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마가 길길이 뛰었다. "뭐가 어쩌고 어째? 추살대가 오히려 당해?" 총관이 머리를 박으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이미 시체를 확인했습니다. 적호추살대가 틀 림없습니다." "말이 되나? 그놈이 그렇게 강한 놈이란 말이냐? 적호추살 대면 나도 기억하는 쓸 만한 놈들인데 그것들이 당할 만큼?" "그럴 리는 없습니다. 무공이 그렇게 높으면 알려지지 않 았을 리 없습니다. 애초에 혼자 다닌다고 알려진 것이 수상했 습니다. 아무래도 암중에 보호하는 무림맹의 고수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의 살막 사건 때를 생각해 봐도 그 가능성 이 높습니다." "으드득! 그렇겠지. 그 생각을 못한 것이 내 실수다. 하지 만 총관, 그런 것 정도는 총관이 알아서 알아냈어야 할 일이 잖아. 총관이 하는 일이 뭐야. 내가 하나하나 지시해야만 한 다고 생각하는 거야?" 총관이 의레 하는 말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죽여주십시오." "시끄럽다. 그래서 그놈은 지금 어디 있어? 다른 추살대들 은 뭐 해? 더 강한 놈들을 보내서 제거해 버려. 아, 그렇지. 시체의 상태는 확인했어? 주유성을 지키는 놈들의 무공은 어 느 정도인지 짐작은 가?" "죄송합니다. 그놈들이 시체를 태워 버려서 흔적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상관없어. 이번에는 아주 강한 것들을 보내. 아니, 추살대 나가 있는 것들을 전부 집중시켜. 어떤 비밀호위가 있더라도 다 죽일 만큼 확실하게 처리해!" "안 됩니다. 지금쯤이면 무림맹의 직접 관리 영역에 들어 섰을 시간입니다. 더 이상 추격이 불가능합니다. 애초에 시체 발견이 너무 늦어 시간 여유가 없습니다." 혈마가 다시 으르렁거렸다. "크아아! 놓쳤다고? 그건 놓쳤다는 말이잖아? 이 일의 책임 자들을 모조리 끌고 와. 내가 친히 박살을 내겠다!" "알겠습니다." 총관은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도 사파의 사람이다. 불똥 이 자기 대신에 다른 수하들에게 간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사람이다. 혈마의 분노가 다른 사람에게 간 것을 확인한 그는 안심했다. "그런데 주유성 그 개새끼가 잡아간 그 순찰사자 놈은 어 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그는 다만 순찰사자일 뿐입니다. 우리 사황성의 핵심 운 영에 관한 정보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쟁 준비가 끝났다는 것도 모르고, 그전에 마교와 무림맹을 먼저 싸움 붙 이려는 것도 모릅니다. 그런 건 장로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일 입니다. 그저 순찰사자로서 알 만한 정보가 전부입니다. 아무 리 주유성이라고 해도 더 이상의 정보를 알아내지는 못할 겁 니다." "그나마 그건 다행이군." "다만 한 가지, 이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아수라환상대진이 우리가 친 덫임을 알고 있습니다." "크으윽! 그래서 그놈을 죽여서라도 입을 닫게 만들었어야 하는 건데." "어쩌면 무림맹도 이미 짐작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관청에 서 팔독문을 치는 데 주유성이 참여한 것만 봐도 충분히 의심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미 짐작하는 정보라면 다소 누설된다 고 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그 순찰사자 는 개략적인 것만 알고 있습니다." "으윽! 그 이름을 들으니 또 뒷골이. 그래, 주유성. 그놈이 문제였지. 주유성, 가만두지 않겠다. 총관, 주유성 그놈을 제 거할 방안이나 마련해 봐." "하지만 그는 무림맹의 핵심 인물입니다. 함부로 제거했다 가 자칫 잘못하면 대업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든 무림맹과 마교를 먼저 싸우게 만들어야 합니다. 방법이 없 습니다." "그러니까 은밀히 제거할 방법을 찾아야지. 차도살인지계 를 쓰든 소리장도지계를 쓰든 계책은 총관이 알아서 마련하 란 말이야! 밥값을 좀 하라고!" * * * 무림맹이나 사황성 등에서 벌어지는 일에 언제나 귀를 활 짝 열어놓고 있는 곳이 바로 마교다. 마교는 중원의 서북쪽인 신강에 위치하고 있다. 그곳은 중 원에서 거리가 멀고 풍습이 조금 다르다. 환경이 다르다 보니 중원의 첩자들이 활동하기 쉽지 않다. 무림맹이나 사황성 역 시 마교 쪽에 첩자를 풀어놓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개괄적인 정보 이상은 얻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마교는 첩자를 부리는 조건에서 조금 입장이 낫다. 무림맹 이나 사황성 모두 중원에 있고 마교는 오랜 세월 무림과 싸움 을 벌여왔다. 그 세월 동안 중원에 박아놓은 첩자도 많고 곳 곳에 비밀 지부도 많다. 그 정보망이 팔독문의 멸문을 감지했다. 그 근처에 있던 마 교의 정보망이 총동원되고 약간의 운이 더해졌다. 그래서 마 침내 마교의 중원 첩보 조직은 주유성이 사황성의 인물을 잡 고 무림맹으로 갔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 소식은 최고의 전서구와 전서응을 이용한 가장 나쁜 소 식 전달 체계를 통해서 마교로 보고가 되었다. 마뇌는 들어온 정보를 가지고 수하 참모들과 논의를 거듭했다. 마침내 결론 이 나자 그는 그것을 들고 천마를 찾았다. 마뇌의 보고를 들은 천마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결국 주유성이 사황성의 사람을 잡아서 무림맹으로 갔다는 소리군.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쯧쯧. 