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서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23 FIFA U-17 월드컵을 현장에서 챙겨보는 중이다. 그동안 어린 선수들을 성인 기준으로 평가해왔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고교 연령대에 맞는 경기력과 훈련법은 무엇일까. 현장의 지도자들과 이 고민을 나누고 싶다.
세계 대회가 열릴 때마다 기대감이 생긴다. A대표팀과 연령별 대표팀을 막론하고 축구의 최신 조류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로 올 때만 해도 그런 기대감을 품었다. 경기 중 하이 프레싱, 카운터 프레싱, 라인 브레이킹 같은 높은 수준의 움직임이 빈번히 나올 것이고, 이런 특징을 팀별로 비교해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영감과 자극을 주는 경기들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바뀌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다’라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졌다. 성인 무대를 보는 잣대와 시각으로 평가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소위 축구강국으로 인식하는 나라의 선수들이라도 똑같이 긴장하고 똑같이 실수한다. 약체라고 여겼던 나라의 선수들이라도 잘 조직된 힘으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다. 이 선수들이 자신감을 가지면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선다. 국적을 떼고 보면 모두가 미완의 기량과 발전 가능성을 갖고 있는 아이들인 것이다. 아이들의 상태는 계속 바뀐다. 경기를 거듭하면서 배우고 성장한다. 실수의 연속이지만, 이것을 실패로 묻어두지 않고 수정하고 보완하며 배우는 단계의 아이들이다. 그렇다면 이 대회를 보는 시각은 새로워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조별리그 3경기와 타 대륙 팀들의 경기를 보며 느낀 점을 전해보려 한다.
미국(흰색) 대한민국(빨간색)
템포를 좌우하는 기술의 문제
E조 1차전 대한민국 1-3 미국(11월 12일)
경기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큰 틀에서 보면 한국은 빠르게 많은 찬스를 만들었다. 상대보다 볼을 소유하는 빈도와 시간도 많았다. 세트피스 기회 역시 많이 얻었다. 전술적으로 많이 훈련하고 준비한 티가 났다. 조합 플레이도 좋았다.
초반부터 엎치락뒤치락 주도권 다툼을 벌였다. 초반 미국의 공세가 거셌다. 경기 상황을 읽은 한국은 볼란테 한 명을 두던 형태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두 명을 세우는 전술을 썼다. 주도권의 성패가 갈린 지점은 볼의 전달 여부다. 미국은 볼을 잘 전달했고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기습적이고 날카로운 카운터 장면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템포가 죽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를 효과적으로 괴롭히지 못했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는 우리가 볼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상대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는 패스나 돌파, 움직임은 미국보다 약했다. 패스가 좀 더 빠르게 나가야 했고 컨트롤이 간결해야 했다. 슈팅을 해야 하는 타이밍을 놓치기도 했다. 기술적 타이밍이 빨라야 볼을 운반할 수 있다. 미국은 그런 움직임을 잘 수행했고,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특히 우리 선수가 볼을 잡고 일대일로 진입할 때 같이 들어가는 지원군이 없었다. 문전에서 좋은 장면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는데, 소유만 했을 뿐 뾰족한 장면을 만들지 못했다. 이것이 경기를 주도하고도 스코어를 챙기지 못한 결정적 차이다.
세계 무대여서 우리 선수들이 많이 긴장했던 것일까? 내가 알던 변성환호의 100%는 나오지 않았다.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였기에 아쉬움이 더 컸다.
프랑스(흰색) 대한민국(빨간색)
도전적인 축구는 곧 도전적인 자세다
E조 2차전 프랑스 1-0 대한민국(11월 15일)
킥오프 2분만에 상대에 허용한 실점이 그대로 결승골이 됐다. 프랑스는 코너킥 상황에서 완벽한 분석과 준비에 따른 골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른 시간 실점으로 우리 선수들에게 불안감이 엄습했을 것이다.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호흡을 정돈하는 모습이었다. 후반전에는 더 많은 찬스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득점에 이르지 못했고, 상대에 결과를 내줬다.
1차전과 마찬가지로 잘 싸우고도 졌다. 그렇다면 우리의 공격이나 대응이 효과적이었는지에 관해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공격의 기본 전략은 ‘넓고 깊게’다. 우리 선수들은 넓고 깊게 공간을 만들었다. 상대 수비 간격을 넓혀 공략하는 전략이나 포지셔닝은 좋았다. 문제는 이 공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공간을 만들어 놓고 실제로 진입하는 빈도는 낮았다.
