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황제도 돈을 좋아한다. 따라서 황제의 돈 가치를 떨어뜨리는 위폐 사건은 무척 큰 사 건이다. 문파 하나쯤 말아먹기는 일도 아니다. 그대상이 사파 라면 변명의 여지도 없다. 팔독문은 완벽하게 멸문했다. 진고불은 그 문제를 처리하는 데 바빴다. "이건 관청의 일이지만 그래도 삼절서생이 도와줬으면 좋 겠는데."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주유성을 붙잡고 있을 수 없었다. 그 의 마음은 주유성의 도움을 받아 일을 빨리 해결하고 싶었지 만 주유성에게는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다. 핑계까지 있는데 일을 할 주유성이 아니다. 사황성의 순찰사자는 무공이 완전히 제압되고 질긴 끈으 로 단단히 묶인 채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주유성은 순찰사 자를 발로 차서 이리저리 굴리며 말했다. "이놈을 무림맹에 전달해 줘야 해요. 이놈이 상당히 중요 한 정보를 가지고 있거든요." 진고불이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놈은 사황성의 순찰사자라며? 직위가 낮지 않은데 괜찮 겠나? 사황성을 잘못 건드리면 큰 문제로 번질 수 있으니 차 라리 나에게 넘기면 내가 처리하지. 그놈을 잘 엮어서 혈마를 괴롭혀 보고 싶으니까." 진고불로서는 주유성을 생각해서 한 말이다. 그러나 주유성 은 순앞사자가 필요했다. "안 돼요. 어차피 관에서 순찰사자를 데려간다고 해서 무 슨 이득을 얻겠어요? 관이 사황성을 괴롭히려면 물증이 더 필 요하잖아요. 차라리 무림맹주에 전해주는 것이 혈마에게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어요." 진고불이 공을 탐하는 자라면 이 순찰사자를 빼앗는 것이 이익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자가 아니다. 그는 이번 일로 혈 마가 타격을 받기를 바라지, 자신이 공을 세우는 데는 별 관 심이 없다. 어차피 포쾌로서는 더 올라갈 자리도 없다. "사황성이 그자를 무림맹에 데려가는 것을 구경만 하고 있 을까?" "걱정 말아요. 그래서 제가 직접 데리고 가잖아요. 이놈은 무림맹에 꼭 전달되어야 해요. 사황성이 수작을 부리더라도 감수할 가치가 있어요." 사황성의 고위 간부가 무림을 돌아다닌다고 해서 무림맹이 덥석 잡아들이지는 못한다. 완전히 전쟁이 벌어진 상황이 아 니라면 감히 그럴 수 없다. 그 대가가 크기 때문이다. 서로 시비가 붙어서 겨루는 경우가 아니라면 건드리지 않으며, 설 사 싸우는 중에도 배경을 밝히면 무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건 사황성도 마찬가지다. 사황성 역시 무림맹의 고위층 이 돌아다닌다고 해서 무사들을 풀어 잡아들이지 못한다. 물 론 고위층쯤 되면 무공이 높기 때문에 쉽게 잡혀주지도 않는 다. 이 경우에 예외가 있다면 그럴 만한 명분이 있을 때다. 무 림맹이나 사황성은 자기네 조직에 큰 죄를 저지른 사람을 발 견하면 명명백백한 대의명분을 걸고 잡아들이는 경우는 가끔 있다. 그런 경우라고 해서 피를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많은 충 돌이 반드시 따라오다. 그걸 감수하고 하는 일이다. 그래도 그런 일이 벌어지면 명분이 달리는 쪽이 아무래도 덜 적극적으로 나서며, 적절한 중재자도 나타난다. 그 때문에 피는 충분히 흘리지만 전쟁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진고불이 주유성을 보다가 결심한 듯 말했다. "그럼 군사들을 좀 내주지. 나는 비록 일개 포쾌지만 내가 장군의 뒤를 찌르면 군사들은 좀 얻을 수 있으니까. 한 오백 명 정도 붙여주는 것이 어떻겠소?" 평소의 주유성이라면 귀찮은 일을 막아줄 수 있는 병사 오 백 명을 마다할 리 없다. 하지만 지금 그는 순찰사자에게 따 로 목적이 있다. 아쉽지만 꾹 참고 거절했다. "그렇게 하면 사황성에 이익만 주겠죠. 제가 혼자 이놈을 끌고 가면 속도도 빠르고 행적도 잘 드러나지 않아요. 사황성 도 대병력을 움직여 저를 쫓기는 어려워져요. 제가 그 병력의 움직임을 보고 피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병사들을 데 리고 움직이면 상황이 반대가 되지요. 내가 어디 있는지 빤히 드러나게 되니까요." 진고불이 기분 상한 표정으로 말했다. "흥. 나는 아무리 사황성이라고 하더라도 황제 폐하의 군 사 오백 명을 상대하는 모험을 할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 것도 겨우 순찰사자 하나 때문에." "겨우가 아니거든요, 이놈은." * * * 혈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눈을 이글거렸다. "그래서 거기 쌓아두었던 위조 철전을 모조리 빼앗겼다고?" "그렇습니다." "위조 철전 원판도 없어지고?" "그렇습니다." "팔독문도 멸문당하고?" "그, 그렇습니다." "진고불이라는 그 포쾌가 그렇게 했다는 말이지? 총관! 일 을 어떻게 처리했기에 포쾌 따위가 눈치를 채게 해? 그것도 하 필 뇌물이 먹히지 않는 그 포쾌한테? 정말 이따위로 할 거야!" 혈마가 길길이 날뛰는 것을 보며 총관이 이마의 땅을 닦으 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성주님, 문제는 그것이 아닙니다. 뒤처리에 문제가 조금 생겼습니다." 한참 흥분했던 혈마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손을 저었다. "뒤처리. 그래, 위조 철전은 큰 문제지. 공연히 황제와 사 이가 많이 나빠지면 대업을 앞두고 불리해. 팔독문과 우리 사 이의 연결 고리를 모두 끊어. 