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11월 8일 공개되었던 레드 제플린의 네번째 앨범은 앨범 타이틀이 없는 작품이다.
일각에서는 Led Zeppelin IV 혹은 Zoso, , Four Symbols, The Fourth Album 등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다 옳지 않다. 특히 Zoso같은 경우는 지미 페이지를 매우 화나게 했다.
앨범 속지에는 지미 페이지가 밴드 멤버들에게 자신을 나타내는 상징물 내지 기호르 고르도록 한 뒤에 등장한 네개의 기호
가 담겨 있는데 Zoso라는 것은 바로 지미 페이지를 상징하는 기호였다.
지미 페이지는 3집 앨범의 최종 아트웍이 엄청난 에러라고 생각했기에 이런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타이틀부터 시작하여
3집과는 손쉽게 분류되는, 이미지와 단어가 전혀 기재되지 않은 커버를 내놓기로 결정하였다.
즉 지미 페이지와 레드 제플린은 암시와 수수께끼에 무게 중심을 두기로 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Zoso라고 불리우는 것은 지미 페이지가 음반의 정체성으로 인식하고 있는 조화와 균형을 명백하게 부정하는
것이었다.
3집 앨범의 성공(물론 2집에 비하면 절반의 성공이지만 그래도 굉장했던) 이후 레드 제플린은 3집 앨범과 마찬가지로 우선
지미 페이지와 로버트 플랜트가 웨일스의 브로니어로 가서 기본적인 창작을 했고 이후 존 본햄, 존 폴 존스와 합류하여
11월에 헤들리 그레인지(원래 전편에서 글을 썼어야 하는건데~~ 런던에서 남서쪽으로 40마일 가량 떨어진 헤들리 마을
바로 남쪽에 있는 햄프셔 주의 헤들리 그레인지라고 불리우는 빅토리아풍의 큰 집)에서 롤링 스톤즈로부터 빌렸던 모바일
레코딩 스튜디오(딥 퍼플의 머신헤드 앨범때 소개드렸던)을 통해 녹음되었다.
1970년 12월 레드 제플린은 헤들리 그레인지에서 모바일 레코딩 스튜디오로 첫 녹음을 끝내고 오버더빙을 위하여 런던
아일랜드 레코드의 베이싱 스트리트 스튜디오(제스로 툴 아쿠알렁 앨범 소개할때 잠깐 언급했던)로 이동하였다.
이후 최종적인 믹싱은 엘에이에 있는 선셋 스튜디오에서 했는데 녹음할땐 몰랐는데 녹음한걸 들어보니 태초에 그들이 의도했던
사운드와는 너무나 다른 음향 효과가 발생되어 결국 처음부터 믹싱을 다시 시작해야 되는 난관에 봉착했다.
결국 레드 제플린은 런던의 여러 스튜디오를 전전긍긍하며 믹싱 작업을 다시 수행해야 하는 멍하고 혼돈스러운 미궁 속으로 빠져
들게 되었다. 원래 레드 제플린의 계획은 71년 초에 앨범을 발매하고 그 해 여름부터 유럽 공연과 미국 투어를 떠나는 것이었는데
믹싱 작업 때문에 결국 앨범 발매는 가을로 넘어가게 되어버렸다.
그 와중에 영국과 아일랜드 투어가 있었는데 여기에 대부분의 한국인 록팬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숨어있다.
이 시기에 레드 제플린은 대규모 공연 대신 소규모 클럽에서 공연하는 것을 택했다.
이것에 대하여 과거 80년대 한국 록 매거진에서는 '레드 제플린이 작은 클럽에서 새 앨범 곡을 연주하며 일반 대중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입방아를 찧어댔는데 그건 결코 진실이 아니었다.
지미 페이지는 레드 제플린의 초창기 팬들(그들이 음악 활동 초기 단계를 견뎌 오도록 도움을 주었던 고마운 사람들)이 이제는
그들의 공연을 보러 오는 엄청난 군중 속에 꼽사리 끼어 있는 정도라는 사실을 통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때의 팬들 모두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그 옛날 우리가 받은 출연료만 받고 마키 클럽에서 연주할 계획입니다.
