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홀아비의 인생 (장편소설)
작가: 백화 문상희
낭독: 김인희 소설가 (댕댕이와 책을..)유투브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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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총 9부 4화로 꾸며진 장편소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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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고향으로 가는 기차표
ㅡㅡㅡㅡㅡ (1화)ㅡㅡㅡㅡㅡ
60대 중반 조민수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세 번을
죽음 문턱까지 가는 모진 고생을 하였다.
한 여자와 살면서 별거와 재결합 그리고 또다시
이혼이라는 아픔도 겪었다.
조민수는 세 아이를 키워가며 사십 대, 오십 대,
피 끓는 시퍼런 청춘을 홀로 보냈다.
어느 정도 생활 형편이 나아지고 평생소원이었던
시인의 꿈도 이루었다.
그러나 팔자에도 없었던 출판사를 인수하면서
노년을 위해 저축을 해두었던 돈마저 모두 까먹었으니
노년의 안녕도 깨져버렸다.
조민수는 피폐해진 몸뚱이를 이끌고 노년의 시름을 달래고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낙향의 길을 선택했다.
민수는 고향으로 가는 경부선 하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 빠르지도 않은 무궁화 열차 좌석을 찾아서
자리에 앉았다.
민수는 의자 깊숙이 등짝을 기댄 채 깊이 잠들어
동심 속에 빠져 들었다.
백화산 상상봉 933미터 아래 500 고지 용호리
열 가구도 채 안 되는 산간마을이 있었다.
1970년 8월 일요일 어느 날이었다.
아랫마을에 사는 국민학교 3학년 민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탑골 종조할 베 집으로 갔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민수는 할아버지께 공손하게 인사를 드렸다.
"그래 민수 왔구나,
놀다가 점심 먹고 가거라!"
"예, 알겠습니다 할아버지!
재민이 아재는 어디 있나요?"
"저기 뒷마당에 있나 보다 가서 찾아보거라!"
"예, 알겠습니다 할아버지~!
"아재야~~~!
목소리 우렁찬 민수는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서
재민이 아재를 불렀다.
다섯 살 아래 재민이 아재가 반가워서 뛰어왔다.
"응, 형아 왔네?"
형아 우리 가재잡으로 가자!"
그래, 알았어 아재야!
"그래 주전자는 어디에 있냐?"
"엉, 두지(헛간)에 있을 거라!
종조할아버지 댁 막내 재민이 아재는 언제나 민수를
형으로 불렀다,
민수와 재민이 아재는 찌그러진 주전자 한 개씩을
들고 도랑으로 향했다.
둘이는 형제처럼 손을 잡고 언제나 같은 동요를 불렀다.
"무궁~ 화 무궁~ 화 우리나라 꽃...
도랑이 가까운 곳에 있어서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개울에 도착했다,
천혜적인 산간마을이라 오염도 환경파괴도 없는
그런 곳이었다.
피라미 튀김을 먹고 싶을 땐 족대질을 하면 되었다.
송사리 피라미를 두 시간이면 한 주전자 가득 잡았고
고소한 메뚜기볶음을 먹고 싶을 땐 빈 소주병을
들고 한나절이면 한 병 가득 잡았다
오늘은 재민이 아재가 가재를 잡자고 해서 나왔다
가재를 둘이서 잡을 땐 같이 있으면 안 된다
가재는 돌덩이 아래에 숨어있어서
돌을 들추면 흙탕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재민이 아재는 여기서 가재를 잡아~!
나는 저 아래 가서 잡고 있을 테니까 알았지!"
"응, 알았어 형아,,
민수는 열두 살이었고 재민이 아재는 일곱 살이었다.
그러니까 당연지사 민수가 많이 잡을 수밖에 없었다.
민수는 두어 시간 만에 거의 한 주전자를 잡았다.
그 시점에 재민이 아재가 민수에게 내려왔다.
"형아, 가재가 너무 빨리 도망가서 못 잡겠어!
나 조금만 주라,,
"안되여!
나는 어머니에게 같다 드릴 거야!
올 때 가재잡으로 간다고 말씀을 드리고 왔어!
"그래도 힝,
나 조금만 주라 형아야!"