이번 일은 팔독문 혼자 저지른 것으로 만들라고. 비록 원판을 잃었지만 그거야 돈을 부어서 다시 만들면 되는 것.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더 주의를 기울이라고." 총관이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팔독문에는 그때 마침 그 지역 담당 순찰사자가 가 있었습니다." "순찰사자가 하필 그때 거기를 왜 가?" "적두문을 잘라내는 일을 우리가 직접 하면 진고불에게 추 적당할 위험이 있으니 팔독문을 시키라고 하셨잖습니까? 진 고불은 명색이 천하제일포쾌니까요. 그래서 그 일을 팔독문 에게 시키기 위해서 순찰사자가 직접 갔습니다." "그런데?" "일을 저지른 당일 날 그놈들이 쳐들어와서 팔독문에 남아 있던 그 순찰사자까지 잡혔습니다. 천하제일포쾌의 반응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라서 벌어진 일입니다." "바보 같은 놈이군. 그놈은 잊어버려라. 겨우 순찰사자 하 나 때문에 일을 벌일 순 없어." 총관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성주님, 아수라환상대진을 이용한 덫을 칠 때 물자 지원 임무를 맡았던 곳이 바로 팔독문입니다. 팔독문에서 다른 사 람들은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지만, 팔독문주 하나만 은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간 연락책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그 순찰사자입니다." 혈마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정말 한심해서 말이 안 나오는구나. 일을 이렇게 망치다 니. 그럼 지금 팔독문주와 순찰사자는 어디 있느냐? 관청에 갇혀 있으면 빼오고 정 안 되면 입을 다물게 만들어야지." "팔독문주는 손을 써서 제거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주유 성입니다." "또 주유성? 주유성이 왜?" "주유성이 순찰사자를 끌고 갔습니다." 혈마가 뒷목을 잡았다. "으윽. 주유성. 이름만 들어도 혈압이 오르네. 그 인간이 왜 또 여기 끼어들어? 엉?" 혈마는 짐작도 못했지만 게으름뱅이도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다. "진고불이 팔독문을 칠 때 주유성이 같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혈마의 눈빛이 이글거리며 불타올랐다. "주유성. 그래, 주유성. 그 인간은 무림맹을 위해서 일하는 놈이잖아." 주유성이 들었다면 기겁을 할 말이다. "아무래도 무림맹에서 뭔가 냄새를 맡은 것 같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아니면 왜 순찰사자를 잡아가겠어? 아 무래도 처음부터 노린 것 같군. 주유성은 순찰사자를 노리고 진고불은 위조 철전을 노렸겠지." "하지만 아수라환상대진에 대한 정보가 따로 샜다고 보기 는 어렵습니다. 뒤처리는 완벽했습니다. 우리는 정보 조작에 거금을 썼습니다." "알아. 나도 검토했으니까. 하지만 말이야, 그 당시에 우리 지부들이 꽤 날아갔어. 그건 무림맹 짓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지. 그럼 무림맹 놈들은 증거가 없어도 정황만 가지고 우리 짓이라고 짐작을 할 능력이 있다는 말이잖아." "그렇습니다. 그 때문에 응징부대도 만들었는데..." "으윽! 삼천 명짜리 응징 부대가 오협련을 치러 가다가 주 유성 그 개새끼한테 걸려서 모조리 박살났지. 아, 정말 뒷골 당기게 하는 놈이구나." "그놈이 냄새를 맡았음이 틀림없습니다. 정말 대단한 인간 입니다." "가만, 주유성 그 인간이 순찰사자를 잡아갔다고? 호송 병 력은?" "첩자들이 알려온 바에 의하면 주유성 혼자사 순찰사자를 데려갔다고 합니다." "추적은 잘하고 있겠지?" "한동안은 쉽게 추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지금은 종적 을 잃어버렸습니다." 혈마가 탁자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탁자가 산산이 부서 졌다. "뭐얏?" 총관이 급히 대답했다. "지금 동원 가능한 수단을 최대한 움직여서 찾고 있으니 곧 위치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놈은 도망갈 수 없습니다." 혈마가 이를 갈았다. "으드득. 쥐새끼 같은 놈. 수색 인원을 아끼지 말되 관청의 눈도 신경 써라. 이번 일에 우리는 상관없는 거니까. 그저 순 찰사자를 찾는 것으로 하자." "관리 놈들이 눈치 채지 못할 리 없습니다." "상관없다. 증거만 있으면 돼. 감히 나를 상대하는 데 증거 없이 무리해서 움직일 관리 놈은 없다. 황제라도 그런 짓은 못하지. 아니, 황제는 나를 치지 않는 것이 더 이익임을 아니 까 증거가 있어도 하지 않아." "알겠습니다. 수색 인원을 증원하겠습니다." "그리고 추살대를 준비시켜라. 어차피 시간이 많지 않다. 상황을 들어보면 놈을 칠 기회는 아마 한 번뿐이겠지. 발견하 는 즉시 추살대가 그 지겨운 놈을 제거하고 순찰사자를 찾아 오게 해라." "우리가 직접 손을 쓰는 것은 뒤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차라리 뒤탈을 감수하고 말겠다. 주유성이라는 인간은 위 험해. 살막이 그놈을 암살하려다가 걸려서 멸망한 이후로 다 른 살수들은 주유성 암살이라고 하면 고개부터 젓는다. 차라 리 이 기회에 직접 손을 써서 제거한다." "알겠습니다. 강한 추살대로 준비하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확실히 제거해라. 순찰사자는 구해오기 힘 들면 제거해도 좋아. 