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성 일행은 마침내 무림맹으로 돌아왔다. 갈 때도 조용 히 갔으니 올 때도 늑별한 환영은 없다. 검옥월이나 독원동은 무림맹의 용봉각을 이용할 권리가 있 다. 그곳 자체가 세외나 신비 세력을 위한 곳이니 언제나 요 구만 하면 사용이 가능하다. 추월은 원래부터 용봉각 담당 시녀 중 하나였다. 지금은 주 유성을 쫓아다니는 일이 만하 아예 십번 예비방 담당으로 고 정되어있다. 정작 주유성은 무림맹에서 당장 갈 곳이 없다. 원래 그는 용봉각 십번 방을 할당받을 권리가 없다. 무림맹에서는 그가 올 때마다 십번 방을 내주기는 했지만 어쨌든 절차가 조금 복 잡하다. 용봉각을 쓰기 위해서는 추월이나 독원동을 시켜서라 도 그 절차를 먼저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이번 일에 대한 보고를 해야 한다. 검성의 꾐 에 빠져 갔다 온 것이기는 하지만 그의 이번 독곡 방문은 무 림맹의 공식 행사였다. 그러기에 무림맹의 마차도 이용할 수 있었다. 주유성은 무림맹주와 장로들 앞에서 자신이 갔다 온 결과 를 간단히 보고했다. 그러나 자신이 한 일은 모조리 떼놓고 단순히 지지를 받기로 한 결과만 보고했다. 무림맹주가 만족한 얼굴로 말했다. "수고했구나. 까다로운 독곡에서 우리를 지지하겠다고 선 언한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북해빙궁에 이어 남만독곡까 지 그것을 성공시켰으니 네 공이 크다 하겠다." 무당의 청허자도 기쁜 얼굴로 말했다. "주 소협이 세운 공 덕분에 무림이 한층 평화로워지겠군. 다행이야. 앞으로도 더욱 많은 공을 세워서 그 명성을 높이시 게나. 허허허." 청허자 입장에서는 칭찬으로 한 말이다. 대부분의 정파무 림인들은 무림맹 장로쯤 되는 원로에게 이런 칭찬을 받는다 면 크게 기뻐한다. 하지만 주유성은 계속 무림맹을 위해서 공을 세울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다만 포상금이라도 조금 나오면 그걸 챙겨갈 욕심이다. 만약 안 준 다고 하면 따져서라도 받아갈 생각이었다. 무림맹에서 맹주 다음으로 주유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고위 간부는 취걸개다. 그는 거지 근성을 가진 자신과 비슷한 면이 보이는 주유성이라는 인간에 대해서 꽤 파악하고 있었다. "늙은 도사, 유성이가 더욱 많은 공을 세우기는 조금 게으 르다고. 이 녀석아, 그저 앞으로는 게으름을 조금만 덜 피우 고 무림에도 신경을 좀 쓰도록 해라." 취걸개의 말이 진실에 조금 더 가깝기는 하지만 어차피 마 찬가지다. 주유성은 게으름을 덜 피울 생각이 전혀 없다. 분위기는 좋아지고 있었다. 주유성은 분위기가 조금만 더 좋아지면 포상금 이야기를 꺼내볼 궁리를 했다. 그 분위기에 깐깐한 목소리로 청성의 적명자가 끼어들었다. "그런데 듣자 하니 남만의 분위기가 변했다고 하던데?" 무림맹은 머나먼 남만의 소식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하지 만 귀를 아예 막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이야기들은 무 림맹까지 전서구를 이용해서 전해진다. 무림맹은 주유성보다 더 빨리 소식을 접하고 있었다. 잠시 생각한 주유성이 무슨 소리인지 알았다는 듯이 대답 했다. "아, 남만은 이제 다른 지역과의 거래를 활발히 할 생각인 가 봐요. 자체적인 유통망도 꽤 열심히 정비하고 있을걸요." 적명자가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이야기를 왜 이제 하는가? 주 소협, 그대는 그 일이 얼 마나 큰 문제인지 모르는가?" "아니, 그들도 사람인데 잘 먹고 잘살면 좋지 뭘 그래요." "큰일날 소리를 하는군. 힘이 넘치면 그것을 쓰고 싶어지 는 법. 전쟁이라도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는가." 주유성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남만에서 부 족 간의 상행위를 증가시키는 이유는 전쟁을 막아보고자 함 이다. 부족전쟁이 싫어서 장사를 하려는 사람들이다. 하나로 뭉쳐 있지도 않다. 먼저 치지 않는 한 쳐들어올 리는 없다. "에이, 그럴 리 없어요. 내가 본 그 사람들은 안 그래요." 적명자에게 그런 말이 먹힐 리가 없다. 