그것도 하나 못 알아내나." 천마의 마뇌를 대하는 것이 이제 예전 같지가 않다. 마뇌는 주유성과 관계된 몇 번의 일을 실패했다. 물론 그 실패의 대 부분을 무마시키기는 했다. 하지만 천마의 주변에는 마뇌를 시기하는 자가 넘쳐난다. 그들이 천마의 귀에 마뇌에 대한 험 담을 계속 속닥였다. 천마도 마뇌가 하는 말이면 무조건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것은 다 지난 일이다. 아직도 마뇌의 말을 믿어주는 편이지만 더 이상 절대적인 믿음은 없다. 마뇌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이게 다 주유성 때문이다.' 새삼 주유성에 대한 분노가 일어남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마인들이 득실대는 마교 내에서도 닳고 닳은 마뇌다. 천마 앞 에서 함부로 화를 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추측은 가능합니다. 주유성은 무림맹의 중요한 일 을 하는 핵심 인물입니다. 또한 그 행적이 정상적인 궤를 벗 어나는 신비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게으름에 대한 소문은 아직 이 먼 신강까지 제대로 전해지 지는 못했다. 게으르다는 소식이 전혀 전해지지 않은 것은 아 니지만 마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단숨에 무시했다. 천마가 곱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그래서?" "그 주유성이 황제의 군대와 함께 움직였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림맹에서 황제를 이용해 사황성을 건드렸다고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천마의 말은 여전히 삐딱하다. 마뇌는 이제 슬슬 천마가 기 분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 팔독문은 하남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남은 아수라환상 대진이 재현된 곳입니다." 천마는 아수라환상대진 이야기만 들으면 짜증이 난다. 교 주에게만 전해진다는 절진이 과거에 실전되었다. 그런데 그 것이 엉뚱하게 사황성의 손에서 재현되었다. 그것만 해도 화 가 나는데 그 일 때문에 중원에 설치된 지부 여러 개가 날아 갔다. "아수라환상대진이 거기 펼쳐진 것은 그곳이 무림맹과 그 리 멀지 않아서라며? 마뇌 네가 직접 한 말이다." "물론입니다. 그것이 그 이유로 거기 세워진 것임은 의심 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목적을 완수하려면 수단이 필요 한 법입니다. 그만한 것을 만들려면 그만한 물자의 투입이 있 어야 하지요." "하남에도 수많은 사파가 있다. 어디서 그 일을 했을지는 모른다며?" "우리는 거기까지 거리가 멀어서 제대로 조사할 수 없었습 니다. 그런데 팔독문이 멸문하는 데 무림맹이 끼어들었습니 다. 무림맹은 그 일에 대해서 무슨 냄새를 맡은 것인지도 모 릅니다." 천마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호오. 그럼 마뇌의 말은 무림맹이 이제 진짜 범인이 누구 인지 알아냈다는 뜻인가?" 마뇌는 조심하기로 했다. 그는 그렇게 짐작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관없지.' "그렇게 추정됩니다. 아니라면 무림맹이 사파 하나를 없애 는 데 황제와 손을 잡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유는 찾으면 많지만, 듣기 좋은 말을 해야 교주의 신뢰 를 다시 찾아올 수 있으니까.' 천마가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억울함이 좀 가시겠군. 조금 늦었지만 그래도 그게 밝혀지면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지 말해보게." "무림맹을 부추길 기회가 됩니다." "부추긴다?" "진실이 밝혀지면 무림맹은 이제 사황성에 복수를 해야 할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가만 놔두면 적당한 복수로 끝 날 공산이 큽니다." "그렇겠지. 사황성과의 싸움은 부담이 될 테니까." "하지만 우리가 부추기면 가볍게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 다. 이걸 기회로 무림맹과 사황성이 전면전을 벌이기만 한다 면 대업은 다 이뤄진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좋겠지. 그러면 그들이 무림을 내 앞에 바치 는 것이나 다름없지. 그런데 어떻게 해야 그렇게 할 수 있지? 이미 여러 가지 시도는 했지만 무림맹 놈들은 함부로 싸움을 하지 않잖아?" "제깟 놈들도 바보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내부에 혼란이 있으면 그것을 외부로 분출시켜서 해결하고 싶은 법이지요. 무림맹 내부가 시끄러워지면 시끄러워질수록 그만큼 사황성 과 싸움을 붙이기 쉬워집니다." "무림맹 내부?" "무림맹 내분 계획을 강화해서 빠르게 추진할까 합니다. 아주 큰 수를 쓰겠습니다." "큰 수는 실패하면 손해잖아." "청성을 타락시키기 위해서 이십 년이 넘도록 그렇게 거금 을 쓴 것은 언젠가 써먹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그래." "나이에 비해 상식을 초월하는 능력을 가진 백마대를 그렇 게 오랫동안 키운 것도 정면 대결용 전투 부대로 써먹을 목적 은 아니었습니다." '나를 위해서였지.' 천마가 턱을 괴었다. "흐음. 청성과 백마대라..." "사황성과 무림맹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도록 만들 기회입 니다. 이미 얼마 전에 무사 삼천 명이 날아갈 만큼 크게 붙었 던 그들입니다. 