우리의 청중이 용인된 전통 속에서 한 그룹을 볼 기회를 갖게 될 동안 우리는 그들과의 교감을 강화하고 그들의 반응에 힘입어
재충전할 것입니다.'
지미 페이지는 프로모터들에게 팬들 편에 서서 올바르게 행동하고 선착순에 의해 티켓을 판매해 달라고 간청했고, 인터뷰 내내
권리 행사의 박애적인 면을 누누히 강조했다.
'융숭한 대접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굳이 오려고 애쓸 필요 없다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진정으로 우리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누군가가 점유했을 소중한 공간을 그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소규모 클럽 공연에 온 청중들은 전세계에서 최초로 stairway to heaven을 듣는 특권을 누렸다.
Black Dog
'헤들리 그레인지는 유령이 나올 것 같은 노역장이었지만 사실상 아주 낡은 집이었습니다.
그곳에 정을 붙일 필요가 있었죠. 그리고 그 낡은 집에 낡은 가구, 평화와 작업할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진 그곳에는 늙고 검은
개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개는 내가 생각하기에 아예 귀가 먹은 것 같았지만 내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끈질기게 따라
왔습니다.'
먼 훗날 로버트 플랜트가 과거를 돌아보며 한 말이다.
내가 어린 시절 이 곡을 처음 알았을때 나는 이 곡을 가리켜 검은 개 혹은 검둥개라고 그랬는데 음악 좀 안다는 개새끼들이 나를
가리켜 이 곡은 개새끼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젊은 남자의 사랑에 대한 열정을 담은 곡이라고 이죽거렸던 생각이 떠오른다.
물론 그 개새끼들이 말한 것처럼 이 곡은 제목만 개새끼일뿐 실제적인 곡의 내용은 건강한 남자의 사랑에 대한 열정 맞다.
허나 중요한것은 로버트 플랜트가 자신을 따르는 늙고 검은 개새끼를 떠올리며 만든 것이라는 것이지.
결국 어린 시절의 내가 옳았던 것이다.
그 시절 나는 레드 제플린은 커녕 록 음악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문외한이었지만 왠지 직감적으로 본능적으로 이 노래를 들을때
개새끼가 생각났다. 단지 제목이 개새끼여서 개가 생각난게 아니라 어딘가 모르게 개같은 느낌이 왔다 그 말이다.
내가 그때 샀던 테이프에는 곡 제목에 '우울함'이라는 조선어 표제가 있었지만 나는 처음 듣자마자 이건 개새끼를 모델로 만든
곡이라는 것을 느꼈다. 결국 내가 옳았다. 이성적으로 지식을 습득하고 공부 아닌 공부를 했던 이후 25년의 세월 보다 좆도 모르
던 시절 오로지 감각과 감성만 존재하던 그 시절이 더 음악을 진실하고 가깝게 느꼈단 것이다.
아티스트에 대하여 지식을 쌓아가고 정보를 알아가는 것도 좋지만 어떤 노래를 들었을때 본능적으로 어떤 감정이 자신의 가슴을
때리는가 그것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즉 자신의 진심에 솔직해질수 있다면, 그 사람은 충분히 매니아라 할 수 있다고 본다.
존 폴 존스가 무디 워터스의 앨범을 듣고 50년대 재즈 뮤지션 오넷 콜맨의 곡 turn around에 나오는 12마디 블루스 형식을
응용하여 만들어낸 블랙독은 굉장히 복잡한 연주로 이루어진 정교한 곡으로 비단 레드 제플린 팬들뿐 아니라 일반적인 록팬들
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
고로 블랙 독은 아주 많이 리퀘스트를 받았던 곡으로 기억된다.
인종과 국적을 초월하여 수많은 생명체들이 하얀 종이를 걸레로 만들어가며 끊임없이 신청했던 범우주적 신청곡이었다.
Rock and Roll
앨범에 실린 또다른 곡 Four sticks를 녹음하던 도중 잠시 휴식을 가질때 느닷없이 존 본햄이 연주를 했다.
