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二十九 章 紫府의 罪人
이른 새벽,
인마(人馬)가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하남(河南)에서 호북성(湖北
省)으로 통하는 관도 위,
죽립으로 얼굴을 가린 흑의인 하나가 새벽 안개를 뚫고 섬전 같이 치달리
고 있었다.
"불회사곡(不回死谷)은 대홍산(大洪山)에 있다니..... 한시빨리 대홍산으
로 가 칠파영부를 회수하고 광서(廣西) 십만대산(十萬大山)으로 가자. 그
다음 안탕으로가 절대혈군자를 죽이자. 그것으로 나의 강호에서 할 일은
모두 다 마치게 될 것이다."
흑의인의 중얼거리는 소리는 아주 차가왔다.
간간이 죽립을 뚫고 나오는 눈빛도 매우 차다.
휘- 익-
흑의인의 몸이 전진하는 속도는 밤하늘을 가르는 유성(流星)보다도 훨씬
빨랐다.
얼마를 갔을까?
"으- 음-"
"크으으- 그..... 그 계집이 바로 그 독랄한 계집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니....."
길가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와 흑의인의 시선을 끌었다.
관도 옆쪽,
이슬 묻은 풀섶 위를 나뒹구는 다섯 명의 강호인이 있었다.
다섯 중 셋은 머리통이 박살나 죽은 상태였고, 나머지 둘은 두 다리가 박
살나 피를 시냇물처럼 흘리며 죽어가는 중이었다.
"흐으- 윽-"
"이..... 이렇게 죽어가는 것이 칼끝에 목숨을 걸고 사는 강호인의 삶이란
말인가? 동이 트면 사라지는 새벽이슬 같은 목숨이 강호인의 목숨이란 말
인가?"
두 사람은 피구덩이 속을 제멋대로 뒹구는 중이었다.
흑의인은 그들의 처참한 모습에 연민지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어 얼른 다
가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파팍-
둔팍한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사라졌다.
"누..... 누가 이런 신통한 점혈술을?"
"고..... 고통이 씻은 듯이 사라지다니....."
두 사람은 모두 표사 차림이었다.
허긴, 표사가 아니고는 이른 새벽 장도에 오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흑의인은 그들을 바라보다가 탄식하며 말했다.
"어쩌다가 이리 크게 다쳤오?"
"혈..... 혈여마(血女魔)에게 당했오. 그..... 그 어린 계집이 바로 혈여
마라는 것을 우리 호북오걸(湖北五傑)이 어찌 알았겠오? 그..... 그 계집
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시비를 걸었다가 그만 이렇게 되고 만 것이오."
오른쪽에 뉘어있는 자의 말이었다.
(혈여마?)
흑의인에게 생소한 이름인 듯, 흑의인은 고개를 약간 갸웃거렸다.
다 죽게된 사람은 흑의인이 혈여마라는 이름을 알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다
는 듯, 비웃는 눈빛을 하다가는 눈을 스르르 감았다.
두 사람은 약간의 시간을 두고 숨을 거뒀다.
그들은 대라신선(大羅神仙)이라도 구하지 못할 정도로 다쳐, 흑의인으로서
는 그들이 죽기 전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일을 하
지 못했던 것이다.
흑의인은 다섯 사람의 시신이 풀섶에 뒹구는 것이 안스러운 듯 장력으로
큰 구덩이 하나를 파 다섯 사람의 시신을 잘 묻어주었다.
열 사람이 한 시진 내내 땀흘려 일해야 마칠 수 있는 일이었으나, 흑의인
은 찰나지간에 무덤 세우는 일을 마칠 수 있었다.
"혈여마라는 이름으로 보아 여인일텐데..... 흠- 수단이 아주 모질군."
흑의인은 바로 사공옥이었다.
그는 혈여마가 자신 이후 가장 지독한 살성(殺星)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사공옥은 잠시 서 있다가 가던 길을 계속했다.