조금만 더 부채질을 해주면 싸움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크으. 그때 주유성 그 인간 때문에 사황성의 일방적인 패 배로 끝났지. 그놈만 아니었으면 무림에 피바람이 불었을 텐 데. 정말 아깝게 됐어. 망할 놈의 주유성." "아직 불씨는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번에 다시 붙 으면 싸움은 더 커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때 무림맹이 강력 한 내분에 싸이면 아주 큰 싸움이 되겠지요. 거기다 더해서 사황성 내에도 내분을 조금 일으켜 준다면 반쯤 성공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천마가 가만히 듣다 보니 꽤나 그럴싸했다. "크흐흐흐. 그렇지. 청성이나 백마대 같은 것은 다른 사람 도 아니고 마뇌가 나서서 그렇게 오랫동안 준비한 일이지. 좋 아. 내가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테니 이번 일을 성공시키라 고. 뭔가 어려움이 있으면 이야기하고." 마뇌가 조금 망설이다 말했다. "어려움이라고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방해가 되는 인물은 하나 있습니다." "누구 말인가? 검성? 방해다 되면 제거해야 하지만 검성은 현실적으로 없애는 게 불가능하잖아. 내가 나설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놈들의 땅에 거대한 덫을 놓을 수도 없고." "검성이 아니라 주유성이 걸리적거립니다. 아무래도 그자 는 상상 이상으로 대단한 책사인 것 같습니다." '가만 놔두면 어디까지 클지 모르는 놈이지. 장차 무림맹의 군사가 되고도 남을 놈이야. 피해는 좀 있더라고 싹수가 보일 때 잘라 버리는 게 나아. 덤으로 내 안전도 좀 확보하고.' "아, 주유성. 죽일 놈이지. 하지만 무림맹의 주요 인물을 함부로 암살하면 사황성 좋은 일만 시켜주는 거라던 마뇌의 주장이 기억나는데?" "그걸 감수할 만큼 위험한 냄새가 나는 놈입니다." 천마는 일을 쉽게 생각했다. "알았어. 무공은 좀 쓴다고 하지만 어차피 계책이나 만드 는 책사 아닌가? 적당한 아이들을 보내서 제거해."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살막이 그를 제거하려다가 계략에 역으로 걸려들어 결국 멸문을 당했습니다. 그걸 생각 하면 어정쩡한 자들을 보내서는 어림도 없습니다. 오히려 역 공을 당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어쩌자고? 백마대를 쓰자고? 알았어. 마뇌가 원한 다면 쓰라고." "아닙니다. 백마대는 그런 일에 쓰려고 만든 부대가 아닙 니다." "그럼 누구를 원하는가? 말만 하게." "탈명수라대를 내주셨으면 합니다." 마뇌의 말에 천마의 안색이 나빠졌다. "탈명수라대를?" 탈명수라대는 교주 직속의 암살 부대다. 천마가 마교 내에 서 자기에게 거스르는 자들을 은밀히 제거할 때 쓴다. 말 그 대로 내부 숙청 전용이다. 마교에서 천마가 은밀히 제거해야만 하는 표적은 대부분 무공이 아주 높은 마두다. 그리고 탈명수라대는 그런 고수를 상대할 만큼 탁월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천마가 직접 무공을 손봐줄 정도로 공을 들여 키운 소수 정예 암살 전문 전투 부대다. "이봐, 마뇌. 너무 과한 수를 쓰는 거 아니야? 원래 닭 잡는 데는 소 잡는 칼을 쓰지 않는 법이잖아. 더구나 그 녀석들은 바깥으로 돌리는 놈들이 아니야." "약한 수를 쓰다가 실패하면 곤란합니다. 주유성은 극히 위험한 자입니다. 그의 계략에 당한 살막은 중원삼대 살수단 체였습니다. 우리 교의 다른 자객 조직들이 살막보다 낫다고 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탈명수라대가 필요합니다. 탈명수라대의 능력이라면 십 할의 확률로 그자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마뇌는 탈명수라대를 쓰고 싶다. 탈명수라대는 마교 내부 의 일에 쓰는 부대다. 무림맹이나 사황성과의 싸움에는 나서 지 않는다. 천마의 명령만을 받는다. 그 말은 탈명수라대가 마뇌 자신의 목을 노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뇌는 두 가지 계산을 했다. 마뇌는 주유성이 지금까지 보 인 능력을 볼 때 습격에 쉽게 당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지간하면 눈치를 채고 조력자들을 모아 함정을 파거나 스스 로를 방어할 거라고 짐작했다. '운이 좋으면 탈명수라대가 무림맹의 부대와 부딪쳐 반 토 막이 날지도 모르지. 그러면 탈명수라대는 더 이상 탈명수라 대가 아니게 되니까. 하지만 어떤 함정이라도 탈명수라대를 막을 정도는 아니겠지. 주유성은 반드시 죽을 테고. 나 몰래 내 목을 노릴 내부 부대는 없어지는 거지.' 탈명수라대가 무너지는 것은 그저 그의 기대일 뿐이다. 그 는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주유성이 그대로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손실없이 무사히 성공한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지. 그 때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지만.' 마뇌의 생각을 모르는 교주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웃으며 말했다. "좋아. 그렇게 하지. 어차피 우리 교에 나에게 반대하는 자 는 없으니까. 잠시 중원에 유람이라도 보낸 셈 치겠네. 그 녀 석들, 오랜 세월 수고했으니까." "시일이 제법 걸리는 일입니다. 확실히 처리해야 하기 때 문입니다." '없애지 못한다면 떼어놓는 것도 좋지.' "괜찮아. 이미 내가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시행해." "교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마뇌, 나는 너무 오래 기다렸어.