하지만 주유성 그 인간은 반드시 죽여 라. 이미 그놈 때문에 입은 손해가 너무 크다." 만약 혈마가 주유성이 북해나 남만에서 한 일에 대해 알았 다면 이렇게 한가하게 앉아서 명령을 내리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직접 나섰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아는 주유성의 행적은 작은 일들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주유성은 혈 마에게 충분히 위협적으로 비치고 있었다. * * * 주유성이 고른 것은 낡은 수레다. 말이 끄는 구조의 수레는 제법 흔한 것이다. 말과 수레 값은 순찰사자의 주머니를 뒤져 서 나왔다. 아쉽게도 황금 한 관은 팔독문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주유성은 그것을 적당히 이용하며 추적을 따돌렸다. 게을러터진 주유성은 무림맹주의 수법에 걸려들어 남북으 로 여행했다. 이제 여행 경험이 여간한 무림인보다도 많다. 그는 북쪽의 북해에서 남쪽의 남만까지 돌아다닌 사람이다. 비록 마차에 틀어박혀 편하게 움직인 경우가 많았지만 여러 곳을 다닌 경험은 흔적을 지우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는 완벽하게 몸을 숨기지는 않았다. 적당한 수법만을 사 용했다. 가끔 수레를 팔아치우고 다른 것을 구매하기도 했으 며, 농가에 들러 수레를 맞바꾸기도 했다. 일부러 노숙을 하 기도 하고 길을 조금 돌아가기도 했다. 그런 일각의 작업은 제법 효과가 있었다. 흔하디흔한 수레 하나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한다. 사황성은 자주 주유성 의 행적을 놓쳤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벌어줄 수는 없다. 사황성은 이 일에 충분한 인원을 투입했다. 차곡차곡 고삐가 조여왔다. 조용한 길을 가던 주유성이 수레를 끄는 말고삐를 당겼다. "말아, 잠시 쉬었다 가자. 기다리던 잡것들이 찾아왔네." 매복하고 있던 것은 사황성의 추살대 중 하나인 적호추살 대다. 사황성이 투입한 추살대는 여럿이었지만 주유성이 워 낙 자주 사라졌다 나타남을 반복하느라 정작 뒤를 쫓는데 성 공한 것은 적호추살대 하나였다. 강하거나 빠른 적을 잡아 족쳐야 하는 추살대의 특성상 그 들은 보통 무공이 높다. 더구나 한 명을 상대하는 능력은 특 히 강하다. 대장은 참혼적호라고 불리는 자였다. 무림에 알려 진 것은 많지 않은 자이다. 그러나 숨겨진그의 실력은 사황 성이라는 거대 조직에서 운용하는 추살대 중 하나인 적호추 살대를 이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황성은 무림삼대거대단체 중 하나다. 추살대를 하나만 운용할 리는 없다. 출살대의 규모 역시 천차만벌이다. 참혼적호가 이끄는 추살대는 그를 포함해 총 다섯 명의 고 수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의 주요 임무는 강한 적 한 명을 추 격해서 죽이는 것이다. 참혼적호가 혀를 차며 숨어 있던 길가에서 몸을 일으키며 걸어나왔다. "쯧. 언제 죽었는지 모르게 편하게 처리해 주려고 했더니 스스로 고통을 자초하는구나." 참혼적호를 따라 길 양편에서 네 명의 고수가 더 걸어나왔 다. 모두 검 한 자루씩을 들고 있었고 풍기는 기세가 제법 거 칠었다.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다섯 명의 방위를 보며 주유성이 한 마디 툭 던졌다. "오행진이라도 펼치려고?" 오행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진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오행의 원리를 이용하는 진법을 통틀어 오행진이라고 한다. 참혼적호가 멈칫했다. 그의 이마에 작은 주름이 만들어졌다. "삼절서생의 삼절 중 일절이 진법이라고 하더니 단번에 알 아보는구나. 그 재주가 여기서 끝나야 하니 정말 아깝기 그지 없다. 그러게 적당히 행동했어야지." 주유성이 마차에서 내렸다. 게으른 성격에 검 한 자루 챙겨 놓지 못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 갔다. 다섯 명은 마치 원래 그렇게 걸으려고 했다는 듯이 자연스럽 게 움직여 주유성을 포위했다. 주유성이 그 꼴을 보고 말했다. "연습 많이 했나 보네?" 참혼적호가 이죽거렸다. "흐흐. 건방진 진법가 하나 잡아 족치기에는 충분하게 연 습했지. 네가 진법을 알고 무공을 조금 한다고 하니 빠져나갈 길이 없음은 짐작하고도 남을 거다. 모든 것은 사황성을 거스 른 네 판단 탓이다." 주유성이 궁금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기 말이야, 혹시 나를 생포해 오라거나 그런 명령은 없 었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네놈은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받 았다. 염라대왕 앞에 가거든 참혼적호가 보냈다고 말해라. 내 가 바로 너희 정파 고수들을 수없이 죽인 사황성 적호추살대 의 대장이니라. 크흐흐!" 주유성도 인상을 썼다. "죽일 새끼였군. 그런데 진짜로 나를 죽이고 볼 거야? 만에 하나라도 내가 니네 순찰사자한테 어떤 금제를 걸어놨으면 어떻게 하려고? 우리 외갓집이 사천당문이거든? 그러니 내가 저놈한테 독 같은 걸 중독시켜 놨을 수 있잖아. 해약을 나만 가지고 있다든지 하는 그런 거 말이야." "빠져나가려고 수를 써도 소용없다. 너를 죽이는 것이 첫 번째 명령, 순찰사자를 죽여서라도 입을 막는 것이 두 번째 명령, 여건이 허락하면 순찰사자를 살려서 데려가는 것은 세 번째 명령이다. 너는 틀림없이 죽는다." 