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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넓다-기행문 스크랩 봉화에 닭실마을이 있다 2
깜쌤 추천 0 조회 122 11.04.02 08:52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봉화라는 곳이 알고보면 꽤나 재미난 고을이기도 입니다. 앞글에서도 잠시 이야기했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라면 누구나 소나무를 떠올릴 것입니다. 오죽하면 애국가 가사에까지 "남산위에 저 소나무~"하는 식으로 나오겠습니까? 물론 애국가 가사에 등장하는 남산은 서울의 목멱산,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서울 남산을 의미한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소나무의 종류도 몇가지 됩니다. 우리나라의 봉화와 울진 산간지방에서 자라는 굵고 키가 아주 큰 멋진 소나무 종류를 특별히 금강소나무(=금강송)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제재소에서 나무를 켜기위해 베어 온 나무를 잘 살펴보면 봉화와 울진의 깊은 산골에서 구해온 소나무들은 유난히 겉과 속이 붉은 빛이 많이 난다고 해서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강송 혹은 적송(赤松)이라고 부르면서 귀하게 여겨왔습니다. 

 

 

그런 소나무의 특산지가 바로 봉화이기도 합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억지춘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억지춘향'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어느 말이 맞느냐 하는 것에는 모두들 상당한 근거와 주장이 있습니다. 바로 아래에 올려둔 지도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뚱딴지처럼 갑자기 지도가 올라오니 의아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억지춘양(春陽)'이라는 말이 맞고 '억지춘향'은 와전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합니다. 경상북도 북부지방에 자리잡은 영주에서 강원도 강릉쪽으로 이어지는 철길을 영동선으로 부르는데 일제강점기 말기에 해당되는 1944년에 공사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영주와 춘양(봉화군에 있는 고을 이름입니다)을 잇는 철로를 만들기로 했던 모양입니다. 잘 알다시피 이 부근에는 희귀광물이 생산되는 지역이 있어서 일본으로서는 태평양전쟁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군수물자를 생산하고 운반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무기를 제조하는데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중석이나 망간같은 물질이 많이 묻힌 봉화 인근지역을 개발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지사였겠지요.   

 

 

일본이 전쟁에 지고나서는 당연히 한반도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정부에서는 잠시 숨을 추스린 뒤 1949년부터 영주와 강원도 철암을 잇는 영암선 철도 공사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강원도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석탄이 필요했던 것이죠. 도로가 잘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석탄을 대량으로 수송하기 위해서는 철도건설이 필수적이었습니다.

 

 그 이듬해에 벌어진 육이오 전쟁으로 인해 공사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 공사는 재개되었고 이 와중에 문제가 벌어졌다고 전해집니다. 당시에는 자유당이 정권을 잡고 있었는데 춘양출신의 자유당 국회의원이 강력하게 우겨서 춘양을 거쳐서 철도가 돌아나가도록 설계를 변경시켰다는 것이죠. 그래서 생긴말이 억지춘양이라는 것입니다. 위에 올려둔 지도를 보면 대강 이해가 될 것입니다.

 

 

 춘양이라는 고을 이름이 춘향전에 등장하는 춘향과 비슷해서 어떤 사람들은 '억지춘양'이 아니고 '억지춘향'이 맞는 말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변사또가 성춘향에게 억지로 수청을 들게 하려는데서 생긴 말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장황하게 춘양전 이야기까지 꺼내는 이유는 봉화가 그런 사실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춘향전에 등장하는 암행어사 이몽룡이 실은 봉화사람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죠. 그럼 다시 아래 사진을 볼까요?

 

 

닭실마을로 가는 길에 봉화군청 못미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몽룡생가가 봉화에 있다는 것이죠. 이런 이야기는 연세대학교 교수님이신 설성경교수의 "이몽룡(성이성)의 러브스토리" 라는 연구논문 속에 나오는 사실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분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춘향전의 남자 주인공인 이도령의 모델이 바로 성이성이라는 분이라는 것이죠. 공교롭게도 성이성의 생가(生家)인 계서당이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 301번지에 자리잡고 있다는데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봉화라는 곳이 알고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고을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봉화초등학교와 봉화고등학교를 지난 뒤 춘양방면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닭실마을의 지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물야쪽으로 아주 조금 올라가다가 계곡을 따라 마을로 들어가는게 제일 좋다고 합니다만 시간이 급한지라 편하게 도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작은 고개를 하나 넘어서면 곧이어 왼쪽편으로 마을이 하나 등장하는데 그곳이 바로 닭실마을입니다.

 

 

풍수지리에 밝은 분들은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을 한 곳이라고 말을 한다네요. 그런 면에는 워낙 어두운 사람인지라 그런가보다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마을 앞으로 지나가는 철길이 영주에서 강릉으로 가는 영동선입니다. 

 

  

반듯한 기와집들이 얕으막한 야산을 따라 늘어서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중기에 활약한 이중환(李重煥 1690~1752)선생의 택리지(擇里志)라는 책에 의하면 이 곳은 삼남(三南)의 4대 길지(吉地)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예전 사람들이 생각했던 길지는 전쟁의 참화로부터 벗어나기 쉽고 식량과 물 걱정이 없는 그런 곳 아니었을까요?

 

경주 양동마을, 안동의 내앞마을(=천전川前마을)하회마을, 그리고 닭실마을이 4대 길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오늘 여기를 보면 그 네곳을 모두 다 둘러보게 되는 셈입니다. 양동마을에는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하회는 풍산 류씨가, 내앞 마을은 의성 김씨가, 그리고 닭실마을은 안동 권씨의 집성촌이니 명문세가가 다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셈이 됩니다.  

 

 

젊었던 시절에 이중환의 택리지를 읽어본 사실이 있습니다만 그때는 그렇게 쉽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인생을 살고보니 이제 조금씩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기차가 지나가는 철교 아래를 지나자마자 닭실마을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타납니다. 걸어가는 분이나 자동차를 타고 가는 분이나 여기에서는 조금 신경을 쓰는 것이 자기자신의 안전과 교통안전에 좋습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마을 이름은 깊은실이었습니다. 여기는 닭실입니다. 그런 것으로 보아 '실'이라고 하는 말 속에는 마을이나 골짜기라는 의미가 들어있다고 봐도 크게 틀린 해석은 아닐듯 합니다. 닭실을 한자로 옮긴 말이 유곡(酉谷)인 셈이죠. 이렇게 아름다운 순수한 우리말 마을이름이 사라져 가는것이 너무 마음아픈 일입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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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1.04.02 14:58

    첫댓글 글 가운데 오타가 하나 보이네요. 춘향전인데 춘양전이라고 써진 곳이 한군데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 11.04.03 21:13

    잘 읽었습니다. 오지 마을을 다녀가셨군요.
    혹시 춘양,봉화 비슷한 환경이 (산이나 내 같은 것)
    중국이나 중앙 아시아에 있던가요?
    단순 비교가 안 되겠지만..

  • 작성자 11.04.04 06:18

    우리나라의 산과 강모양을 닮은 곳은
    일본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요....
    우리나라 국경과 가까운
    중국의 만주 일부분에도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중앙아시아 쪽으로는 글쎄요.....
    터키 동남부는 건물 모양은 달라도
    사람사는 모습과 농기구는 너무 비슷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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