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다 네. 더 이상 참지 못하겠으니 이제 그만 무림을 내 손에 쥐어 주게." "믿어주십시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 * * 주유성은 무림맹이 확실히 지배하는 영역에 들어섰다. 지 금 그가 수레를 몰고 가는 곳은 소림사가 멀지 않고 무림맹 도 가깝다. 그런 곳에서 감히 사파의 무리가 날뛰지는 못한 다. 목적지가 다가옴을 알아챈 순찰사자가 우는 소리를 했다. "대인, 정말 제가 살 수 있는 겁니까? 무림맹의 손속은 잔 혹하다고 들었습니다. 사황성의 순찰사자를, 그것도 잡혀온 순찰사자를 놓아줄 만큼 부드럽지 않습니다." "아 그놈 참, 살려준다니까 그러네." "하지만 제 말이 진실인지 무림맹이 어찌 믿어주겠습니까? 저는 고문을 당하다가 죽을지도 모릅니다." "고문이야 당하겠지만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무림맹의 고문은 지독합니다. 이미 여러 마두가 죽었습니 다. 저 같은 일개 고수는 뼈도 못 추릴지 모릅니다." 순찰사자의 말에 주유성이 잠시 갈등했다. 그 기색을 눈치 채고 순찰사자가 애절한 목소리로 사정했다. "대인, 살려주십시오. 앞으로는 착하게 살겠습니다." 주유성은 확실히 이 순찰사자를 살려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그 약속을 기반으로 거래를 했다. 사파의 악인과 한 약속 따위는 언제든지 뒤집어줄 수 있지 만 그건 어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있을 때의 이야기다. 그 는 기본적으로 계약을 중요시하는 상인의 아들이다. 그는 순찰사자의 말을 듣다 보니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죽음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확실히 무림맹 인간들도 무조건 믿기는 어렵지.' "야, 너 그동안 몇 명이나 죽였어?" 주유성은 일단 순찰사자가 약속을 지켜줄 만한 가치가 있 는 인간인지를 물었다. 순찰사자는 눈치가 빠르다. 그는 재빨리 대답했다. "저는 도둑놈 출신입니다. 사람을 죽이다니요. 어림도 없 지요. 더구나 사황성에 들어간 이후로는 글을 좀 읽을 줄 안 다는 것 때문에 행정 일만 줄곧 봤습니다. 지금 순찰사자 일 을 하는 것도 사실 행정직입니다. 무공으로 이 자리를 차지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주유성이 인상을 썼다. "너 팔독문에서 도망갈 때 보니까 경공이 제법 되던데?" "도둑놈이니까요. 도둑놈이 경공이 느리면 벌써 잡혀 죽었 지요." 주유성이 순찰사자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긴장한 순찰사 자는 이마에서 땀을 줄줄 흘렸다. '몸에 살기가 깃들지 않은 놈인 걸 보면 거짓말은 아닌가 보군. 그리고 이놈이 무림맹에 가서 내 무공이 그 추살대를 단숨에 무지를 만큼 된다고 하면 귀찮아질 거란 말이야. 협박 으로 입을 막으려는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지. 고문받다가 그 것까지 떠들 가능성도 높으니까. 에이, 운 좋은 놈.' 주유성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알았다. 살려주지." 순찰사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대인,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주유성은 이제 순찰사자의 무공을 폐쇄시켜 버리는 문제 를 고민했다. '무공도 없는 놈이 사황성의 추격을 피해서 도망가기는 어 렵지. 무림맹에서도 추격할 수 있고. 이놈이 잡히면 내가 더 곤란하단 말씀이지.' "대신 조건이 있다." 순찰사자는 죽으라는 조건만 아니라면 뭐든지 들어줄 용 의가 있다. "말씀만 하십시오. 귀를 씻고 듣겠습니다." "일단 니가 나한테 푼 이야기가 제법 돼. 그건 알지?" "물론입니다. 제 입으로 말한 일인데 모를 리가 있겠습니 까?" "내가 그걸 무림맹에 전할 거야. 그럼 너는 죽은 목숨이야. 무림맹이 아니라 사황성에. 그것도 알지?" "당연히 알고말굽쇼." "그러니까 내가 너 풀어주면 잘 숨어 있어. 어디 숨어서 사 냥을 하거나 농사라도 지어서 먹고살아. 글줄이나 읽었다니 훈장이나 하던지. 아니지, 너 같은 도둑놈이 무슨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훈장은 하지 마라. 여하튼 무공을 숨기고 재주껏 숨어 살아. 뭐, 무공을 드러내고 돌아다니면 사황성 손에 죽 을 테니 설마 그런 짓은 하지 않겠지." "알겠습니다. 절대로 무공을 쓰지 않겠습니다." "착하게 살아. 다시 도둑질을 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내가 찾아가서 목을 딸 테니까." "절대로 그러지 않겠습니다. 도둑질한 지 너무 오래 지나 서 이제 어떻게 하는지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만약 사황성으로 돌아가면 내가 거기 침투해서라도 죽일 거야. 내 실력 봤지? 너 하나쯤은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 사 황성이 배신한 네가 돌아왔다고 해서 경호에 얼마나 신경을 써주겠어?" "저를 죽이려고 한 그런 놈들에게 돌아가다니요. 천부당만 부당한 말씀이십니다. 더구나 거기 가도 저는 죽은 목숨입니 다. 절강성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겠습니다." 주유성이 영 탐탁지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도둑놈 한 마리를 세상에 풀어놓으려니 마음이 찜찜하네." 순찰사자가 화들짝 놀라서 급히 말했다. "절대로 도둑질하지 않겠습니다. 절대로 안 합니다." 주유성이 순찰사자의 몸을 묶은 끈을 풀어주었다. 