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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시스! 21세기 스포츠의 강력한 아이콘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이종격투기의 숨어 있는 코드다. 현대인의 억눌린 욕망과 본능이 신종 스포츠를 만나 탈출구를 찾았다. 피가 튀고 살이 찢기는 처참한 스포츠. 인간의 잠재된 파괴본능이 이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종목이 어디 또 있을까. 대리만족, 사람들은 아마 거기에서 짜릿한 쾌감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이종격투기가 현대인의 숨어있는 심리적 코드를 파고들며 인기 스포츠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제 이종격투기는 주무대였던 일본을 뛰어 넘어 세계화의 흐름에 몸을 실었다. 시장이 확대되면서 자연스럽게 상품성있는 선수들의 이적도 잇따르고 있다. 수요가 생긴 만큼 그에 따른 공급의 변화는 당연한 결과다.
◇크로캅의 UFC 이적
이종격투기의 세계화 추세와 맞물린 스타급 선수들의 이적 신호탄은 미르코 크로캅(크로아티아)이 쏘아 올렸다. 크로캅은 프라이드 FC 헤비급 챔피언인 '60억분의 1'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러시아)의 유일한 대항마로 꼽혔던 선수인 만큼 충격파는 컸다. 지난해 프라이드 FC 무차별급 초대 챔피언에 올랐던 크로캅은 예상을 깨고 미국의 종합격투기 단체인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로 말을 갈아 탔다. 크로캅은 지난 2월 4일(한국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데뷔전에서 에디 산체스(미국)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며 1라운드 TKO승리를 거뒀다.
◇봅 샙의 케이지 레이지(Cage Rage) 이적
'야수' 봅 샙(미국)최근 영국의 종합격투기 단체 '케이지 레이지'측과 계약을 맺고 조만간 데뷔전을 치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샙은 지난해 5월 K-1 암스테르담 GP에서 어네스트 호스트의 모국 은퇴경기 상대로 나설 예정이었으나 경기 당일 출전을 거부하고 K-1 주최사인 FEG측과 대립각을 세우다 최근 이적을 발표했다. 샙은 세련미가 떨어지지만 저돌적인 파이터 기질과 특유의 쇼맨십을 보유해 아직까지 상품성 있는 선수로 통한다.
◇사쿠라바의 K-1 히어로스 이적
일본 중량급 MMA의 간판 사쿠라바 가즈시도 지난해 자신의 땀과 열정이 스며있는 정든 프라이드 FC를 떠나 경쟁사인 K-1으로 옮겼다. K-1의 MMA 브랜드인 히어로스 무대로 이적한 사쿠라바는 지난해 12월 31일 K-1 다이너마이트대회에서 재일동포 추성훈에게 무참하게 패했지만 주최측인 FEG측의 배려(?)로 살아났다. FEG측은 추성훈이 보습 크림을 바른 것을 빌미로 경기를 무효처리한 데 이어 무기한 출전정지라는 가혹한 징계까지 내렸기 때문이다.
◇효도르의 수상한 행보
효도르의 행보도 심상치 않다. 소속팀인 '레드 데블'의 바딤 핀켈쉬테인 회장이 러시아 국내대회인 M-1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마련한 MFC(Mixed Fighting Championship) 대회를 효도르를 앞세워 적극적으로 키워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핀켈쉬테인 회장은 미국의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보독(bodog)의 후원을 받아 '보독 파이트(Bodog Fight)'도 출범시켰다. 효도르는 오는 4월 6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보독 파이터'에 출전할 것으로 알려졌다. 프라이드 FC의 간판선수인 효도르의 이 같은 움직임은 점진적인 프라이드 이탈로 점쳐지고 있다.
◇이종 격투기 단체들의 합종연횡
선수들의 잇따른 이적은 이종격투기의 높은 상품성을 반영하는 움직임에 다름 아니다. 그 동안 이종격투기의 최대 시장은 일본. 그러나 일본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프라이드 FC와 K-1은 최근 시장 확대를 위해 세계로 눈을 돌리다. 이와 맞물려 다른 나라의 이종격투기 단체들도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공격적인 스카우트와 몸집 불리기로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이종격투기라는 신종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각종 단체들은 대립각을 세우기 보다 협력 관계를 맺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최근 크로캅을 영입한 UFC와 그를 빼앗긴 프라이드의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격투기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윈-윈 작업'의 일환으로 크로캅이 UFC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하면 프라이드 헤비급 챔피언인 효도르와의 '세기의 대결'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이종격투기 시장
이종격투기 역사와 저변이 얇은 탓일까. 한국은 이종격투기에 대한 인기는 높지만 자생력을 갖춘 수준높은 국내 대회와 든든한 자본력을 앞세운 경기단체가 드물다. 따라서 국내 팬들의 시선은 프라이드 FC나 K-1에 쏠릴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두 경기에 대한 중계권료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올 해 초 프라이드 FC의 독점 중계권을 따낸 온 미디어 수퍼액션은 그 대가로 5년간 118억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홍만이라는 걸출한 선수를 보유함에 따라 한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K-1은 3년간 독점 중계권료로 무려 310억원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대회는 '푸른 눈의 파이터' 데니스 강을 앞세운 스피릿 MC가 힘든 상황속에서도 선수 육성과 프로모션에서 주목할 만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 대한삼보연맹도 삼보를 베이스로 삼고 있는 효도르와 그의 소속팀인 '레드 데블'팀의 바딤 핀켈쉬테인 회장과 손을 잡고 MFC 대회의 국내 대회 유치와 자신의 고유 브랜드인 '슈퍼 삼보대회'를 기획하며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진현기자 jhk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