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開拓者)★
[노숙 6~10]
6
강릉 경포대에 도착 했을 때는 오후 12시 반이었다. 관광호텔 앞에 차를 주차시켜놓고 둘이 호텔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들어가면서 김명천은 점심값으로 2만원을 받았다. 물론 돈은 여자가 준 것이다.
거기에다 3시까지 자유 시간을 얻었으므로 김명천은 햄버거와 콜라로 점심을 때웠다. 점심값으로 6000원을 썼으니 1만 4000원이 수입으로 남았다. 맛있는 요리보다 영양가 우선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것은 김명천의 습관이다.
가난과 절약이 몸에 배어 있었지만 김명천은 결코 그것이 부끄럽지 않았다. 그렇다고 영양가 없는 음식에 턱도 없이 비싼 돈을 내고 사먹는 사람들을 질시하거나 비난하지도 않았다. 적응해가는 것이다.
전에는 햄버거도 사먹지 못했다. 지금은 햄버거로 때울 수준이지만 나중에 수십만원짜리 풀 코스 요리를 시켜먹을 기회가 온다면 거침없이 먹을 것이다. 바다가 보이는 공중전화 박스는 비어 있었다. 요즘은 휴대전화가 보급되어서 초등학생도 소지하고 다니지만 어머니와 동생 정은은 아직 없다.
김명천이 집에 전화를 했을 때 불안했던 예감이 맞아 떨어졌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집에서 전화를 받았다는 것은 몸이 아파서 일을 나가지 못했거나 일이 없을 때 뿐이다. 그 경우에 어머니는 언제나 기운없이 전화를 받는다.
"어머니, 나, 어머니 아들."
김명천이 소리치듯 말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기운을 차리고는 목소리에 생기가 띄워지곤 했다.
"응, 명천아."
"나, 지금 강릉에 왔어. 회사일로."
"점심은 먹었어?"
"응, 생선회를 실컷 먹었어."
"잘했다."
어머니가 기침을 두어번 하더니 곧 목소리가 더 밝아졌다.
"난 괜찮다. 오늘은 네가 보내준 돈으로 김장을 하려고 집에 있어." "김장값은 따로 보내 준다니까." "두 식구가 먹을 건데 몇 포기면 돼." "주인집에서는 뭐라고 안해?" "아직 그런 말 없으니까 걱정 안해도 된다."
어머니가 자르듯 말했으므로 김명천은 심호흡을 했다.
방 한 칸에 부엌과 화장실이 딸린 독채 전세금이 1000만 원이었으니 지방이라고 해서 싼 편이기는 했다. 그래서 지난 달부터 집 주인이 전세금을 500만원 더 올리든지 집을 비우든지 하라고 독촉하는 중인 것이다. 이것도 정은이를 통해서 겨우 들은 말이다. 어머니는 김명천에게 한 번도 내색조차 하지 않았는데 전해준 정은이를 몇날 며칠을 두고 혼냈다는 것이다.
"어머니, 두 달만 기다리면 내가 5백 만들어 보낼게. 그때는 보너스에다 수당이 함께 나올테니까."
김명천이 호기있게 말하자 어머니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우리가 다른 곳으로 이사 가면돼. 시골에는 싼 집이 많아."
"그래도 정은이 학교 다니고 어머니 일 나가는데."
했다가 김명천은 말을 그쳤다.
김명천은 어머니에게 운송회사에 다닌다고 했지만 회사 전화번호는 알려주지 않았다. 1년전에 공사장에 나가면서 무역회사에 취직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 탄로가 난후에 어머니는 며칠간 식사도 하지 않았다. 다시 어머니가 기침을 했으므로 김명천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어머니." 하고 불렀지만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고 기침소리도 끊겼다.
송화구를 막고 있는 것이다.- (계속)
7
속초까지 오는 동안 해수욕장 두 군데를 더 들러서 바닷가 경치를 감상했기 때문에 설악산 호텔에는 오후 7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우린 호텔에서 쉴 테니까."
차가 멈췄을 때 여자가 지갑을 열면서 말했다.
"미스터 김은 저녁 먹고 숙소 정해서 쉬고 내일 아침 9시까지 오세요." 여자가 10만원권 수표 한 장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사모님."
"무슨 일 있으면 핸드폰으로 연락하겠어요." "예, 사모님."
