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라 오려거든
마 16:21-28
예수님의 공생애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때입니다. 예수님에게 수많은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병든 자들이 고침 받고, 귀신들이 물러가고, 베드로는 물위로 걷는 체험까지 했으며 배고파하는 5천명의 사람들. 그리고 4천명의 사람들을 다 배불리 먹이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어보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그리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하느냐? 그때 베드로가 대답을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야 그리스도가 바로 당신임을 우리는 확신합니다.하는 예수님의 정확한 신분을 알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베드로의 그 고백을 칭찬하시며 장차 세워질 교회의 영향력, 그리고 믿음의 영향력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아주 심각한 이야기 자신이 이 땅에 온 이유와 해야 할 일에 대한 말씀을 아주 심각하게 말씀하셨습니다.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비로소 나타내셨다. 이제 본격적으로 밝히 말씀하셨다는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며 보여줄 것 보여줄 만큼 보여주셨고 말씀해야 하는 것 말씀 전해 줄 만큼 전해 주셨다 생각하며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이야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예수님의 고난과 영광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 구원에 대한 말씀이며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을 이제 내가 얼마후에 이루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에 베드로가 발끈했습니다.
22절에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그랬는데,, 여기에서 붙들고 항변했다했는데 단순한 항변, 그런 말 하지 마십시오 정도의 말이 아닙니다. 책망하듯이 야단치듯이 강력하게 반대하는 말을 의미합니다.
그런 약한소리 하지 마십시오 죽다니요, 싸워서 이겨야죠, 약한소리 하지 마십시오 그런일 주님께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큰소리치며 항변한 겁니다.
나라를 구해야지 로마에서 지금 얼마나 고난을 겪고 있는데 그리스도이시면 나라를 구해야지 왜 죽는다는 이야기를 하느냐며 야단치듯 항변을 한 겁니다.
물론 이 항변 뒤에는 자신이 예수님의 나라에서 높은 자리 인정 받는 자리에 올라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죽는다는 이야기를 하니 그 꿈이 사라지기에 그러지 말라고 야단치듯 항변을 한 겁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죠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나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맞습니다. 베드로는 그때 예수님의 그리스도이심,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생각하기보다 정치적인 메시야 로마에서 유대민족을 구해줄 능력자로서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일을 생각한 겁니다.
반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구원을 위한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을 말씀하신 거죠, 예수님은 그 일을 위해 온 것이고, 베드로와 기타 모든 제자들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을 생각하며 예수님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기에서 확실히 해 두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시고 제자들을 보시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의 마음자세, 가야할 길 그것에 대한 말씀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제자도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가져야 하는 마음 자세 가야할 길 그것을 말씀하신 것이기에 제자도라고 합니다.
그것을 생각하며 다시 읽어봅시다. 24-28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예수님의 길을 따르려는 사람은 어떤 자세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느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의 결단을 촉구하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 더욱 우리의 것을 버려야 한다는 준엄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읽을 때 이 결단을 촉구하는 말씀만 읽을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이 나오게 된 배경, 왜 이 말씀을 하게 되었느냐 하는 그 원인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왜 이 말씀이 나왔습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말씀을 반기를 들며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그런 일은 예수님에게 일어나서는 안되며 결코 일어나서도 안된다고 하니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사명에 대해서 반기를 드니 이 제자가 나를 따라오는 것 맞냐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나 하는 것인가 하는 여러 가지 마음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26절에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이 말씀을 하시는데 지금 베드로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그 나라를 로마에서 독립시켜서 나라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기에 그것을 더 크게 확대해서 한 나라가 아니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읽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이 말씀을 한 겁니다.
너희들이 지금 나라,나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 나라 이스라엘을 구할까 다윗의 나라로 다시 세울까 고민하는데 이 나라가 아니라 온 천하를 얻는다해도 영생을 잃어버리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하시는 말씀이죠
그러면서 너희들이 나라,나라 하는데 진정한 나라, 저 영원한 나라의 왕권을 내가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시며 이스라엘이라는 지금 눈에 보이는 나라에서 더 크게 더 귀한 영원한 나라를 생각하게 하시는 말씀이며
그러면서 이 나라를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너의 생명 니가 영생을 얻는 것이다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본문을 단순히 우리가 가야할 길, 우리가 해야 하는 제자의 사명 그것만 생각하며 그것만 볼려고 한다면 이 본문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의 길에 대해 반기를 든 베드로에게 야단을 치시며 제자도를 말씀하셨지만 결국에는 예수님이 이 땅과 저 세상에서 하실 그 일에 대해서 야단치시며 이야기 해 주신 그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본문은 우리로 늘 주눅 들게 하고 부담 가지게 하는 그 제자도, 고난 각오하고 십자가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제자도에 대한 말씀만 아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실 일이 무엇이며 이루실 일이 무엇인가 그것을 조금 더 분명히 하신 예수님의 사명 선포이며 예수님의 자기 길에 대한 변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실려고 그래서 저 영원한 세상에서 함께 살자고 우리 죄를 씻어주실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죽으셨고 그래서 다시 사셨습니다.
이건 은혜입니다.