"안된다고 내가 그랬잖아!"
"형아, 배고프다 집에 가자~!"
"그래 나도 이제 갈 거다!
조금만 기다려!
알았지 아재야!"
민수는 조금 전에 모래에 홈을 파서 가재를 가둬놓고
주전자를 가지로 갔다
그런데 주전자에 가재가 절반밖에 없었다
재민이 아재 주전자 뚜껑을 열어보니 가재가 가득했다
"재민아!
내가 잡은 가재 네가 훔쳐갔잖아!"
"히이잉...
나는 세 마리밖에 못 잡아서 조금 덜어갔어 형아야!"
"안돼, 이리 줘!
실랑이를 하다가 주전자가 도랑에 엎질러졌다.
"인마!
왜 내 가재를 훔쳐가여!"
민수는 화가 나서 꿀밤을 몇 대 쥐어박았다.
"엉 엉 엉...
재민이 아재는 할아버지 댁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울음보가 터졌다.
"아버지!
형아가 가재 훔쳐갔다고 나를 때렸어 엉 엉 엉!"
"민수 네이놈!
어디 감히 아재비를 때려!
이런 천하에 못된 놈!
니 아비에게 말해서 단단히 교육을 시켜야겠다!
야 이놈아!
뱃속에 할아비도 있는데 감히 아재비를 때려!
"재민아!
"예, 아버지!"
"너도 똑같다 이놈아!
예전에 내가 가르쳐 줬잖아 이놈아!
민수가 나이가 더 많아도 조카라고 불러야지!
형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했잖아 이놈아!"
잠시 후 한숨을 내쉰 후 진정을 한 할아버지 말씀이었다.
"이놈들아 내 말 잘 알아 들었느냐?"
친척간에도 촌수가 있는 법이다 이놈들아!
니 아비와 나는 사촌 간이고
재민이는 나이가 적어도 너의 오촌 당숙이다 이놈아!
이다음부터는 꼭 아재와 조카 이렇게 부르거라!
알았느냐 이놈들아!"
"예 할아버지 잘 알겠습니다!"
민수는 집에 돌아와 엄마와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지만
돌아온 것은 무릎 꿇고 또 따끔한 훈계를 들었다
"배고프지 정수야!
그렇게 말씀하시며 늦은 점심을 차려주셨다.
민수는 그날 이후로 촌수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았다.
몇 해가 바뀌어 민수는 열다섯 살이 되었고
중학교에 입학한 어느 사월이었다.
"민수야!"
"예, 어무이요!"
"헛간에 땔거리가 떨어졌단다!
뒷산에 가서 나무를 좀 해오너라"
"예~!
내일 모래 일요일에 산에 가서 한 짐 해올게요!"
"그래, 언제든지 산에 가면 뱀 조심하거라!"
"예, 알았어요 어무이!"
일요일 민수는 제 키만큼 큰 지게를 지고 나섰다.
지겟다리 한쪽엔 점심으로 먹을 삶은 고구마 봉지가
걸음 따라 대롱대롱 춤을 추고 있었다.
백화산 중턱엔 어릴 적 생명줄인 어머니 젖무덤을
꼭 닮은 민둥산이 있었다.
그곳은 사레와 신안이라는 동네에서 올라오는
길목으로 일종의 삼각지였다.
그 삼거리에서 쉬다 보면 학교 친구나 형들을
만나는 곳이었다.
오늘은 운 좋게도 사레마을에 사는 동갑내기
진우를 만났다.
"진우야!
너도 나무하러 왔어?"
"그래, 민수야!
나는 솔잎 긁어가려고 마대자루 가지고 왔지!
"야~, 잘됐다 진우야!
사실은 무서워서 나는 누가 오기를 기다렸다 야!"
"민수야 너는 그 소식 들었냐?"
"무슨 소식인데 난 몰라!"
며칠 전 새벽에 호래이 소리가 났었는데
우리 동네 개들이 똥오줌을 싸면서 몇 마리나 죽었어!"
"응, 학교에서 준식이 형에게 들어봤어!
그런데 우리 아부지가 예전에 말씀하셨어!
호래이 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가 있다고 말씀하셨어!