그는 애초에 주유성 을 우습게보고 또 싫어한다. "아직 어린주 소협이 그걸 알 수는 없겠지." 이번에는 군사 제갈고학이 나서서 질문했다. "주 소협, 그나저나 들리는 바에 의하면 남만에 신의 손이 라는 자가 있다지?" 주유성의 얼굴이 살짝 굳다가 펴졌다. 잠시 머리가 팽팽 돌 았지만 모른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하다. '쳇. 그게 왜 여기까지 전해졌지?' "예, 있어요." "그를 본 적 있는가?" "없죠." '내가 내 얼굴을 본 적은 없으니까.' 제갈고학이 깔보는 표정으로 말했다. "독곡까지 갔으면서 신의 손에 대해 알아오지 못하다니. 그대의 이번 임무는 반쪽짜리 성공이로군. 아니지. 반은 실패 했다고 해야 하나?" 주유성이 살짝 인상을 썼다. '남만에서의 일이 커진 분위긴데? 귀찮게 되는 것 아냐?' 사람들에게는 그 표정이 제갈고학의 말에 대한 반발로만 보였다. "기분이 나쁘다는 말인가? 그대는 신의 손의 값어치를 아 는가?" "알죠. 해독 전문가요." "무슨 소리인가? 그걸 정탐이라고 해왔다는 말인가? 그가 바로 남만의 왕이다." 주유성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내가 여기 있는데 무슨 남만의 왕이야. 더구나 부족장들 은 내가 왕이 될까 봐 얼마나 싫어했는데.' 그는 제갈고학을 보고 확인 삼아 질문했다. "그거 확실한 소리예요? 틀림없이 확인된 거냐고요." "확인이 될 리가 있나. 그곳은 남만. 우리의 손이 닿는 곳 은 아니야. 더구나 신의 손에 대해선 독곡이 정보를 통제하고 있어서 그 정체가 밝혀지지 않고 있지. 시일이 오래 걸려. 그 러니까 그자에 대해서 그대가 정탐해 왔어야 할 것 아닌가! 그것이 무림맹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의무! 삼절서생 이라는 허명이 아깝군. 거기까지 가서 그것도 알아오지 못할 정도로 무능하다니!" 제갈고학은 주유성이 싫다. 주유성의 머리가 자기보다 좋 은 것이 싫다. 제갈세가가 얽혀 들어간 가짜 검마의 장보도 사건을 해결한 것이 싫다. 그는 주유성을 경쟁자로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주유성을 짓밟기 위해서 무리한 짓을 하는 걸 서슴지 않았다. 주유성이 마침내 발끈했다. "미치겠네. 내가 언제부터 무림맹 사람이에요?" "뭣이? 남만까지 가서 임무를 수행하고 왔으면서 무림맹 사람이 아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주유성은 제갈고학이 이미 독한 마음을 먹어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깨달았다. 무림맹은 제 갈고학의 안마당이다. 그렇다면 치고받아 봐야 급소를 때리기 는 쉽지 않다. 그는 즉시 이곳에서 가장 높은 사람인 무림맹주를 걸고넘어 졌다. "맹주할아버지, 이런 대접 받으라고 나보고 거기까지 가달 라고 한 거예요? 물에 빠진 사람 건져 놓으니 보따리도 건지 지 못했다고 화내는 거예요?" 말은 검성에게 하고 있지만 공격 대상은 제갈고학이다. 그 는 검성을 휘둘러 제갈고학을 쳤다. 검성은 주유성에게 할 말이 없다. 그가 주유성에게 시킨 일 은 완벽하게 완수되었다. 독곡이 무림맹을 지지하게 된 것은 순전히 주유성의 공이다. 현재 무림맹의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공 하나만 가지고도 평생 을 우려먹을 수 있다. 검성이 제갈고학을 보고 말했다. "군사, 그만 하시게. 유성이가 독곡에 갔다 온 것은 순전히 내가 개인적으로 부탁을 해서이네." 제갈고학은 한번 기세를 세운 터라 맹주에게도 깐깐하게 나왔다. "명령을 하셨어야지요." "그는 우리 무림맹의 사람이 아니네. 무슨 명분이 있어서 명령을 내리나? 자기가 하기 싫다고 하면 그만이지. 그것은 명확하니 우리는 그에게 다른 것도 해오지 않았다고 따질 수는 없네. 그러는 것은 그야말로 파렴치한 짓이지." 제갈고학은 반박하고 싶었다. 같은 말을 주유성이 했다면 논리와 상관없이 얼마든지 반박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무림맹주의 말이다. 무림맹주가 제갈고학을 파렴치 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미 본전도 못 찾았다. 여기서 더 걸고넘어지면 밑천이 거덜날 수 있다. 제갈고학의 얼굴이 분노로 빨개졌다. 하지만 그는 제갈세 가의 사람답게 순식간에 안색을 회복했다. "크흠! 