그때 존 본햄이 구사했던 인트로 드럼은 리틀 리처드의 keep a knocking을 연상시키는 것이었고 그것에 맞추어 지미 페이지가
연주한 리프 또한 다분히 keep a knocking 스러운 것이었다. 그 위에서 로버트 플랜트가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가사가 합쳐져서
오늘날 우리들이 알고 있는 록큰롤이라는 명곡이 탄생한 것이다.
이언 길런이 스피드킹에서 초기 록큰롤의 제목들을 가사로 차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로버트 플랜트 역시 The book of love,
walking in the moonlight같은 50,60년대 록큰롤의 제목들을 가사로 빌어왔다.
하아 이 곡 역시 블랙 독과 마찬가지로 개업 초기부터 폐쇄 직전까지 이천칠백사십구일 동안 미친듯이 신청받은 곡이었다.
아마 마지막 날도 틀었던것 같은데?? 암튼 존나 많이 틀었다.
레드 제플린 버전 외에도 다른 뮤지션들이 커버한 버전으로도 많이 틀었다.
특히 모스크바 페스티벌에서 스키드 로우, 머틀리 크루, 잭 와일드 등이 협연한 버전으로 많이 틀었던 기억이 난다.
이 앨범 수록곡중에서 록큰롤, 블랙독, 스테어웨이 투 헤븐 요렇게 세 곡은 인종과 국적, 성별과 취향을 초월하여 전방위적으로
수많은 생명체들이 신청했던 것 같다.
The Battle of Evermore
애초에 지미 페이지가 연주곡으로 구상했던 이 곡은 레드 제플린의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곡 중 하나이다.
놀랍게도 지미 페이지는 이 곡에서 기타를 연주하지 않는다.
존 폴 존스 또한 베이스를 연주하지 않는다.
존 본햄 또한 드럼을 연주하지 않는다.
지미 페이지가 연주하는 것은 기타가 아니라 만돌린이며
존 폴 존스가 연주하는 것은 베이스가 아니라 어쿠스틱 기타이고
존 본햄이 연주하는 것은 드럼이 아니라 퍼쿠션이다.
또한 이 곡에서는 레드 제플린으로서는 최초로 객원 싱어가 초빙되어 로버트 플랜트와 듀엣으로 노래를 불렀다.
페어포트 컨벤션에서 노래를 불렀던 당대 최고의 여성 보컬리스트중 하나였던 샌디 데니가 객원으로 노래를 불렀다.
이 곡은 원래 페이지와 플랜트가 3집 앨범을 만들기 전 칩거했던 웨일스의 브로니어에서부터 초안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을 다듬고 다듬어 이 앨범에 담게 된 것이다.
로버트 플랜트는 Ramble on과 Bron-Y-Aur Stomp에 이어 다시 한번 '반지의 제왕'에서 영감을 얻어
스코틀랜드와 영국에 전해 내려오는 신비스러운 전설,신화를 가사로 표현해냈다.
이 시점에 와서 로버트 플랜트는 바닥에 즙이 흘러내릴때까지 내 레몬좀 쫘봐!!!!! 같은 저속하고 노골적인 일차원적 표현보다는
상당히 문학적으로 고양된 은유적인 기법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특히 앨범 재킷에서 지미 페이지가 표현하고자 했던 어떤 암시와
수수께끼같은 느낌을 아주 잘 살려내었다.
비단 가사뿐만 아니라 가사를 전달하는 창법에 있어서도 로버트 플랜트는 많은 사람들에게 정형화 되어있는 그의 남성적인 이미
지(흡사 오랑우탄같은)에서 벗어나 순수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평상적인 톤으로 노래를 하고 있다. 그의 그러한 표현력은 다분히
포크적인 것으로 이것은 인크레더블 스트링 밴드가 소개시켜 주었던 불가리아 음계를 가르치는 선생들과의 만남으로부터 나왔
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 포크적인 인물들과의 밀접한 관계를 통하여 레드 제플린은 페어포트 컨벤션같은 밴드들의 주제와
접근법을 그들 자신의 음악으로 흡수하는 과정을 가졌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곡은 매우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곡은 평단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매니아들로부터도 딱히 호응은 없었다.
