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거꾸로 식이요법??? ***
후쿠오카에 도착하여 점심과 저녁을 거푸 양질의 고기 위주로 섭취하였다. 금요일 저녁도 피터팬-김윤오님과 도마-김동욱님 등과 함께 고기 로딩 했었는데… 특별히 식이요법을 하는 건 아니지만 어찌 거꾸로 가는 듯 하여 좀 불안하다.
주최측에서 제공해 주던 저녁 만찬은 참가자가 많아지며 수용 불가능한 규모로 커져서인지 올해부턴 만찬 행사가 사라져서 해결 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가 된 듯 하다. 자슥들! 그러면서 참가비는 왜 올려 받지? 그것도 무려 67%씩이나...
중간 중간 짬을 내어 쇼핑과 관광을 하고 밤에 카로노우론에 가서 마루텐우동을 먹을 계획이었지만 마리노아 후쿠오카 시티로 갔다. 스카이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티켓이 있어서...계획의 급 변경. ㅋㅋ 인생사가 뭐 계획대로만 된다면야 얼마나 좋겠는가? 하하~ 그래도 내가 꼭 보고자 했던 아크로스후쿠오카 건물을 다시 볼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항구의 불빛과 야마하 요트 전시장의 요트들과 해안선이 어우러진 후쿠오카의 야경을 만끽하고 숙소로 돌아와 다른 선수들과 이바구를 하다가 연속으로 로딩한 고기가 어떤 역할을 할 지?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늦은 잠을 청한다.
*** 결전의 일요일 ***
어제, 그토록 세차게 불어대던 바람은 아침이 되니 다소 잠잠해 진 듯 하다. 공항의 안내데스크에서 물어 본 바에 의하면 오늘 날씨는 구름이 끼고 온도는 11도 정도라고 하였으니 달리기에는 좋을 텐데 참가자들 모두가 바람을 걱정한다.
다행히 아침식사는 고기가 아니다. 모두들 ‘설마 아침까지?~’ 하는 분위기였는데...ㅎㅎ 밥과 된장국,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간 김으로 간단히 해결한다. 늦게 간 죄(?)로 김치는 다 떨어지고...
대략의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대회장으로 가는데 어느새 바람이 좀더 강해졌고 그로 인해 약간 쌀쌀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햇볕이 나면 금새 따뜻해지고 바람이 매섭지는 않기에 복장은 모두 싱글렛에 숏으로 결정하고 A 그룹 선수들이 출발하는 운동장으로 향한다.
혹, 케베데 선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한참을 기다리다 포기하고 돌아가려 하기 직전에 드디어 전년도 우승자인 케베데가 나타났다. 조깅하는 옆에 살짝 다가가 사진 한 장 찍고 다시 B그룹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중에 4년 참가하는 동안 3번째 만나는 나와 생일이 같은 일본인(고노 유키오)을 만나 서로 격려하고 동료들과 함께 간단한 웜업을 마치고 건투를 다짐하며 각자 정해진 출발지점에 위치하여 참가 확인을 한다.
출발 직전 카운트다운-국내 대회와는 사뭇 다른-에 맞추어 잠시 동안의 정적속에서의 팽팽한 긴장감은 출발 총성과 함께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가는 러너들의 발걸음에 파열되어 흩어지고 드디어 105리의 고독한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강호의 바로 옆 키작은 선수가 대회 2연패를 작성한 체가예 케베데 선수>
*** 후쿠오카의 식지 않는 마라톤 열기 ***
18:24 / 18:19 / 18:07 / 18:17 / 18:15 / 18:28 / 18:12 / 18:33 / 8:21 18:24 / 36:43 / 54:51/ 1:13:08/1:31:23/1:49:51/2:08:03/2:26:36/2:34:57 (공식기록 2:34:59)
언제나 그러했듯이 올해에도 역시 수많은 러너들이 정확히 지켜지는 관문 제한시간 내에 해당 지점을 통과하기 위한 수단으로 초반에 시간을 벌어두기 위함인지 무리해서라도 달려 나가는 것 같다.