차에서 내린 여자와 일본인이 호텔 안으로 들어서자 김명천은 차를 안쪽 주차장에 우선 주차시켰다. 내일 아침 9시면 앞으로 시간이 14시간이나 여유가 있는 것이다. 가끔 원정 운전을 가는 최씨나 박씨한테 이런 경우가 닥쳤다면 차를 놀리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까지 충분히 두 탕은 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김명천은 의자를 뒤로 눕힌다음 길게 누웠다. 숙박비와 식비로 10만원을 받았으니 저녁과 아침 두끼 식사비로 2만원을 쓰고 잠은 차에서 자려는 것이다.
그러면 8만원이 남는다. 어느 곳이건 어떤 자세거나 상관없이 자려고 마음먹으면 김명천은
1분 안에 잠이 들 수 있었다. 노숙을 할 적에도 대부분 원인이 자신이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중학 때부터 새벽에 일어나 신문배달을 하면서도 김명천은 불평하지 않았다. 가족은 물론이고 사회에 대한 불만도 품지 않았다.
중학 때부터 김명천이 스스로 지어낸 말이 있다. 내일이 있다면 희망도 있다는 말이었다. 중학교 때의 목표는 졸업 때까지 태권도 초단을 따는 것이었고 그것이 일찍 달성되자 다음에는 어머니의 겨울 코트로 바꾸었다. 백화점에서 토끼털 코트가 55만원으로 걸려져 있었는데 그것을 목표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55만원을 모아 백화점에 갔을 때 그 코트는 없어진 대신 80만원이상의 털코트만 걸려져 있어서 결국 사드리지는 못했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목표는 달라졌으며 더욱 현실적이 되어갔다. 김명천의 목표는 대통령이 되겠다던가 또는 의사, 판사 등 먼 앞쪽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난한 환경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가장 현실적이며 가장 가까운 미래에 대한 목표가 항상 김명천의 머릿속에 심어져 있다. 지금 당장의 목표는 어머니의 전세금 인상분을 한 달안에 보내드리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전공에 맞는 직장을 얻는 일이다. 김명천은 눈을 감고는 심호흡을 했다. 내일이 있다면 희망도 어느 구석에겐 있을 것이었다. 휴대전화가 울렸을 때는 밤 9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이었다. 깜박 잠이 들었던 김명천은 서둘러 전화기를 귀에 붙였다.
"예, 김명천입니다."
"김명천씨, 나."
임재희의 목소리였다. 대리운전 사무실은 지금 바쁘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어, 임선생. 왠일이야?"
김명천도 다른 기사들처럼 임재희를 임선생으로 부른다.
그러나 두 달 동안 임재희 하고는 한 번도 둘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한 적도 없다.
김명천이 웃음 띈 목소리로 말했다. "나, 원정왔는데, 혹시 착각한거 아냐?"- 계속 -
8
"착각한 것 아냐."
임재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보통 대리운전 연락은 임재희가 해주는데 말투가 냉담해서 기사들의 평이 좋지 않았다. 김명천에게도 입사한지 사흘째인가 되던 날부터 반말을 썼고 그것도 아주 자연스러웠다.
의자를 세우고 앉은 김명천이 네온사인이 번적이는 호텔 나이트클럽에 시선을 주며 물었다.
"그럼 몇시에 도착해?"
"그건 알 수 없어."
"도착하면 전화해. 내 핸폰으로."
"왜? 일 있어?"
했다가 일이 있다면 핸폰으로 연락하라고 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임재희의 휴대전화 번호도 모른다.
"없어. 내 전화번호 적어."
그리고는 임재희가 번호를 불러주더니 제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잠이 달아난 김명천은 눈만 껌벅이며 나이트클럽 입구를 보았다. 서울 번호판을 붙인 고급 승용차가 입구에서 멈춰서면 종업원들이 서둘러 달려가 손님을 맞고 있었다.
특급 호텔의 클럽이어서 손님들의 수준도 높아 보였고 벌써 클럽 주차장에는 차들이 다 찼다. 경제 불황으로 대학 졸업생 취업률이 갈수록 낮아지고 청년 실업율도 높아지는 상황이었으나 이곳은 예외였다. 클럽에서 여자를 끼고 양주 서너병을 마시고 나면 김명천의 한달 수입보다 계산이 많이 나올 것이다.
그때 외제 2인승 스포츠카가 다가오더니 클럽 현관 앞에서 멈춰 섰다. 그러자 종업원이 달려갔고 차안에서 한 쌍의 남녀가 내렸다. 운전석에서 내린 사내는 20대 초반의 앳된 얼굴이었다. 김명천과의 거리는 20m쯤인데다가 불빛이 환했으므로 사내가 찬 귀고리까지 다 보였다.