밥 한끼 먹을 시간이 지난 후,
사공옥은 꽤 큰 시진(市鎭)에 당도할 수 있었다.
그는 이미 하남성을 벗어난 후였다.
그곳은 당현진(唐縣鎭)이라는 제법 큰 시진이었다.
근처 백리 안의 재화가 모두 당현진 안으로 모이고 있어 당현진은 항상 시
끌벅쩍했다.
사공옥은 허기를 메울 작정을 하고 주위를 살피며 걷다가 이층 주루를 찾
을 수 있었다.
주기(酒旗)가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이 허기를 자극했다.
"저곳에서 허기를 메우고 길을 계속해야겠군."
사공옥은 주머니 안의 은자(銀子)를 헤아려 본후, 죽립을 앞으로 조금 기
울이며 주루 문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주루 안은 아주 한산했다.
구석진 자리를 차지하고 술을 마시고 있는 무부(武夫)들의 뒷모습이 보일
뿐, 아래층은 아주 한산했다.
사공옥은 대뜸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점원 아이에게 홍소육(紅燒
肉)과 죽엽청(竹葉靑), 그리고 포자(抱子) 한 접시를 주문했다.
그때, 아주 작은 목소리가 그의 고막을 때렸다.
"이제 사흘이 남았을 뿐이니 더 조심해야 한다!"
젊은이의 목소리였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세 사람 중 하나가 동료들에게 말하
는 소리였다.
"방주(幇主)! 명심하겠읍니다."
다른 두 사람은 황의인의 하수인 듯 말소리가 아주 공손했다.
"그간 모두 수고가 많았다. 이후 사흘을 무사히 보내 일을 잘 마무리 짓게
된다면 너희 모두를 크게 치하할 작정이다."
"감..... 감사합니다. 방주!"
"속하들은 신명을 바쳐 충성할 뿐입니다."
두 사람이 함박 웃음을 질 때였다.
휙-
주루 문이 아니라 창문을 통해 안으로 날아드는 홍의노인 하나가 있었다.
그는 무엇인가에 크게 놀란 듯 창백한 혈색을 하고 있었다.
"검노(劍老)! 불길한 일이라도 생겼읍니까?"
황의장한이 급히 몸을 일으켰다.
"속하들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 생겼읍니다. 어서 가 보셔야 겠읍니
다."
홍의노인은 황의장한을 찾아온 사람이었다.
그는 황의장한을 향해 장읍을 취한 후 무엇인가를 전음으로 말했다.
황의장한은 사공옥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있는데, 아주 잘생긴 용모였다.
다만,
코가 너무 우뚝해 오만한 기세가 너무 심했고, 눈썹이 위로 뻗어나가 날카
로움이 중문을 벗어나 대하는데 호감을 느끼기 힘든 용모였다.
"으- 음."
그는 홍의노인이 전음으로 하는 말을 다 들은 후, 벌레씹은 표정이 되어
신음소리를 냈다.
홍의노인은 송구스럽다는 표정을 하며 말을 이었다.
"속하와 금노(琴老), 도노(刀老), 편노(鞭老)의 힘으로는 도저히 광기(狂
氣)를 억제할 수 없었읍니다. 자칫하다가는 그분의 종적을 잃을까 우려스
럽습니다."
"광기는 백일(百日)간 계속되는 성질의 것이고..... 오늘이 구십칠일째요.
사흘만 넘긴다면..... 공주는 약기운을 잃고 잠에 빠질 것이오. 지금 처해
진 일이 심각하기는 하나..... 무사히 해결될 것이오. 어서 가 봅시다."
황의장한은 엄숙히 말한 다음 소매를 슬쩍 흔들었다.
"예."
홍의노인은 얼른 허리 숙여 인사한 후, 창문을 향해 치솟아 오르려했다.
헌데, 이게 웬 일인가?