무공을 제압하고 있던 혈도들도 풀었다. 오랜만에 힘이 돌아오자 순 찰사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순찰사자가 즉시 주유성에게 엎드리며 말했다. "대협, 이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주유성이 자기 품에 손을 넣으며 말했다. "어째 원한을 안 잊겠다는 것처럼 들린다?" 그가 품속의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적호추살대 다섯 명 의 몸을 뒤져 찾아낸 돈이었다. 그리 많은 돈은 아니지만 내 주려고 하니 아까워 죽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그는 꾹 참고 돈주머니를 꺼내 순찰사자의 앞에 툭 던졌다. 순찰사자가 이해를 못하고 질문했다. "이, 이건 왜..." "넌 이제 내가 놓친거다. 그러니까 네가 잡히면 내가 불편 한 일이 생겨. 하지만 도둑놈이 돈도 없이 떨어지면 뭘 하겠 어? 도둑질하다가 잡혀서 정체나 들키겠지. 도둑질 안 하려면 기반 잡을 돈은 있어야 할 거 아냐? 그거 가지고 가서 살아." 순찰사자가 돈주머니를 살며시 잡았다. 묵직했다. 그는 즉 시 수레 바닥에 머리를 찍었다. "대인, 이 은혜는 정말로 잊지 않겠습니다!" "마음 변하기 전에 빨리 가." 순찰사자는 정말 주유성이 마음이 변할까 두렵다는 듯이 얼른 주머니를 챙기고는 몸을 날렸다. 도망가는 순찰사자를 보며 주유성이 입맛을 다셨다. "피라미 하나 없어진다고 무림 대세에 무슨 영향이나 있으 려고. 그나저나 나는 또 거지네. 조금 빼놓을 걸 그랬나?" 가진 돈을 탈탈 털어 넘겼으니 수중에는 이제 한 푼도 없다. 주유성은 말고삐를 한번 툭 털며 말했다. "에이, 몇 푼이나 된다고.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먹지. 이 랴, 가자, 어서 가자. 무림맹이 코앞이다. 저기만 가면 산해 진미는 아니어도 맛있는 음식이 많으니까. 가서 배 터지게 먹 자." 얼마 안 되는 남은 거리를 가면서 그는 밥을 먹지 못했다. 평소처럼 일을 조금 하고 끼니를 때울 수도 있었지만 이번에 는 그러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무림맹이고 거기 가면 공 짜 밥이 잔뜩 있다는 생각이 이미 그의 뇌리를 지배한 상태였 다. 멀지 않은 곳에 밥이 있는데 일을 한다면 일포십한의 게 으름뱅이라고 놀림을 받지도 않는다. 그리고 주유성이 마침내 무림맹에 돌아왔다. 하루를 꼬박 굶은 그는 주린 배를 움켜쥔 채 식당부터 찾았다. 주유성은 무림맹에서 상당한 유명 인사다. 아수라환상대 진 사건 때 그에게 목숨을 구함을 받은 사람이 무수히 많다. 그전에 있은 무림비무대회에서 이미 허풍대협이라는 엉뚱한 별명도 얻었다. 그리고 그 후에 오협련의 사건 때에는 그들을 구하고 사황성을 퇴치하는 큰 공을 세웠다. 그에게 구함을 받 은 그 사람들은 주유성이라면 껌뻑 죽는다. 여러 가지 사건에 주유성이 개입한 덕분에 무림맹에 고정 적으로 거주하는 사람의 상당수는 그의 얼굴을 알고 있다. 그 래서 주유성이 무림맹에 나타나자 사람들이 즉시 알아봤다. 집에 갔다던 주유성이 갑자기 나타났으니 그에 대한 소문 이 돌지 않을 수 없다. 주유성이 돌아왔다는 소식이 빠르게 무림맹에 퍼졌다. 추월은 주유성의 집이 있는 서현으로 가려고 준비를 대충 마친 상태다. 이제 무림맹을 그만두겠다고 통보하고 허락만 받으면 끝이다. 그녀는 노예 신분이 아니고 무공이 뛰어난 사 람도 아니다. 허락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검옥월도 추월이 가면 따라가려고 짐을 챙겨두었다. 핑계 는 험한 세상에서 잠시 추월을 지켜주는 것이고 내심은 주유 성을 보러 가는 것이다. 남궁서린은 혼자 서현에 갈 명분이 없다. 그래서 그녀는 추 월과 검옥월에게 잠시 따라붙기로 했다. 그렇게 세 명의 아가씨가 출발 준비를 끝내가고 있을 때 주 유성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세 아가씨는 챙겨놓은 짐을 내팽 개치고 식당으로 달렸다. 식당 문을 박차고 들어가자 그녀들의 눈앞에 정신없이 밥 을 퍼먹고 있는 주유성이 보였다. 추월이 뾰족하게 소리쳤다. "공자님!" 그녀는 주유성이 무림맹에 와서 자신보다 밥을 먼저 찾은 것이 많이 서운했다. 그건 사람 좋은 검옥월도 마찬가지고 귀 하게 자란 남궁서린도 마찬가지다. 검옥월은 원래 눈매가 날카롭다. 그것이 그녀의 인상을 험 악하게 만든다. 웃어도 째려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그녀가 진짜로 째려보자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세 아가씨가 주유성을 째려보는데도 그는 히죽 웃으며 손 을 흔들 뿐이다. "쩝쩝. 추월이 왔냐? 검 소저와 남궁 소저도 왔네요? 와서 좀 들어요." 검옥월은 주유성이 공짜 음식을 자기가 사는 것처럼 선심 쓰는 듯 말하는 걸 보고 마음을 풀며 피식 웃었다. '주 공자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 라 정말 같이 먹기를 바라는 사람. 나에게도 항상 진심으로 대해주는 사람.' 검옥월이 주유성의 곁에 와서 털썩 주저앉았다. "그럼 조금 맛이나 볼까요?" 밥을 먹은 지 오래되지 않아 배는 고프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유성과 함께라면 배가 탱탱해질 때까지 먹어줄 수 있었다. 일단 검옥월이 자리에 앉자 추월과 남궁서린도 즉시 달라 붙었다. 못내 마음이 풀리지 않은 추월이 쫑알거리며 젓가락을 들 었다. "흥. 돼지 공자님." 본 성격과는 다르게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는 많이 부끄러 워하는 남궁서린도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저, 저도 조금만." 어느덧 네 명은 음식을 먹으며 왁자지껄하게 떠들기 시작 했다. 주유성은 진고불을 만난 이야기를 했다. 세 아가씨는 명성이 자자한 천하제일포쾌에 대한 이야기를 즐겁게 들었다. 