은 언어학적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요사이 인터넷 채팅을 통해서 급속하게 번져가고 있다는 신세대의 생략형 신조어나 겸양이 상실된 우리의 말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언어,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의 겸양이나 품위의 문제는 언어학적인 측면에서보다는 문화․사회적 관점에서 보아야만 하는 것 같다.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가치, 태도, 관습, 신념, 생각이나 사고방식과 같은 것이 말의 쓰임새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애초부터 좋은 말, 훌륭한 언어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그 말을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 같은 값이면 모두가 서로 즐겁고 기쁘게 주고받을 수 있는 말을 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름다운 말, 기분 좋은 말을. (2003.9.8.)
첫댓글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일방적으로 재단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지요. 부끄럽게도 나는 우리 문법을 영어문법을 배우고 나서 거꾸러 알게 되었지요. 그리고 한글의 우수성을 알게 된 것도 그리 오래 된 것이 아니지요. 순우의 경우 일찌기 이런 글을 쓸 정도의 의식이 있어서 우리 글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 어휘력이 풍부하지요. 본받도록 하겠습니다.
얼마 전 영어에 매진할 때가 있었는데 영어의 매력도 많더군요.
한글은 24개의 자음ᆞ모음으로 무려 8,800
여개의 소리와 문자를 낼수 있으나 일본어는
300여개,중국어는 400여개에 불과하다.
일본어나 중국어는 디지털 문자로 바꾸는데
다시 한자로 바꾸는등 절차가 복잡하나 한글
은 디지털 문자화에 가장 적합하다고 평가받
고있다.
유네스코는 1989년 세종대왕상을 준비하여
세계 문맹률 퇴치에 공로가 큰 분에게 수여하
고 있는바 이는 한글의 우수성을 입증한것이다.
언어는 그 사람의 품격을 나타내며 집필
을 하다보니 적절한 용어의 선택이 참
으로 어려움을 절감했다.
한글의 우수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지만 자음과 모음, 그리고 초성 중성 종성을 합하여 조합하면 모두 11,172자의 글자가 나온답니다. 그중에 우리가 현재 생활에서 쓰이는 것은 극히 일부이지만 참으로 대단하다고 하겠습니다. 10 여 년 전 서울의 오시장 재직 시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 한글공원을 조성했던 적이 있는데 그곳에 가면 11,172자의 한글 조합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11,172명을 선착순 모집하여 11,172글자를 하나씩 분담하여 쓴 글자를 대리석에 각인하여 공원을 조성해 놓았지요. 나도 선발되어 제가 쓴 글자 "쏠"을 각인하여 놓았지요. 가끔씩 제 글자가 잘 있는지 찾아보곤 합니다. 말과 글자가 없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