역시나 공원을 채 한 바퀴도 돌기 전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추월해 간다. 그 무리 속에 합류하여 나도 모험을 해 보고 싶지만 지금까지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득보다는 후반에 잃는 것이 너무나 많기에 휩쓸리지 않으려 최대한 자제하면서 내가 달성해야 할 최소한의 시간은 지켜가며 레이스를 전개한다.
공원을 빠져 나와 도로에 합류하니 수많은 시민들이 줄지어 응원을 하고 있다. 마치 북한의 어떠한 행사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감빠레’와 ‘감바떼’를 어떤 사람들은 목이 터지지나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고 자기가 응원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은 대형 피켓을 들고 응원을 하는 사람도 있고 까무러칠 듯 소리를 지르며 응원을 하는 남.녀 학생들과 고사리 손의 어린 아이들까지…
해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이 열광적인 응원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 지? 참으로 부럽기만 할 뿐 이었다.
<흰 모자, 흰 옷에 파랑색 숏을 입은 아자씨가 본인>
같이 가기로 한 구병주님은 목표한 바가 달랐는지? 공원을 빠져 나오기 전에 이미 앞서 가 버렸고 피터팬-김윤오님의 서너 발짝 뒤에서 3분 40초 정도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린다. 몇 초 정도 더 빨리 달려야 하는데 왠지 발이 빠르게 움직여주지 않는다.
많은 선수들이 함께 달리기에 발걸음이 채이기도 하고 팔이 부딪히기도 하기에 4km 지점쯤부터 무리를 박차고 한걸음씩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처음 5km 까지는 안정적인 페이스를 유지하고 이후 조금씩 페이스를 올리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기에 목표보다 다소 늦어지기는 했어도 서두를 필요는 없이 km당 시간을 확인해 가며 자연스럽게 피터팬을 추월하였는데, 따라오는지 아니면 페이스를 더 늦추는 것인지 워낙 많은 사람들이 같이 달리니 돌아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지만 일부러 돌아보진 않았다.
충분한 실력과 더불어 풀코스에서만큼은 안정적인 레이스를 하는 선수이므로 본인이 선호하는 레이스를 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이미 작년에 한 차례 경험을 해 보았기에 샤프하고 치밀한 그의 성격상 나름대로 충분한 계산 속에 레이스를 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급수대를 지날 무렵, 작년에 이어 감기몸살로 고생을 하던 김광호 선수가 역시나 걱정했던 대로 스피드가 현저히 떨어졌는지 보이지 않아야 할텐데 너무 일찍 눈에 띈다. 힘내라며 엉덩이를 살짝 때려주고 – 성희롱은 결코 아니었슴 –앞서간다.
이제부터 한국에서 날아 온 40대 무명 아자씨의 추월의 칼바람이 하카타만에서 불어대는 겨울바람보다 더 세차게 후쿠오카 시내에 몰아친다.
아직은 초반임에도 한꺼번에 10여명 정도가 뒤로 물러서기도 하고 줄지어 함께 달리기도 하며 물병을 나눠 주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한국의 아자씨는 목표를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고 수많은 일본인들과 몇몇의 독일인, 영국인들이 나의 발걸음 아래로 묻혀진다.
비록 태극기를 가슴에 달지는 않았지만 유니폼의 앞뒤에 새겨진 ‘분당’ 과 ‘정진원홍삼’이라는 글자로 내가 한국인임을 길가의 응원 나온 시민들과 고통을 이겨내며 같은 주로상에서 땀을 쏟아내고 있는 일본인 주자들도 분명 알 것이기에 그저 적당히 달리는 것은 용서할 수 없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달려야만 한다.
하프 통과시간이 1:17:10(?) 정도로 기억된다. 역대 후쿠오카 참가 기록 중 가장 늦은 기록이기 때문에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지금까지의 경험 상 후반 페이스 저하를 감안한다면 더 빨리 달려야 할 텐데...
핑계를 대자면 어제 식사에서 탄수화물이 절대 부족하였음을 인지하고 있고 또 여지껏 대회를 앞두고 그런 방식으로 식사를 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마음 놓고 뛰쳐 나갈수가 없다. 일단 30km 까지는 이 느낌 그대로 가고 이후에도 문제가 없다면 속도를 더 올려보기로 한다.