우리같이 부족하여 연약하고 죄 많고 허물 많은 죄인을 위해 이 땅에 오셔서 고난 당하시다가 사람들에게 잡혀 죽임을 당하신 것이 우리를 위해서 하신 것은 그저 크신 은혜입니다.
그 은혜로 우리가 죄 사함받고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도 부활할 것을 알게 되고 믿게 되고 기대하게 되었습ㄴ다.
우리는 부활하여서 예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 거룩한 나라에서 살 수 있게 된 겁니까?
우리가 누구이기에
이 은혜를 베풀려고 예수님이 하늘나라에서 내려오셨는데 그 각오를 이제 비로소 말씀하시는데 베드로라고 하는 제자가 예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앞날을 더 생각하며 이 일을 하지 말라고 하니 예수님이 화가 좀 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강하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시며 이렇게 나를 따라오지 않으려거든 일찌감치 그만 두고 가라 하시는 말씀하셨지만
실제로는 내가 어떻게 이 땅에 왔는데 나는 너희들에게 영생을 주러 왔고줄 것이다 영생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그 말씀까지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에 대한 재차 강조하신 것이며 무엇이 더 중요하냐 그것을 재차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우리가 해야 하는 사명 사명 강조를 많이 하지만 그래서 나를 부인하고 나의 십자가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하는 것을 강조하며 살지만 실제로 더 강조해야 하는 것과 더 깊이 깨달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를 향해 베풀어주신 예수님의 사랑,
우리를 위해 십자가 길을 걸어가신 주님의 그 크신 사랑, 그것을 더 깊이 깨달아 알고 더 감사하며 살고 잊지 않고 사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도는 무엇이 먼저 전제되어야 하느냐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 그 은혜 그 희생에 감격하며 감사하는 그것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 감격과 그 감사에서 나오는 것이 제자도가 되어야지 그 감격과 그 감사도 없이 그냥 제자도만 나오면 그것은 진정한 제자도가 아닌 겁니다.
중세 기독교회에서도 이 제자도와 이 자기를 부인하는 일을 잘못 오해하여 세상을 완전하게 등지고 수도원생활을 하는 것으로 착각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정말 자신의 가족도 버리고 자기의 꿈도 버리고,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사막으로 가서 수도생활을 하는 것이 제자로서의 삶이며 그것이 자기 부인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시므온(Simeon)이란 수도사는 주후 459년 자신이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무려 30년 동안을 약 21m(70feet)나 되는 높은 돌기둥 위에 올라가 은둔생활을 하며 고통을 스스로 체험하며 기도하며 살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21미터 높이의 돌기둥에서 30년간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먹는 것은 밑에서 누군가 올려주어야 먹었고,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뜨거운 태양빛을 받으며 그냥 견뎌내는 것만 하며 살았습니다. 고행을 자처한 겁니다.
그것이 자기부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며 그렇게 사는 것이 제자로서의 삶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제자로서 산다고 그래서 자기 부인한다하며 그렇게 안먹고 배고파하며 사는 것, 입어야 하는 옷을 안 입고 남보기에 초라하게 보이는 것, 내가 원하는 것 안하며 살았는데
그것은 자기부인이 아닙니다. 제자의 삶도 아닙니다.
제자도는 첫 번째 예수님의 길 예수님의 사랑 그 희생 그것을 아는 것이며 그것에 감사하며 감격하며 놀라워하며 잊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첫 번째가 되어야 하며 그것부터 온전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하실 때 오 주님 이 일을 하시러 오셨습니까?
우리가 누구이기에 이런 일을 주님이 감당하십니까?
우리가 누구이기에 주님이 그 고난을 겪으십니까? 어떻게 견디실려고요?
오 주님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리이까 이렇게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참 부족한 사람들 아닙니까?
저도 목사로 안수 받고 24년째 지내고 있는데 아직도 목사로서 제대로 감당을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속이 상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또 별 것 아닌 것에 내가 구원받은 날처럼 그렇게 좋아하고 기뻐하고
주님 주시는 은혜에도 감격하며 감사하지만 세상적인 것에도 감격하며 감사하는 그런 모습이 있는 것을 보며 참 목사로서 24년을 지냈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많이 느낍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한 영국인이 요크셔 해안에 아름다운 별장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해안 한쪽에는 커다란 바위가 바다를 향해 불쑥 튀어나와 있었는데, 어느 날, 이 영국인은 딸을 데리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그들이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아버지는 딸에게 평생 잊지 못할 교훈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말했습니다.
"딸아, 위를 올려다보아라." 딸은 아버지의 말대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아래를 내려다보아라." 딸은 하늘이 비취는 바다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이번엔 저 앞을 내다보아라." 딸은 아버지의 말대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았습니다.
"내 딸, 도로시야, 이처럼 높고, 한없이 깊고, 끝없이 넓고, 아름다운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란다." 이 말을 들은 딸은 아버지를 향하여 말했습니다.
나름 딸에게 평생 잊지 못할 교훈을 주었다 싶었습니다 그때 딸이 말을 했습니다.