우리 정신 바짝 차리고 나무를 하면 되겠지 뭐!"
"그래, 잘됐다 민수야!
그럼 우리 같이 올라가자!
두 명이 있으면 호래이가 안 덤벼든단다 야?"
"응, 우리 집에는 장작도 떨어졌어!
그래서 나는 소나무 고사목 해가지고 갈려고 톱을 가지고 왔지!"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여기 근처에서 하자!"
민수와 진우는 그 무시무시한 호랑이 때문에
마주 보고 말을 이어가면서 나무를 했다.
"야, 진우야 솔잎 마이 담았냐!"
"어, 이제 다돼 가여!
조금만 더하고 점심 먹자 민수야!"
"그래 나도 한 짐 다 돼 간다 진우야!"
민수와 진우는 나무는 꼭 해야만 하고 호랑이 소문 때문에
벌벌 떨면서 나무를 했다.
"나는 고구마 삶은 것 가져왔는데 진우야 너는
점심 뭐 싸가지고 왔어?"
"응, 나는 당은 뿌려서 찐 감자 가지고 왔지!"
"잘됐다 진우야!
우리 반씩 나눠서 먹자!"
"그래, 민수야!
우리 고시내하고 먹자 야!
고시내를 해야 산신령이 우리를 지켜준데에!"
"그래 맞아여 진우야"!
민수와 진우는 그렇게 점심을 때우고 민둥산
삼거리까지 같이 내려왔다.
"민수야 잘 가라!
내일 학교에서 보자!"
"그래 진우야 너도 잘 가!"
민수의 지게엔 말라죽은 고사목이 한 짐 가득 실려있었다!
바짝 마른 소나무라서 그렇게 무겁지는 않았다!"
"어무이요!
고사목 한 짐 해왔어요!"
"그래, 민수야 고생했다!
도랑에 가서 씻고 얼른 저녁 먹어라!"
"그런데 어무이요!
아부지는 언제쯤 오세요?"
"모르겠다!
니 아부지는 한번 나가면 함흥차사라서
언제 올지 나도 모른다 얼른 밥이나 먹어라!"
"예, 알았어요 어무이요!"
민수 아버지는 못 말리는 노름쟁이였다.
선비집 아들이라고 농사짓는 것도 모르고
시장에서 가축과 농산물 떠돌이 중개상을 하며
이문이 남으면 집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노름판을 전전하는 한량 남편이었다.
"어무이요!
다음 일요일엔 사레마을 진수하고 준식이 형이
칡뿌리 캐러 가자고 하네요!"
"그래, 민수야!
저번달에 네가 캐논 칡뿌리 장사꾼이 와서
팔았단다!
그 돈으로 쌀 하고 보리쌀 사고도 좀 남았단다!
"어무이요!
팔았으니 다행이네요!
다음 주에 또 마이 캐 올게요!"
"그래, 민수야!
네가 니 아비노릇을 하는구나 고맙다!
여기 십원 남았으니 공책도 사고 눈깔사탕도
사 먹어라!"
"예, 어무이요!
고맙습니다!"
그 당시 칡뿌리 한지게면 쌀 20kg과 맞먹었다.
민수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주 토요일 오후는
장작을 패고 일요일엔 번갈아 가며 나무와 칡뿌리를 캤다.
(2부 ) 청춘에 소천하신 어머니
그러던 오월 어느 장날 면서기 우식이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헐레벌떡 들어오셨다.
"민수야~, 너 아버지 어디 있냐?
"안녕하세요 우식이 아저씨!
저는 아부지 본 지가 벌써 오래됐는데요?"
"니 아버지가 나한테 육촌 아저씨뻘 되지만
차암 못 말리는 분이시구나 허허 참!"
"너 어머니가 장날 행상 나갔다가 쓰러지셨다!
그러니 얼른 나하고 장터로 가보자!"
"예, 아저씨 어무이는 어디에 계시나요!"
"얼른 자전거 뒤에 타봐라!"
민수는 우식이 아저씨 자전거 뒤에 타고 웃장터
우시장으로 갔다.
민수 어머니는 우시장 입구 벽에 기댄 채 식은땀을
흘리고 계셨다.
