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2월 레드 제플린은 첫번째 호주와 뉴질랜드 투어를 시작했는데 원래는 싱가포르에서 오프닝 콘서트를 할 예정이었으나,
당시 싱가포르 정부는 70년대 한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뒤쪽 셔츠 깃 아래에 닿는 긴 머리를 한 남자를 탄압하는 법령을 도입했다.
이른바 장발령 - ㅜ 이유는 청소년 비행과 국가 윤리에 심각한 위해를 입힐수 있기 때문이라 한다.
레드 제플린은 싱가포르 비행장에 내리는 것 조차 허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공연을 하기 위하여 머리를 잘라야 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라 여긴 제플린은 그냥 싱가포르를 쌩까고 서호주의 퍼스로 날아가서
그곳에서 투어를 시작했다.
지미 페이지는 67년에 야드버즈 시절 호주에서 공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지금은 또 사정이 달라졌다.
호주는 베트남 전쟁을 비롯한 많은 격랑을 거치면서 타락한 청년 문화로 간주되는 것에 대하여 적의를 품고 있었다.
특히 레드 제플린이 도착한 서호주의 정부 수사관들은 의도적으로 레드 제플린을 곤경에 빠뜨려서 세간의 이목을 끌려고 작정
하고 있던 놈들이었다. 그 놈들은 모두의 그들(레드 제플린)이 장발, 시끄러운 음악, 여러가지 일탈적 행동같은 평판이 널리 퍼져
있는 밴드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정부 수사관들은 레드 제플린이 묵고 있는 호텔을 급습하여 마약 수색을 하고 아무것도
찾지 못하자 오히려 불쾌한 인상을 찡그리며 떠나가는 만행을 저질렀다.
여기에 대하여 로버트 플랜트는 아주 쿨한 멘트를 때렸다.
'ㅋㅋ 만약 저 녀석들이 하루나 이틀 정도 기다렸으면 무언가 찾아냈을지도 모르겠는데~~ ㅋㅋ'
비슷한 시기 퍼스의 지방 라디오 인터뷰에 응한 지미 페이지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짧은 어쿠스틱 사운드를 시도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들이 짐승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껄껄껄'
이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퍼스의 수비아코 오벌 경기장에서 공연을 했을때 8000명의 유료 입장객과 펜스에 구멍을 뚫고 불법적으로 들어온 수백 명의
진상 팬들을 앞에 두고 첫 콘서트를 시작했는데 경기장 밖에도 무려 4000명이나 모두의 그들을 보기 위하여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고 한다. 공연이 진행되는중 100명 정도 되는 팬들이 스테이지에 난입하여 춤을 추기 시작했고 이것을 본 경찰들이 진압
자세를 취하자, 로버트 플랜트가 청중들에게 자제를 요구하는 멘트까지 하는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치달았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공연을 하는 레드 제플린은 호주의 록 팬들로부터 진심 어린 호응을 받았다.
레드 제플린은 퍼스에서 위대한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그곳은 록 투어에 있어 정규 순회 일정에 들지 못해 한물 간 꼰대들이나 아직 설익은 풋내기들이나 공연하는 록 후진국이었
는데 그런 상황에서 세계적인 록스타였던 레드 제플린의 방문은 실로 위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위대한 모두의 그들에게 개지랄을 했단 말이쥐~~ - ㅜ
레드 제플린은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1회 공연을 마치고 시드니로 날아왔다.
그곳에서 오후 콘서트를 열었는데 그들을 보기 위하여 시드니 쇼 그라운드에 대략 26,000 여명의 어마어마한 군중이 모여 들었
다고 한다. 2003년 발매되었던 DVD를 보면 레드 제플린이 Rock and roll을 연주하는 흑백 라이브 영상이 담겨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시드니에서 한 공연이다.
이후 몇 번의 공연을 더 하고 존 본햄과 존 폴 존스는 런던으로 돌아갔고 지미 페이지와 로버트 플랜트는 은밀한 음악적 실험을
위하여 봄베이로 향했다. 지미 페이지는 오래 전부터 동양 음악에 매료되어 있었고 실제로 몇 차례로 인도를 방문했으며 로버트
플랜트와도 함께 인도에 다녀온 적이 있다. 페이지와 플랜트는 봄베이에서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뮤지션 비자이 라가프 라오가
지휘하는 대규모 앙상블과 함께 하는 레코딩 세션을 목적으로 향한 것이다.