예를 들어 스페인은 공간에서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서 조직적으로 득점을 한다. 1차 슈팅이 득점으로 이어지지 못했을 경우 2차적으로 리바운드 싸움에 들어가고 제3자가 볼을 빨리 잡아서 재차 공격을 시도한다. 우리는 스페인처럼 ‘만드는’ 득점이 아니라 카운터 느낌의 속공 위주였다. 후루룩 올라가서 슈팅 한 번 때리는 것으로 공격이 끝났다. 슈팅이 여러 차례 골대를 맞고 나온 것으로 ‘불운’을 탓하지만, 공격시 간격과 형태가 잘 유지됐다면 누군가가 재차 슈팅으로 이어갔을 것이다.
조직적인 팀이라면 슈팅을 때리는 선수 주변에 다른 공격수들이 함께 포진한다. 골키퍼가 선방한 볼을 잡거나 수비수가 걷어낸 볼을 다시 잡아 슈팅으로 이어가려는 선수들이 존재한다. 이날 경기에서 한국은 2차적인 움직임에 가담하는 선수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수비도 효율적이지 못했다. 전략적으로 라인을 잘 세우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미들 서드에서 압박을 준비했지만 압박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블록만 만들어 놓은 형태였다. 0-1로 추격하는 상황이라면 좀 더 전략적이고 적극적인 움직임이 나왔어야 했다. 미들 서드에 진을 치고 상대를 어디로 유인해 볼을 뺏을 것인지, 누가 뺏을 것인지, 뺏고 나서 어느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나갈지…… 이런 대응이 부족했다. 볼만 따라다니는 우리 선수들의 수비가 과연 상대 공격수들에게 부담을 줬을까? 수비에서 상대를 지연시키는 움직임은 단순히 골대 중심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상대 공격수의 타이밍을 적극적으로 저지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도전적인 축구’라는 변성환호의 콘셉트를 다시 생각해 보자. 큰 틀에서의 콘셉트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도전은 무조건 앞으로 달려나가는 공격 축구만 의미하지는 않는다(심지어 그런 플레이가 나오지도 않았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수를 통해 성장하는 자세도 도전에 포함된다. 실수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고 경기를 통해 배우면서 성장하는 자세가 바로 도전이다. 이 선수들 중 상당수가 몇 년 뒤 A대표팀으로 올라갈 것이다. 그때도 움츠러드는 축구가 아니라 상대에 부담을 줄 수 있는 공격과 수비를 펼치려면, 이런 경기들을 적극적인 배움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 연령대 선수들은 기술과 기본적인 테크닉을 익히는 단계를 넘어 경기 운영 능력과 응용 능력을 경험하는 단계에 있다. 심지어 세계 무대다. 굉장히 좋은 배움의 무대가 될 수 있다. 다양한 상대를 만나면서 경기 짜임새나 운영을 알아가는 과정이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강점을 살리면서도 세계 축구의 흐름에 어떻게 맞춰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결과는 아쉽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마지막까지 희망을 갖고 경기를 해야 한다.
부르키나파소(흰색) 대한민국(빨간색)
목적의식의 중요성
E조 3차전 부르키나파소 2-1 대한민국(11월 18일)
한국은 16강행에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킥오프 전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됐다. 우리 경기보다 먼저 치러진 멕시코-뉴질랜드전에서 멕시코가 4-0으로 완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대하는 부르키나파소도 16강행 가능성이 사라졌다. 경기를 보는 사람이나 뛰는 선수들이나 느슨해지는 분위기였다.
경기 시작부터 잔실수가 나왔다. 한국 선수들의 패스나 움직임은 계속 맥이 끊기는 느낌이었다. 벤치의 감독도 답답해 하는 것 같았다. 감독이나 선수들이 이런 흐름을 의도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감독의 성향이나 경기 전 인터뷰 내용을 보면, 나름대로 하고자 하는 축구가 분명히 있었다. 막상 실전에서는 기대대로 풀어가지 못했다. 공격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다른 팀의 경기를 본 뒤에 이 경기를 본 탓인지 지루한 느낌마저 들었다. 무엇보다 청소년 특유의 패기나 도전적인 장면이 나오지 않았다. 볼을 소유하고 있으나 상대를 위협하지 못하는 소유였다.