"어무이요!
어디가 아파서 그러세요?"
"그래, 민수야!
이제는 좀 괜찮아졌단다!
기운이 떨어져서 일어나다가 넘어졌단다!"
"어무이요!
여기 조금만 더 앉아계세요!
제가 아재 집에 가서 리어카를 빌려올게요!"
민수는 빌려온 리어카에 어머니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무이요!
조금만 앉아계셔요!
아재 집에 리어카 같다 주고 올게요!"
민수가 사는 면소재지 동네는 병원이 없었고
보건소가 있었으나 그것도 격일제로 문을 열었다.
이튿날 민수는 우체국으로 가서 대전 백화점에 근무하는
누나에게 이런 사실을 전보로 알렸다.
그 당시엔 전화 전보는 우체국에서만 가능했었다.
또한 민수는 주변에 아버지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아버지 소식을 수소문해서 기어이 계신 곳을 알아냈다.
"아부지요!
어무이가 장날에 행상을 하시다가 쓰러지셨어요!
빨리 집으로 가 보시데이!"
"그래 알았다!"
까칠한 수염에 눈이 움푹 들어간 민수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셨다.
참으로 원망스럽고 한심한 아버지요 남편이었다.
그래도 한 줌의 양심은 남아계셨던 아버지였나 보다.
아버지는 부엌으로 가서 찬장을 뒤져서 죽을 끓였다.
어머니는 죽이라도 조금 드시고 보건소로 향했다.
아버지는 곧 죽어도 양반 행세를 하시느라 언제나
뒷짐을 진채 두 발짝 뒤따라 오셨다.
민수는 어머니를 부축하고 면사무소 옆 보건소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갔다.
"안녕하세요 의사 선생님!
어제 저의 어무이가 쓰러지셨는데 좀 봐주세요!"
"음~, 그래 어디 보자꾸나!"
하시며 어머니 가슴과 등짝에 청진기를 여기저기
움직이며 진찰을 하셨다.
"맥박도 고르지 않고 심박도 아주 불규칙하네요!
아무래도 큰 병원에 모시고 가보세요 아버님!"
하시며 아버지를 올려다보셨다.
"예, 알겠습니다 의사 선생님!
그런데 애엄마가 혹시나 불치병은 아닌가요?"
"그것은 저도 모릅니다!
여기는 엑스레이가 없어서 대구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셔야 알 수가 있답니다!"
"예, 알겠습니다 의사 선생님!"
집으로 돌아온 민수 아버지는 때늦은 후회를 실감하며
그때부터 남편의 책무감으로 간호를 했다.
며칠이 지나서 대전에 있는 누나에게 전보가 왔다.
"아버지 전 상서.
대전에 있는 이 여식은 직장일로 갈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한 달 치 월급을 가불 해서 보내드리오니
그 돈으로 어머니를 큰 병원에 모시고 가주세요!"
전보와 함께 우체국으로 한 달 치 월급을 보내주셨다.
대구를 택시로 가려면 택시비가 쌀 한 가마 값이었다.
대전에 있는 누나가 보내준 돈으로 그 비싼 택시를
불러 타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대구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셨다.
하루가 지나서 토요일 오후였다.
신기하게 생긴 새나라 택시 한 대가 마당으로 들어왔다.
마루에는 이모님과 이모부님이 오셔서 앉아계셨다.
아버지는 고개를 숙인 채 어머니를 모시고 내렸다.
"그래 어떻게 됐는가 동서!"
이모부까지 나서자 민수 아버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처형 죄송합니다!
간경화증 말기라서 손을 쓸 수가 없답니다!"
"아이고 이 사람아!
자네가 그렇게 속을 썩였으니 간경화증이 왔지!
자네가 잘했으면 그런 병이 오겠는가 이 사람아!
이제는 처제가 죽 든 살던 자네 마음대로 하게!
다시는 우리 집사람이나 날 볼 생각도 하지 말게!"
하시며 이모부님은 이모님 손을 잡고 가버리셨다.
민수 어머니는 그때부터 진통제에 의존해서 사셨다.
민수 아버지는 군 의무대 복무 경험으로 손수
민수 어머니에게 진통제 주사를 놓으셨다.