지미 페이지는 특히 거리 뮤지션들에게 관심이 많았는데 휴대용 테이프 녹음기를 가지고 봄베이에 있는 거리 뮤지션들의 연주를
녹음했다고 한다. 이 시절 지미 페이지를 매혹시킨 기타리스트가 하나 있는데 직접 페이지의 인터뷰를 통해 들어보자.
'그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6년 동안 시타르를 연주한 사람인데 그것을 기타 연주에 적용했죠.
존 맥러플린과 많이 비슷한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적어도 여덟 시간은 연습한다고 말해 저를 몹시 놀라게 했는데 구라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클래식 기타도 연주했는데 바하 음악이 아니었습니다. 바하랑 비슷했는데 그가 창작한 것이었죠 ㅜ.ㅜ
하지만 그는 그의 음악을 그곳에서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어 무명 뮤지션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미 페이지는 그 기타리스트의 실명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지만 일설에 따르면 그는 당시 봄베이 최고의 그룹인 휴먼 본디지
의 기타리스트였던 수레시 쇼탐이라고 한다. 훗날 수레시는 뉴욕으로 가서 활동했다고 한다.
암튼 이 무명의 천재 기타리스트 수레시가 포함된 봄베이의 뮤지션들과 함께 페이지, 플랜트는 앙상블을 이루어 몇 곡의 제플린
곡들을 녹음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페이지와 플랜트가 제플린 결성 이후 제플린의 곡들을 밴드 멤버가 아닌 다른 뮤지션들에게
최초로 연주를 시켰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 흥미로운 실험의 기록은 공식적인 발매로 이어지진 않았다.
이후 런던으로 돌아온 페이지와 플랜트는 믹 재거 소유의 스타그로보스에 모여 롤링 스톤즈의 모바일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재개
했다. 이곳에서 5집 앨범에 수록될 곡들을 뽑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스타그로브스에서 신곡들의 단면을 뽑아내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음향에 문제가 있음을 파악하고 제플린은 이전 앨범들과 마찬
가지로 헤들리 그레인지와 올림픽 스튜디오, 아일랜드 스튜디오를 돌아다니며 본격적인 녹음을 하기 시작했다.
Slush(The Song Remains The Same의 원래 제목), The Rain Song 등 5집 앨범에 담겨있는 수록곡들과 더불어
Black country woman, Walter's walk, The rover, Houses of the holy를 비롯하여 예전에 작업하다가 보류했던
poor tom, BronYaur, Down by the seaside, Night flight, Boogie with stu등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앨범 같은 경우는 작업 속도가 턱없이 느리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72년 미국 투어에 맞추어 발매했어야 하는 것인데 그들의 뜻대로 작업이 잘 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앨범 재킷에 관련한 문제도 있었는데 이것도 앨범 발매 연기를 초래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결국 신보를 발매하지 못한채 미국 투어를 돌기 시작하는데~~
물론 공연 점유율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좋았지만 당시 매거진들은 롤링 스톤즈에 압도적인 비중을 두고 있어서 레드 제플린은
이것에 대하여 매우 분개했다고 한다. 당시 상황에 대하여 레드 제플린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고 한국의 매거진들은 글을 썼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직접 멤버들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 자존심에 금이 갔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영국 평론가들은 우리에 대한 진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그들은 조금도 우리를 배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의 판단이 흐려지고 아무도 실상을 알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로버트 플랜트-
'이제 막 미국 투어에서 돌아왔지만 우리도 롤링 스톤즈 정도는 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영국 언론에서는 그것에 대한 보도가 전혀 없었죠.
온통 롤링 스톤즈가 어쩌구 저쩌구~~
그것이 우리를 열받게 하고 황당하게 하고 우리의 자존심을 뭉개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받고 있는 관심과 주목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스리랑카 같은데 가서 연주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존 본햄-
미국 투어가 끝난후 레드 제플린은 3개월간의 긴 휴식 시간을 가지고 72년 10월부터 다시 투어를 하기 시작했다.
두번째의 일본 투어를 마치고 스위스의 몽트뢰에 가서 공연을 했다.
연전에 딥 퍼플 콤보때 소개드렸다시피 71년 12월에 어떤 미친 놈이 화염 방사기로 건물을 태워버려 몽트뢰의 그 멋진 카지노
공연장이 소실되어 그 도시에는 레드 제플린이나 딥 퍼플, 프랭크 자파같은 이들을 받아들일 콘서트장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72년 여름 새로운 공연장 파빌리온이 완공되어 결국 레드 제플린은 이곳에서 10월말 공연을 하게 되었다.