포쾌 일에 관한 이야기가 재미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주 유성이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걸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주유성은 무림맹 최고회의를 소집했다. 사실 그가 소집한 것은 아니다. 그는 아수라환상대진에 대한 정보가 있다고 언 질만 주었고 그것만으로 최고회의는 소집되었다. 주유성은 순찰사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아낌없이 전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자 사람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마침내 무림맹주 검성 독고진천이 입을 열었다. "수고했구나. 그나저나 아수라환상대진이 사황성에서 친 덫 이라니. 우리는 완전히 헛다리를 짚고 마교를 공격했군." 독고진천의 말에 청성의 적명자와 군사 제갈고학의 안색이 나빠졌다. 적명자는 이번 일이 마교의 짓이라 믿고 보복을 가장 강하 게 주장한 사람이다. 그러나 자신이 사황성의 속임수에 완전 히 넘어갔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이건 모두 주유성 저놈 때문이다. 저놈만 아니었으면 묻 힐 수 있는 일이었거늘.' 그는 엉뚱하게 주유성을 욕했다. 제갈고학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번 일이 마교의 짓이라고 주장했다. 누구 짓인지 아직 알 수 없다고 반발하는 주유성을 꾸짖기까지 했다. 하지만 증거를 들고 들어오니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미운 놈, 두고 보자.' 그 모습을 보고 취걸개가 고소하게 생각했다. '명색이 무림맹 군사라는 자가 유성이 녀석보다도 못한 판 단을 내리고 그 때문에 우리에게 큰 손해까지 끼쳤으니 면목 이 없겠지.' 자기중심적인 인간인 적명자는 쉽게 죽지 않았다. 그는 갑 자기 고개를 들고 외쳤다. "그 모든 것은 주유성 너의 입에서 나온 것일 뿐이구나! 증 거는? 증거는 있느냐?" 주유성이 무시하는 어투로 대답했다. "없어요." "허어, 증거가 없어? 네가 그 정보를 빼냈다는 사황성의 순 찰사자는 어디 가고?" "놓쳤어요." "놓쳐? 놓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그런 놈 하나 제대로 데려오지 못했어?" 주유성이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이 정보를 얻는 데, 그리고 그놈을 잡아오는 일에 무 림맹은 도대체 무슨 도움을 줬어요? 멋도 모르고 가만히 있다 가 이제 와서 성이나 내고.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사황성의 추격에서 그놈을 지켜요? 정보 빼낸 것만 해도 대단한 거 아 녜요?" 적명자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개인이 이런 일을 했으면 응당 크게 칭찬하고 포상할 일이다. 백번 양보해도 욕을 할 상황은 아니다. 그는 주유성의 얼굴만 봐도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대답 하기 곤란했다. '이놈이 그자를 사황성의 추격에서 지킬 수 있는 실력자라 고 하면 그건 실력을 치켜세워 주는 꼴이 되는군. 그렇게는 못하지. 하지만 지키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면 더 이상 추궁할 수 없다. 으윽, 간사한 놈.' 입술을 덜덜 떨면서도 말을 못하는 그 모습에 주유성이 씩 웃었다. 그 얼굴을 본 적명자는 혈압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크윽!" 무당의 청허자가 급히 중재에 나섰다. "그래, 수고했다. 그걸 알아온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지. 네 덕분에 흉수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아냈으니 그것만 해도 충분하다. 그까짓 순찰사자 하나 놓친 것이 무슨 대수이겠느 냐? 사황성에는 순찰사자가 한둘이 아닌데." 군사 제갈고학이 어떻게든 딴죽이라도 걸어보려고 끼어들었 다. "그자의 값어치는 일개 순찰사자 정도가 아니지요. 이 일 의 증거가 되는 자 아닙니까? 그런 자를 놓쳤으니 주유성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난감할 따름입니다." 제갈고학의 말을 주유성이 곧바로 받아쳤다. "내 말이 거짓이라고 쳐요. 그런데 순찰사자라고 데려온 자와 내가 입을 맞췄다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순찰사자에게 가짜 정보를 말하게 했으면, 그래서 무림맹의 심문에서 그 순 찰사자가 내 주장과 같은 것을 말했으면 어쩌려고 했어요? 그 건 믿으려고 했어요?" "그자가 목숨이 위협이 되면 어찌 거짓을 말하겠느냐?" "내가 나와 다른 말을 하면 진실을 말하라고 고문하다 죽 을지도 모른다고 협박했으면? 그자에게 나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이 살아날 유일한 길이라는 확신을 심어줬으면?" 제갈고학도 할 말이 없다. 정말 그렇게 했으면 무엇이 진실 인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말로 전해지는 정보는 그걸 말한 사람을 얼마나 믿을 수 있 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법이다. 그리고 주유성은 무림맹주나 청허자, 취걸개 등에게 깊은 신뢰를 받고 있다. 지금 무림맹 회의에서는 주유성이 그렇다고 하면 무조건 사실로 결론나는 분위기다. 제갈고학은 이런 식으로 딴죽을 걸어봐야 도움이 되지 않 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검성이 헛기침을 해서 사람들의 주의를 모았다. "유성이가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지. 