"민수야!
주사약이 떨어졌으니 화동에 가서 약을 사 오너라!"
"예, 아부지 다녀오겠습니다!"
민수가 사는 동네는 그 바랄긴 진통제가 없었다.
약이 떨어지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8km 떨어진
화동면에 가서 사 와야 했고 약값은 대전에 계신
누나가 매번 우체국으로 보내주셨다.
민수는 그때부터 아버지가 타고 다니는 커다란
짐 자전거를 타야만 했다.
민수의 덩치보다 더 큰 자전거였다.
한 해가 지나서 사월 어느 날인가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이었다.
"민수야, 민수야 빨리 좀 일어나 보거라!"
"예, 아부지요!
무슨 일이세요!"
곤하게 잠들었던 민수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너 엄마가 위독하니 얼른 주사약을 사 오너라!"
"아부지!
저번에도 외상으로 약을 사 왔는데요!
또 외상으로 약을 줄까요?"
"걱정 마라 민수야!
내가 편지를 썼으니까 보여드리고 약을 사 오너라!"
"예, 알겠습니다 아버지요!"
민수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비포장 밤길을
자전거로 내달렸다.
비가 오는 날이면 오래된 무덤에서 인골화 불이
번쩍였다.
민수는 무서우면 무서울수록 자전거 페달을
더 힘껏 밟았다.
민수는 이미 비와 땀으로 옷이 흠뻑 젖었다.
새벽 시간에 화동면 소재지도 캄캄한 암흑이었다.
"똑똑똑. 똑똑똑!
민수는 아무리 문을 두들겨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한참을 두드리자 약사님이 등불을 들고 나오셨다.
"아이고 모동에 효자 자전거 신동이 왔구먼 그래!
캄캄한 밤중에 도대체 무슨 일로 왔는가?"
"예, 약사님 어무이가 마이 아프십니다!
그리고 여기 아부지가 편지를 써주셨습니다!"
민수는 비닐로 싼 편지를 약사님께 드렸다.
"그래, 자전거 신동 우리 효자가 고생이 많았네!
여기 주사약이 있으니 조심해서 가져가거라!
그리고 너 아버지에게 말씀드려서 밀린 약값을
다음번에 꼭 가지고 와라 알겠지?"
"예, 고맙습니다 약사님!"
민수는 오는 길도 죽자 사자 페달을 밟았다.
먼동이 틀 무렵에서야 집에 도착을 했다.
"아부지요 약 사가지고 왔어요!"
"그래, 고생했다 정수야!
이제는 그 약도 소용없구나!
너 엄마가 저세상으로 갔단다!"
때늦은 아버지의 비통한 울을 소리가 빗속을 뚫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춘삼월 봄비 내리는 어느 날 아침
마흔넷 꽃다운 나이에 저세상으로 소천하셨다.
민수의 나이 그때 십육 세 중학교 2학년이었다.
어머니가 소천하신 해 막 네 동생은 네 살이었다.
민수는 위로 누님 한분 여동생이 셋이었다.
"아부지요!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아버지!"
"걱정 마라 민수야!
산사람 입에 설마더라 거미줄 치겠냐?
내가 장터에서 토끼를 열 마리 사 왔다!
그 토끼 잘 키우면 먹고는 살 것이다 민수야!"
"그렇다고 토끼가 밥 먹여 줍니까 아부지!"
"민수야!
토끼는 번식력이 좋아서 일 년만 지나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매년 열 배로 불어난단다!
그러니까 네가 열심히 키워보거라!"
"예, 알겠습니다 아부지요!"
민수는 학교를 파하면 매일 들판으로 나가서
토끼들 먹을 풀을 베어지게로져서 날랐다.
아버지 말씀대로 일 년이 지나자 정말로
토끼의 숫자가 열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큰돈을 벌어야
여섯 식구가 먹고살 수 있다면서 객지로 나가셨다.
"민수야!
아버지가 도시로 나가서 돈 벌어 올 테니까
이모집 도움을 받아가며 살고 있거라!"
"아부지요!
아부지 집 비우면 저 토끼들 빚쟁이가 가져가면
어떻게 합니까!"