그러한 냉담한 반응은 지난 2749일의 밤 역시 마찬가지였다.
블랙독과 록큰롤에 광분했던 생명체들에게 더 배틀 오브 에버모어는 그저 단순하고 산만하고 지루한 포크송처럼 들렸나보다.
별 신청 받은 기억이 없다.
효자 제프가 한 두 번 신청 했던 것 같고 그 외 사람들로부터는 쌩~~!!!!!!!!
Stairway to Heaven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존 폴 존스는 이곡에 대하여 이런 말을 했다.
'그것의 상업적 성공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잘 되어 제자리를 찾았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멋지게 만들어졌습니다. 지미와 나는 트랙이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고 그것이 어떤 다양한 단계를 거칠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죠. 우리는 형식에 매우 강했습니다. 우리 둘 다 클래식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클래식의 형식에는 극적
인 효과가 많이 있습니다. 시작하면 그냥 몰두했다가 끝내 버리는 모든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음악에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은 그냥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것이 곡 구성의 일부분입니다. 팝 음악의 일부분이기도 하구요.'
록 음악 역사상 최고의 명곡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레드 제플린 최고의 명곡.
레드 제플린 멤버들 스스로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최고의 명곡.
혹자는 지미 페이지가 이 곡 기타 솔로를 즉흥연주로 끝냈다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지미 페이지는 이 곡에 들어가는 기타 솔로를 세 개나 만들었고 그것들을 가지고 노심초사한 끝에 결국 그중에서 가장 잘 된 것을
선택하여 녹음한 것이다.
이 곡은 한때 레드 제플린이 오프닝을 섰던 spirit이라는 미국 밴드의 Taurus라는 곡과 유사하다는 논란에 휩싸였고,
지미 페이지가 야드버즈 시절 오프닝을 섰던 초콜릿 워치 밴드의 and she's lonely와도 비슷하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단지 의혹만 받았을뿐 윌리 딕슨때처럼 별다른 소송에 휘말리진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듣기엔 별로 비슷한지 모르겠다.
그냥 한때 오프닝이었던 놈들이 잘 나가니까 배 아파서 씹는 소리처럼밖에 안 들린다.
하아 이 곡 같은 경우도 수없이 많은 신청을 받았던 곡이다.
참 곡이 긴데도 불구하고 좀처럼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던것 같다.
이 곡 같은 경우는 약간 골 때리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다.
예전에 게시판에도 한번 썼던 것 같은데~~
어떤 미군이 와서 이 노래를 신청하며 나랑 쌍커풀에게 도발을 했다.
'너희들은 이 노래가 우리 미국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아는가??'
쌍커풀씨가 답변했다.
'기타는 타악기야.'
미군이 쌩까고 계속 이야기를 했다.
'스테어웨이 투 헤븐은 우리 미국인들에게 위대한 앤썸이야.
미국인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는 곡이지.'
글쎄~~
무슨 꿈과 용기를 준다는 것일까??
도덕적 결백이 순수한 본성을 통해 과오와 악의에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는 걸까??
본성에 충실하면서도 계단을 오르기 전 삶의 많은 유혹 중 어느 것 하나에도 빠지지 않는다는 걸까??
만약 스테어웨이 투 헤븐이 미군과 미국에게 그런 곡이라면 레드 제플린의 본질이 왜곡되는것 같아서 좀 섬뜩해진다.
그때 그 미군은 거기에서 말을 끝내지 않았다.
'너희들은 왜 미군이 너희 나라에 있다고 생각하냐??'
쌍커풀씨가 쿨한 답변을 주었다.
'먹고 사는데 상관 없으니까~~'
쌍커풀씨의 답변을 듣고 왠지 무시 당했다고 생각한 그 미군 청년은 얼굴을 붉히면서 일어났고 그후로 다시 본 적이 없었다.
하아 쌍커풀씨 그 날은 참 멋졌어 ♥
Misty Mountain Hop
한 무리의 히피들이 공원에 자빠져 마리화나를 빨다가 경찰에 체포되는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로버트 플랜트는 램블 온, 브로니어 스텀프, 더 배틀 오브 에버모어에 이어 또 다시 반지의 제왕에서 모티브를 얻어 가사를 썼다.