맹주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이 이야기는 여 기서 그만두겠습니다." 오히려 청허자가 주유성에게 사과했다. "주 소협, 이해하게. 제갈 군사가 원래는 저런 사람이 아니 었는데 요새 뭔가 화나는 일이라도 있나 보이." 취걸개도 거들었다. "유성아, 똑똑한 네가 이해해야지 어쩌겠냐?" 제갈고학의 얼굴이 다시 서서히 붉어졌다. 하지만 이미 사 람들이 그를 질책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주유성은 갑자기 새로운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내가 남만의 왕이라는 소리가 나와?' 결론은 금방 나왔다. '아하! 족장들이 내가 왕이 될까 봐 의심을 잔뜩 했지. 이 작자들, 족장이라는 것들이 그 의심을 접지 못하고 소문까지 내? 아주 짜증하는 놈들이네. 족장 놈들은 여전히 내가 왕이 되려고 한다고 의심한다는 소리 아냐?' 족장들의 속을 알 리 없는 그로서는 당연한 생각이다. 주유 성은 기분이 상했다. '군사하는 작자도 결국 남만에 대해서 소문만 듣고 그런 거 아냐? 내가 왕이라니. 그따위 헛소문에 나를 핍박해? 제갈 화운 그놈도 그렇게 제갈세가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언제 확 엎어버릴까 보다.' 능력 여부를 떠나서 하나의 세가를 엎으려면 많은 일을 해 야 한다. 게으름뱅이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기분 이 나쁘다. '제갈세가, 나한테 찍혔어.' 주유성은 제갈고학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왕이라. 내가 남만을 가봐서 거기 사정을 좀 아 는데, 그 동네는 왕이 나올 수 없는 구조거든요? 왕이 나와도 다 이름뿐인 왕이라고요." 무림맹주와 다른 장로들에게 눈총을 받고 있는 제갈고학 이 기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야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명성이 장 난이 아니라는 소문이 있다." 주유성이 피식 웃었다. "장난이 아니기는 무슨. 개나 소나 왕 하는 동네에서 왕 하 나 더 나온다고 무슨 대수라고. 남만의 왕? 헛소문이에요."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대단하다는 소문이..." 남만의 왕 주유성이 제갈고학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은 채 검성을 보고 말했다. "맹주 할아버지, 나 돌아갈게요. 내가 할 말은 다 끝났어 요." 적명자가 호통을 쳤다. "이런 버르장머리없는 자를 봤나. 예가 어디라고! 네 앞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느냐!" 주유성이 피식 웃었다. "앉아 있는 자리가 얼마나 귀한 건지 자랑하고 싶으면 그 건 무림맹 사람들에게 하라고요. 나 같은 상인에게 하지 말 고." 주유성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의실을 나가 버렸다. 적명 자가 뒤에서 길길이 날뛰었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는 이번에도 막대한 양의 황금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일 이 끝난 후의 주유성 수중에는 여전히 땡전 한 푼 없었다. "집에 갈 여비는 어떻게 하나. 또 한두 푼씩 벌어서 가야겠 네." 무림맹의 용봉각에는 선녀문의 천영영이 장기 투숙하고 있 다. 그녀는 주유성이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주변을 맴돌았다. 천영영이 회의실에서 용봉각으로 돌아오는 주유성을 보더 니 다가가서 반갑게 인사했다. "어머, 삼절서생 주유성 대협 아니세요?" 천영영은 미모순으로 무공을 전수한다는 소문이 있는 신녀 문의 후기지수다. 당연히 그 미모가 탁월하다. 하지만 주유성은 천영영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의 미모 에 넘어가지 않는 눈을 가진 주유성은 천영영이 무림비무대 회 전에 저지른 일들을 잘 기억하고 있다. 