"아빠, 하나님의 사랑이 이처럼 높고 깊고 끝없이 광활하다면 우리는 그 한가운데서 살고 있군요."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한 가운데서 우리가 살고 있다
그 말에 이 아버지는 아 그렇구나 내가 그것을 깨닫지 못했구나 느껴져 오히려 이 아버지가 딸의 그 말을 평생 잊지 못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고 지금도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랑이 나를 늘 감격케 합니다.
롬 8장에서 고백하죠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아무도 아무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겁니다.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그 사랑 그리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랑인데 그 사랑을 끊을 자 아무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고백하는 거죠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왜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사랑이 지금도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에 우리는 그 사랑 안에서 모든 일에 넉넉히 이기는 겁니다.
그 사랑으로 이 땅에 오셨고 그 사랑을 이룰려고 하는데 베드로가 그러지 말라고 그일이 예수님께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니 황당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해서 화를 내신 거죠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한 마디 하시고는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약속을 하셨죠
그러면서 여유도 주십니다.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너희들이 나라나라 하는데 그 나라 뿐 아니라 온 천하를 얻고도 영생을 잃어버리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무엇과 그것을 바꾸겠느냐
하시며 내가 그 영생을 주기 위해서 이러는데 나를 막지 마라 하시는겁니다.
그리고 약속하시죠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사명은 그 사랑을 알고 깨닫고 감격하며 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할 일입니다.
먼저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것이 이 사랑에 대한 감격이며
먼저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것이 이 사랑의 깊이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감격으로 그 감사함으로 주의 말씀에 언제나 아멘아멘 하며 사는 겁니다.
부산 명장동에 개척교회를 시작하신 한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1994년에 개척하여서 열심히 전도하며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명도 오지 않고 등록한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일들이 그렇게 되어가니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절망이 오고 가정경제도 어려워서 아이들이 영양실조 걸릴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기도하고 더 전도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새벽기도하며 그 답답한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놓고 아침 8시쯤 교회 승합차를 몰고 집으로 가는데 바로 그때 강한 음성이 그 마음과 머리를 계속 울리더랍니다.
저기 보이는 자매에게 복음을 전해라 하는 음성이었습니다. 너무나 선명했습니다. 그래서 보니 오른쪽으로 아주 깔끔하게 차려입은 아가씨가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차를 세워서 복음을 전할려고 하는데 그 차선이 1차선이었고 출근시간이라 뒤에 차들이 지금 줄줄이 따라오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차마 차를 세우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버렸습니다.
그러니까 그 시간 이후로 내가 성령의 음성을 무시하고 지나갔다는 생각에 목사님을 책망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너무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역시 어제와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지나가는데 또 성령께서 ‘저 자매에게 복음을 전해라’ 하시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보니 어제 그 아가씨였습니다.
이번에 전하리라했는데 뒤를 보니 여전히 차들이 끈임없이 밀려오고 출근길이라 도저히 세울 수가 없어서 또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그날도 가슴이 답답하고 죄책감이 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가보니 그날은 그 자매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더 속에서 안타까움이 들어서 회개기도하며 하나님 용서해 주십시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하겠습니다. 기도를 했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같은 시간 그 장소에 가보니 ? 그날 아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나타났습니다. 하얀색의 옷을 입고 걸어가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안놓친다는 마음으로 창문을 내리고는 천천히 전진하면서 그 자매를 불렀습니다.
자매님. 하니 예? 그 아가씨가 엉겹결에 대답을 합니다.
그때 다짜고짜 교회 갑시다. 그랬습니다. 그러니 그 아가씨는 어느 교회인데요? 묻는 겁니다. 그래서 0000 교회입니다. --
대답이 없자 어디 사세요? 하니 기린아파트입니다. 그러자 제가 주일 아침 10시 40분에 아파트 정문에 사람을 보낼테니 그때 나오세요 — 그랬더니 예 나갈께요..---
그런데 정말 그 주일에 그 시간에 그 사람이 나와 있었어 교회 데리고 와서 예배드리고 신앙상담도 해주며 신앙을 가지게 했다는 겁니다.
알아보니 어릴 때 소아마비에 걸려서 다리를 심하게 절고, 학교는 초등학교를 잠깐 다닌 것이 전부이고, 전라도 해남 출신이라 직장따라 부산에 왔는데 너무 낯설고 힘들어서 늘 죽을 생각을 하고 있었던 자매였습니다.
그날도 자살을 할려고 흰옷을 입고 나간 것이었는데 그때 이 목사님을 만나서 교회에 오게 되어 신앙을 가져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 이후 좋은 청년을 만나서 아주 훌륭하게 그 교회에서 신앙을 키워나갔다는 간증이었습니다.
주의 사랑에 감격하는 사람이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며 순종하지 못할때는 내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다 안타가워하며 순종할려고 노력을 더 하는 겁니다.
그 순종에 열매가 맺어지는 것인데 그것이 나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모습 아니겠습니까?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감격케 하고 그 사랑이 우리로 주의 일을 하게 하는 겁니다.
그 사랑의 감격으로 내게 주신 사명 잘 감당하며 열매도 많이 맺는 그런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