두 다리가 돌같이 굳어 진기를 일으키는데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이..... 이게 웬 귀신의 조화란 말인가!"
홍의노인은 벌레 씹은 사람같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몸을 움찔거렸다.
그러나, 그의 몸은 요지부동이었다.
그 모습은 거미줄에 걸려 거미줄을 뚫고 도망치려 발버둥치는 하루살이의
모습을 방불케 했다.
"검노! 무슨 일이오?"
황의장한이 눈쌀을 찌푸렸다.
그때,
"강호에 나와 그 유명한 자부고수(紫府高手)들을 못봐 이상하다 여겼더
니..... 하하, 해괴한 짓들을 하느라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었군?"
사공옥이 웃으면서 주루 바닥에서 발을 떼지 못하는 홍의노인 곁으로 다가
갔다.
홍의노인이 발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사공옥이 잠력을 발휘했기 때문이었
다.
홍의노인은 발을 떼어내기 위해 끙끙거리다가 사공옥의 웃는 소리와 함께
위로 날아올라 천정에 머리를 부딪쳤다.
쿵!
"어이쿠!"
홍의노인은 주루 천정에 큰 흠을 만든 다음, 허공에서 신형을 바로 잡으며
황의장한 곁으로 떨어져 내렸다.
먼지를 뒤집어 쓴 모습은 가히 가관이었다.
"네..... 네놈의 장난이었단 말이냐?"
홍의노인이 삿대질을 할때, 황의장한이 눈짓으로 그의 말문을 막으며 사공
옥을 향해 찬웃음을 흘렸다.
"흐흐..... 자부를 알아보다니..... 보통이 아니군. 혹- 빙궁(氷宮)의 떨
거지는 아니냐? 얼마간 작태를 모르는 척 해두었더니..... 흐흐, 속사정을
모르고 감히 대가리를 내미는 것이냐?"
"천만에-"
사공옥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진흙 속을 걷다가 흑진주 한 알을 주었다한들 이 보다 기쁘지는 않을 것이
다.
(신분이 높은 자를 만나게 되었으니..... 후후, 혈군자가 지금 어디서 무
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겠군.)
사공옥은 쾌재를 부르며 턱끝으로 홍의노인을 가리켰다.
"노괴는 자부칠노(紫府七老)에 끼이는 사람인데..... 이 자의 신분이 무엇
이기에 하인배 행세를 하느냐? 이 자가 자부오공자(紫府五公子) 중 하나에
끼이는 자는 아니냐?"
"으- 으-"
검노는 너무 놀라 땀을 쭈욱 뺐다.
(노부의 얼굴을 알아보는 자가 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검노는 아래턱을 떨며 황의장한의 눈치를 살폈다.
황의장한은 입매무시를 일그러뜨리다가, 사공옥을 향해 번갯불을 능가하는
신광을 폭사해냈다.
가히 수백 년 공력이 실린 눈빛이었다.
"굳이 내 정체를 알고 싶은가? 그것이 곧 죽음인데도?"
"후후..... 네가 절대혈군자라도 놀랄 사람은 아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말
해봐라!"
"으- 음! 감히 사부님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다니....."
"핫핫핫! 절대혈군자의 제자란 말인가? 그렇다면 분명 오공자! 아니 삼공
자 중 한사람 중 한 사람이겠군?"
"나의 일초를 막고 살 수 있다면 나의 이름을 알게 될 것이다."
황의장한은 언성을 높이다가 손가락 하나를 빳빳이 폈다.
그의 손가락은 숯불에 달구어진 화젓가락 같이 붉게 변한 후였다.
사공옥은 손가락이 쳐들리는 순간, 몸이 빙굴에 빠지는 듯한 착각을 느꼈
다.
(보통 놈이 아니군. 자부에서도 막중한 지위를 맡고 있는 자일 것이다.)
사공옥은 감탄하다가 입술을 열었다.
"혈혼지력(血魂指力)을 쓰려 하는군?"