"걱정 마라 민수야!
아버지가 없는데 설마 가져가겠느냐!"
"예, 알겠습니다 아부지!"
민수는 아버지 말씀을 그때 처음으로 믿었다.
그렇게 토끼 열 마리를 집에 들여온 뒤
일 년이 지나자 정말로 이백마리 정도가 되었다.
민수는 오일장 서는 날이면 토끼를 한두 마리 내다 팔아
학용품과 때꺼리를 사서 생활을 이어갔다.
아버지는 도회지로 가신 후 일 년 동안 소식이 없었고
돈을 부쳐준 적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좁은 길로 부르릉부르릉 거리며 삼발이 용달트럭이
집으로 오고 있었다.
민수는 혹시나 아버지가 오셨을까 궁금해서
맨발로 뛰어나갔다.
그 트럭에는 풀이 가득 실려있었다.
아저씨 두 명이 차에서 내려 토끼장 굴 앞에
풀을 모두 내려놓았다.
굴 속에 있던 토끼들은 풀냄새를 맡고 밖으로 나왔다.
그사이에 험상하게 생긴 아저씨 두 명이 먹이를
먹으로 나온 토끼를 모두 트럭에 실었다.
민수는 트럭 앞을 막아섰다.
"우리는 우에 살라고 가져갑니까?"
"안됩니다 절대로 안됩니데이!"
"내가 니 애비를 만나서 얘기를 했다 이놈아!
"여기 차용증도 있다 보거라 이놈아!
어린놈이 아무것도 모르고 까불고 있어!"
그들은 그렇게 토끼를 몽땅 가져가버렸다.
민수는 애지중지 키워온 살림 밑천인 토끼를
빚쟁이가 모두 가져갔으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
동생들도 모두 나와 멍하게 바라보았다.
"오빠, 무슨 일인가요?"
"저 아저씨들이 토끼를 모두 가져갔단다!"
그때 굴 속에 남아있던 토끼 두 마리가 밖으로 나왔다.
민수가 자세히 살펴보니 암수 한쌍이었다.
조금이라도 희망이 남아있었던 것이었다.
그 이후 민수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그 토끼
두 마리를 희망의 등불로 삼아서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도회지로 가셨던 아버지에게
편지가 왔다.
"민수야!
내가 삼촌집과 이모집에 편지를 보냈단다.
그러니 막내는 이모집에 맡기고 큰애들 둘은
삼촌 집에 맡기고 서울 용산역으로 올라오너라!
내가 서울에 너의 일자리를 알아보았으니
내 말대로 동생들을 맡겨놓고 서울로 올라오너라"
그때 민수의 여동생은 열두 살, 열 살 , 그리고
다섯 살 막내가 있었다.
또한 삼촌은 배가 달랐기에 형님인 아버지를
잘 따르지도 않았다.
민수는 아직 어렸기에 아버지의 명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민수는 아버지의 편지 내용대로 동생들을 이모집과
삼촌집에 맡겨두고 서울로 올라갈 채비를 하였다.
민수가 살던 집은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이었는데
그 뒤로 폐가가 되어버렸다.
민수는 학교도 포기하고 십칠 세 어린 나이에 서울
용산역에 내렸다.
민수는 편지에 적힌 주소대로 물어물 어서
아버지가 계신 곳을 찾아갔다.
"그래, 민수야 고생 많았다!"
"아부지요!"
어째서 그렇게 무심하셨습니까!"
민수는 반가움 반, 원망이 반이었다.
민수는 아버지가 알선한 합판공장 합판 상하차
인부로 취직을 했다.
민수가 서울에 올라온 지 일 년쯤 지났을 때
대전에 살던 누나가 제과점 하는 사람에게
시집을 갔다.
그 이후 민수 누나는 남편을 설득해서 그때부터
민수 누나가 동생들을 데리고 키우셨다.
민수는 일단 한시름 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민수가 합판공장에서 일 년쯤 일하고 있을 때
시골 삼촌 집에서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전보로 보냈다.
그러나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나 장수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전보는 소실되었다.
민수는 그 이후 누나가 보낸 편지 사연으로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다.