종업원에게 차를 맡긴 사내는 늘씬한 몸매의 아가씨와 함께 거침없이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던 김명천은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능력에 따라 빈부의 구분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모은 부를 얼마든지 뜻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무조건 비난하는 자들이 오히려 사회에서 배척되어야 한다. 그러나, 심호흡을 한 김명천은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것이 문제인 것이다. 열심히 능력을 발휘하여 부를 축적한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매도당하는 것은 그런 인간들 때문이다.
김명천은 얼굴을 떠올렸다. 연예인도 아니었고 요즘 갑자기 기업가로 출세한 인물도 아니었다. 부모를 잘 만난 청년일 뿐이었다. 호텔 아래쪽의 식당으로 걸어 내려가면서 김명천은 그 청년의 부모가 정직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인물인가 궁금해졌다.
다음날 아침, 김명천에게 장씨라고 성씨만 알려준 여자는 10시반이 되어서야 일본인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둘다 피로한 얼굴이었고 차에 오르자마자 일본인은 몸을 눕히더니 눈을 감았다.
"아침에 설악산을 오르려고 했지만 어젯밤 과음을 해서."
장여사가 혼잣소리처럼 말하더니 백미러로 김명천을 보았다.
"동해안 따라서 내려가다가 경부 고속도로를 타고 올라갈 수 있죠?"
"예, 사모님."
김명천이 기운차게 대답했다. 어차피 오늘까지 고용되었으니 밤에 돌아가도 상관없는 것이다.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수입이 늘어난다.
차가 속력을 내었을 때 장여사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힘들어요. 이 생활도."
김명천이 백미러를 보았을 때 여자의 시선은 비껴나 있었다.- 계속 -
9
장여사는 말을 아꼈다. 동해안을 따라 내려가는 동안 일본인은 줄곧 잠만 잤어도 장여사는 창밖을 본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영덕 근처의 휴게소에서 일본인이 깨어나 화장실에 갔을 때 장여사가 입을 열었다.
"저놈은 서울에 살림 차려준 애인이 또 하나 있어요."
놀란 김명천이 시선을 들자 장여사가 백미러를 향해 웃어보였다.
흰이가 드러나면서 장여사의 얼굴이 천진스럽게 변해졌다.
"내가 세컨이라면 그 여자는 서드인 셈이지. 하지만."
장여사의 얼굴이 다시 원상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금방 수심이 잠긴듯한 표정이 되었다.
"나두 애인이 있죠. 그래서 우린 서로 비긴 셈인데."
김명천은 잠자코 앞쪽만 보았다.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이지만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어쨌던 이 여자는 나에게 생활비와 나아가 어머니의 전세금 인상분을 보태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2년 동안 온갖 일을 해오면서 김명천은 살아가는 요령을 스스로 익혀왔다. 자신과 상관없는 불의에 분개하고 날뛰다가는 굶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살았다면 진즉 지쳐 떨어졌을 것이다.
힐끗 창밖에 시선을 주었던 장여사가 말을 이었다.
"문제는 저놈이 눈치를 챈것같아. 나한테 애인이 있다는걸 말이야."
"그렇습니까?"
겨우 김명천이 그렇게 대답해 주었을 때 장여사가 가늘게 숨을 뱉았다.
"사람을 시켜서 내 뒷조사를 한 모양이야. 어젯밤에 은근히 그 이야기를 하길래 술만 딥다 마셨어."
장여사는 이제 자연스럽게 반말을 썼다.
"이번 여행은 저놈이 그 이야기를 꺼내려고 가자고 한 것 같아."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런 일 없다고, 오해라고 딱 잡아떼었지만 증거를 갖고 있는 모양이야."
"큰일인데요."
"집하고 차는 모두 내 명의로 되어있으니까 그건 되었지만."
장여사가 굳어진 얼굴로 백미러를 보았다.
"헤어진다면 매달 받던 생활비가 끊길테니 그게 걱정이야."
"애인을 정리하시면 안됩니까?"
"알고 있다면 이미 늦었어."
"위자료는 받을 수 없을까요?"
"미스터 김은 순진해."
희미하게 웃은 장여사가 다시 가늘게 숨을 뱉았다.
"그런 것 없어. 집을 내 것으로 해놓은 것 만해도 다행이야."
그때 일본인이 다가왔으므로 둘은 이야기를 멈췄다. 김명천이 서둘러 밖으로 나와 문을 열어 주었을 때 일본인이 빙긋 웃었다.
"아리가도."
김명천이 차를 출발시켰을 때 이제 잠에서 깨어난 일본인이 맑고 또렷한 목소리로 장여사에게 말했다. 물론 일본말이다.