그리고 이야기를 들 어보니 앞뒤가 딱딱 맞기도 하고. 유성이의 말이 정말인지는 팔독문의 그간 행적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면 나올 테니 걱정 하지 맙시다. 일단 지금까지의 정보만으로도 그 일이 사황성 의 짓이라고 판단하는 데 부족하지 않으니 대책부터 세워봅 시다." 검성의 말에 명성을 좋아하는 적명자가 즉시 나섰다. "당연히 보복을 해야지요. 그렇게 당하고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당한 만큼은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합니다." 적명자의 말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다. 무림은 은 원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무림인은 복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조직이건 매파와 비둘기파가 있는 법이다. 사 람들은 보복 자체에 대해서 찬반으로 나눠서 열띤 토론을 벌 였다. 무림은 확실히 은원에 의해 움직인다. 그리고 명예와 자존 심도 한몫한다. 그래서 대세는 점점 보복 찬성으로 기울어졌 다. 그러자 이번에는 보복의 규모를 놓고 싸움이 벌어졌다. 한참을 떠드는 회의장을 주유성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앉아 있었다. 그런 주유성의 기색을 느낀 검성이 말 을 걸었다. "유성아, 뭐 다른 할 말이 있느냐?" 주유성이 안 좋은 안색으로 말했다. "다들 놓치고 있는 게 있거든요? 사황성이 왜 그런 일을 저 질렀는지는 생각들 안 하세요?" 적명자가 즉시 호통을 쳤다. "사황성은 악 그 자체다! 악당이 우리 정파 사람을 죽이는 데 무슨 이유가 있을까? 그저 우리가 없어지면 좋을 테니 저 질렀겠지." 제갈고학은 주유성을 노리고 맞장구를 쳤다. "주 소협은 설마 그걸 의심하는 건가? 혹시 주 소협은 사황 성이 사실은 좋은 곳이라는 그런 생각을 가진 건가? 그렇다면 그건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야." 주유성이 피식 웃었다. "사황성이야 깨부숴야 할 놈들이지요. 세상에 그런 놈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한심할 정도니까. 하지만 적이 미운 건 미운 거고 이유는 이유지요. 이유없이 그런 큰일을 벌인 다? 사황성이 악당은 틀림없지만 바보는 아니거든요?" "어허, 사황성이 바보가 아니라니. 그들을 좋게 평가하는 언동을 하는 것을 보니 주 소협의 정신 상태가 의심스럽군." 주유성이 슬쩍 비웃어주며 말했다. "사기꾼을 한번 보세요. 사기를 쳐먹으려면 당하는 사람보 다 사기 칠 일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지요. 하지만 무림맹 군 사씩이나 되는 사람의 말은 사기꾼은 나쁜 놈이니까 그 일을 잘 알 수 없다는 뜻처럼 들리네요? 어떤 일에 대해서 자기보 다 모르는 놈에게 사기를 당한다? 말이 돼요? 정말 그런 생각 을 가지고 무림맹의 군사 하는 거예요?" 무조건적인 질책을 하던 제갈고학은 다시 말문이 막혔다. 주유성의 말투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당장은 대답할 말 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도 주유성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대응책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적당한 변명에 반박거 리를 찾느라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주유성은 적명자와 제갈고학을 입 닥치게 만들고 사람들 을 둘러보며 말했다. "사황성은 바보가 아니에요. 그런데 지금처럼 큰 충돌 없 이 자잘한 싸움만 벌이고 있는 평화기에 그런 큰 짓을 저질렀 어요. 저는 상인이거든요. 그래서 큰 투자를 할 때는 더 큰 이 익을 얻을 기대를 하지요." 큰 투자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장사 자체를 해본 적이 없지 만 말은 언제나 청산유수다. "그런데 사황성이 큰 일을 했어요. 엄청난 자금이 들어갔을 게 틀림없는 일을 벌였고, 그것을 만드는 데 비밀 유지도 철 저히 했어요. 즉, 큰 투자를 한 거예요. 그걸 써서 우리 정파 의 사람들을 죽이려고 했어요. 잘못했으면 만 명 가까이 죽었 겠지요. 그건 정파에 큰 손실이에요. 왜 그렇게 했을까요?" 취걸개가 무척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설마 정사대전?" 제갈고학이 즉시 반박했다. "그 정도로 정사대전이라니. 설사 만 명을 잃어도 우리 정 파 전체를 놓고 보면 그 힘은 크게 줄지 않는다. 더구나 만 명 중에서 우리 무림맹 사람은 불과 삼천. 무림맹은 삼천쯤은 감 수할 수 있어. 사황성은 그 정도로는 정사대전을 잉르키지 못 해." 주유성이 즉시 인상을 썼다. '우리 편 목숨 삼천 명이 감수할 만한 거라니. 뭐 이런 개 새끼가 다 있어?' 주유성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켰다. 그는 손가 락 하나를 세워 흔들었다. "아뇨, 사황성이 우리를 직접 공격해야 정사대전이지요. 그런데 그 목적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무림맹은 그 일이 마교 의 짓이라고 판단을 내렸거든요." 주유성이 적명자와 제갈고학을 돌아보았다. 제갈고학이 뜨끔해서 급히 변명했다. "당시 상황 증거가 모두 마교의 짓이라고 가리키고 있었으 니까." 주유성이 탁자를 탁 쳤다. "그렇죠? 상황 증거가 마교의 짓이라고 알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왜? 이건 사황성이 한 짓인데 증거는 왜 다르죠? 왜 진 짜 때린 놈은 숨어 있고 다른 놈이 때린 것처럼 보이죠?" 