이것이 바로 주유성이 원한 대답이다. 뒤의 수레에서 순찰 사자가 몸을 뒤트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원한 반응이다. '걸렸다!' 그는 순찰사자의 이 반응을 위해서 추적대가 따라올 수 있 도록 적당하 흔적을 남기면서 이동했다. 필요한 말을 들은 주 유성이 히죽 웃었다. "자신있어?" 주유성이 팔을 늘어뜨리면서 축 처진 모습으로 자세를 잡 았다. 적호추살대는 명색이 사황성이 보유한 추살대다. 그것도 고수를 상대하기 위해서 운용하는 부대다. 하나하나의 실력 도 뛰어나지만 합격진의 위력은 그 몇 배를 발휘한다. 참혼적호가 누런 이를 드러냈다. "구파일방의 장로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손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할 자신이 있거든. 애송이 주제에 세상을 모르는구나. 하룻강아지가 왜 하룻강아지인지 가르쳐 주마. 쳐라!" 그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적호추살대가 주유성의 곁을 빠르게 맴돌기 시작했다. 그들의 서로 간의 위치는 오행의 원리를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제대로 밟은 방위는 서로의 기세를 증폭시켜 힘의 상승 작용을 불러왔다. 다섯 명이 뿌려 대는 살기가 몇 배나 강해져 주유성을 압박했다. 무형의 기가 진하게 밀어닥치자 주유성의 옷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주유성은 그의 휘날리는 머리칼 사이로 추살대의 진을 보며 비웃었다. 참혼적호는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섯 명이 오 행의 원리로 움직이며 압박을 가하면 가운데 선 자는 그 압력 에 의해서 움직임에 부담을 느껴야 한다. 그런데 주유성은 옷이 요란하게 흔들리기는 했지만 정작 얼굴을 편안했다. 그저 제자리에서 몸을 조금씩 틀기만 할 뿐 특별히 힘들어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비 웃고 있었다. 그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다섯 명의 고수 중 하 나가 훈련받은 대로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고수의 검이 주유성의 몸통을 노리고 날아왔다. 그러나 이 진법은 더 강한 고수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처음 공격은 직접 쳐 죽일 요량이 아니라 표적의 관심을 끌기 위한 허초다. 이제 주유성이 반응을 보이면 다른 네 고수 중에서 오행의 힘을 가장 잘 받는 위치에 가 있는 자가 축적한 힘을 쏘아내 며 뒤를 치기로 되어 있었다. 그것이 이 진법의 핵심 윈리다. 척호주살대에게는 불행하게도 주유성은 진법 전문가다. 일 반적인 전문가라면 이렇게 빠르게 발동하고 움직이는 진법에 대한 분석에 시간이 걸린다. 당연히 결투에서는 제대로 대응 하기 힘들다. 주유성이 가진 진법에 대한 이해가 천하제일이라고 할 수 는 없다. 하지만 그의 진법 해독 속도는 이름이 알려진 진법 가들 중에서는 분명히 천하제일이다. 남들이 몇 시진을 고민 할 진법도 그는 즉시 해독해 낼 수 있다. 그가 아수라환상대진을 해체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진법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깊어서라기보다는 실시간으로 해독이 가 능한 해독 속도 덕분이었다. 그 재주는 북해의 절진을 빠져나 갈 때도 사용되었다. 그런 주유성에게 다섯 명이 펼치는 간단한 오행진의 원리 는 즉시 손바닥처럼 분석되었다. 허초의 검이 날아왔지만 주유성은 움직이지 않았다. 가장 약한 위치에서 날아온 칼이기 때문이다. '이따위 가소로운 진법 수작질에 넘어가면 곽 스승님이 슬 퍼하신다고.' 처음의 칼은 주유성의 앞 허공을 허무하게 가르고 돌아갔 다. 주유성이 움직이지 않자 계획대로 움직인 칼은 그를 치지 못했다. 훈련받은대로 허초를 날리고 몸을 뒤로 뺀 고수는 주유성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자 약간 당황했다. 그러나 진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처음의 공격 이 지나가자마자 곧바로 등 뒤에서 다른 고수가 달려들었다. 그의 검 역시 주유성의 등을 노리는 듯했지만 허초였다. '허초가 아니라 진짜로 찌르려고 하면 그때 가서 잡아채지 뭐.' 주유성은 여유만만이다. 달려드는 기세가 기운이 약하고 살기가 부족하다. 진법의 운용으로 볼 때 정작 강한 힘을 쓸 수 있는 위치는 다른 곳이다. 계속해서 가장 약한 자리에서 튀어나오는 칼들을 보고 내심 콧방귀를 뀌었다. 그렇게 주유성은 가만히 있고 포위한 고수들이 헛칼질을 하는 상황이 몇 번이나 벌어졌다. 구경꾼이 있다면 박장대소 라도 할 상황이다. 추살대의 대장인 참혼적호는 내심 일이 틀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놈이 엄청난 고수라서 허초를 알아보는 것일지도 모른 다. 하지만 스물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는 나이를 생각하면 불 가능한 일. 그렇다면 이 합격진의 원리를 미리 알고 있어서 허초를 구분하는 건가? 그것도 불가능하다. 아무리 삼절서생 이라도 이걸 미리 알 리가 없잖아. 그럼 단지 멍청하게 서 있 는 것뿐인가?' 참혼적호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럴 리가 없지. 그런 어수룩한 놈이라면 성에서 우리를 보냈을 리가 없어. 그럼 이놈의 정체가 뭐기에 이런 반응을 보이고 있지?' 정체야 물론 게으름뱅이다. 