볼을 소유하면서 상대에 부담을 주는 팀 중 하나로 스페인을 꼽을 수 있다. 이번 대회에서 스페인과 한국은 여러 면에서 유사한 스타일을 보였다. 우리와 차이는 목적의식의 유무다. 스페인은 상대 진영 좁은 공간으로 전진성 패스가 들어갔다. 한국은 그런 장면을 거의 만들지 못했다. 전진 패스가 커트를 당하더라도 한국은 더 많이, 자주 시도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시도가 몇 번의 기회로 이어졌다면 경기가 훨씬 재밌어졌을 것이다.
목적의식 없이 볼만 주고받는 안전한 운영은 매력이 없었다. 생사가 걸린 승부가 아니기에 오히려 배우는 과정의 가치를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을 위해 90분을 채워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어 보였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면 한국 축구는 미래에도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이 경기가 5년 뒤 우리 A대표팀, 그리고 K리그의 경기 템포가 될 것이다. 발전하려면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지 현장 지도자들도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다.
아르헨티나(파란색-흰색) 세네갈(초록색)
에이스의 존재감을 확인하다
D조 1차전 아르헨티나(남미) 1-2 세네갈(아프리카)
이 경기는 내가 현장에서 직접 본 첫 경기였다. 현장에서는 흥미로운 장면을 심심찮게 관찰할 수 있다. 워밍업도 그중 하나다.
두 팀의 스타일은 워밍업부터 뚜렷하게 대비됐다. 아르헨티나는 기술적인 조합 플레이가 특징인 팀답게 볼을 다루는 기술부터 남달랐다. 3명~5명 그룹으로 볼 소유를 유지하는 형태의 훈련을 반복적으로 진행했다. 세네갈은 빠르고 힘있는 플레이가 특징이다. 경기장에 입장할 때부터 표범같다는 인상을 주는 팀이었다. U-17팀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모든 동작이 파워풀했다. 특히 순간 속력을 내는 동작에서는 슈퍼카를 몰 때 느끼는 마력이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경기는 팽팽한 흐름이었다. 주도권을 놓고 기싸움이 벌어졌다. 연령 대회 수준을 넘어서는 듯한 박진감과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두 팀 모두 강한 태클과 몸싸움을 반복적으로 펼치며 상대방에 부담을 안겼다.
전반 6분 세네갈의 선취골은 개인 기술의 정점이었다. 디우프 아마라가 빠르고 영리한 일대일 돌파로 득점에 성공했다. 끝이 아니었다. 전반 38분 디우프가 추가골을 넣었다. 세네갈 선수들은 팀 차원의 조합 플레이보다 개인의 신체적 능력으로 풀어나갔다. 특히 디우프에게 볼이 전달되는 순간이면 경기장 전체에 일대일 돌파에 관한 기대감이 넘쳤다.
아르헨티나 U-17팀에게서는 A대표팀의 향기가 났다. 볼을 받는 위치, 볼을 받고 나서의 연계 플레이 등 경기 운영이나 선수들의 움직임이 A대표팀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특히 10번 클라우디오 에체베리는 리오넬 메시 플레이와 판박이였다. 볼을 잡으면 메시처럼 골대 쪽으로 빠르게 치고 들어갔다. 한 세대의 성공(2022월드컵 우승)이 다음 세대에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한 기분이었다.
공격 상황에서 직선적으로 구사하는 연계 플레이는 아르헨티나만의 장점이다. 골대 쪽으로 빠르게 치고 들어가는 선수들이 있다 보니 상대는 간격을 좁히려 한다. 자연스럽게 상대는 밀집하는 형태가 된다. 이때 골대 측면이 아닌 중심으로 들어가는 에체베리의 존재는 그 자체로 무기였다. 아르헨티나는 여러 선택지를 갖게 되는 것이다. 측면으로 연결해도 골대와 상당히 가깝고, 에체베리에게 패스하면 전진 드리블을 통한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전체적으로 아르헨티나가 주도한 경기였다. 세네갈은 계속 방어에 집중했다. 아르헨티나의 운영 수준이 높았지만 세네갈의 카운터 어택이 주효한 경기였다. 득점 기회를 포착하는 세네갈의 집중력과 스피드가 승패를 갈랐다. 세네갈은 수비에서 역습으로 나갈 때 디우프의 개인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이 선수의 개인 능력이면 무조건 해결하리라는 확신이 들 정도였는데, 디우프는 그 기대에 걸맞게 자신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아마도 머지않은 미래에 유럽의 빅클럽이나 빅리그에서 이 선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멕시코(초록색) 독일(흰색)
기술 vs 피지컬, 극단의 대결
F조 1차전 멕시코(북중미) 1-3 독일(유럽)
이 경기는 양 팀의 운영 스타일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극단적으로 다른 형태였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신체조건을 비롯한 피지컬 차이였다. 신장만 놓고 볼 때 마치 중학생과 대학생이 붙는 것 같은 그림이었다. 독일에는 190센티미터가 넘는 장신의 선수들이 있었다. 반면 멕시코 미드필드에는 160센티미터대의 선수들이 두어 명 있었다. 운영법도 달랐다. 멕시코는 기술 좋은 선수들을 활용하는 공략법을 택했지만 독일은 안전하고 견고한 수비를 기반으로 힘싸움을 펼쳤다.