보통은 미모 때문에 그런 일이 용서되고 오히려 고결함의 상징으로까지 인식되지만 주유성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더구나 그는 지금 대단히 기분이 상한 상태다. 그는 천영영 이 인사를 하며 다가오는 것이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다. 그는 천영영을 보고 혀를 한번 차주었다. "쳇."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용봉각으로 들어가 버렸다. 뒤에 남은 천영영은 어이가 없었다. 평소에도 주유성이 자 신에게 친절하지 않음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북해 나 남만의 일에 대해서 정보를 뽑아내라는 신녀문의 지엄한 명이 있었다. 그녀는 주유성을 꼬셔서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 려고 했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했다. 천영영이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이 게으름뱅이가 감히 나를 또 무시해?" 그러나 화를 내고 있을 수는 없다. 그녀는 정보가 필요했다. "게으름뱅이 주제에 무슨 대단한 일을 했겠어? 독원동, 그 래, 독원동을 꼬셔서 알아내자." 독원동은 이제 주유성을 대단히 존경한다. 그 주유성이 남 만에 일에 대한 함구령을 내렸다. 천영영은 그것도 모르고 자 신의 미모를 과신하며 독원동을 찾아다녔다. * * * 마교에서 마뇌가 천마에게 보고했다. "현재 남만 일대에는 신의 손이라는 자가 나타났다고 합니 다." "신의 손? 그건 뭐 하는 자인데?" "세외의 땅이라 자세히 알아내기는 어렵습니다만, 독을 해 독하는 전문가라고 합니다." 천마가 눈썹을 비틀며 인상을 썼다. "마뇌, 내가 겨우 남만처럼 먼 곳의 해독가에 대한 소식까 지 들어야겠어? 마뇌 요새 왜 이래? 정말 이젠 옛날 같지 않 은 거야? 이제 쉴 때가 된 거야?" 마뇌가 급히 말했다. "그 신의 손이라는 자가 남만의 왕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천마의 인상이 변했다. 그는 언제 짜증은 냈냐는 듯이 심각 한 얼굴로 변했다. "남만의 왕? 그놈들에게 왕이 생겨? 우리에게 불리한 건가?" "아닙니다. 우리가 사전에 조사했던 바에 의하면 남만은 왕 이 생길 수 없는 곳입니다. 다만 스스로를 왕이라고 칭하는 자들은 가끔 나타났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럼 별것 아니잖아. 그걸 왜 보고한 거야?" "아무래도 그 남만의 왕이 나오는 데 남만독곡이 관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독곡 놈들?" 독은 쓰기 힘들어서 그렇지 제대로만 먹히면 전투에 상당 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예. 신의 손과 독곡이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 같고, 독곡 은 그의 정체를 숨기는 듯하다고 합니다." "거기는 우리 애들 안 들어가 있어?" "독곡은 세외문파입니다. 소문이나 수거하는 자들이 남만 에 몇 있을 뿐 독곡의 심층부에는 첩자가 침투해 있지는 못합 니다." "독곡이라. 이놈들이 뭔가 수작을 부리나 보네." "무림맹에서 얻어낸 정보에 의하면 최근에 주유성이 독곡 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시기가 신의 손이 등장한 때와 묘하게 일치합니다." 천마가 인상을 확 썼다. "주유성? 또 주유성이야? 그럼 그놈이 신의 손이라도 된다 는 거야?"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분석에 의하면 독곡이 신의 손을 등장시키고, 무림맹은 주유성을 그런 독곡으로 보냈습 니다. 둘의 시기가 일치하는 것으로 추측해 볼 때, 독곡이 차 후 중원무림에 발을 들이려는 생각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합니 다. 그리고 무림맹은 그것에 관해 주유성을 보내 협상하려 한 것 같습니다." "독곡 놈들. 직접 쳐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발끝 좀 담그는 것쯤이야 신경 쓰지 않아. 마뇌가 알아서 하라고." 마뇌는 이 일이 뭔지 모르게 거슬린다. 