"으- 음- 모르는 것이 없는 놈이군? 허나 혈혼지력의 위력에 대해서는 아
는 것이 없을 것이다."
황의장한은 입을 꾹 다물며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순간,
꽈르르르- 릉-
벼락치는 소리와 함께 근처가 회오리 바람에 휘감겼다.
혼신공력을 다해 장력을 일으킨다 해도 이 정도 위력은 되지 않을 것이다.
강풍(강風)이 이는 가운데 사공옥의 심장을 향해 폭사되어 오는 한 줄기
막강한 지력이 있었다.
강풍은 눈과 귀를 흐리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생명을 노리는 것은 강풍에 감춰져 다가드는 날카로운 지공이었다.
사공옥은 상대의 초식에 놀라다가 한 주먹을 가볍게 쳐냈다.
부드러운 바람이 일었다.
지력을 쳐낸 황의장한의 입가에 비웃음이 떠올랐고, 지력이 사공옥의 심장
에 큰 구멍을 낼듯 보였다.
그러나,
펑-
주루가 무너져 버릴 듯한 소란이 이는 가운데 대경실색하는 사람은 사공옥
이 아니라 황의장한이었다.
"으으- 그..... 그게 무슨 수법이냐?"
황의장한은 두 걸음 뒤로 물러난 상태였다.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 사공옥과는 대조가 되는 휘청이는 모습이었다.
"허허육합(虛虛六合)이라는 것이다!"
"허..... 허허육합이라고? 그..... 그럴 리가..... 허허육합장은 이런 신
묘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시시한 전진수법(全眞手法)이다."
"그것은 네가 잘못 알고있는 것이다. 칠정의 무공은 하나하나 신기이다.
칠정의 무공중 어느 한 가지만 익히게 되면 만마(萬魔)를 굴복시킬 수 있
다."
"칠..... 칠정과 어떤 사이냐?"
"칠정의 공동전인이다!"
"뭐..... 뭐라고?"
황의장한의 입이 하마 입 같이 딱 벌어졌다.
"왜 그리 놀라느냐?"
"으으- 믿.....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칠정이 전성기였을 때에도 지금 너
와같은 수법은 시전하지 못했다. 너는..... 칠정의 전인일 수 없다."
"칠정에 대해 잘 아는군?"
"그..... 그렇다."
"그럼 이제 명호를 밝혀보실까?"
사공옥은 기도에 있어 황의장한을 압도했다.
화의장한과 함께 술로 목을 축이던 두 사람과 검노는 황의장한이 위축당하
고 있다는데 아연실색한 상태였다.
황의장한은 그들에게 있어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이제껏 황의장한과 겨루고 살아남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그렇기에 황의
장한의 얼굴이 강호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름모를 무부가 황의장한을 공기돌 다루듯 하고 있으니, 어찌 놀
라운 일이 아니겠는가!
"밝힐 수 없다. 조금 전 일지는 나의 삼성 공력에 불과했다. 네놈의 진정
한 무공을 모르기에 삼성공력만을 사용했던 것이다. 네가 나의 십성공력을
받아내고도 살아있다면, 나의 명호를 알려주겠다."
"좋다. 그럼 혼신공력을 다해 일초를 시전해라."
"흐흐..... 가루가 되는 맛을 알게 될 것이다."
황의장한은 사공옥이 자신의 말에 순순히 응하자, 기뻐하며 손을 천천히
쳐들었다.
(보통 놈이 아니다. 천지무황의 진전을 얻지 못했더라면..... 이놈과 싸워
여유있는 싸움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설영선자만한 고수다.)
사공옥은 황의장한이 최소한 삼갑자(三甲子) 내공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는 황의장한이 진기를 끌어 올리며 몸 주위를 붉은 기류로 뒤덮는 것을
보며, 무상금강부동선공을 끌어올렸다.
그의 눈빛은 그와 함께 아주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뀌었다.