하지만 참혼적호가 그것까지 알 수는 없다. 적의 능력을 제 대로 판단하지 못하자 참혼적호의 등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 했다. 대장 자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의 부하인 네 명의 고수 중에서 상황을 경솔하게 생각하는 자가 나왔다. 다섯 방위 중에서 가장 힘을 받는 위치에 막 옮겨 선 고수 가 생각했다. '제대로 반응도 보이지 못하는 놈. 내가 그냥 친다. 이번 일은 크니 공이나 세워야겠다. 이건 참혼적호 놈이 대장질을 하면서 직접 공격한 진으로 잡지 못하고 있는 놈이다. 내가 단숨에 잡으면 내 위신이 많이 올라가겠지.' 주유성의 자세는 어디를 봐도 무공고수의 예리함이 보이 지 않는다. 그리고 허초라고 하지만 공격에 제대로 반응도 하 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 고수는 자신의 판단을 믿었고 오행합격진의 힘을 믿었다. '무림명이 삼절서생이라지? 이놈은 기본적으로 서생이라 는 소리지. 그래서 무공이 약한 거야. 틀림없어.' 그가 다시 위치를 옮길 시간이 되었다. 아직은 다섯 명이 만드는 오행의 힘이 그에게 집중되어 있는 순간이었다. 그는 진법의 흐름을 무시하고 몸을 앞으로 날렸다. 그가 검을 내밀 자 검기가 시퍼런 빛을 뿌릴 만큼 강하게 일어났다. 주변의 공기가 그의 주변에서 폭풍처럼 몰아쳤다. "죽어라!" 그는 자신의 검에 주유성이 두 토막이 나서 죽을 것임을 믿 어 의심치 않았다. 검에 맺힌 검기의 힘은 막강했다. 그의 칼 날이 주유성의 몸통을 정확히 노리고 날아왔다. 맨손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주유성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반응을 보였다. 그의 몸이 달 려드는 고수를 향해 빠르게 회전했다. 그 회전 속도가 어찌나 빨랐는지 달려들던 고수는 주유성의 뒤통수가 갑자기 얼굴로 바뀌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그 꼴을 보고 있던 참혼적호는 일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좋지 않다!' 주유성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의 눈에도 강력한 힘을 가 지고 날아오는 검이 똑똑히 보였다. 무시무시한 위력의 검기 가 그 칼날에 흐르고 있었다. 거기 맞으면 틀림없이 죽는다는 확신이 있었다. '아무리 강력한 칼도 맞지 않으면 그만.' 칼날은 위에서 아래로 사선을 그리며 주유성의 몸통을 베 었다. 주유성의 몸이 비틀 듯 기울어졌다. 어느새 그의 허리 가 옆으로 꺾이며 몸이 칼날의 사각으로 파고들어 갔다. 공격한 고수의 평소 실력이라면 이쯤에서 변화하는 변초를 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검에 깃든 힘이 너무 강했다. 그 고수의 힘으로 초식에 변화를 줄 수가 없었다. 평소의 진법이라면 적의 허점을 찌른 것이니 변호가 없어 도 상관 없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빤히 쳐다보며 피한다면 그 런 단순한 공격은 역으로 약점을 노출할 수 있다.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한 주유성의 주먹이 검을 막 휘두른 자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갔다. 추살대의 고수는 그 공격을 보 며 이를 악물었다. '검을 회수하기는 늦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모인 힘은 크다. 버틴다.' 그는 내공을 끌어올리고 오행진의 기운까지 얻어 몸을 단 단하게 만들었다. 이제 그의 몸에 깃든 기운이 강력하니 권장 정도는 버틸 자신이 있었다. '진법의 무서움을 보여주마. 내가 한 번만 버티면 그 틈에 다른 동료들이 공격해서 너의 목을 딸 것이다.' 주유성의 눈이 반짝였다. 그의 주먹이 힘없이 고수의 몸통 을 툭 쳤다. 빠르게 날아가는 듯했지만 오히려 가벼운 타격이 었다. 고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 바로 다음 순간, 그는 자신의 손목이 주유성에게 붙잡혔다 는 사실을 깨달았다. 버티기 위해서 동작이 굳어진 그 틈을 이용해 펼친 금나수법이었다. '당했다.' 후회는 늦었다. 손목의 통제권은 주유성에게 넘어가 있었 다. 추살대의 고수는 기운을 잔뜩 뽑아내어 그 손을 떨쳐 내 려고 했다. 절로 기합 소리가 나왔다. "히얏!" 주유성의 내공은 강하다. 그 젊은 나이를 감안하면 대단히 강하다. 주유성은 붙잡은 손목을 확 끌어당기며 다리를 걷어 찼다. 고수의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채 중심을 잃고 끌려 왔다. 그 몸통에 주유성의 주먹이 다시 날아갔다. 이미 오행진에서 얻은 힘은 모두 소모한 상태다. 진이 다시 살아나지 않는 한 추살대의 고수는 자신의 내공으로 버텨야 한다. 그런 그의 몸통에 주유성의 주먹이 박혔다. 이번에는 제대로 쓰는 일권이었다. 북 치는 소리와 함께 고수의 몸통이 커다란 주먹 모양으로 움푹 파였다. "커억!" 고수가 짧게 비명을 질렀다. 이미 손에 검을 들고 있을 여 유 따위는 없다. 떨어지는 검을 주유성이 가볍게 낚아챘다. 고수가 습격하고 주유성이 반격한 시간은 눈 깜빡할 사이 다. 그러나 그 사이에 벌써 두 명의 고수가 주유성의 등을 노 리고 달려들었다. 그들은 오행검진의 힘을 얻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그들은 검진의 힘을 얻은 고수가 주유성을 붙잡아둘 거라고 확신하고 공격했다. 주유성이 너무 빨리 처음 고수를 무찌르자 뒤를 습격하던 두 명은 당황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몸을 뺄 수는 없었다. 