내가 말하는 ‘안전’은 블록 형성이 잘 되어있었다는 뜻이다. ‘어디서’ ‘누가’ 압박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역할 분담과 인식을 분명하게 공유하고 실행하는 팀이었다. 무엇보다 신체적인 강점으로 상대를 압도했다. 멕시코 선수들이 기술적으로 풀어나가는 상황은 ‘힘의 차이’ 때문에 폭발력을 갖지 못했다. 덩치 큰 독일 선수가 손으로 잡아당기면 멕시코 선수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독일은 안전하게 구축한 백포(back4)와 2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벽을 만들었다. 이런 싸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독일에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 후반 들어 멕시코 선수들이 점점 힘에 부치는 모습이 많이 나온 것이 그 증거다.
결과적으로 패했지만, 멕시코에 눈여겨볼 점이 많았다. 일단 작지만 빠른 선수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최전방 공격수 역시 빠르고 기술이 좋은 타깃형 스트라이커였다. 모든 포지션에 개성 있는 선수를 구성한 점도 돋보였다. 세네갈과 비교하면 한 명의 선수에게 공격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형태가 아니라 팀 전체가 차근차근 골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이 연령대에서는 피지컬의 차이가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멕시코가 독일을 상대로 기술로만 경기를 풀어나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공격의 기술과 움직임은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평소 한국과 멕시코가 비슷한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신체 조건도 비슷하고 속공을 즐겨하는 스타일도 닮았다. 멕시코 U-17팀 선수들이 성장하면 어느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우리가 월드컵에서 보는 멕시코 A대표팀의 빠르고 강하고, 조직적인 그 모습이 연상되는 건 자연스러운 결론이었다.
총평: 팀별 특징 정리
이곳에서 내가 집중적으로 본 팀은 6개국이다. 일본, 독일, 세네갈, 아르헨티나, 멕시코, 베네수엘라의 경기를 관찰했다. 이 팀들은 공통적으로 미들 서드에서 주도권을 두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다. 수비를 시도하고 공격 작업을 시작한 지역이 미들 서드였다. 아르헨티나만 전방 압박을 통해 주도권을 가져왔다. 팀별로 내가 느낀 인상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일본: 계획적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경기 전술, 교체, 전술 변화, 전반 운영, 후반 운영 등 모든 흐름에서 준비한대로 움직였다. 실효성은 반반인 것 같다. 아시아권에서는 기술적인 팀으로 평가받지만 세계 무대에서는 수비에 치중하는 모습이다. 색깔을 드러내기보다 수비만 하는 축구, 과연 그들이 정말 원한 것이었을까?
독일: 화려하고 다양성이 있는 경기보다 안정을 택했다. 안전하게 수비를 구축하고 미들 서드에서 빠른 공격을 시도했다. 측면의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견고하게 형성한 수비 블록이 최고 강점이었다. 상대팀은 정신적으로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세네갈: 개인 전술에서는 이 대회에 참가한 팀 중 최고라고 생각한다. 디우프 아마라는 15세에 불과하지만 아르헨티나전에서 두 골을 넣었을 정도로 핵심 선수다. 반대 측면의 야야 디엠 역시 빠르고 유연한 공격수다.
아르헨티나: 글을 쓰는 시점에서 아직 결과를 알 수 없지만, 내가 생각하는 강력한 우승후보다. A대표팀을 복사한 것 같은 운영 스타일로 상대를 압도하며 계속 다음 단계로 올라섰다. 공격 축구라는 콘셉트가 명확하다. 공격 상황에서 3~4명이 그룹으로 골대를 향해 직선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멕시코: 160센티미터대의 선수들이 있을 만큼 아직 신체적으로 성장이 덜 됐다. 힘도 약하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무척 흥미롭다. 이 선수들이 성장해 몇 년 뒤 A대표팀으로 올라설 시점이면 굉장히 힘이 붙을 것이다. 한국이 집중적으로 관찰해볼 필요가 있는 팀이다.