계속해서 레드 제플린은 영국 투어를 하게 되었는데 이 투어는 12월 23일 런던의 알렉산드라 팰리스에서 공연으로 막을 내렸다.
73년이 되고 3월이 다 되어서야 레드 제플린의 새로운 앨범 Houses of the holy가 공개되었다.
원래 1월 예정이었던 신보 발매가 지연된 이유는 다름 아닌 재킷의 원본 색채가 프린터로 출력된 것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완성품의 색조와 선명도에 치명적인 손실을 가져올 수 있는 문제였기에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
다. 이 재킷은 유행의 첨단을 걷던 힙노시스 디자인 팀에 의뢰한 첫 작품이었는데 힙노시스는 당시 록계의 굵직한 거물들의 재킷
을 도맡아 디자인하고 있었다. 이 앨범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재킷에 그룹 이름이나 타이틀에 관한 글자는 하나도 기재되지 않
았고, 문자 정보는 음반을 담고 있는 속지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또한 레드 제플린 앨범으로서는 거의 처음으로 모든 수록곡의
가사가 실린 음반이기도 하다.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레드 제플린은 아틀랜틱 레코드사와 결별하고 자신들만의 레이블을 차리게
되었다.
엘피 앞면과 뒷면을 쫘악 벌려서 뒤집어 놓으면 멋있는 그림이 펼쳐진다.
하지만 80년대 한국에 공개된 라이센스 엘피에는 저 아름다운 소녀들의 모습이 처참하게 실종되었다.
The Song Remains The Same
지미 페이지가 야드버즈 시절 연주했던 tinker tailor soldier sailor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곡이다.
이 곡은 당시 드러머 짐 매카티가 썼고 지미 페이지의 바이올린 활을 이용한 연주가 처음으로 녹음된 작품인데~~
리메이크나 커버 수준은 아니고 도입부 코드만 빌려 쓴 것이기에 짐 매카티는 작곡자 명단에서 제외시켰다고 한다.
이 곡은 원래 곡으로 만드려고 했던건 아니고 다음 곡인 더 레인 송의 전주격에 해당하는 연주곡으로 만드려고 했는데
로버트 플랜트의 추천으로 인하여 가사를 덧붙히고 곡으로 완성시켰다고 한다.
이 곡 같은 경우는 더 송 리메인 더 세임 영화에서 로버트 플랜트의 환타지 부분에 사용되는 곡이기도 하다.
극 중 로버트 플랜트가 말타고 고성을 향해 달리는 부분에 배경으로 활용된다.
이 노래에서 로버트 플랜트는 페이지와 함께 했던 봄베이에서 치루었던 실험, 즉 인도 음악과 팬타토닉 스케일의 접목을
성공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멜리스마라 불리우는 인도 음악의 선율과 흡사한 팬타토닉 스케일의 보컬 멜로디를 능란하게
구사하고 있다. 이 곡 같은 경우는 별로 신청이 없었다. 근데 더 송 리메인 더 세임 영화에서 더 레인 송과 콤보로 틀어주면
로버트 플랜트의 여성 팬들이 많이 좋아하는것 같긴 했다.
The Rain Song
전곡과 세구에로 연결되는 접속곡 형태를 띠고 있다. 아름다운 아르페지오 연주로 시작되는 이 곡은 7분이 넘는 상당히 대곡이다.
다소 지루한 면이 없잖아 있긴 해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레드 제플린의 올 타임 페이버릿 킬링 발라드중 하나로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다. 특히 이 곡은 더 송 리메인 더 세임 영화에서 로버트 플랜트의 환타지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많은 사람
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이 대목에서 로버트 플랜트는 흡사 홀리 다이버 뮤직 비디오에서 로니 제임스 디오가 그랬던 것처럼
장검을 들고 나쁜 놈들과 싸우는 정의의 기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이상하게도 홀리 다이버 뮤비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며 껄껄거리는데 반해 더 레인 송 뮤비를 보면서 이죽거리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던것 같다. 로버트 플랜트의 여성 팬들은 아주 좋아했던 것 같고 레드 제플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성들도
그다지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던 명작 뮤직 비디오인듯~~ ㅋㅋ
Over The Hills and Far Away
분명히 다른 곡이긴 하지만 The song remain the same과 The rain song의 주제를 되풀이하며 삶과 사랑에 대하여 성찰하는
내용을 담아내고있다. 개인적으로 이 곡을 매우 좋아한다. 어쿠스틱과 일렉트릭이 교차하며 반복되는 연주 기법은 2집에 담긴
명작 Ramble on을 연상시키는데 이 곡의 멜로디가 조금 더 성숙되고 차분하게 들려 마음에 든다.
