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박 이일
1959년 초등학교를 졸업한 동기동창들이 모임을 가졌다. 참가하여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타월’도 선물받고 섬진강가 펜션에서 일박하고 맛집을 찾아 식도락도 즐겼다. 내륙에서 살아서 인지 역시 강물 참게 민물탕이 입맛을 돋우고 밥맛이 살아 났다. 세상적으로 잘 되었다고 하는 친구 보다는 예의 바르고 겸손한 친구를 더 가까이하고 싶었다. 동기 중에는 남을 헐뜯고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친구가 있어서 경계의 대상이 되어 마뜩찮았다.
그런 중에도 특별히 친절하게 대하는 친구가 있어 담소를 많이 나눴다. 하나같이 이제는 모두가 70대 후반기에 이르고 보니 안 아픈 친구가 없고 대부분이 종합병원이다. 모임에서 소주를 거의 마시지를 않는다. 탁자에 마련한 술 보다는 과일 과자에 손들이 많이 간다. 그러고 보면 이제는 60여년 전 10대로 돌아간 것 것 같다. 소고기 돼지고기를 구워서 술 안주를 아무리 마련해도 술을 찾는 사람은 없고 콜라나 사이다만 찾는다. 남녀 구별이 없어지고 화투를 치든 말을 하든 평등이 되었다. 화투를 치는데 이게 여자인지 사나이인지 통 감이 가지 않는 동창도 인상적이었다. 화투는 못해 침대를 일찍 찾았다.
농촌에서 찌들어 살아 누가 봐도 촌로로 느껴지는 A 여자 친구가 느닷없이 서울에서 내려온 여자 친구들에게 개인적으로 돈봉투를 마련해 주었다. 서울 친구들은 펄쩍 뛰는데 불쌍하게 생긴 시골 친구가 억지로 멋쟁이 친구에게 돈을 쑤셔 넣어 주는 것을 보고 감동이었다. 역시 돈이 어디서나 감초가 되었다. 돈을 건너는 A친구가 존경스럽고 본이 되었다. 베풀줄 아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존경스럽고 사랑이었다.
그 중에 B라는 친구는 특별히 나만 좋아해 정식 모임이 끝나고 자기 승용차에 태워서 카페에 가 차를 사 주고 또 자택으로 초대하여 자신의 일상을 보여준다. 친구는 평소 신문에 기사를 쓰고, 서예에 몰입하며, 과수를 잘 키웠다. 500여평의 집에 염소를 100여마리를 키우고 감, 사과, 매실, 배, 이름 모를 나무가 꽉 차 있다. 친구가 소중하게 간직한 비디오 동영상을 보고 왔다.
곡성에서 오전 10시20분 기차를 타고 11시 여천역에 도착했다. 일행과 함께 보성으로 가 구석구석을 실컷 구경했다.
보성은 녹차만 유명한줄 알았는데 산수경계가 너무 좋았다. 그 중에서도 개인이 조성한 갈멜정원은 아주 아름다운 꽃 동산이었다. 화사한 꽃들과 아름다운 수목이 어울려 그림 같았다. 보성은 참으로 다양한 매력과 경관이 수려했다. 그래서 훌륭한 인물들이 나오는가 보았다. 보성은 서재필, 나철, 박유전선생을 비롯하여 깜짝 놀라운 인물들을 볼 수 있다.
보성이 배출한 수필가 청석 임병식님은 일시 여수에 우거하지만 보성인으로써 자랑스러운 수필가이시다. 농촌의 삶과 애환 그리고 잃어가는 향수를, 그는 역작 지난 세월 한허리, 인형에 절 받고, 동심으로 산다면, 당신들이 사는 법, 방패연, 아름다운 인연, 그리움, 꽃씨의 꿈, 왕거미집을 보면서, 빈들의 향기 백비, 등 20여권를 통해 그려냈다. 마침내 보성의 인물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펜션에서 1박하고 서울, 대전, 여수 거주 동창들 출발직전 기념촬영. 곡성 거주 친구들은 밤과 새벽에 귀가.
앉은 자리 하단 왼쪽에서 세 번째가 본인.
첫댓글 초등학교 동창은 대부분 죽마고우이니 평생 인연이라는 생각입니다 세월을 거스르는 활기찬 봄나들이가 부럽군요 산자수명한 보성에 이르러 마침내 청석 선생께 도달하셨군요 선생님께서 일일이 열거해주신 청석 선생의 명품들을 대하니 더욱 감회가 깊어집니다 노익장의 화창한 봄날이 마냥 좋아 보입니다
고맙습니다. 초등학교 同期同窓모임을 펜션에서 일박 이일하고 송, 임회장님과 寶城을 一周 했습니다.
보성은 뛰어난 境觀이 너무 많았습니다.
산림 욕장도 장흥, 광양을 뺨칠 정도로 잘 돼 있고 해수욕장 하며 정원도 너무 좋았습니다.
가는 곳 마다 임병식회장님의 작품 속 정경이 파노라마처럼 展開되었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