하지만 마교는 소수 정예다. 모든 의심스러운 일에 인원을 투입할 만큼 마교에 사 람이 남아돌지는 않는다. 더구나 천마가 마뇌를 보는 눈초리 가 예전 같지 않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설마 세외문파인 독곡이 무슨 일을 저지르진 않겠지. 계 속 소문이나 수집하는 선에서 끝내야겠군.' * * * 사황성에서는 총관이 혈마에게 보고했다. "성주님, 주유성이 남만독곡을 방문했다가 돌아왔다는 첩 보가 입수됐습니다." 혈마가 인상을 썼다. "총관, 주유성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어쩐지 소호가 안 되 는 것 같단 말이야. 그런데 무슨 일로 갔었대?" "그건 알 수 없습니다만 추측으로는 협상을 위해서 방문한 것 같습니다." "협상?" "예. 현재 남만에는 신의 손이라는 자가 나타났습니다. 그 는 남만의 왕이라 불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외문파의 이야 기라 정확한 정보가 오지는 않고 있습니다." "남만이 왕이 존재할 수 있는 구조야? 아니잖아. 그런 데서 가짜 왕이 나오든 말든 우리랑은 상관없잖아. 안 그래?" "하지만 그 신의 손, 그러니까 남만의 왕이 독곡과 모종의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독곡은 그의 정체를 밝히지 않 고 있습니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그러니까 총관의 말은 독곡이 그 왕 이라는 자를 이용해서 힘이 세졌다. 아니면 힘이 세져서 가짜 왕을 냈던지. 여하튼 그걸 알고 무림맹이 주유성 그 썩을 놈 을 보내서 뭔가 협상을 했다. 그런 뜻인가?" "그렇습니다. 그것이 가장 유력한 이야기입니다." 혈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별 상관 없는 이야기군. 어차피 무림맹과 먼저 싸울 놈은 마교잖아. 그리고 독곡이 그 세외에서 무림맹을 도와줘 봐야 얼마나 도와주겠어? 무사 조금 보내주는 정도로는 대세에 영 향을 끼치지 않아. 총관은 마교와 무림맹을 먼저 붙게 만들 방안이나 마련해 보라고. 지난번처럼 우리가 나섰다가 한바 탕 망가지는 건 싫으니까." 몇 달 전에 사황성은 자기네 지부 몇 곳이 멸문당하는 피해 를 입었다. 그들은 그 일이 무림맹의 짓이라고 생각하고 삼천 명의 응징 부대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 응징 부대는 오협련을 건드렸다가 주유성이 만 든 함정에 빠져 박살이 났다. 혈마는 어떻게든 마교와 무림맹 이 먼저 붙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보다 더 큰 싸움을 벌일 수 는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손해를 감수하고 일단 넘어갔다. 한 번 실패한 후 더욱더 신중해진 그는 마교와 무림맹 사이에 전쟁을 일으킬 궁리만 했다. 총관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방안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 * * 주유성은 무림맹에 빌붙어 있지 않았다. 그는 정말로 순식 간에 짐을 챙겨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물론 짐을 직접 챙겨준 것은 추월이다. 추월이나 검옥월 모두 주유성이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반 대하지 않았다. 추월은 주유성이 끝내 무림맹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이곳 의 일을 그만두고 서현으로 이사 갈 생각이다. 어차피 그녀 는 주유성 덕분에 무림비무대회에서 독립이 가능한 자금을 모았다. 검옥월은 원래 무림맹에 있어야 하는 신분이다. 적어도 검 각에서는 그녀에게 그렇게 지시했다. 그러나 그녀도 이제 세 상 살아가는 요령이란 것을 조금씩 익혀 나가고 있었다. 정 확히는 추월이 그녀에게 바람을 불어넣었다. 혼자 서현에 가기 두려운 추월은 검옥월을 부추겼다. 서현 에 오기만 하면 자기가 마련한 집에서 같이 지내자는 것이다. 추월은 검옥월을 경쟁 상대로 보지 않는다. 미모에서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무공이 강한 검옥월을 객지에 서 언니 대신으로 데리고 있고 싶어했다. 