바로 그 순간,
"야- 앗!"
황의장한이 눈을 크게 뜨며 쌍장을 활짝 피자, 두 줄기 핏빛 기류가 흘러
나와 한데 합하며 바위깨지는 소리를 냈다.
꽈르르르- 릉-
핏물이 주루 안에 가득 차는 듯,
모든 것이 핏빛 기운에 잠겨 보이지 않게되며, 다만 우뢰소리 같은 파공성
만이 남았다.
꽈르르- 릉-
펑!
벼락치는 소리와 함께 주루의 사방벽이 허물어지며, 천정이 태풍에 쓸린
듯 멀리 날아갔다.
"으하하..... 이제 가루가 되었겠지?"
황의장한은 앙천대소를 터뜨리며 사공옥쪽을 바라봤다.
바닥이 으스러지며 피어오른 나무가루가 가라앉으며 흑의인영 하나가 나타
났다.
사공옥이 팔짱을 낀채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제법이군."
사공옥이 낭랑히 말하자, 황의장한의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 이럴 수가..... 이럴 수가....."
그는 눈을 의심하는 듯 눈을 껌뻑껌뻑 했다.
"네 사부는 천하제일인이 아니다. 그렇기에 너는 나를 죽일만한 절기를 갖
고 있지 못한 것이다. 너무 의아해 하지는 마라!"
"누..... 누구냐?"
"쯧쯧! 말해야 하 사람은 내가 아니고 네놈이다."
"으으- 강호에 너같은 자가 있을 줄이야- 빙궁의 주인이라 해도..... 너의
삼초 상대는 되지 않을 것이다."
황의장한은 혀를 내두르다가 손을 쳐들었다.
"왜 그러느냐? 다시 겨루고 싶으냐? 그래야 바른말을 하겠느냐?"
사공옥이 차게 말하자,
"나..... 나는 네놈과 싸우는 일보다 급한 일이 있는 사람이다. 일단 그
일을 처리한 다음..... 너와의 일을 마무리 짓겠다. 그러니..... 나와 함
께 그것으로 가자."
"어디로 가잔 말이냐?"
"여기서 네놈과 싸워 죽는다면 나 혼자 죽는 것이 아니고..... 그 결과는
아주 끔찍한 것이다. 나는 한 가지 일을 마친 다음에야 홀가분해질 수 있
다."
황의장한은 답답한 표정으로 말한 다음 위로 날아올랐다.
스슥-
그의 신법은 바로 혈성과천(血星過天)이라는 자부의 비전신법이었다.
사공옥은 그가 십 장 밖으로 갈 때 어기표풍신법(馭氣飄風身法)을 써서 그
뒤를 따라갔다.
그는 단 오성 공력을 쓰고도 십이성 혼신공력으로 치달리는 황의장한을 여
유있게 뒤쫓을 수 있었다.
황의장한은 이를 질끈질끈 악물고 있었다.
(그 늙은이가 진전(眞傳)을 제대로 전수했다면 이 놈을 쉽게 죽였을 텐
데..... 절기가 뭐 그리 아깝다고 반밖에 전수하지 않아 이런 수모를 겪게
하느냐? 허나, 흐흐- 나도 만만한 사람은 아니다. 지금은 네뜻대로 사
나..... 언제고 모든 것을 장악할 것이다. 네가 나를 약자로 키웠기에 하
는 수 없이 네 손녀딸을 이용해 뜻밖의 강적을 막을 수밖에 없겠구나. 흐
흐흐.....)
황의인은 아주 음흉한 자였다.
그는 사공옥이 여유있게 자신을 따라오는 것을 보고 사공옥의 초절한 신법
에 경탄하는 동시에, 머리를 치밀히 굴려 잠깐 사이 몇 가지 계략을 꾸민
눈치였다.
그의 신법은 사공옥에 비해 뒤지는 것이기는 하나, 강호의 그 누구도 따르
지 못할 정도로 탁월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오십 리를 간단히 지나칠 수 있었다.
