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은 쌀쌀한 바람이 불어와 머리칼을 스쳐지나간다.
바람이 찬 걸 보니 이제 곧 가을이 다가오려나보다.
"휴, 조금은 쌀쌀하네.얼른 들어가야지."
나는 서둘러 택시를 잡아탔다.
"이제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제? 어딜갔다 오는 길이요?"
택시기사 아저씨가 물으셨다.
"아 잠시 친구 좀 만나느라구요."
나는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그래요? 이젠 옷을 좀 껴입고 댕겨요. 날이 추워지닝께."
택시기사 아저씨는 사투리와 반반 섞어가면서 말하고 계셨다.
사투리와 섞어가면서 말씀하시는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나는 왠지모를 친근감을
느꼈다.
"아, 저기요. 저 동방 아파트 앞에서 세워주세요."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니 벌써 내 집 앞에 다 와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여기 차비.."
나는 삼천원을 내밀었다.
"에고. 아니여~ 내 딸 같으니께 오늘은 그냥 가구려"
"예? 얼마되지도 않는데..그냥 받아두세요"하고 손에 택시비를 쥐어주고
택시에서 내려 손을 흔들어 준 다음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엘레베이터에 올라타 14층을 누르고 나서 옆에 달린 거울을 보았다.
"아. 피부가 거칠어졌네. 나도 이제 나이를 먹어가나?"
아직 22살밖에 되지 않는 내가 이런 말 한다는 자체가 우습게 여겨질지도 모르겠으나.
20대가 되면 한살씩 나이를 먹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는 얘기는 명백한 사실이다.
나도 가슴이 아프니까.
하긴..
남자가 없어서 더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더더군다나 가을이 되니까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눈물이 나고 외로움을 더 많이 타니..
+띵동+
엘레베이터에서 내린 나는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면서 문앞에 다다렀다.
들어서자마자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욕실에 들어가 뜨거운 물을 받았다.
그 다음, 옷을 벗고 탕안으로 들어가 몸을 푹 담궜다.
"아 좋다아~"
피로가 한번에 싹 가시는 것 같았다.
한 30분쯤 경과됐을까?
때마침 내 핸드폰에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빠르고도 경쾌한 음악이다.
"아 참. 내가 시간 맞춰놨었지?"
나는 재빠르게 물로 대충 헨군 후에 목욕가운을 걸치고 책상앞에 다가갔다.
FM에서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104.7 채널에서 내가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한다.
난 의자에 앉았고 볼륨을 좀 더 높혀서 소리에 귀 기울였다.
찌찌찍~찌찌찍.. 하는 소리가 여러차례 들리는가 싶더니 DJ 한나영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나영 언니는 정말 같은 여자가 봐도 목소리가 예뻐서 부럽다.
그 반면에 나는 약간 허스키한 보이스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내가 봤을 땐 여자로서의 매력을 조금이라도 찾아볼 수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정말로 행복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서 같이 숨을 쉬는 일 또한 너무나 행복한 일입니다..
하지만 전..결국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은 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가 있었거든요..
전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보내주었습니다.
가슴이 너무 아프네요. 나영언니..
제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노래 좀 틀어주세요.."
저 여자는 시련을 당했나보다.
"네. 서울 서초구에 사시는 김수지양. 너무 힘들어 하지 마세요~
언젠간 더 멋있는 사랑 하실꺼예요.
네. 그럼요. 수지양을 위해 유리상자의 '사랑해도될까요'를 틀어드릴께요"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오죠. 첫눈에 난 내 사람인걸 알았죠..
...내 앞에 다가와 고개 숙이며 비친 얼굴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답죠..
아.역시 유리상자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감미로운 보이스이다.
나도 남자친구가 있었더라면 남자친구가 날 위해 저런 노래도 불러줬겠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끝이 없네..
...조심스럽게 얘기할래요.. 용기내 볼래요..나 오늘부터 그대를 사랑해도 될까요..
♩ ♪ ♬ ♩ ♬...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었나보다.
"네. 잘 들으셨죠? 다음 사연은요~
'나영언니.저 오늘 생일인데요. 글쎄 제 남자친구가 한강으로 불러내는거예요.
그래서 가봤더니 하트모양으로 촛불상식이 되어있구요~거기다가 그 안에
들어가서 꽃다발과 케잌을 들고 있지 뭐예요.
전 너무나 감동먹어서 점점 다가갔죠.
그런데 남친이 생일축하한다고 하면서 갑자기 키스를 하.."
꺼버렸다.
그토록 내가 좋아하는 나영이 언니가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라 해도 저런
사연만 나오면 내 미간은 좁혀지면서 자연스럽게 눈살이 찌푸러진다.
정말 역겹고 짜증난다.
남친 없는 솔로들은 어떻게 살라고..
난 침대로 가서 그 자리에 바로 누워버렸다.
아까전까지만해도 기분 좋았었는데...
이제 잠자리에 들기 위해 불을 끄러 다가가던 차에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유세인! 아까 그렇게 가버리면 어떻하냐! 내가 얼마나 무안했는 줄 알기나 해?!"
"아. 미안해 희정아 하지만 어떻게 그런 폭탄이 나오냐? 해도 너무하단 생각 안드냐?"
"아, 못생기면 어때. 돈만 많으면 장땡이지!"
"됐다 됐어. 나 지금 잘려던 참이거든. 끊자."
"야아! 유세..."
+덜커덕+
내가 먼저 끊어버렸다.
아니. 내가 아무리 남친이 없기로서니 어떻게 그런 사람이 나오냐 이거다.
희정이 저년은 이 세상이 무슨돈으로만 다 되는 줄 아나보다.
어유. 저런것이 내 친구라는 게 수치스러울 뿐이다.
오늘 나영이 언니 라디오 프로그램도 못들어서 짜증나는데.
희정이가 불난집에 기름을 들이부어서 난 도저히 잠을 청할수가 없었다.
난 자리에 일어나서 냉장고로 향했다.
캔맥주를 5개정도 갖고와서 안주도 없이 그냥 들이부었다.
오늘은 아무래도 술로 잠을 청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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