그녀는 적당한 핑곗거리를 검옥월에게 만들어주겠다고 했 다. 주유성이라는 인간이 대단히 특이하니 그 조사를 위해서 무림맹을 잠시 떠나 있겠다는 핑곗거리였다. 검옥월이 생각하기에도 꽤 잘 먹힐 것 같은 핑계다. 주유성 의 주변에서 워낙에 큰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따라가는 것이 그저 소문이나 듣는 무림맹 식객 생활보다는 훨씬 명령을 제 대로 수행하는 거라고 볼 수 있다. 그녀는 모르지만 만약 그걸 그대로 보고했다면 검각의 각 주는 쾌히 찬성할 것이 틀림없다. 검각 각주는 검옥월이 주 유성과 사랑에 빠지기를 바랐다. 데릴사위를 들이는 것이 아 니라 시집을 가버리면 검각의 각주가 될 수 없다. 그 말은 가장 유력한 각주 후보가 경쟁에서 실격한다는 뜻이다. 남궁서린은 당연히 대찬성이다. 그녀는 주유성이 무림맹에 머물면 머물수록 경쟁자가 늘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무림맹에 는 자신만큼의 미모와 배경을 가진 아가씨가 한가득 있다. '고것들이 주 공자님의 진가를 알아내면 큰일이지. 이미 백미화 그것의 눈치도 심상치 않은데.' 주유성은 무림맹 소속이 아니다. 가고자 한다면 무력을 동 원하지 않는 이상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는 떠나기 직전에 검성을 만났다. 검성이 사람을 보내 조 용히 만나기를 청한 때문이다. 잔뜩 심통이 난 주유성이 금지로 정해진 숲의 정자로 갔다. 무림맹주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왜 불렀어요?" 얼굴 가득 기분 나쁘다고 써져 있는 주유성을 보자 무림맹 주는 난처했다. '이 녀석을 어떻게 잘 달래야 하려나.' 주유성이 검성이 보자고 해서 순순히 찾아온 것은 나름대로 노리는 것이 있어서다. 그는 검성의 큰 손을 기대했다. 여행 경비에나 쓰라고 은자라도 집어주면 못 이기는 척 받아갈 생 각이다. 검성이 주유성을 보고 웃어주며 말했다. "녀석아,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라고 불렀다. 사실 청성은 매사에 까칠하게 구는 곳이란다. 하지만 어쩌겠느냐? 그곳은 그래도 구파일방 중 하나란다. 무림정파에게 큰 힘이 되는 곳 이지." "그래서 이해하라고요? 검성 할아버지가 부탁해서 독곡을 갔다 왔더니 그 결과를 가지고 시비나 거는 걸 듣고만 있으라 고요?" 주유성의 항의에 검성도 할 말은 없다. "에휴. 미안하다. 다 내가 힘이 없어서란다." 검성이 무력은 강력하다. 하지만 검성은 그 배후 세력이 약 하다. 무림맹의 주축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다. 검성 역시 자신 의 장원을 하나 가지고 있고 그곳의 무사들은 강력한 무위를 자랑한다. 그러나 일개 장원과 구파일방의 힘을 비교할 수는 없다. 그래서 검성은 청성이 헛짓을 해도 내칠 수가 없다. 설사 힘이 있어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중 한곳을 내치는 건 어렵 다. 다만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가지고 적당히 밀고 당 기기를 해야 한다. 주유성은 청성이 마음에 안 든다. 마해일이라는 인간을 만 난 이후로 청성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 제갈화운의 출신 문 파인 제갈세가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제갈세가는 당소소에게 오대세가의 수치라는 평가까지 받는 곳이다. 그 두 곳이 시비를 걸었으니 당연히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두 문파를 쳐부술 욕심까지는 없다. 그들은 어쨌든 정파의 울타리 안에서 돌아가는 문파들이며 무림맹의 중요한 힘이다. '착한 내가 참자. 한 번 더 봐주지 뭐.' 적명자가 제갈고학이 들었으면 콧김을 내뿜을 만한 생각을 하면서 주유성이 검성을 보았다. "할아버지, 그냥 그 말만 하려고 저를 부른 거예요? 전 이 제 돌아갈 거거든요?" '그러니 여비라도 좀 챙겨주시죠. 내가 가진 돈이 전혀 없 는데.' 주유성은 언제나 주머니가 비어 있다. 쉽게 번 돈들은 어려 운 사람들을 만나면 쉽게 나갔다. 항상 탈탈 털어줘야 하는 상황이 벌어져서 수중에 남은 것이 없다. 