"어디로 가는 것이냐?"
사공옥이 오랫만에 입을 열자,
"나는 지금 죄인(罪人)이다. 죄를 씻기위해 한 가지 일을 해야 하는 처지
이다."
"죄인이라고?"
"흐흐..... 입을 함부로 놀려 큰일을 망쳐 백의종군하게 된 불쌍한 처지이
다."
"모를 놈이군."
"천하에서 가장 괴상한 늙은이를 사부로 모신 죄로 네놈 따위로는 상상치
못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절대혈군자가 그렇게 이상한 늙은이이냐?"
"....."
황의장한은 아무 대답도 안했다.
(기괴한 놈이군.)
사공옥은 황의장한을 다시 한번 자세히 살피며,
"만약- 네가 폭풍공자(暴風公子)라면..... 너는..... 오늘로 최후를 맞이
할 것이다."
"폭풍공자에게 원한이 많은 놈이군. 폭풍방이 너의 일가를 몰살시키기라도
했느냐?"
"내가 칠정의 전인이라는 것을 벌써 잊었느냐?"
"흐흐- 폭풍공자가 칠정을 죽인 장본인이라는 것을 알고있군?"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
"폭풍공자가 칠정을 죽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부지
존이 시켜서 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색혈공자가 칠파영부를 훔친 일도 그
가 시켜서 한 일이고..... 흐흐 사곡공자(死谷公子)가 지저분한 불회사곡
에 틀어박혀 칠파영부를 찾으러 오는 자들을 모조리 쳐죽이고 있는 이유도
그의 명령이 있기 때문이다."
"폭풍공자는 지금 어디 있느냐?"
"그는..... 한 가지 일을 잘못 처리해 지금 곤욕을 치루는 중이다."
"일을 잘못 처리하다니?"
"입을 잘못 놀린 탓이지. 아니- 흐흐, 계집의 마음을 알지 못한 것이 죄라
면 죄일 것이다."
황의장한의 말소리는 점점 알쏭달쏭해졌다.
두 사람은 아주 깊은 산속을 달리게 되었다.
황의장한은 신법을 더욱 빠르게 했다.
그러나, 사공옥은 여유있게 뒤따를 수 있었고, 이마 위 땀 한방울도 흘리
지 않았다.
"너는 정말 대단한 고수다. 칠정이 너를 키웠다고는 믿을 수 없다. 너는
분명 칠정보다 더 뛰어난 사람의 전인일 것이다."
황의장한이 울창한 숲가를 지나치며 묻는 말이었다.
"부정하지는 않겠다."
"어떤 기인의 전인이냐?"
"네놈을 죽이기 전 말해 주겠다."
"흐흐- 나는 너보다 빨리 죽지는 않을 작정이다."
"자신만만하군."
"네놈만은 못하지."
황의장한은 부러운 눈치를 하다가,
"정말 빙궁과는 무관하냐?"
하며 속도를 약간 늦췄다.
"그것이 무슨 상관이냐?"
"흐흐..... 만약 빙궁과 관련이 있다면..... 흐흐, 지금 나를 뒤쫓는 것보
다 더 급한 일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이다."
"더 급한 일이라니?"
"흐흐..... 비밀을 말해 줄테니..... 반시진간 나와 싸우지 않겠다는 약속
을 해라."
"궁색해 졌군."
"아주 중대한 비밀이다. 자부지존과 설영선자 만이 아는 중대한 비밀이다.
강호정세에 영향을 미치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네가 천하의 패권을 노리
는 자라면..... 꼭 알아야 할 비밀이다. 어떠냐? 거래하지 않겠느냐?"
황의장한은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사공옥이 바로 곁에 있다는 것이 지옥 안에 있는 것같은 공포심을 안겨주
는 것이었다.
그것은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감정이기도 했다.