골룸, 아르윈, 아라곤에 이어 호빗이 등장한다.
이런 사유로 인하여 이 곡은 80년대에 금지곡으로 묶여 있었다.
그 시절에 발매되었던 엘피나 테잎에는 이 노래가 수록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고명했던 평론가 한 분은 레드 제플린에 대해서 '단 한곡도 금지곡 없이 국내에 정식으로 라이센스
되었던 거의 유일한 록 밴드'라고 말하며 레드 제플린을 심하게 빨아주셨는데 그건 다 뻥이었다.
1집에서 하우 매니 모어 타임즈, 3집에서 갈로우스 폴, 4집에서 미스티 마운틴 합 요렇게 3곡은 금지곡이었다.
이 곡 같은 경우는 외국인(자꾸 양놈이라는 표현을 쓰니까 외국인 회원 한분이 쪽지를 보냈다. 양놈이란 표현이 거슬린다고 ㅜ.ㅜ)
들이 주로 많이 신청했고 한국인 팬들 같은 경우는 올드 팬들 보다는 오히려 90년대 이후 록을 듣기 시작한 뉴 팬들이 많이 신청
했던것 같다. 그러한 뉴 팬들은 레드 제플린 원곡 못지 않게 포 논 블론즈의 커버곡도 종종 신청했던것 같다.
포 논 블론즈의 커버곡도 제법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Four Sticks
난 이 노래 맨 처음에 들었을때 기분이 존나 좆같았다.
노래가 참 좆같다고 생각했고 불쾌했다.
특히 오 베이비 하는 부분이 이상하게 음침하고 칙칙하고 불편했다.
악마적이면서도 사바스처럼 헤비한것도 아니고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그런데 이후 만나는 레드 제플린 빠돌이들이 이 노래 존나 죽인다고 숨겨진 제플린의 명곡이라 빨아주길래 약간 좋게 들었다.
그릐고 좋은 곡이라고 생각하고 들으니까 약간 좋게 들리기도 했다.
그런데 알아보니 이 곡 레드 제플린이 단 한번도 라이브에서 시도하지 않은 실패작이라고 하더라~~
라이브에서 시도하지 않은 이유는 지미 페이지의 여자친구가 싫어한다는 그런 이유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생각하기에
연주를 망치게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라고 하는데..... 헐~~
존 폴 존스와 지미 페이지는 이 곡에서 존 본햄이 연주하는 것을 도저히 계산에 넣을 수 없었다고 한다.
존 본햄은 이 곡을 네 개의 드럼 스틱으로 연주했다고 한다.(바로 여기에서 곡명이 유래되었다고 하네~~)
기타 리프에 맞추어 만들어진 곡이 아니라 존 본햄의 드럼에 맞추어 만들어졌는데 존 본햄이 드럼을 너무 정신없이 치다보니
기타와 베이스가 못 따라가는 그로 인하여 곡을 망칠까봐 단 한번도 라이브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곡.
ㅋ 결국 어린 시절 조또 모르던 시절 내가 느꼈던 그 좆같은 기분이 결코 치기 어린 초보 락 매냐의 느낌이 아니었다는 거잖아??
야 진짜 이거 이 콤보 하면서 느끼는건데 본능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나이고 나발이고 다 떠나서 곡을 맨 처음 들었을때 가슴에 와닿는 진정한 느낌~~!!!!!! 그것이 중요한 것 같다.
정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다 몰라도 맨 처음 들었을때 가슴에 와닿는 느낌 그것은 정말 솔직한 것인듯 하다.
아 난 이 노래가 좆같아도 음악을 좆도 모르니까 그냥 다른 사람들이 물어보면 좋다고 말해야 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정말 미련한 짓 같다.
흐음 생각해보니 이 노래는 단 한번도 신청 받지 않았던것 같다.
어쩐지 레드 제플린을 그렇게 좋아하는 외국 사람들도 신청을 안 했다는 것이 뭔가 이상하더라니만 - ㅜ
Going to California
3집 앨범을 준비할때 브로니어에서 페이지와 플랜트가 초석을 다져놓았던 곡을 완성시켜 내놓은 것이다.