주 유성의 등짝이 보였다. 그들은 여전히 승리를 기대하며 검을 날렸다. 잘 담금질된 두 개의 칼날이 주유성의 등을 노리고 기울어진 열십자를 그리며 날카롭게 움직였다. 주유성이 손에 잡은 고수의 몸을 와락 당겼다. 그 반작용으 로 주유성의 몸은 앞으로 튀어나가고 고수의 몸은 뒤로 딸려 왔다. 둘의 자리가 순식간에 교체되었다. 제압된 고수의 몸 위로 두 개의 칼날이 서걱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고수가 비참한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그의 몸 위로 열십자 모양의 커다란 상처가 쩍 벌어졌다. 그는 피를 분수처럼 뿜으며 즉사했다. 공격에 참가한 두 명의 고수는 당황했다. 아무리 사파라고 해도 자신의 칼에 동료의 몸이 베인다면 냉정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그들은 찰나간의 시간 동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주유성에게는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의 게으른 몸 이 쓰러지는 고수의 몸을 타고 넘으며 달려들었다. 당황한 두 고수가 급히 검을 들어 막으려고 했다. 주유성은 그들을 스쳐 지나가며 검을 뻗었다. 두 개의 빛이 번쩍였다. 사황성 추살대의 두 고수의 동작이 정지했다. 곧바로 그들 의 목이 쩍 갈라졌다. 참혼적호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놈 더럽게 세다!' 그는 이제 자신의 추살대가 주유성의 상대가 되지 못함을 깨달았다. 다섯 중에 셋이 순식간에 당했는데 그 사실을 모르 면 그게 더 이상하다. '씨팔. 성의 바보 새끼들이 계란으로 바위를 치라고 했구 나.' 자신이 계란임을 깨달았다. 계란 다섯 개를 바위에 던져 봤 자 아무 소용 없다. 하지만 뒤늦게 후회해도 늦었다. 주유성이 다가온다. 그는 급히 검을 휘둘러 주유성의 접근을 막으며 물러섰다. 견제를 위해서 날린 검에 주유성의 칼날이 얽혀들었다. 겁 먹은 참혼적호는 그 검을 강하게 밀어냈다. '그래. 내공은 내가 높은 거야. 그럴 거야. 이놈이 엄마 뱃 속에서부터 내공을 닦았어도 나보다 높을 수는 없어.' 이제 그가 믿을 건 그것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과 주유성의 나이 차이를 믿어보려고 했다. 주유성은 그의 의도에 맞춰주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칼을 마주 밀었다. 두 자루의 검이 허공에서 힘겨루기를 했다. 참혼적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젊은 놈이라 비무 경험이 없구나. 하늘이 나를 버리지 않 았다. 이건 기회다.' 참혼적호가 가볍게 눈짓을 했다. 뒤에 하나 남아 있던 적호 추살대의 고수가 주유성의 등을 향해 조용히 다가오며 검을 휘둘렀다. 주유성의 검이 참혼적호에게 붙들려 있으니 그는 이 공격이 성공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주유성은 비무 경험이 많다. 사실 실전 비무는 용돈을 타내기 위해서 진무경과 한 것이 전부이지만 그 횟수도 적지는 않다. 천하의 게으름뱅이가 한 것치고는 무척 많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과 같은 일 대 다의 비무는 그의 머릿속에서 수 도 없이 많이 이루어졌다. 그런 건 높은 경지의 고수들이 해 야 효과가 있다고 하는 정신적인 수련법이다. 하지만 주유성 은 양지바른 곳에 뒹굴면서 이런 수련을 공상 삼아 엄청나게 했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진 비무들은 단순한 공 상 수준은 아니었다. 주유성은 이런 경우에 대한 대응 방안 같은 것을 잔뜩 가지 고 있다. 애초에 참혼적호와 검을 부딪친 것은 이걸 노리고 한 일이다. 참혼적호는 자신이 적의 검을 붙잡고 있다고 믿었 지만 사실은 주유성이 붙잡혀 준 것이다. 등 뒤로 칼이 움직이는 기운을 느끼며 주유성이 몸을 비틀 었다. 내밀었던 검을 흡(吸)자결로 끌어당겼다. 그와 마주 대 고 있던 참혼적호는 검을 실컷 밀던 상태였다. 참혼적호는 저 항이 사라지고 오히려 흡입력이 발생하자 당황했다. 즉시 초 식을 펼쳐 빠져나오려고 했다. 주유성이 사용한 수법이 참혼적호의 것보다 더 절묘했다. 참혼적호는 흡자결에 그대로 말려들었다. 참혼적호는 자기 가 밀던 힘을 해소하지 못하고 검을 앞으로 쭉 뻗었다. 단순히 그것뿐이라면 이번에는 주유성에게 위기가 닥친 다. 양쪽에서 검이 날아오면 자세가 나쁜 주유성이 수세에 몰 릴 수도 있다. 하지만 주유성은 참혼적호의 검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마음껏 끌어당겼다. 주유성의 몸이 옆으로 기울어지고 참혼 적호의 검이 뒤를 습격하던 고수를 향해 날아갔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고수의 검과 참혼적호의 검이 부딪 쳤다. 두 자루의 칼은 불똥을 튀기며 반대쪽으로 튕겨 나갔 다. 강적을 사이에 두고 동료를 공격한 사실에 당황한 두 사 람은 빈틈을 잔뜩 드러내었다. 그 즉시 주유성의 자세가 급속도로 낮아졌다. 그의 검이 수 평으로 빠르게 그어졌다. 그 칼끝에는 뒤를 습격한 고수의 몸 통이 걸려 있었다. "크악!" 배가 갈라진 고수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참혼적호는 이제 자신에겐 한 번의 기회밖에 남지 않은 것 을 깨달았다. 그는 뒤로 튕겨 나가고 있는 검을 이를 악물고 끌어당겼다. 내공을 끌어올리자 팔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공격 자세를 잡을 수 있었다. 