"반시진 안에 네가 내 손아귀를 도망칠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은데? 흠-
네놈이 폭풍공자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네 조건에 수락하겠다."
"그렇다. 나는 폭풍공자 무오(武五)다. 과거에는 폭풍방주였으나, 백일 전
자부죄인(紫府罪人)이 되어 주유천하(週遊天下)하는 처지이다."
"역..... 역시 그렇군."
사공옥의 눈에서 살기가 폭사되자,
"다..... 다 죽어가는 칠정을 죽인 일은 그리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
리고..... 나의 이름을 밝히기 위해 한 일도 아니다. 자부지존이 시켜서
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폭풍공자는 땀을 흘리며 얼굴빛을 시꺼멓게 했다.
"좋아. 반시진 간 너를 살려 주겠다. 그러니..... 비밀을 말해봐라!"
"비..... 비밀은 다른 것이 아니라..... 빙..... 빙모(氷母)와 육선자(六
仙子), 그리고 이십사빙비(二十四氷婢)가 자부에 잡혀 있다는 것이다."
"뭣?"
"설..... 설영선자가 너무 강해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언제?"
"오래된 일은 아니다."
"왜 빙모를 잡았느냐?"
"뻔한 일이지. 설영선자를 제압하기 위함이지."
"어떻게 할 작정이냐?"
"자부지존은..... 설영선자가 세력을 일으키는 것을 수수방관하던 입장이
었다. 이유는..... 설영선자가 세력을 일으킨 후, 설영선자를 제거해 그
세력을 고스란히 인계 받겠다는 것이 자부지존의 속셈이었다."
"....."
"원래 삼년 걸릴 예정이었는데..... 설영선자는 일취월장해 벌써 자부를
위협할 세력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를 제거하는 일이 앞당겨 시
행된 것이다. 자부지존은 부하들을 설산빙녀궁으로 보내 설진(雪陣) 안에
숨어 설영선자가 자부지존을 죽이고 돌아올 날 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던 빙
모이하 빙녀궁 사람들을 모두 다 사로잡아 자부로 압송하게 했다."
"대단하군."
"흐흐..... 빙모는 설진을 태산같이 믿고 있다가 꼼짝 못하고 잡히게 된
것이다. 빙모는 빙백마가신공을 설영선자 못지 않게 익히고 있으나 봉무인
의 금제에 당한지라 싸우지도 못하고 잡히고만 것이다."
폭풍공자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부지존은 빙모를 잡은 직후, 빙궁주에게 가는 서한을 만들었다. 그 내
용은..... 빙모를 구하고 싶으면 단신으로 자부로 오라는 것이었다."
"뭐..... 뭐라고?"
"흐흐- 설영선자는 독안에 든 쥐꼴이다. 자부에 대항할 만한 세력을 키웠
으나..... 모두 허사로 변할 것이다. 그녀는 빙궁주령(氷宮主令)을 뺏기고
봉무인을 손바닥에 적고 사라져 갈 것이다. 흐흐..... 자부지존은 정말 뛰
어난 사람이다. 그는 적을 간단히 죽이는 사람이 아니라 적을 키운 다음
꺾어 적이 이룩한 것을 고스란히 뺏아내는 사람이다. 설영선자는 수년 간
불철주야 노력한 모든 것을 원수 자부지존에게 빼앗기고 무림을 떠나야 할
것이다. 이제 정사(正邪)가 모두 자부에 굴복당할 것이다."
"언..... 언제 싸우기로 되었느냐?"
"닷새 후다. 장소는..... 안탕산 요지(要池)다."
"으- 음- 네놈의 모가지 보다는 값나가는 비밀이군. 헌데..... 그 비밀을
왜 내게 말하는 것이냐?"
"살고 싶어서일 뿐이다."
"왜 죄인이 되었는지는 말해줄 수 없느냐?"