후반으로 갈수록 추월을 당하는 주자들의 숫자는 조금씩 줄었지만, 그와 관계없이 무명아자씨의 칼바람은 앞서 간 주자들을 거침없이 몰아쳐서 어깨 뒤로 밀어낸다.
25km 지점을 지나 서울마라톤 박영석 회장님 이하 스탭진들의 응원을 받고 마의 벳부대교를 향해 가는데 전혀 보이지 않던 구병주님이 멀리 5~6명 정도와 함께 달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안 보이거나 훨씬 더 많이 가서 보였으면 좋았을 것을... 지금까지 달려오며 거리가 가까워지는 주자들은 예외 없이 추월을 해 왔기에 어쩔 수 없는 추월을 하거나 아니면 동행할 수 있도록 독려하며 같이 달리거나 해야 할텐데, 후자의 경우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전자의 경우가 되고 말았다.
정말 불가사의하고 놀라운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왜 불가사의하고 그토록 경이로운 선수인지는 나중에 후일담으로 남겨두고...
27km 지점을 지나 혼자서 달려가는 일본선수를 좌측으로 추월해 가는 순간 나의 뒤쪽으로 바짝 따라 붙는다. 어딜??? 재빨리 나도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얍삽하게 드래프팅을 하려는 의도를 무너뜨리고 더욱 스피드를 올려 강한 맞바람을 뚫고 나간다.
휘청거릴 정도의 바람이 순간적으로 불어대는 구간이라 드래프팅이 절실하기도 하겠지만 미안하게도 한국에서 온 아자씨는 그럴 여유와 자비심이 오늘 만큼은 추호도 없는지라...ㅎㅎ
반환점을 향해 가는데 드디어 선두가 나타났다. 역시 기대대로 케베데 선수가 어느 구간에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작년과 달리 완전 독주하는 형국이다. 저렇게 빨리 달리면서도 어떻게 저리 편안한 얼굴로 달릴 수 있는지?
그런데 우리의 엘리트 선수들은 어디쯤 오는지? 반환을 할 때까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 포기??? 그럼 내가 한국인 참가자 중 1위란 말인가??? 큰 일이군! 내 몸 하나 건사 하기도 힘든데..막중한 책임감마저 느껴지니...원...
드디어 30km 지점을 통과하고 속도를 좀 더 올린다고 올려본다. '지금부터 속도를 올려 달려서 후반 가속형으로 오늘의 1차 목표인 33분대에 들어간다.' 라고 다짐하며 집중력을 높이고 할 수 있다는 마인드 콘트롤을 실시하며 달린다.
수백명을 추월하며 달려 왔건만 아직도 나의 발걸음에 뒤로 밀리는 주자들과 또 뒤로 밀어내야 할 주자들은 수도 없이 많다. 얼마나 빨리 달려왔는지 7,800번대 선수들도 아직 눈 앞에서 달리고 있는 선수들이 있다. 저들은 누구란 말인가? 저들은 분명 시간이 흐르면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텐데 저변이 참으로 부럽기만 할 뿐이다.
맞은 편에서 누군가 ‘강호 힘’을 외친다. 뒤돌아 보니 김성익님이다. 바로 뒤에는 6명 정도가 달리고 회수차와 대회시설을 철수하는 차량 그리고 안내 방송과 함께 교통통제를 해제하며 일반 차량들이 그 뒤를 바짝 좇고 있다.
마치 커다란 먹잇감이 쓰러지기만을 기다리며 기분 나쁜 소리로 뒤를 쫓는 점박이 하이에나들처럼...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느낌을 모르리라!
첫 참가에서 그토록 생생하게 겪었었는데 경험하지 않아도 될 것을 김성익님이 겪는 것 같아서 안타깝지만 그래도 잘 해주리라 믿으며 나의 길을 재촉한다.
35km 지점. 지난 3년 동안 35km 이후 시내 구간을 당당하고 힘차게 달려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도 사실 마음 놓고 달릴 수가 없었던 것이 이 구간에서 늘 처참하게 달린 기억밖에는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은 다를 것이다. 힘차게 힘차게 발걸음을 옮김에 따라 아직도 추월은 계속된다. 이제는 아무리 길어봐야 30분 이내다.
