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터미널
강헌모
사람들의 교통수단 중의 하나인 버스 노선 따위의 맨 끝 지점을 터미널이라 한다.
어딜 가나 버스 터미널이 있는 곳은 정겹다. 사람들이 어디를 갔다 오다 잠시 머무는 곳, 가야할 곳을 위해 잠시 기다릴 수 있는 안락한 곳이 터미널인 것이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며 먹을 것을 사먹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서점에 머무르거나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기다리는 장소인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보은읍의 버스터미널에서 놀고, 자라서인지 작고 큰 버스 터미널을 보면 편안함을 느낀다. 여행을 가기 위해 기다리는 장소이기도 해서 정겨움을 더해 주고 있다.
대도시에는 정말 많은 버스들이 터미널에 있어 행선지를 찾으려면 한참 만에 찾을 때가 있다. 그 많은 버스들이 손님들을 태우고 갈 것을 생각하면 정말 고마운 버스가 아닐 수 없고, 정다운 터미널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의 발이 되어 오늘도 쉴 새 없이 대중버스는 움직이고 있다.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되어가서 생동감 넘치는 사람들의 생활을 볼 수 있다.
터미널에는 이별을 아쉬 워 하는 곳이다. 그래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고 사랑하는 남녀가 헤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또 자취와 하숙을 하는 학생들과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들도 버스를 이용하기 위해 부모 형제들과 잠시 떨어져 있어야 하는 곳이다.
나는 어느 곳의 터미널을 가도 좋게 생각한다. 시골의 작은 곳이든, 중소도시든, 대도시든, 건물이 좋든, 허술하든, 사람이 많은 곳이든, 적은 곳이든 모두의 공동 터미널인 것이어서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기에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마음도 전환시켜 주는 곳이다. 생각하면 버스 기사님에게 고맙게 생각 할일이다.
언제는 당진에 가서 시골로 들어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리려고 터미널에 머문 때가 있었다. 마른 오징어가 너무 먹고 싶어서 그곳에서 주인 아가씨에게 오징어를 샀는데, 잘 구워서 더 맛있었다. 그것을 기억하면 아름다운 버스터미널의 작은 추억으로 남기에 충분하다. 그곳에는 처음 가는 곳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내가 어렸을 때 대합실에서 승객들이 버스표 끊는 모습을 보았다, 어린 나이에 그들의 표 끊는 밑에서 쪼그려 앉아 훔쳐보았다. 그 기억은 십 수 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어렸을 때의 추억은 잘 잊혀 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때는 지금같이 교통수단이 많이 발달되지 않을 때라 주차 관리하는 사람들이 버스가 들어오면 손짓을 하며 차를 안전하게 오갈 수 있게 했다. 밤이 되면 버스들이 터미널에 주차되어 있었고, 운전기사님들과 차장들은 하숙집에 1박을 하고서 다음날 가야 할 곳으로 이동한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천되어 작은 곳의 대합실에는 무인 매표기가 설치되어 있기도 하다. 사람들 자신이 직접 표를 뽑아야 버스를 탈 수 있다. 큰 터미널에도 기계에서 뽑을 수 있고, 직접 표를 사야하는 곳도 있다. 그곳에는 없는 것이 없을 다양한 건물들이 있다. 커피숍, 꽃집, 영화관등도 있는 곳이 있어 행복한 삶의 터전인 터미널이다. 언제는 버스를 기다리기가 적적해서 커피 파는 곳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주인이 너무 친절했다. 그래서 다음에 또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들었다. 일부로라도 찾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매우 친절 했다.
터미널 가게에서 생수를 산 때가 있었는데, 가게마다 가격차이가 있어 어는 곳에는 700원, 또 어느 곳에는 1,000원에 파는 곳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나는 당연히 가격이 싼 곳에서 생수를 사는 것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기차역의 터미널도 좋지만, 나는 오늘도 버스들이 일정하게 잘 세워져 있는 많은 것을 그리며 터미널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싶다.
- 국보문학 2016년 7월호 신작수필 -
첫댓글 저도 터미널 바로 옆에 살아요.
"상봉 터미널" 들어는 보셨죠?
선생님! 터미널이 주는 정겨운 생각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에 사시는군요?
건강하시고 즐거운생활 되세요^^
그 옛날 기사님과 안내양아가씨는 힘든 직업었네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버스 터미널 노이로제 같은 것이 있는데 생수 1병 가격비교도 즐거운 여행후기로 남았고... 다시 버스여행에 정을 붙여봐야겠네요 ^~
감사합니다.
그렇죠? 안내양이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죠? 등교할 때 러시를 이루워 마치 짐짝같이 승객을 태우고 위험을 무릎쓰고 오라이! 하며 안내양은 버스를 아슬하게 타고 가던 때. 시내버스를 타던 때가 기억에 스멀스멀 피어 오르네요!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어제일처럼 기억에 새롭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버스 터미널에는 오늘도 분주히 사람들이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겠지요^^
강현모 선생님 추억담 재미있습니다.
터미널에 관한 이야기라면 모두에게
추억의 한 토막으로 남아 있을 듯 합니다.
이사람은 고향집에 가다가 쓰리를 맞아
천안여객 터미널에서 온양온천 표를 못 사고
애를 먹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좋지 않은 기억이군요?
속상하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