지미 페이지는 이 곡에서 야드버즈 시절의 몇몇 곡처럼 더블 디 드롭 튜닝(DADGBD)으로 연주하고
존 폴 존스는 베이스 대신 만돌린을 연주하고 존 본햄은 곡에 참여하지 않았다.
쟈니 미첼의 곡을 표절했다는 구설수에 오른 곡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강력한 태클은 없었다.
굉장히 훌륭한 곡이라고 생각한다.
맨 처음 들었을때부터 이 노래는 꽤 들어줄만하다고 생각했다.
역시 본능이 중요하다니까~~
신청도 꽤 많이 받았다.
미국인들이 75% 정도, 한국인들이 25% 정도??
가끔 잭 와일드 버전으로 신청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 곡과 거의 비슷한 아르페지오가 흐르는 판테라의 곡을 신청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았다. 작년엔가 공개되었던 다임백 데럴의 추모 음반에도 담겨있는 그 곡(수어싸이드 노트 파트 원인가??)을 연주했던
이가 잭 와일드였는데 그가 예전에 연주했던 고잉 투 캘리포니아와 오버랩 되어 묘한 기분을 선사해주었다.
When the Levee Breaks
1929년에 미국의 블루스 뮤지션 Memphis Minnie와 그녀의 남편 Kansas Joe McCoy이 발표한 고전을 레드 제플린이 가사를
바꾸어 커버한 것이다. Memphis Minnie라는 사람은 그 시절에 연주를 하면서 노래를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여성 블루스 뮤지션
이었다고 전해진다.
지미 페이지의 멋진 슬라이드 주법과 로버트 플랜트의 몽환적인 창법, 그리고 존 본햄의 다이내믹한 드럼 연주가 7분이라는 긴
시간을 드라마틱하게 이끌어가는 곡으로 외국인 레드 제플린 매니아들로부터 제법 많은 신청을 받았다.
이 노래 같은 경우는 처음에 들었을때부터 별루 싫지 않았다.
약간 지루하고 산만하고 평범하단 느낌을 지울순 없었지만 그래도 어딘가 모르게 차분하고 애수적인 분위기가 흐르는게 불편하진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계속해서 들으면서 지금은 좋아하게 된 곡이고~~
이 곡 같은 경우는 평단의 평가도 아주 좋구먼 ㅋ
역시 어린 시절의 내 귀는 별로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수 있었다.
어린 시절에 이 앨범 맨 처음 들었을때 느낌은 에이면은 그럭저럭 들을만 한데 비면은 좀 지루하다라는 것이었는데 그게 조또
모르는 꼬맹이의 소견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던 의견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이라는 것도 결코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객관성은 확보하고 있지 아니하다만~~
세월이 흐르면서 또다른 매니아층이 형성되면 오늘날 록팬들이 알고 있는 명반들이 쓰레기가 되고 졸작들이 명반으로 둔갑할수도
있는 것이다. 소수의 평론가들이 대다수 매니아들의 생각을 조정하고 있으니까 어떤 앨범에 대한 평가는 시대가 바뀌면서 얼마
든지 변형될수 있는 것이다. 고로 객관성이라는 것은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성적인 분석이나 객관적인 정보 못지 않게 동물적인 본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음악을 들었을때 그 음악이 자신의 가슴을 때리는 그 울림, 그것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단지 자신의 음악적 정보가 미천하다는 이유만으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이후 레드 제플린의 활동을 영광의 그늘 속에 가두어 버릴 정도로 레드 제플린의 인생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이 앨범은
레드 제플린 최고의 명반으로 칭송받으면서 미국에서만 무려 이천삼백만장(23 곱하기 플래티넘), 본토인 영국에서 백팔십만장,
캐나다에서 이백만장, 프랑스에서 육십만장, 독일에서 칠십오만장 등등 전세계적으로 거의 삼천만장 가까이 팔려나갔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숫치의 앨범 판매고란 감히 천국으로 오르는 계단마저 사버릴 듯 하다.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