민수 아버지는 담배를 좋아하셨기에 결국은
폐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편지에 써져 있었다.
민수는 그날 세상 태어나 처음으로 많은 술을 마셨다.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는 비애 섞인 술이었다.
민수가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생각한 일이었지만
민수 아버지는 참으로 우유부단하고 책임감 없는
남편이요 자식을 거느린 아버지였다.
민수의 나이가 스무 살 되던 해 시골 삼촌에게
전보가 왔다.
"입영 통지서가 왔으니 삼촌 집으로 와서
징집 통지서를 가지고 입영을 해라!"
전보 내용은 그렇게 쓰여있었다.
민수는 월급의 일부는 동생들의 생활비로 보냈다.
민수는 시골 촌놈이라서 성격상 서울 생활에 쉽게
적응을 못하며 어렵게 삼 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토요일 저녁 민수가 일하는 회사 동료들이
민수의 입영 환송식을 열어주었다.
민수는 이 사람 저 사람이 주는 술을 받아먹다 보니
술이 많이 취했다.
민수는 기숙사로 먼저 돌아와 시름에 빠졌다.
민수는 막상 입영 통지서 전보를 받고 보니 고생만
하고 살아온 과거사가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민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호의호식은커녕
허망한 고생만 하고 살아왔다.
아버지가 사주신 토끼에 희망을 걸고 살아왔건만
그마저도 빚쟁이에게 빼앗겼다.
민수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 아버지를 모시고
형제들이 함께 모여서 사는 것을 꿈꾸어 왔으나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막상 입영통지서 소식을 듣고 보니 더 이상 민수의 삶에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민수는 아픈 과거를 잊으려고 흑백 티브이를 켰다.
민수는 그때 티브이 불빛에 비친 조그만 통을
발견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수면제라고 쓰인 통에 수면제가
가득 들어있었다.
민수는 순간적으로 이렇게 살면 뭐 하겠는가 하는
자괴감에 빠졌다.
"그래 민수야!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고아 아닌 고아처럼
살면 뭐 하겠나 민수야!
그냥 이 수면제 먹고 그냥 죽어버리자!"
민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술기운에 그 수면제를
모두 다 먹어버렸다.
이튿날 회사 동료들은 민수가 술을 많이 마셔서
자는가 보다 하고 근처에 있는 뚝섬유원지로
놀러 나갔다.
민수는 이틀 동안 잠들어 있었다.
뒷날 출근시간에 민수를 깨웠으나 그때는 이미
민수는 혼수상태였다.
민수는 승용차 뒷좌석에 실려서 근처에 있는
한양대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고
위 세척 응급처치 시술 후 삼일 만에 깨어났다
민수의 명줄은 하늘이 쥐고 있었기에 더 부려먹을
이유가 있었는지 그렇게 살려주었다.
어쩌면 그 이유가 삼십 년 간 부모님 제사를
모시게 하였고
아버지가 저지른 업보를 물려받아 자식 세명을
부양케 하는 하늘의 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민수는 군복무를 마치고 고향에 들렀지만
단 한 평의 땅도 머물 곳도 없었다.
민수는 고향땅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민수는 고향에서 이리저리 일자리를 알아보았으나
그 또한 마땅한 곳이 없었다.
민수는 동대문 근처에 있는 누님과 자형에게
전역인사를 하려고 들렸다.
"자형, 누님!
덕분에 민수는 군복무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충성!"
"그래, 군복무 하느라 고생했네!"
민수는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누님과 자형에게
일자리를 부탁하였다.
민수는 예전에 자형 밑에서 일 년간 빵집에서
일한 경험으로 혜화동에 있는 제과점에 취업을 했다.
민수는 주경야독이라는 문구의 매력에 이끌려
못다 한 학구열로 공부를 시작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사설 공립학교를 거쳐 검정고시를
수석으로 패스를 했다.
민수는 가진 돈도 없거니와 여러 가지 여건상
방송통신대 국문과 야간 학과에 입학을 했다.
민수는 주말이면 마로니에 공원에 들러
시인의 꿈을 조금씩 키워나갔다.ㅁ
*이후 문장은 장편소설이라서 유투브로 대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