취걸개가 한마디 했다. "혹시 이호경식지계나 차도살인지계?" "몰라요. 어쨌든 사황성은 무림맹과 마교가 붙기를 원했어 요. 도대체 왜?" 둔한 몇 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상황을 완전 히 이해했다. 제갈고학이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군. 우리와 마교가 서로 큰 싸움을 벌여 심각한 손실 을 입기를 바랐군. 그래서 우리의 세력이 약해지면 뒤통수라 도 치고 싶었을지도. 내가 판단하기에 이건 사황성의 음모다. 죽일 놈들." 주유성이 제갈고학을 비꼬았다. "이제 그거 모르는 사람 없으니까 '내가 판단하기에' 같은 말 하지 않아도 돼요." 제갈고학의 얼굴이 벌게졌다. 주유성의 생각에 슬쩍 편승 해 군사의 명성을 살리고 싶었는데 그걸 대놓고 언급하며 면 박을 주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무림맹 장로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사황성이 그렇게 나왔다면 이건 명백한 도발이오." "아니. 도발은 우리 정파의 사람 만여 명을 죽이려고 할 때부터지. 이건 전쟁을 일으킬 준비라고 보기에 부족함이 없어." "하지만 그들이 어찌 감히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겠소? 그 건 공멸하는 길이거늘." "그러나 주 공자의 말을 들어보면 틀림없잖소." "하긴. 주 공자가 하는 말이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삼절서생 주유성 공자 아니오니까? 믿을 만한 말이외다." 계속해서 주 공자라는 말이 들려오자 제갈고학은 점점 밸 이 꼬였다. 그것도 주유성의 판단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로 들 리니 더 마음이 상했다. 더구나 자기가 듣기에도 그 말이 너 무나 그럴싸해서 화가 났다. 그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크게 말 했다. "그렇게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일제히 제갈고학을 돌아보았다. 제갈고학이 급 히 말을 이었다. "제 판단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사황성은 단지 우리 정파의 힘을 줄이고 싶어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 함정을 팠지요. 만여 명이 거기서 죽었다면 우리 정파의 기운은 상당히 타격 을 받고 그만큼 사황성의 세가 세졌을 테니까." 장로 하나가 즉시 반박했다. "그렇다면 왜 그걸 마교가 한 짓으로 만들었다는 말이시오?" "그게 바로 그들도 우리와의 전쟁은 바라지 않는다는 증거 입니다. 범인이 마교인 줄 알면 우리는 사황성에 보복을 하지 않을 테니까요. 보복을 해도 마교에 하거나 아니면 참고 넘어 가겠지요. 어느 쪽이 되더라도 사황성은 손해 볼 것이 없습니 다. 그저 우리 무사들의 수가 줄어드는 만큼 그놈들은 이익이 지요." "그럼 군사는 주 공자가 말한 것, 그러니까 사황성이 전쟁 을 하려고 우리와 마교의 싸움을 붙이려 한다는 의견에 반대 한다는 것이오?" "물론입니다. 사황성은 충분히 풍족합니다. 그리고 우리 정파의 힘은 강합니다. 사황성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우리는 그들을 무찔러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황성은 단지 세력 을 키우는 것이 목적입니다. 원래부터 전쟁을 일으킬 종자들 이 못 됩니다." 군사의 말이 사람들에게 조금 설득력있게 들어 먹혔다. 무엇보다도 무림맹의 장로들 대부분은 사황성과의 전면전 을 하고 싶지 않다. 그건 정말 피의 폭풍이 몰아치는 일이다. 가능하면 사태를 좋게 생각하고 싶다. 그런 마음이 있으니 조 금 사리에 안 맞아도 다들 군사의 말을 믿고 싶어했다. 적명자가 분위기를 보더니 재빨리 찬성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요. 사황성이 감히 우리 무림맹을 상대로 사생결단을 하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그날이 그들의 제삿날이 될 텐데 그저 지금 누리는 것에 만족하고 살겠지. 아니지, 만족이 아니지.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누리려고 우리 힘을 줄이는 것. 그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이지요." 무림맹 군사의 말에 청성의 적명자가 동의하자 분위기는 슬슬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제 최고회의의 장로들은 이 일이 사황성의 전쟁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는 의견과 단순히 규모가 큰 도발이라는 두 가 지로 나뉘어 팽팽하게 맞섰다. 그런데 양측 모두 가진 정보가 적다. 추측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물러서는 쪽은 없었다. 주유성이 자리에서 스윽 일어섰다. 취걸개가 그런 주유성 을 보고 말을 걸었다. "그냥 가려고?" "더 떠들어도 결론은 나지 않아요. 어쨌든 무림맹도 이제 사황성의 움직임에 대해서 긴장 좀 할 테니까 이만하면 나 쁘지 않죠 뭐." 주유성이 속 편하게 말했다. 그는 요새 명성깨나 얻었다. 하지만 무림맹 장로들에 비하면 끗발이 떨어지는 신분이다. 더 이상 주장해 봐야 제갈고학이나 적명자가 받아들일 것 같 지도 않다. 그리고 실제로 그 자신도 가진 정보가 많지 않다. 이 일이 사황성의 전면전 준비라는 의심은 조금 들지만 그 증 거는 없다. '무림맹이 바보들만 모인 곳도 아닌데 순순히 속지는 않겠 지. 알아서 잘하겠지.' 주유성은 터덜거리며 회의장을 나섰다. 그의 뒤로 얼굴을 붉히며 서로 고함을 지르는 무림맹 장로들의 목소리가 시끄 럽게 들려왔다. |
첫댓글 즐독합니다
즐감 하고 갑니다
ㅎ늘 감사 히 잘읽고 갑니다
즐독입니다