운동장에서 쓰러지더라도, 다리에 쥐가 오르더라도 힘차게 달려보자며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그러나 신발이 문제였는지? 식사가 문제였는지? 한감독님 말씀대로 훈련량이 부족한 건지? 발걸음을 내디딜 때 마다 왼쪽 종아리가 찌릿하며 정말로 쥐가 오려는 신호를 보낸다.
지난 중앙대회 때 착용했던 아식스 스카이센서나 타사재팬을 신으려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솔티리’가 눈에 들어와 그 넘을 택했는데 역시 나의 체중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얇았던 모양이다.
아직 시간은 충분하고 최악의 경우 쥐가 오른다 하더라도 그 때 그 상황에 맞추어 대응하면 될 것이고 제한 시간내 완주는 가능할 것이기에 이를 악물다시피 하고 일단은 최선을 다해 달린다.
올해는 한국말로 응원을 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다른 참가자들이 있었다 하니 내가 못 들은 것일 수도 있다.
40km 지점을 통과하여 규슈제빙 거리를 통과하고 드디어 평화대 경기장이 보이는 대로에 접어들었다. 8구간을 열심히 달렸고 수 많은 주자들을 추월했기에 나름대로 구간기록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종아리의 문제 때문이었는지 생각보다 훨씬 기록이 좋지 않아 33분대 진입은 물거품이 되었고 2차 목표시간으로 수정하여 달린다.
그렇게 높고 길게 보였던 평화대경기장 입구 언덕이 오늘은 참 짧아 보인다. 이것도 언덕이라고….??? 그간 얼마나 힘들게 달렸었는지 오늘 새삼스럽게 실감한다.
운동장에 들어서서 응원을 주시는 서울마라톤 스탭분들에게 손인사를 건네고 2코너를 돌며 오늘의 우승자 기록을 보니 2시간 5분대를 기록하여 작년 기록을 갱신한 것을 알 수 있었고 4코너를 도니 자칫 34분대를 넘길 것 같아 남은 힘을 다하여 스퍼트.
나의 시계로 34분 57초를 기록했는데 공식기록으로는 59초로 나온다. 건타임으로 측정하고 출발선이 중간쯤이니 손해 보는 것은 당연한 것.
이어서 김윤오님과 바짝 뒤를 이어 구병주님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힘찬 응원을 해 주고 완주 축하의 악수를 건넨 후 선수 쉼터로 가서 간이 침대에 누웠더니 고맙게도 자원봉사자가 수건으로 정성껏 덮어준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옷을 갈아입는데 출발 전 만났던 일본인이 간단한 기념품과 벳부시를 홍보하는 팜플렛을 들고 찾아와 인사를 주고 받고 뒷풀이를 가진 후 후쿠오카 야타이에서 깔끔한(?) 마무리.
마스터스 러너라면 후쿠오카에 한 번 도전하고 가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완주자 : 488 명 DNF : 운동장 탈락 4명 등 총 193명 DNS : 한국엘리트 김세옥 등 총 81명
총 참가 신청자 수 : 762명 참가자 대비 완주율 : 71.66% (488/681)
대회 우승 : 체가예 케베데 : 2:05:18 (개인 최고기록 2초 단축)
본인 최종기록 : 2:34:59 순위 : 142위
* 참고로 2:31:58 기록이 99위 ㅡ.ㅡ;;;
위 순위는 엘리트 선수 포함 순위임.
=============================================================
해마다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마스터스 아니 대한민국 마라톤 발전을 위해 그 뿌리를 다져 주시는 서울마라톤 스탭분들에게 가장 먼저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감기몸살과 출국직전까지 야간근무의 피로누적으로 아쉽게 컷오프된 김광호 님 - 내년에 다시 20분대로 명예회복 하리라 믿습니다.
그 외 구병주, 김윤오, 김동욱, 박종욱, 김성익, 최부엽 님 등 모든 선수와 함께 한 스탭분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회복 잘 하시고 내년엔 더 멋진 모습으로 달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