이제는 여행 도중에 푼돈 버는 재주들이 늘어서 어디 가서 굶어 죽지 않게 됐지만 그래도 돈이 있는 편이 낫다. 돈만 있 으면 그릇을 깎거나 금을 연주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꼼짝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주유성은 언제나 그쪽을 택한다. 검성이 푸근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래. 몸조심해서 가거라." '네 녀석에게 돈을 넉넉히 줬다가는 다시 끌어낼 수 없잖 느냐. 배가 부르면 움직이지 않는 놈이니까. 그렇게는 안 되 지. 미안한 건 미안한 거다. 무림이 너를 필요로 한다.' 검성의 반응을 본 주유성의 얼굴에 살짝 경련이 일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에 저를 끌어들이지 마세요. 북쪽 남 쪽을 두루 돌아다녔으니 전 평생 여행할 거리를 넘게 움직였 어요." 보통 사람의 여행 거리를 넘어섰음은 틀림없다. 검성이 씩 웃더니 품에서 패를 하나 꺼내 내밀었다. "이건 이번 일에 대한 보답으로 주는 선물이란다." 네모난 패는 옥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옥 위에는 붉은색으 로 말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주유성이 옥을 물끄러미 보다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말 했다. "설마 무림맹에 한자리 주려는 건 아니죠?" 다른 사람이라면 그런 일이 있을 때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패를 받아 들 일이다. 하지만 주유성은 한자리가가 싫다. 정 확히 말하면 한자리를 맡은 후에 해야 할 일이 있는 게 싫다. "허허! 네가 자리를 준다고 해서 덥석 받을 녀석도 아니지 않느냐? 이건 무림맹의 귀한 손님을 뜻하는 패란다. 이걸 무 림맹 지부에 제시하면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지." 주유성은 의심의 눈초리를 버리지 않았다. "편의요?" "그래. 예를 들면 여행 중에 이걸 무림맹 지부에 제시하면 좋은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가 제공될 거다." 주유성이 잔뜩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옥패를 보았다. 그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조금 수상하단 말이야. 하지만 좋은 음식과 편안한 잠자 리라.' 주유성에게 그것만큼 구미가 당기는 것도 없다. 주유성은 패를 꼼꼼히 살폈다. 특별히 신분을 표시하는 어 떠한 글씨는 새겨진 것이 없었다. 오직 말 그림뿐이었다. 주유성이 무림맹주를 보고는 확인 삼아 물었다. "이 패 이거 망가뜨리면 어떻게 돼요?" "뭘 그런 걱정을 하느냐? 패가 망가진다면 다시 만들면 그 만인 것을. 너에게 준 패를 설마 물어내라고 하겠냐?" "그럼 이 패의 소유권이 완전무결하게 저에게 귀속된다는 거죠? 돌려달라고 하기 없기예요?" "당연하지." 주유성이 만족한 얼굴을 하고 옥패를 받았다. "고마워요. 잘 쓸게요." '만에 하나 여기 무슨 수작이 있더라도 내가 이걸 무림맹 지부에 내밀지 않으면 그만이지. 가지고 있다가 급하면 문양 부분을 깎아버리고 팔아야겠다. 이만한 크기의 옥이라면 꽤 짭잘할 거야.' 주유성은 만족했다. 은자는 받지 못했지만 비상금으로 쓸 수 있는 옥을 받았다. 옥패에 새겨진 말 그림이 의미하는 가 치는 옥 몇 조각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어차피 주유 성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다. 주유성이 떠나고 나서 검성이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 "클클클. 잠시 휴가라도 받은 셈치거라. 나는 너를 다시 끌 어낼 방안을 마련할 테니. 무림은 네가 필요하단 말이지. 네 가 무림을 구하지 않으면 이 늙은 내가 하리? 으하하하!" |
첫댓글 즐독합니다
즐독입니다
즐감 하고 갑니다
ㅎ늘 감사 히 잘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