베네수엘라: 멕시코와 비슷한 듯 다르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멕시코와 비슷한 느낌이다. 그러나 멕시코보다 신체적으로 크고, 힘과 스피드가 좋은 편이다.
우리팀과 비교해볼 만한 지점이 생겼다. 첫째, 패스의 선택에 있어서 의사결정 속도다. 우리의 패스는 전방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둘째, 움직임에 관해서다. 1차적으로 공격 시 뒤에 수비 선수들은 공격 생각이 없었다. 측면 풀백의 활용을 생각해 볼 문제다. 또 형태를 넓고 깊게 만들어 2차 움직임으로 이어갈 필요가 있다. 수비시 형태는 좋으나 우리가 위험에 노출됐을 때 커버(전환)플레이가 느렸고 쉽게 뚫렸다. 셋째, 정확한 경기 운영과 경기 방향성과 다양성이 필요하다. 인터뷰에서 공격적이고 도전적인 움직임에 대해 의지를 보였으나 전방 압박 콘셉트를 유지하지 못했다. 2차적인 대응에도 미흡했다. 전방 압박 이후 대응은 전략의 부재에 기인한 것으로 보았다.
고민과 제언: 축구는 객관식이 아닌 주관식 답변을 찾는 질문의 연속이다
앞서 2차 움직임, 상황 이후의 대응에 대한 개선점을 언급했다. 축구의 90분은 시험지라고 보면 된다. 매순간 새로운 질문이 나온다. 그 질문은 객관식이 아니다. 주관식이다. 우리가 준비한 만큼, 대응하는 만큼 새로운 상황과 점수를 만들 수 있는 시험인 셈이다. 준비한 답이 정답이 아니어도 괜찮다. 90분 내에 수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내민 답이 틀렸다면 다음, 그다음, 또 그다음 움직임으로 이어갈 수 있는 방향성과 전략이 있어서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90분 동안 최선의 답변을 내기 위한 문제 풀이를 하는 것이다. 90분이 지나고 주심이 휘슬을 불었을 때, 정답에 더 가깝거나 더 많은 답을 풀이한 팀이 이기는 시험이다.
정답이 없다고 했지만, 내가 이번 대회를 현장에서 보며 확신을 갖게 된 것도 있다. 해답을 찾는 모든 과정은 반드시 볼과 함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볼과 함께 방향을 전환하는 훈련, 볼과 함께하는 스피드 훈련, 볼과 함께 세부적인 전술을 짜는 훈련…… 모든 상황에서 볼에 의한 의사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 결국 다시 기술이 기본이라는 원론으로 돌아온다. 더 이상 기술과 피트니스(웨이트)를 별개의 것으로 봐선 안될 것 같다. 볼이 없는 상황에서 움직이는 것도 기술이고, 볼을 받으려고 앞으로 빠르게 튀어나가는 움직임도 기술이다. 훈련에서부터 이렇게 기술적인 사고가 들어가야 한다.
최근 우리 축구에서는 고교 시절부터 피트니스에 몰두하거나 집착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근력이나 체력 같은 신체적 능력을 적당히 신뢰하는 것은 나쁠 것 없지만, 성장이 덜 된 몸으로 근육을 불리는 게 옳은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느꼈지만 3년 혹은 5년 뒤 선수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것은 신체적 강점보다 기술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데이터상으로 보면 한 경기에서 개인이 볼을 터치하는 시간은 약 1분 30초 정도다. 나머지 88분 30초 동안의 싸움이 과연 피지컬에 의해 좌우될까? 우리의 고민을 원천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시사점을 얻었다. 축구는 볼에 의해 움직이고, 볼에 따라 반응한다. 이 모든 것에 적극성을 갖게 되는 것은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다. 함께 고민하고 풀어볼 이야기가 많다. 이것은 차후 지도자강습회에서 좀 더 자세히 다뤄보려고 한다.
* 이 글은 KFA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12월호 ‘ANALYSIS’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분석=최성환(KFA 지도자강사)
정리=배진경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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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풋볼뉴스(Football News) 원문보기 글쓴이: 블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