이 곡 같은 경우는 뮤비가 없어서 그렇게 신청이 많이 들어온 것 같진 않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앞의 두 곡 보다 오히려 이곡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순수 음악 만으로는 이 곡이 더 많은 리퀘스트를 받았다.
만약 이 곡의 영상이 존재했더라면 앞의 두 곡 보다 필경 더 많은 신청을 받았으리라.....
The Crunge
제임스 브라운을 연상케하는 펑키한 곡으로 존 폴 존스가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가 단 한번의 잼 세션으로 아주 쉽게 만들어졌다고 알고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로버트 플랜트는 이 곡의 가사를 쓰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 곡을 아주 좋아한다.
통상적인 레드 제플린의 분위기를 띤 곡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독특하고 매력적인 분위기가 사뭇 흥미롭다.
funky라는 말이 내포하는 것이 섹스를 할때 성기에서 분비되는 액체의 냄새를 의미한다고 하는데~~
이 곡에서는 그런 음란한 냄새가 아주 많이 난다.
재밌는 것은 그러면서도 은근히 점잖은 분위기가 같이 난다는 것이지~~
간단하게 말하자면 음란하면서도 천박하지는 않다고나 할까??
암튼 아주 많이 들어도 별로 물리지 않는, 언제 들어도 훌륭한 나의 영원한 제플린 페이버릿 넘버중 하나~~!!!!!!!
이 곡 같은 경우는 신청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제프가 몇 번 신청했던것 빼고는 거의 전무했던 걸로 기억된다.
Dancing Days
이 곡 역시 부기 블루스 패턴의 연주를 동양적인 인도적인 정서와 결합시킨 휴전이라 할 수 있겠는데 평론가들에겐 그리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고 팬들로부터도 그리 많은 호감을 얻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노래가 매우 좋다.
90년대 시애틀 밴드, 특히 스톤 템플 파일럿이 생각나는듯한 이 멋지고 여유있는 리프가 너무나 마음에 든다.
이상하게 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자꾸만 머리 속을 아른거리는 리프의 멜로디가 너무나 가슴에 와닿는다.
쫄깃쫄깃 물어주고 살짝살짝 핧아주는 이 리프의 느낌은 너무나 중독적이다.
로버트 플랜트의 보컬도 좋고 다른 이들의 연주도 좋지만 역시 이 곡에서 유난히 출렁거리는 지미 페이지의 리프가 끝내준다.
이 곡은 연전에 스톤 템플 파일럿이 커버하기도 했는데 비단 그래서가 아니라 곡 자체에서 스톤 템플 파일럿이나 펄 잼 같은
미래의 그런지 밴드들을 연상케 하는 쫄깃쫄깃 이상야릇한 멜로디의 리프가 예리하게 번뜩이고 있다.
그래서일까??
일반적인 하드락이나 메탈을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는 거의 냉대 받고 오히려 펄잼이나 스톤 템플 파일럿, 앨리스 인 체인스를
좋아하는 그런지 얼터 도당 패거리들로부터 많은 신청을 받았던 곡이다.
D'yer Mak'er'
하하 레드 제플린 저서를 최근에 내놓으신 키스 새드윅씨가 이 곡에 대하여 엄청난 폄하를 했다.
엉터리 레게에 50년대 리바이벌이라고~~
심지어 존 폴 존스 조차도 이 곡에 대해서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존 본햄은 재즈와 레게 빼고는 모든 음악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재즈를 아주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레게 연주는 정말 싫어했습니다.
레게는 정말 지루하다고 생각했었죠.
우리가 다이어 메이커를 녹음할때 그는 한결같이 똑같은 셔플 비트만 연주하려 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싫어했고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레게의 모든 것은 드럼과 베이스를 아주 엄격하게 연주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가 제대로 연주했다면 결과가 좋았겠죠.
그런데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끔찍하게 들렸던 것입니다.
다이어 메이커는 심사숙고를 통해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도 사실 레게를 굉장히 좋아하지만 그것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죠.
로버트가 그것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압니다.
밴드 내에서도 그 곡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합니다.'