그는 한껏 자세를 낮춘 주유성 의 뒤통수를 향해 검을 힘껏 내려치며 소리쳤다. "죽어!" 주유성은 낮아진 자세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몸을 뒤로 조금 빼며 왼 주먹을 위로 쭉 뻗었다. 그의 몸은 참 혼적호의 몸통 쪽으로 들어가며 검의 사정권을 벗어났다. 그 리고 그의 주먹이 검을 휘두르던 참혼적호의 팔꿈치를 때렸다. 팔이 바깥을 꺾이며 참혼적호의 비명이 이어졌다. "으아악!" 참혼적호의 손에 기운이 빠졌다. 검은 손에서 벗어나 화살 처럼 날아갔다. 그리고 주유성이 몸을 빙글 돌리며 일어섰다. 그의 검은 가볍게 앞으로 움직였다. 칼날이 참혼적호의 가슴 에 깊숙이 박혔다. 참혼적호는 가래가 끓는 듯한 목소리로 더 듬거렸다. "캐, 캐물." "저승에 가면 네가 죽인 정파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 야. 가서 사죄해." 참혼적호는 괴물이란 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썩은 나 무토막처럼 쓰러졌다. 주유성은 다른 놈이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라면서 당소소에게 큰 영향을 받은 그는 정파의 사람들을 죽이고 다 닌 사파의 추살대를 죽음으로 처벌했다. 다섯 명의 습격자 중 살아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감각 에 더 이상의 매복자도 감지되지 않았다. 주유성이 수레로 돌아갔다. 수레의 바닥에는 천이 덮여 있 었고 그 아래에는 무공이 제압된 채 꽁꽁 묶인 순찰사자가 누 워 있었다. 아혈까지 제압되어 말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주유성은 순찰사자의 아혈을 풀어주었다. 말을 할 수 있게 된 순찰사자가 이를 갈았다. "으드득! 그들을 다 죽였느냐?" 주유성이 순찰사자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컥!" "혀가 짧다?" "다, 다 죽이셨습니까?" "그럼 너 같으면 너를 죽이러 온 놈들을 살려서 돌려보낼 래? 그것도 정파의 사람들만 전문적으로 죽인다는 놈들을? 나는 큰 악인은 쳐 죽이라고 배웠다. 저놈들은 충분히 커." 주유성의 말에 순찰사자가 침을 삼켰다. "꿀꺽. 그럼 저를 살려두시는 것은 혹시 제가 작은 악인이 라서입니까?" 그는 주유성이 왜 아혈을 풀어줬는지 불안해졌다. '살인 뒤에는 흥분하기 쉽지. 혹시 나도 죽이려고?' 주유성이 대답했다. "너 아는 게 꽤 많나 보다? 너도 저놈들이 하는 말 들었지? 저놈들은 너를 구하기 어려우면 죽여 버리려고 하던데?" 순찰사자도 그 말을 들었다. 주유성이 그 말을 듣게 해주려 고 일부러 추적자들을 기다렸고 유도 심문까지 했다. 귀머거 리가 아니라면 못 들었을 리가 없다. 순찰사자가 급히 변명했다. "그래도 가능하면 저를 살려서 데려가려고 했잖습니까?" 주유성이 씩 웃었다. "어떻게?" "헙!" 순찰사자가 입을 다물었다. '조금 전에 싸운 상대는 적호추살대다. 본 성의 추살대들 중에서도 상급이지. 그놈은 그 강한 적호추살대를 물 한 잔 마실 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몰살시켰다.' 그의 귀에 참혼적호가 '캐물' 이라고 중얼거리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얼마나 강하기에 괴물이라고 했을까? 이자는 분명히 강하 다. 적호추살대 정도는 손쉽게 무찌를 정도의 실력임에 틀림 없어. 이 인간은 삼절이 아니라 사절이었어.' 지금 그가 주유성의 무공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적호추 살대와의 비교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주유성이 충 분히 강한 사람임을 인식했다. 순찰사자의 머리는 목숨이 걸린 상태에 걸맞게 팽팽 돌아 갔다. '이 자가 지킨다면 성에서 나를 구하기 힘들다. 대병력을 몰아친다면 가능하겠지. 하지만 무림맹이 멀지 않은 곳에서 그런 일을 하느니 차라리 나를 암살하는 것이 훨씬 간편한 일 이다. 이미 데려가기 힘들면 제거하는 것이 낫다는 말까지 들 었으니 틀림없다. 씨팔, 나는 버림받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찰사자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저, 저를 지켜주시겠지요?" "그건 네가 뭘 내놓을 수 있는지 알아야지. 상인은 말이야, 주고받아야 하는 거야. 그게 상도의지. 한쪽의 일방적인 손해 는 좋지 않아." "왜 갑자기 상인을 말하시는지..." "난 상인이야." 자기 편할 때만 튀어 나오는 상인 주장이다. 순찰사자는 욕 이 치밀어 올랐다. '그런 무공을 가진 놈이 상인이면 나는 짐이나 나르는 노새 냐!' 하지만 그는 감히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만큼 미련하지는 않다. "저는 아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니 잘 지켜주시는 것이 아 익이지 않겠습니까?" 주유성이 반색을 했다. "그래, 내 말이 그 말이다. 하지만 니 머릿속에 아무리 좋 은 게 들어 있어도 꺼낼 수 없으면 소용없지. 너는 그걸 내놓 고 나는 너의 안전을 지켜준다. 어때?" 순찰사자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무림맹에 도착하고 불면 안 되겠습니까?" "거기 가서 말을 바꿀지 어떻게 알아?" "하지만 지금 전부 말했다가 대인께서 마음을 바꾸시면 저 는 죽은 목숨입니다." "걱정하지 마라." 그는 장부의 말은 천금과 같다는 식으로 떠들지는 않았다. 그건 말한 자가 장부가 아니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리 다.