"흐흐..... 나는 지존을 위해 청춘을 바쳤다. 폭풍방을 마도(魔道)에서 가
장 강한 세력으로 키우기 위해 십삼 년을 바쳤다. 나는..... 공을 이루면
지존이 나를 손주사위로 맞이해줄 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 그것은 오산이었다."
"오산?"
"흐흐..... 자부지존은 남을 믿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다섯 제자를
타인(他人)으로 취급하고 있다. 제자 중 하나가 자신을 해하고 자부를 삼
킬까 걱정한 나머지, 자부의 진짜 절기는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지 않을 정
도다. 그리고..... 흐흐, 꼬투리 될 일이 생기면 제자를 가차없이 제거한
다. 색혈공자도 그렇게 당했고..... 유혼공자도 그렇게 당했다. 그는 명분
(名分)을 잃지않는 방법으로 실리(實利)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폭풍공자 너는 가장 뛰어난 자인데..... 대체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이냐?"
"한정마객(恨情魔客) 때문이다. 그..... 그 놈이 죽어서까지 나를 괴롭히
는 것이다. 으득!"
"한..... 한정마객!"
사공옥이 놀랄 때,
"다왔군!"
폭풍공자가 깎아지른 벼랑 끝에 이르러 몸을 세웠다.
검은 구름이 아래쪽에서 뭉게뭉게 일어나고 있었다.
냉풍(冷風)이 옷자락을 여미게하는 아주 음산한 장소였다.
"저 아래를 봐라!"
폭풍공자가 가리키는 곳은 분지(盆地)를 이루고 있는 골짜기의 한복판이었
다.
두 사람 모두 흑운(黑雲)을 뚫고 분지 바닥을 살필만한 안력을 지니고 있
어 분지 가운데가 환히 보이는 중이었다.
거대한 장원(莊園) 하나가 보이는데, 군데군데 무너진 흔적이 있고, 안쪽
에서 소란이 일어나는 중이었다.
"저 곳은..... 환우비마장(환宇飛魔莊)이라 불리는 장원이다."
"오..... 오대기문 중 한 곳이군?"
"그렇다. 자부 고수 칠백 이십 명이 머물러 있는 곳이지."
"왜 여기 왔느냐?"
"지금 저곳은 혈풍(血風)에 잠겨 있다. 내가 온 이유는..... 혈풍을 진정
시키기 위함이다. 물론 나로서도 어렵고 힘든 일이다."
폭풍공자의 말이 거기에 이를 때였다.
휙-
두 사람을 향해 나는 듯 달려드는 자의청년 하나가 있었다.
나이는 설흔 두 서넛 정도,
옷자락이 피로 축축해진 상태이고, 얼굴이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진 형편이
었다.
"사..... 사제(師弟)! 왜 이리 늦게 오는가!"
그는 폭풍공자를 보며 퉁명스러운 눈빛을 던졌다.
"어찌 되고 있읍니까?"
폭풍공자가 포권을 취했다.
"말도 말게- 정말 놀라운 일이네. 소문으로 듣기는 했으나..... 내공이 전
에 비해 이십 배 강해졌다니 정말 놀랄 일이네."
자의청년은 한숨쉬며 소맷자락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사제가 아니면 누구도 그 아이를 막지 못할 것이네. 휴- 그 아이가 왜 이
곳으로 왔는지 모를 일이네."
"놀라실 것 없읍니다. 사실..... 제가 방향을 이리로 잡았기에 환우비마장
으로 들어가 혈풍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뭐- 엇?"
"하하- 자부지존이 가르쳐준 방법 그대로 자부에 복수(復讐)하는 것이지
요. 자부의 칼로 자부를 치니 정말로 통쾌한 일이 아닙니까?"
"무..... 무오야! 네가 미친 것이 아니냐?"
"자부지존은 제가 영원히 자부지존을 두려워하며 그를 배반하지 못하리라
여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폭풍공자는 아주 여유있는 표정이었다.
자의청년은 기가 막힌 듯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