"바닷가 공기가 맑군."
"그래요. 여보."
장여사가 일본인의 옆으로 바작 붙어 앉는 것이 백미러를 보지 않아도 느껴졌다.
"오해는 풀어 버리세요. 여보."
"그러지."
시원스럽게 말한 일본인이 창문을 열었는지 찬 공기가 몰려 들어오면서 소음이 심해졌다.
일본인이 말을 이었다.
"욕심을 조금 줄이기만 하면 그만큼 행복이 늘어나는 법이지. 내가 욕심을 줄이기로 하지."
그때서야 김명천은 백미러로 일본인을 보았다. 오늘도 손님한테서 한수 배웠다.- 계속 -
10
김명천이 장여사의 집에서 나왔을 때는 저녁 8시 반이었다. 일본인과 일이 잘 풀렸기 때문인지 장여사는 수당에다 5만원을 더 얹어 40만원을 주었으므로 20만원이 몫으로 남았다. 거기에다 숙박비와 식대에서 절약한 돈이 10만원이었으니 일박이일의 대리운전에서 30만원을 번 셈이었다. 길가에선 김명천이 전화를 걸었을 때 임재희는 벨이 세 번 울리고 나서 응답했다.
"나 도착했어."
"거기 어디니?"
임재희가 제 친구한테 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며 물었다.
"방배동이다. 왜?"
쓴웃음을 지은 김명천이 대답하자 임재희는 흥흥 웃었다. 지금까지 김명천은 한번도 임재희가 웃는 모습을 못보았다. 사무실인지 송화구에서 떠들썩한 사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 내가 12시쯤 전화할게."
그리고는 임재희가 전화를 끊었으므로 김명천은 다시 쓴웃음을 지었다.
바로 앞쪽에는 사장 서충만이 앉아있을 것이었고 주위의 사내들도 귀를 세운 상황일 테니 임재희는 모험을 한 것이다. 영등포의 합숙소에 도착 했을 때는 10시가 넘어 있었지만 같은 방을 쓰는 오씨는 오늘도 들어오지 않을 모양이었다.
하루 3천원씩 계산을 하다가 한달치를 선불하면 그중 큰 한 평짜리 방이 두 사람에게 배분되었는데, 물론 화장실은 없다. 세면과 화장실은 현관 앞에 있어서 공동으로 사용해야 한다. 김명천은 한달분씩 선불을 주었으므로 한평짜리를 썼고 화장실도 가까웠다.
그러나 같이 방을 쓰던 오씨가 나흘전부터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선불을 하다가 일주일째 미루더니 결국 도망친 것 같았다. 사람을 많이 겪은 주인도 그렇게 알고 다른 합방자를 찾는 눈치였다.
저고리만 벗은 채로 방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던 김명천은 핸드폰의 벨소리에 눈을 떴다. 방의 불을 꺼놓아서 핸드폰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핸드폰을 귀에 붙였을 때 예상 했던대로 임재희의 목소리가 울렸다.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5시에 여의도 고수부지로 나와."
대뜸 임재희가 말했으므로 김명천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5시면 임재희가 퇴근하는 시간이다. 애인 사이라면 새벽이건 한낮이건 가릴 것 없지만 임재희 하고는 서로 눈길 한번 제대로 마주치지 않았다. 김명천이 임재희를 이성으로 의식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김명천의 목소리가 삭막하게 들렸던 것 같다. 잠시 말을 멈췄던 임재희의 목소리가 낮고 약해졌다.
"그냥, 할 이야기가 있어."
더 이상 묻기도 거북했으므로 김명천은 승낙하고 전화를 끊었다. 서울에 온지 2년이 되었지만 여자하고 데이트는 한번도 하지 못한 김명천이다. 물론 기회는 여러번 스치고 지나갔다.
상가 공사장에서 5개월동안 잡부로 일을 할 때 단골 식당집 주인의 여동생이 호의를 보였었고, 놀이공원 야간 경비를 했을 때는 매표구에서 근무하던 미스민의 노골적인 구애를 받았다.
그러나 김명천은 아직 연애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외롭다면서 여자를 만난다는 것은 김명천에게 성욕을 참지 못해서 홍등가를 찾는 것과 같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긴장을 풀어서 득 될 것도 없는 것이다.
아직 확실한 미래도 보이지 않는 처지에 여자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잡지도 못한 목표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거짓말만 붙여지게 될 것이었다. 김명천은 다시 몸을 눕히고는 잠에 빠져 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