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보장 수단으로 쓰기에는 부족하다. "누설하면 사황성이 너를 죽이려고 날뛸 만큼의 비밀을 먼 저 말해. 세부적인 사항은 입을 다물어도 좋고. 무림맹에 돌 아가서 네가 입을 다물면 나는 들은 정보를 소문낼 거야. 사 황성의 귀에 들어가도록. 그럼 사황성은 눈이 돌겠지. 무림맹 은 정보도 제대로 내놓지 않는 너를 힘들게 지키려 하지 않 아. 즉, 너는 죽은 목숨이 되는 거야." 순찰사자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불지 않으면 죽인다는 말 보다 더 무섭다. 무림맹은 협박으로 끝날 가능성이 약간 있지 만 사황성은 틀림없이 죽이러 나설 놈들이다. "사, 살려주십시오." "다 불기만 하면 무림맹이 보호해 줄 거야. 무림맹이 보호 하는 자는 사황성에서도 함부로 못해." 주유성은 무림맹에 증인보호제도 같은 것이 있는지는 알 지 못한다. 그래도 책임지고 손을 써줄 생각이다. '사황성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재주껏 살아가게 하지 뭐.' 무림은 넓고 사람은 많다. 숨으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숨을 수 있다. 자진해서 무공을 쓰고 다니지만 않으면 한번 숨은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사황성이라도 그건 힘들다. "그러니까 정보를 좀 불어봐. 예를 들면 얼마 전의 아수라 환상대진 같은 걸 사실은 마교가 아니라 사황성이 만들었다 는 것 같은 거. 그 일에 팔독문도 한몫했다는 식으로 좀 말해 보라고." "허억!" 순찰사자는 기겁을 했다. 순찰사자는 사황성의 고급 정보까지 두루 알고 있을 만한 고위층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아수라환상대진이라고 하는 초특급기밀에 대해서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가 가진 가장 고급의 정보다. 그걸 주유성이 먼저 들이밀었다. 아수라환상대진에 대해서는 사황성에서도 장로들과 진법 관련 실무자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는 그걸 만드는 공사를 수행한 자들도 자신들이 뭘 만들었는지 모를 정도였 다. 그 과정에서 살인멸구당한 일꾼들도 제법 있다. 그런 고급 정보를 이미 무림맹이 알고 있다면 자신은 내놓 을 것이 많지 않다. 이제 대충 맛만 보여주고 말 상황이 아니 다. 순찰사자가 울상이 되었다. "그, 그것까지 알고 계시면 더 뭘 원하시는 겁니까? 여하튼 제가 가진 것은 전부 불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남의 등이나 쳐 먹고사는 것이 사파다. 자기를 죽여 입을 다물게 할 생각까지 있는 사황성이다. 그에게 목숨을 걸고 사 황성에 바칠 충성 같은 것은 없다. 주유성이 내심 쾌재를 불렀다. "괜찮아. 아는 것만 성실하게 말하면 돼. 그러나 맹의 어른 들이 얼마나 말해야 만족하실지 몰라. 욕심이 좀 많은 어른들 이거든. 그러니까 무림맹에 가면 아는 건 시시콜콜한 것까지 모조리 불어야 할 거야." "물론입니다. 아예 지금 한 점 숨기는 것 없이 다 말하겠습 니다." "그럼 그전에 먼저 약속의 증표로 아수라환상대진에 얽힌 이야기나 조금 들어볼까? 내가 아는 것과 맞는지 비교해 봐야 지. 만약 틀리는 게 나오면 혹시 네가 거짓을 말하는 게 아닌 지 확인해 보겠어. 거짓말로 판명나면 넌 죽은 목숨이야." 순찰사자는 이미 주유성이 그 문제에 대해서 상당한 정보 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오히려 자신이 아는 것이 적어 걱 정이었다. 그는 아는 것을 모조리 불기 시작했다. 주유성은 순찰사자를 상대로 한 낚시에서 월척을 낚았다. 순찰사자는 주유성에게 각종 고급 정보는 물론이고 그가 사황성에서 저지른 비리까지 남김없이 불었다. 순찰사자가 아는 것 중에 사황성의 일급정보는 아수라환 상대진 사건뿐이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꽤나 상세하 게 알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주유성이 한숨을 푹 쉬었다. "아, 젠장. 그래도 아니기를 바랐는데. 무림 돌아가는 상황 을 봐도 그렇고, 평소에 사황성 놈들 성향을 봐도 그렇고. 거 기다 네놈 이야기를 얹으니 더 의심이 가네. 젠장. 사황성 놈 들, 슬슬 이빨을 드러낼 생각인가? 결국 무림맹에 가서 회의 한 번 해야 하기는 하겠구나." "네? 무, 무슨 말씀을?" "사황성이 미쳤다는 소리다. 가자." "어, 어디를요?" "어디기는 어디야, 무림맹이지. 이제부터 수레는 네가 몰 아라." 순찰사자가 즉시 마부석에 앉았다. 주유성은 수레 뒤에 드 러누웠다. 주유성은 죽음의 계곡을 휘젓고 다닐 때 앞으로는 서현에 틀어박혀서 절대로 나오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다. 특 히나 무림맹에는 아예 발도 들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기 발로 무림맹에 돌아가고 있었다. 주유성이 수레에 누워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딱 한 번만이야. 난 무림맹에다가 경고 한 번만 제대로 하 고 집에 갈 거야. 그리고 다시는 안 나올 거야. 하늘이 무너져 도 무림은 니들이 알아서 지키라고 할 거야. 진짜야." 게으름뱅이가 참 야무진 꿈을 꾸었다. 6권 끝 |
첫댓글 ㅎ늘 감사 히 잘읽고 갑니다
즐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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