반면 로버트 플랜트는 이 곡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영국에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그 곡 때문에 우리에게 덤태기를 씌우지만 나는 그들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바가 뭔지 모르겠어요
. 우리가 하는 모든 것에 대해 우리가 아주 진지하고 성실하기를 바라는 바이지만 그것은 멋진 곡입니다. 오래 전부터 그런 것을
해보고 싶었어요.'
글쎄~~ 내가 로버트 플랜트 빠돌이여서 그런게 아니라 나는 이 노래가 정말 너무나도 좋다.
어린 시절 너무나도 어렵게만 느껴졌던 레드 제플린의 음악을 쉽게 다가갈수 있도록 만든 노래가 바로 이 곡이다.
일단 듣기 편하고 보컬의 섹슈얼하면서도 귀여운듯한 목소리가 너무나 재미있고 듣기 좋다.
물론 약간 엉성하게 들리는 면이 있긴 하나 그건 흠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에게도 이런 면이 있다는걸 보여주는듯한 여유처럼
느껴지던데~~ ㅋ ~~ 암튼 나는 이 노래가 존나 좋다. 이 노래에서 쏟아져나오는 그 모든 섹슈얼함과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사랑
한다. 한국 사람들 중에서는 이런 나의 생각에 공감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다.
레드 제플린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반대로 싫어하는 사람이든 이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거의 보지 못했다.
반면 외국인들은 거의 이 노래를 좋아했다. 비록 신청은 별로 안 했지만 중간 중간 틀어주면 거품을 물며 주문에 걸린 좀비마냥
춤을 추며 즐거워했다. ㅋ 그때의 기분이란~~ 무슨 동지를 만났다기 보다는 그냥 마법을 걸어 좀비를 부리는 위저드가 된 느낌
이었다 ㅋㅋㅋ ~~ 백인들, 특히 미국인들은 이 노래를 아주 광적으로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No Quarter
이 곡은 존 폴 존스가 1970년 자신의 부친이 임종했을때 느꼈던 어둡고 무거운 기운을 음악적으로 승화시켜 밴드에게 증정한
곡이라는 설이 있는데 확실치는 않다. 상당히 어둡고 심오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곡으로 존 폴 존스의 피아노 연주가 너무나도
아름답게 수놓아졌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지미 페이지의 기타 연주도 만만치 않지만 이 곡의 영웅은 역시 존 폴 존스이다.
실제로 더 송 리메인 더 세임 영화를 보면 이 곡에서 존 폴 존스의 환타지가 영롱하게 펼쳐진다.
알레이스터 크로울리의 마법적인 기법을 동원한 그 영상에서 존 폴 존스는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섹슈얼하고 몽환적이면서도 투명
한 양면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그러한 야누스적인 영상기법은 노 쿼터의 음울한 분위기와 아주 잘 맞아 떨어져 보는 이를 화면
깊숙히 빨아들이고 있다. 이 노래같은 경우는 레드 제플린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팬들이 '사장님이 좋아하시는 레드 제플린
노래 하나 틀어주세요~~'라고 친절하게 주문했을때 내가 선곡했던, 소위 말하는 킬링 추천곡이었다.
물론 이 곡 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레드 제플린의 곡들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주문이 왔을때 나의 손이 가장
먼저 가는 것은 다름 아닌 노 쿼터였다. 영상도 영상이지만 음악이 정말 죽인다.
서정적이면서도 몽환적이고 악마적이면서도 선녀같은 청신한 기분이 해맑게 감싸오는 노 쿼터는 정말 훌륭한 곡이라고 생각한다.
The Ocean
이 곡 같은 경우는 내가 거의 유일하게 이 앨범에서 좋아하지 않는 음악이다.
뭐랄까?? 리프가 약간 바보스럽다고나 할까??
로버트 플랜트의 두 왑 스타일의 코러스(나아 나 나나나 나나 나아 나아아아 나아 나)는 멋진 것 같은데~~
그 외 보컬 멜로디 라든가 기타 리프는 별로 멋있게 들리지 않는다.
후반부에 펼쳐지는 급반전 기타 멜로디도 약간 생경한것 같고~~
하지만 수많은 제플린 매니아들이 광분하고 경배하는 클래식 넘버라는 것은 부인할수 없다.
아주 많은 신청을 받은 곡으로 기억된다.
특히 한국에서 영어 강사를 하는 원어민 강사들이 이 노래를 아주 많이 신청했다.
이 앨범 역시 상업적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앨범 차트 넘버 원에 올랐으며 미국에서는 천백만장 이상 팔려나갔다.
전작에 비하면 많이 안 팔린 것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실로 굉장한 판매고라고 본다.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